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늘 함께 하는 일상적인 존재가 된 대중예술. 때로는 시대가 변화하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삶 곳곳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 대중예술을 소개하는 수업이 있다. ‘대중예술의 이해’ 수업의 박기영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1. 안녕하세요, 교수님! 학생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장 박기영입니다. 동물원의 멤버인 동시에 2013년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 재직하다가 작년에 신설된 공연예술학부에서 실용음악 전공, 뮤지컬 전공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양 수업으로는 ‘대중예술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 대중예술의 이해 수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배울 수 있나요?

대중예술은 입체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단순히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전달하기보다 예술적 접근과 더불어 문화 산업적인 접근도 함께해서 다각적인 관점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각 주차에서 다루는 수업 내용은 시대와 이슈별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들로 선정했어요. 전반부는 주류 대중예술의 성립과 발전과정에 중점을 두고 강의합니다. 대중예술은 상품인 동시에 예술이라는 모순성을 가지는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중 상품성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어요. 예술이 일정 부분 자본과 미디어 권력에 순응한다는 속성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동시대 주류예술의 발전과정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 예술은 혁신과 창조를 본질로 하는 행위예요.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혁신과 창조’가 그동안 자본과 권력의 지도를 거부하는 삐딱이들을 낳았고, 앞으로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업 후반부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삐딱이들’,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예술가와 예술에 주목했어요.

3.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예술로 대변되어야 하는 비주류, ‘삐딱이들’의 목소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예술은 우리 사회 모든 비주류, 주류 지향적인 가치관과 권력의 통제에 힘들어하는 모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세기,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시대적 화두는 소수자성의 반란 그리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전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완전히 완성된 과정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과정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은 결과물들을 분명히 끌어내고 있어요. 제 전공인 음악만 살펴봐도 초창기 대중음악은 인종적 그리고 민족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출발했거든요. 대표적으로 미국 흑인음악이 있겠네요. 그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10대들, 청년들, 서구 노동자들,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기도 했죠. 이렇듯 다양한 감각, 가치관, 관심사를 지닌 예술가들이 거침없이 자기 목소리를 쏟아낼 수 있고 다양한 주장과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가 진보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요.

4. 수업 중 직접 음악을 연주해주신다고 들었어요. 어떠한 까닭으로 그러한 교수법을 도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모두 같이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음악적인 접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수업이 단순한 지식 전달만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해요. 수업을 통해 음악도 들어볼 수 있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학생 대부분이 음악 이론에 익숙하지 않잖아요. 이론적인 내용을 설명해 드리면서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강의실에 피아노가 있으면 피아노를, 피아노가 없는 강의실이면 멜로디언 같은 악기를 활용합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들을 직접 소리로 들려주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훨씬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더라고요.

5. 대중예술의 이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수업에서 다루는 이슈, 예술가, 작품들에 대한 특정한 지식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대중예술에 대한 예술적, 사회학적, 문화 산업적 접근을 통해 학생 자신만의 관점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해요. 전통적인 예술사의 관점을 따르지 않고 예술 사회사적인 관점을 취한다거나, 대중적인 이슈나 비주류 예술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관련 아티스트나 작품들의 가치를 추켜세우기보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했어요. 저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자신만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그걸 본인 삶에 관철해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요. 신념과 주장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관점을 서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까지 가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다양성이라는 가치와 차이를 인정하는 것도 일종의 예술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6. 앞으로 현대 사회에서 대중예술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요?

예술이 곧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어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의 행위들이 문화적 행위로 읽히는 것을 뛰어넘어, 예술적 행위로도 읽히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범주의 예술 장르로는 음악, 미술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의상, 요리, 주거와 같은 일상의 행위들도 새로운 범주의 예술 장르가 되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일정 부분 예술적 요소를 지니게 되었어요. 근대 순수예술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모든 일상의 행위들이 예술의 영역에서 추방됐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일상적 행위들이 다시 예술의 영역으로 복귀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리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예술이란 의식주를 해결한 후 여가 시간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불안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감정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도, 예술은 수행돼야 하고 우리의 삶에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7. 예술이 곧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미래에서, 대중예술의 생산자 역할을 하게 될 청년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제작자의 지도에 따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단순노동을 반복하는 기술자 혹은 유행을 따르는 음악만 공장 노동자들처럼 찍어내는 기술자가 아니라 내 작품의 주인은 전적으로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아티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중예술의 생산과 소비에 직결되는 나이대는 20대와 30대 같은 젊은이들이에요. 일단 중장년층에 접어들면 대중예술이라는 세계의 중심에서는 점점 멀어지죠. 젊은 세대의 청년들과 또래들은 예술가들에게 우리 세대 선지자의 역할을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도 많은 청년이 음악가 혹은 미술가와 같은 예술가들이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에 주목해요. 그래서 예술가들에게는 동시대 청년들이 듣고자 하는 목소리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귀 기울이며, 교감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대중예술의 소비자 또한 자신의 삶을 직접 설계하고 기획하는 주체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8. 앞으로 실용음악 교육자로서의 다짐이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줄곧 대중음악가의 삶을 살아오다 작년 공연예술학부가 생기면서 운 좋게 후배 음악가들, 미래의 예술가들과 함께할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어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스스로 다짐하는 게 있는데, 절대 학생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는 것이에요. 대중음악이 제도권의 교육으로 편입되면서, 저도 모르게 무언가를 자꾸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학생들에게서 부족한 부분 혹은 못 하는 부분을 자꾸 찾아내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학생들의 단점을 찾아내고 지적하기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개성에 주목하며, 그들이 가진 예술가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이 하루빨리 꽃필 수 있게 돕는 지도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가능성과 장점을 발견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예술가의 꿈을 잘 가꿔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계획이기도 해요.

9.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동물원이라는 팀을 통해 음악 활동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진로를 갖게 되었어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것도 아니었고, 재학 시절에 음악 쪽으로 진로를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기는 했지만, 음악 활동은 계속 이어나갔어요. 그래서인지 음악 동료들은 저를 회사원으로 봤고, 또 회사에서는 저를 가수로 생각했죠.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시간을 오래 보냈어요.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치면서 삼십 대 중반쯤에는 울진의 한적한 바닷가 근처에서 몇 년 동안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저에게 울진은 연고도 없을뿐더러 카페를 운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이었죠.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던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막막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이십 대도 아닌 무려 삼십 대 중반에 길이 끊어진 동해 바닷가를 바라보며 도대체 길이 어디냐, 네 인생도 참 답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답답해했던 기억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의 음악가와 실용음악 교육자로 사는 삶이 시작된 지점 또한 동물원 활동이에요. 동물원 멤버로서의 활동은 삶이 내가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다는 사실과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기회와 우여곡절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요.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예측불허로 전개되기도 했고, 그 속에서 삶이 결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겸허함도 배웠습니다.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살다 보면 운명 혹은 기회 같은 어떤 특별한 계기가 반드시 찾아오더라고요. 그때 여러분들이 준비되어 있으면, 그런 기회들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요즘은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다들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가혹한 시간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24시간과 저의 24시간은 그 밀도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의 하루는 제 하루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응축된 하루일 겁니다. 여러분들보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50대를 지나고 있는 저는 제가 지켜야 할 게 너무나 많아서 이미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날아오르기에는 두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운 거죠. 하지만 여러분들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게 가능한 나이고, 그 자체가 무한한 잠재력이 되겠죠. 그래서 젊음이 무서운 거 아닐까요.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지원  05ovo22@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