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학생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홍익대에서 ‘예술과 매체’ 수업을 맡고 있는 최소영이라고 합니다. 수업을 맡은 지 8년 정도니까 꽤 됐네요.(웃음) 이외에도 예전에 ‘예술과 환경’ 수업을 했었고, 지금은 ‘미학입문’ 수업도 같이 맡고 있습니다.  

 어떻게 매체 미학을 연구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부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어요. 그래도 무언가 충족이 안 되니까 제 기준에 끌리는 인문학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어요. 문학에서 시작해 철학책까지 읽다 보니 어느덧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미학과로 진학했어요. 이때부터 진정으로 하고 싶던 것들을 하게 돼요.

석사까지는 칸트를 전공했는데, 박사 과정에 들어가며 문득 매체를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부터 매체와 사회, 매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매체 미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이 분야에 큰 흥미를 느꼈어요. 제가 아직도 매체 미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재밌으니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밌거든요. 모든 분야를 섭렵할 순 없지만 공부를 하다 서로 연결이 되는 지점들이 보일 때가 즐거워요.

 예술과 매체 강의를 오래 맡으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알고 싶습니다. 

수업 전반부인 중간고사 이전에는 매체 담론 공부를 통해 인간과 인간 문화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매체라는 게 무엇이고 매체이론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소개해요. 이를 위해 기술 매체 담론 중에서 사진론, 영화론, 텔레비전론, 디지털적 컴퓨터론과 같이 중요한 내용을 뽑아 학자들의 원문 중심으로 강의합니다. 중간고사 이후에는 구체적인 작품을 다뤄요. 사진이나 영화는 물론 비디오아트나 디지털아트와 같이 미디어와 관련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한 작업들을 소개해요. 수업을 다 듣고 난 학생은 매체가 무엇이고, 매체이론이 무엇을 다루는지, 그리고 매체와 예술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사례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학자들의 원문을 중심으로 강의하시는 이유와, 구체적으로 어떤 학자들을 배우는지 궁금합니다.

원문을 읽는 것은 인문학 수업에서 특히 중요해요. 수많은 해석서도 결국 원문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해석서보다는 원문을 읽어야 하죠. 그래서 제 수업의 4주 정도를 몇 학자들의 원문 읽기에 할당해요. 인문학 관련 공부를 많이 해보지 않은 학부생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원문을 고르고, 이를 한줄 한줄 같이 읽으며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동원해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어요.

벤야민과 맥루언이라는 학자는 항상 고정이에요. 이들의 관점을 알고 있어야 다른 매체이론을 접할 때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거든요. 벤야민은 최초의 매체이론가로 앞서 중요하다 말씀드린 사진과 영화를 분석했어요. 맥루언은 텔레비전을 분석한 학자인데 그 명성에 비해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아 다뤄요. 이외에 보드리야르, 키틀러, 플루서와 같은 나머지 학자들은 학생들이 따라오는 정도를 봐서 학기마다 조금씩 바꿔요. 

 수업 구성상 디지털 매체보다 사진,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아날로그 매체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시는 것 같아요.

요즘이 디지털 시대라 해서 디지털 매체에 관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요. 뉴미디어 아트와 같은 현대적인 작업도 전통 예술과 비교해 뭐가 달라졌고,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좀 알아야 작품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가능해요. 가령 중요한 뉴미디어 아트인 비디오 아트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거든요. 텔레비전에 관한 얘기를 하려면 대중사회와 관련하여 더 이전의 매체인 영화를 다루는 이론가들이 있어요. 이렇게 영향을 준 매체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대중 매체라고 할 수 있는 사진까지 알아야 해요. 그래서 제가 수업을 사진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사진과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디지털까지를 중요한 대중적 매체라고 보고 이들을 다루는 이론가를 소개해요. 말씀해주셨다시피 디지털 매체에 대해서는 이론을 깊이 다루기보단 작품을 많이 보여줘요. 디지털 매체 담론들은 현재 진행형인 것들이 많아서 교양수업에서 학부 학생들에게 소개하기에는 정리가 덜 됐거나 어렵거든요. 반면 사진, 영화, 텔레비전의 이론들은 비교적 정돈이 잘 되어있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저도 소개하기가 편해요.

구체적인 작품을 다루기 전에 미학 이론을 공부하게끔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인문학은 인간 자체, 문화,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어느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이 중 매체라는 변수를 통해 인간, 문화, 예술을 바라볼 때 달라 보이는 지점들을, 잘 정리되어있는 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학생들과 공유하는 게 제 수업 목표 중 하나예요. 그래야 수많은 예술현상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쉬워지거든요. 예술과 매체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가 수업의 주제이기 때문에, 같은 작업이라도 더 폭넓은 시야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똑같은 역사, 똑같은 문화적 상황이라도 매체라는 변수가 들어가는 순간 보이지 않던 지점들이 보이고 새로운 의미가 도출되거든요. 이론 공부를 통해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새로운 예술현상으로서의 미디어아트 작업들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술과 매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가장 배웠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매체 미학은 매체라는 변수를 통해 인간의 지각체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연구해요. 텔레비전이든 컴퓨터든 특정 매체의 등장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완전히 다르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물을 사진으로 포착해 볼 수 있고, 녹음기술의 발달을 통해 여태까지 듣지 못했던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지각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기에 ‘인간은 어디까지가 인간인가?’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벤야민은 영화가 등장한 이후에 인간의 지각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얘기합니다. 제가 지금 학생하고 웹엑스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웹엑스 기술이 인간 지각의 연장인지, 혹은 별개인지와 질문이 가능해요. 

