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미래를 두려워한다. 과연 이 전공이 나에게 맞는 길일까, 그 직업을 선택하면 나는 행복할까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여기, 그 질문들에 “조금이라도 끌리면 그냥 해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변호사이자 방송인이자, 교수님인 전세준 동문이다. 제너럴리스트로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선배님.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법학부 97학번 변호사 전세준입니다. 저작권, 지식재산권, 그리고 스타트업 법률자문을 전문으로 하고 있고, 홍익대학교에서 약 10년 동안 겸임교수로도 강의하고 있어요.

선배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대학 시험은 고등학교 시험과 다른 점이 많아서, 많은 학생이 대학에 와서 첫 시험을 보면 많이 위축되곤 하잖아요, 저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어요. 다른 학생들은 다 잘 보는 것 같은데 나만 엉망진창으로 본 것 같고, 잘 본 것 같은 시험도 낮은 성적을 받아 혼란스러웠어요. 저는 삼수해서 입학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학교도 잘 안 나가게 되어서 결국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세 학기 연속으로 학사경고를 받고 수능을 한 번 더 보기도 했어요. 사실상 사수생이죠. (웃음)

변호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멋있게 사회 정의와 인권, 공익을 위해서 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실 그런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군대에 다녀온 뒤, 사시 1차에 합격한 과 동기를 찾아갔었어요. 그 친구가 사시 준비를 해보고 나면 학교 수업도 따라갈 수 있을 거라며 같이 사시를 준비하자고 했어요. 바로 복학한 뒤에 좋지 않은 성적을 받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복학하지 않고 8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했어요. 아쉽게도 떨어졌지만, 덕분에 학교 수업 내용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점점 전공에 흥미도 생겼어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2008년 사법시험에 최종합격을 했고, 이후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판·검사가 될지, 변호사가 될지 결정해야 했어요. 판·검사가 되려면 연수원 성적이 굉장히 좋아야 하는데, 여러 과목을 동시에 공부하는 건 여러모로 힘들어서 일단 한 과목이라도 열심히 완벽하게 해서 몇 등을 하는지 보자고 생각했어요. 형사변호사 실무라는 과목이었는데, 객관식 40문제 중에 두 문제를 틀렸는데도 천 명 중에 660등이었어요. (웃음) 성적을 받고 난 후 판·검사에 대한 생각을 접게 되었고, 그 후로는 변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변호사가 무슨 직업인지를 많이 듣고 열심히 배우며 변호사로 사는 삶을 준비했어요. 제 연수원 생활은 일종의 변호사라는 직업의 체험 시간이었던 셈이죠.

변호사 업무를 하시면서 많은 사건을 맡아보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을까요?

보통 의사는 스페셜리스트라고 표현하고 변호사는 제너럴리스트라고 표현해요. 의사는 전문 분야만 다루지만, 변호사는 그 밖의 다양한 분야까지 다루기 때문이죠. 저도 전문 분야는 지식재산권, 저작권이지만, 전체 업무에서 이 일들은 20~30% 정도이고, 나머지 70~80%는 부동산, 임대차, 이혼, 형사 등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들이네요.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학생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접하는 형사사건이에요. 준강간미수죄에 관한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 피고인은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어요. 1심을 맡았던 변호사가 무조건 무죄 받을 사건이라며 얘기했던 터라, 피고인은 형량을 받고 순간 분노하여 피고인 대기실에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가 3초 만에 제압돼서 바로 돌아갔어요. 이 행동이 이후에 도주미수죄로 기소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죠.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 판례가 없던 터라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다행히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만약 유죄가 나오게 되면 대기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하고, 그걸 막으려면 대기실에 항시 검찰 수사관이 대기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요. 하지만 검찰에는 그 인력이 없어요. 이미 제도적으로 맹점이 있었던 거죠. 2심에서도 무죄가 나왔고 검찰에서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인데, 선례가 없는 대법원 최초의 사건이라 저도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작권과 지식재산권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법률자문도 하고 계시는데, 스타트업에 변호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타트업이라는 존재는 2012년에 개업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단순히 재밌어 보여서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 업무들을 많이 맡았죠. 저는 스타트업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들으려고 해요. 그 사업안에 법을 어기는 내용은 없는지, 비즈니스 모델의 적법성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서예요. 전문 분야를 떠나 계약, 관련 법령, 의료법, 금융과 관련된 법까지 모두 촘촘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 스타트업 법률 자문이에요.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다 보니 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고, 많은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주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리해서 강의를 진행하기 시작했어요.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혼자서 사업 전반에 집중해야 해서 법률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많고, 또 스타트업은 개별적인 경우에 관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그런 것들이 정리된 강의를 정말 좋아해 주세요. 요즘에는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법률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많아 외부 강의도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 학교 법대에서 겸임교수로도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모교에서 강의하시는 게 정말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그렇죠. (웃음) 학생 시절에는 어쨌든 사시 1차 합격한 전력이 있었으니까 학교 내에서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통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속해 있던 학회 애들 2~30명 정도 모아놓고 강의 같은 것들을 몇 년 하게 됐는데, 그 때 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어요.

