여성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함께 일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 이들과의 모임을 통해 이 꿈을 현실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연대의 힘을 믿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자인을 하는 우유니 동문을 만나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O-O-H를 운영하는 우유니입니다. 한국의 여성 디자이너들과 연대하는 네트워크인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의 창립멤버이고, 동료들과 페미니즘 도서 출판사 봄알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ooh_graphics O-O-H(오오에이치)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 운영 (o-o-h.net)

@baumealame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 디자이너 

@fdsc.kr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 멤버 

 선배님께서는 예전에 회사원으로 계시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자립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이전 회사는 야근이 많은 곳이라 힘들어서 그만두었는데요, 퇴사한 다음 어떤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 사건을 통해 문제의식을 느꼈고 지금의 봄알람 팀원을 만나 책을 내게 된 거예요. 사실 프리랜서로 활동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프리랜서처럼 활동하게 된 것에 더 가까운 거죠. 예전에 회사를 다녔을 때 알았던 분들에게 일을 받으면서 독립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자립하는 과정 자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기보다는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현재 봄알람에서 나오는 페미니즘 서적들의 디자인을 맡고 있으신데, 특별히 페미니즘 북디자인에 있어서 신경 쓰고 계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옛날에는 약간 사회적으로 사회적인 여성성을 수행하는 미감 같은 것이 있었어요. 옛날에 나왔던 페미니즘 책에는 분홍색이 많이 들어갔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요소들이 포함되거나 한정된 여성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그런 것을 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시각물들의 스타일이나 미감이 한정적이어서,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다양한 작업을 통해 더 발전된 작업을 하려고 했어요. 

요즘에는 많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집중했던 시각적 다양성의 측면을 넘어 여성들과의 협업을 진행하는 시도를 하거나 여성 디자이너가 만든 서체를 이용하는 등 제작과정에 있어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배님의 디자인 철학이 잘 나타나는 작업물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사실 다 기억에 남고 다 소중하긴 하지만, 봄알람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김지은입니다’라는 책을 만들 때는 특히나 신경을 많이 썼어요. 간단하게 그 디자인을 설명하자면, 표지에는 찢어진 서류봉투가 하단에 있고 노트 모양이 상단에 있어요. 성폭력이라는 저자의 피해 경험 자체가 사적인 영역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미투’를 통해 공적인 영역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중요한 사실을 세상에 내보이고 알린다는 의미로서 서류봉투에서 나오는 노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잡고 디자인을 했었어요. 폰트도 최대한 여성들이 만든 폰트를 사용했고, 피해자가 슬퍼 보이거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디자인을 피하려고 했어요.

 선배님의 졸업전시 작품에서도 페미니즘적 요소가 담겨있던 거로 알고 있어요. 선배님께서는 대학교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고학년이 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3학년 때 디자인 스튜디오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주제를 정해서 작업을 하는 과제였어요. 저희 팀은 유아에게 일어나는 성 피해가 심각하다는 문제를 인식했고, 그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성교육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졸업전시로는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후로는 적극적인 액션을 하려고 나름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활동하고 계신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은 여성 디자이너와의 연대를 꿈꾸면서 조직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홍익대학교의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체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은데, 교수나 임원 혹은 디렉터 급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성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겉으로 잘 드러나는 유명한 사람들,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남자들이고, 그렇기에 남자들끼리의 네트워크도 끈끈하고 강해요. 이처럼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은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끝까지 더 높은 자리까지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껴 만들어진 커뮤니티 모임이에요.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가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만남을 통해 서로 돕고, 함께 더 높이 올라가고, 같이 더 오래 일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죠. 지금은 약 180명 정도 인원이 활동하고 있고,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말 다양한 것을 하고 있어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디자인 FM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여성 디자이너들의 일과 작업이나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fdsc.txt라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견적서나 새로운 툴, 재무제표, 글쓰기 등을 배우는 클래스 등을 오프라인에서 소모임 형태로 진행했었어요. 코로나 이후로는 온라인으로 주로 진행했는데요, 저희가 6개월마다 신규회원을 모집하고 있어서 최근에는 신규회원을 위한 설명회인 오픈데이를 주최했어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은 다 같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운영 규칙이나 방침이 있어요.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확실해서 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고, 오프라인상의 모임에서는 공간의 제약이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적정 인원만 받고 있어요. 오픈데이 신청 기간에 신청서를 제출한 디자이너들 중 세부 직업군, 근무 형태, 연차 등을 고르게 선청하여 모집하고 있어요.

 많은 일을 하고 계셔서 힘든 점도 있으셨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굳이 하나를 꼽자면 언제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조금 무딘 편이어서 감정적인 소모를 할 일은 많지 않았어요. 대신 점점 바빠지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아직 일과 사적인 삶의 균형을 건강하게 조절하는 일이 어설픈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손을 거친 결과물로 인해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다거나, 위안을 얻거나,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때 정말 기뻐요. 특히 봄알람 책들이 그렇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코멘트들을 많이 찾아봐요. «김지은입니다»를 보고 용기를 얻어 싸움을 시작했다는 분들도 있고요. 봄알람 책에 나온 내용을 즉각적으로 활용해서, 상대방과 입장 차를 줄이는 도구로 유용하게 쓴 사례를 보는 때도 있었고요. 또 디자인이 아주 좋고 적절하다는 얘기 들을 때 기분이 너무 좋죠. 

 선배님께서 봄알람 초기에는 내일 그만둬도 된다는 생각으로 순간에 충실하게 디자인을 하셨지만, 최근에는 그럼에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신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그냥 큰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페미니즘 콘텐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시장을 위한 디자인도 하고 있는데, 여러 방면에서 조금 더 규모가 큰일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제가 일할 때 즐겁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제 가치관과 맞는 것들이라서 페미니즘 관련된 디자인도 많이 하고 싶지만, 사실 그런 프로젝트가 많이 있지도 않고. 있어도 저한테 많이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앞으로는 규모와 예산이 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들이 저한테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를 꿈꾸는 홍익대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현역 디자이너가 되면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활동에 관심을 갖길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가입을 통해 같이 연대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 활동을 하면서 든든한 동료와 선배들을 알게 되는 과정들이 디자이너에게는 커리어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데, 앞서 말했듯 잘나가는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 상사가 별로 없으니 여성 디자이너로서 롤모델로 삼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교류와 소통이 없다면 고립감을 느끼기가 쉬워요.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다.’, ‘아직 보이지 않을 뿐, 여성 디자이너들은 많이 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기 생각을 확장하고 성장하여 탄탄한 커리어를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김예진  dimplezynn@gmail.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