우리는 사진,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과 같은 매체기술들이 중층적으로 구성한 세계에 살고 있기에, 현대 사회에서 매체 기술 없이 인간은 인간일 수 없고 인간 문화 또한 유지될 수 없어요. 학생들은 디지털 매체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매체의 영향을 저보다도 더 인식하기 어려울 거예요. 자연스러우니까. 그럼에도 여러 매체가 인간과 인간 사회에게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특히 예술에 가해진 영향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예술과 매체 수업은 어떤 학생들이 많이 듣고, 또 어떤 학생이 들으면 좋을까요? \

아무래도 미대 학생들이 많이 들어요. 요즘 예술작품들은 과거에 비해 매체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매체를 여러 방식으로 활용하다 보니 복합적인 예술작품들이 나오는 거죠. 미대 학생들이 이런 예술 작업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매체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동안 미대가 아닌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들어왔었고, 저 또한 수업의 초점을 특별히 미대 학생들에게 맞추지 않아요. 간혹 첫 수업을 듣고 자기는 미대생이 아닌데 수업을 들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어느 전공이든지 수업을 듣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어요.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때문에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들을 수 있어요. 참고로 자기 전공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교양 수업을 잘 활용하는 걸 추천해요. 예상치 못한 계기를 얻어갈 수도 있거든요. 

 작년 말에 출간된 『인공지능시대의 예술』의 마지막 장에 ‘상상계와 인공지능예술의 관계에 관한 소고’를 실으셨어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신 건가요?   

인공지능이 예술을 하는 시대가 된다고 해서 인간의 상상력이나 인간 예술가의 역할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는 게 글의 주제예요. 어떤 기술 매체를 완전무결한 도구로 보기보다, 우리가 만들어 낸 기술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게 매체 미학의 기본 관점이거든요. 새로운 매체를 막연히 두려워할 게 아니라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 우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인간의 논리적인 추론 능력을 기기상 체화해서 자동화시킨 컴퓨터 기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안겨줬는지, 그리고 이것들로부터 인간의 영역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떠올려 보세요.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감성이나 상상력과 같이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 여겨진 영역을 자동화시켜 우리에게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도울 수 있어요. 나아가 누구나 예술 작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데에 일조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령, 작곡을 도와주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내가 원하는 음악을 직접 만들 수 있겠죠. 

사람은 기술에 대해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기술 발전이 주는 생활의 편리함은 좋아하지만 기술에 대한 공포심도 있어요. 인공물이 인간의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뿌리가 깊죠. 이는 산업혁명 이후에 본격적인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며 심화된 현상으로, 더 이전에는 낭만주의 시대에도 나타났고, 초기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나타난 심리적인 영역으로 볼 수 있죠. 물론 이런 문학의 영역에서 다룰 법한 내용들도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현재의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상상력을 덜어낸 객관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과 같은 인문학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위를 보면 늦은 나이에 인문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근데 인문학은 경영학이나 공학과 같은 응용 학문에 비해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려요. 대학원에 늦게 진학하는 만큼 공부한 내용을 펼쳐 성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시간 제약이 생기는 거죠. 인문학 연구자를 꿈꾼다면 공부를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을 추천해요. 저는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는데, 저희 과에도 늦게 오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미학이라는 학문이 뭔지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도 그중 하나였죠. 미학이 뭔지 알았더라면 공부를 더 일찍 시작했을 거예요.

인문학 분야에서 경제적인 성취가 쉽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에요. 인문학으로 밥 벌어 먹고살기 어려운 건 지금뿐 아니라 몇십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 학부를 선택할 때 그나마 취업이 잘 되는 과를 가려고 했었죠.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깨달았을 때 경제적인 불안 속에서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냅다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거 안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꾸역꾸역 왔고, 지금 삶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일단 맡은 수업들을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충실히 하려고요. 그리고 논문이든 책이든 제가 공부한 내용들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정리해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제 머릿속이 정리 안 된 책장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어요. 질리도록 들었을 테고, 본인들이 더 잘 알 테니까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도 이런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게 정말 고마워요. 저는 열정과 에너지는 있었지만 대체 뭘 해야 할 지 몰랐던 시간을 오래 보냈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냥 들어갈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러다 계기가 생겨 방향을 틀었죠. 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당시의 저보다 대부분 어리겠지만 분명 비슷한 고민을 할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힘들 수도, 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뚫고 제 수업에 들어와서 앉아있다는 게 참 기특해요. 제 주변엔 요즘 젊은 애들은 예전에 비해 책도 안 읽고 생각하는 힘이 약하다고 하는 어른들이 있어요. 그럼 전 우리 세대보다 더 성실하게 자기 일상을 일구어나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항상 말씀드려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얘기밖에 없네요. 진짜예요.(웃음) 그래서 수업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요. 

민태홍  mintaehong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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