첫째로, 우리 학교에는 우리 학교 출신 교수님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학생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수님이 서울대 출신이셨어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교수님은 천재니까, 머리가 좋으니까, 서울대 출신이니까 되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제 마음이 닫혀 있다 보니까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셔도 약으로 쓰지 못했어요.

둘째로, 진로를 계획할 때 도움받을 선배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지금은 로스쿨에 진학하는 법대 학생들이 많아졌지만, 제가 학생일 때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선배나 동기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공부했어요. 고민이나 답답함을 털어놓을 곳도 없으니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서, 나중에 변호사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든 학생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친족법 강사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원래 강의하시던 분이 급하게 다른 학교로 가시면서 강의할 기회가 생겼던 건데, 마침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시간이 많았던 터라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매주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도 해줬어요. 가끔 그 친구들이 메일을 보내주는데 그게 정말 뿌듯하고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웃음)

수업 중에 교수님의 학부 시절 성적표를 보여주신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학생들은 교수님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현직 변호사인 제가 학교에서 강의하니까 학생들은 ‘분명히 저 사람은 뭔가 남다른 게 있었을 거고,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달랐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사법시험 붙는 데 왜 7년이나 걸렸겠어요. 3년 안에 붙는 사람도 많고 평균적으로도 4년 반이면 보통 붙는 시험인데 말이에요. 제가 성적표를 보여주는 건, 학생들이 그런 선입견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저는 앞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학생에게 자신을 ‘넘지 못할 벽’처럼 묘사하는 게 정말 나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성적표를 보면 저는 전혀 특별하거나,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그냥 온종일 공부만 한 덕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프리카TV에서 BJ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방송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실 아프리카TV에서 법률 상담 방송은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프리카TV 사장님께서 변호사를 찾고 계셔서 법률 상담인 줄 알고 도와드리려 했는데 알고 보니 BJ였던 거죠. 아무튼, 아프리카TV에서 사람들이 채팅창에 질문을 올리면 제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답변해주는 방식의 방송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절박한 마음에 질문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점점 시청자들이 늘면서 질문도 많이 올라왔는데, 점점 외면하기가 힘들어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게 되었네요. 제가 이미 하는 일이 많은 데다가, 학교에서 강의 시수도 늘어나기 시작해서 18년도 이후부터는 그만하게 되었어요. 4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늘날 많은 후배들이 진로와 관련해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메뉴판이 없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여기 뭐 팔아요?”라고 물어볼 거 아니에요? 근데 자기 직업을 고르는 데는 메뉴판을 안 보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냥 공무원, 대기업, 중소기업, 전문직으로 나누고 끝이에요. 그런데 그게 직업이 될 수는 없잖아요.

취직도 ‘왜 우리 회사에서 당신을 뽑아야 해요?’, ‘당신은 우리 회사에 뭘 기여해줄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만 할 수 있으면 취직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지원하는 회사에 맞지 않는 스펙만 많이 쌓아 놓는 것은 ‘이 스펙이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세요.’ 같은 자세와 같은데, 문제는 그런 스펙은 남들도 다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반대로 내가 먼저 타깃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서 나를 만들어야 그게 스펙이 되는 거에요.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어 미치겠는 게 얼마나 있겠어요. 그러니 무언가에 조금이라도 끌리면 일단 해보길 바라요. 기회가 왔을 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열심히, 잘하려고 해보세요. 그게 돈이 되는지 아닌지는 그다음에 생각해보는 거죠. 젊을 때는 당장 돈이 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쌓여서 30대가 되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니까요. 학우분들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용준  yjun28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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