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산업의 종말, 변곡점을 맞다

2019년은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토(1919)>가 개봉한 이래로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해이다. 그 의미에 걸맞게 외화를 제외하고는 <극한직업>, <기생충> 두 편의 한국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기생충>은 다들 잘 알다시피 칸에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에서는 4관왕을 달성하며 한국영화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그러나 영화계 내부에서는 우리 영화산업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통 2000년대 초중반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나타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후 새로운 대형감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영화가 <쉬리(1998)>,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시작으로 양적, 질적 성장을 보여준 1998~2007년 이후, 우리 영화의 연도별 수출금액은 급감하며 외국 시장의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과 존경심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2007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많은 영화인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걸까?

자본에 길든 한국영화

많은 영화인과 평론가들은 지금의 위기가 대자본 독점의 폐해라고 말한다. 2000~2007년 사이에 영화산업의 붐이 일자, 우리가 아는 대자본들이 산업에 발 들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들어온 현재 3대 극장 체인(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점유율은 97%를 기록하고 있고, 5대 배급사(CJ ENM, 롯데ENT, 쇼박스, NEW,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가 한국영화의 90% 이상을 배급하는 등 대기업이 영화산업 전반을 독점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산업 전체가 수직계열화되고, 극장의 우세적 입지를 기반으로 한 불공정거래행위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영화인들은 우리 영화산업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으며 지금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목소리들은 수년간 나왔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마침내 2020년 2월, 영화인들은 목소리를 모았다. 영화산업 구조개혁 법제화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은 임권택, 이창동, 정지영 등 중견 감독, 안성기, 정우성, 조진웅, 정진영 등 중견 배우, 제작자, 작가, 노조, 평론가, 교수, 정책, 영화제 인사 등 1차 서명자 59명과 온라인 서명자 1,266명 포함 총 1,325명의 서명을 받아 대기업에 편중된 영화산업 구조개선 촉구에 나섰다. 이들이 말하는 우리 영화산업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대책은 무엇일까?

스크린 독과점

해마다 할리우드 발 대형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포털사이트 메인에는 스크린 독과점 이야기가 빠짐없이 보인다. 그중 가장 대표적 예가 바로 2019년에 개봉한 <어벤져스:엔드게임>이다. 당시 이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85%의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다. 보통의 경우 상영작 중 1위 영화의 좌석점유율이 30%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85%는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고, 이 정도의 수치라면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볼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국영화 최초, 국내 상영 영화 중 역대 1위로 1,700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2014)>이다. <명량>은 개봉 일주일 만에 좌석점유율 60%를 기록했다. 실제로 당시의 상영시간표를 보면 전체 시간표 중 60~70%가량을 <명량>이 차지하고 있고, 오히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하루에 한 편 정도 상영되는 진풍경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700만의 대흥행이 ‘스크린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기도 했다.

영화계, 언론에서는 이에 관한 문제 제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작 운영주체인 극장은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도리어 영화인들은 극장이 스크린 독과점을 적극적으로 더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위 ‘더 잘 팔리는 영화’가 많이 걸릴수록 극장의 수익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영화시장에서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가장 먼저 이익을 얻는 것은 극장이다. 극장이 지금과 같이 잘 팔리는 영화를 스크린에 도배하고 수익만을 좇는다면,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는 철저히 흥행 공식에 따라 만들어져 적당히 볼 만한 영화만 많이 제작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프랑스를 모범사례로 꼽으며 스크린 독과점 금지 규정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 상영관 규칙을 보면, 전체 상영관이 8개인 멀티플렉스의 경우 상위 영화 한 편은 오직 2개의 상영관에만 걸 수 있고, 나머지 6개 관에는 다른 영화를 걸어야 한다. 비율로 보면, 25%의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한 영화에 일일 최다 4개 스크린만 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한 영화가 다양한 기호의 관객들과 만나는 것을 보장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9년 4월 민주당 우상호 의원을 필두로 한 의원들이 50%의 스크린 상한제를 담은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영화인들은 “이 안대로라면 20개 스크린에서 오직 두 편의 영화만 보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입법안을 보호안이라고 내놓은 걸 보면 솔직히 힘이 빠진다”며 최소 30% 규제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급·상영 겸업 제한

앞서 말한 3대 극장 체인들은 상영뿐만 아니라, 투자·배급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를 ‘수직계열화’되어 있다고 하는데, 한 기업체에서 그 분야 산업 전반의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CJ그룹이 배급사로는 CJ ENM, 상영으로는 CJ CGV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같은 기업이기 때문에 CJ엔터테인먼트(CJ ENM 영화사업본부)는 CGV에 매우 싼값에 영화를 배급하고 있다. 이렇게 한 기업이 영화의 투자부터 제작, 배급, 상영까지 가능한 것은 CJ와 롯데뿐이지만, 두 회사의 상영점유율만 해도 80% 이상이기 때문에 영화 산업 전체에서 배급비가 꾸준히 내려가고 있다.

사실 이 두 회사가 싼값에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수익은 극장에서 발생하니 배급사가 손해를 입으면서 배급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다만, 독립배급사는 얘기가 다르다. CJ와 롯데가 이렇게 배급비를 계속 내리면 독립배급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더 싼 가격에 영화를 배급할 수밖에 없어서 갈수록 중소 배급사가 살아남기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안정적 수익성을 띄는 영화들만 극장에 상영될 수 있다.

이렇게 극장의 힘이 세지고, 배급사의 힘이 약해지다 보니 극장의 갑질도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전에는 영화의 마케팅비를 극장이 부담했지만, 이제는 그중 1/4가량을 배급사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상황을 만든 배급사와 극장의 갑을관계에 주목한다. 극장이 규칙을 정하면, 배급사는 이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더 헐값에 배급되는 영화들만 스크린에 걸려 전체적인 작품들의 하향 평준화에 대한 우려로까지 이어진다.

2019년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영화 100년 세미나: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진단과 대안’ 토론회에서는 수직계열화에 의한 밀어주기에 대한 구체적 지적이 나왔다. CJ엔터테인먼트의 영업이익률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총 여섯 해 동안 매해 한국상업영화산업 평균에 미치지 못한 것을 넘어 손해를 보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업계 1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병인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는 “이윤을 추구하는 정상적인 회사의 행태로 볼 수 없는 것으로 더 나아가 오히려 계열사인 CGV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별도의 법인인 CJ엔터테인먼트가 비상식적인 희생을 감내해왔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CJ엔터테인먼트가 이윤을 추구하는 정상적인 회사였다면, 영업손실을 막기 위해 부금(극장에 대한 한국영화의 가격)의 인상을 요구했어야 한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 전혀 없었고 계속해서 손실을 감내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CJ는 영화산업 전반을 좌우할 수 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급사의 일방적인 희생이 업계 표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CJ엔터테인먼트가 자해적 거래를 하던 동안 CGV는 지속적으로 영업흑자를 기록하면서 CJ그룹 전체의 수익 극대화에 이바지했다.

이에 대한 영화인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CJ ENM을 예로 들자면, 전체 배급 사업에서 극장 배급 영역만 독립시키라는 것이다. 배급업을 겸하는 극장 체인은 일정 시장점유율 이상의 극장을 경영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겸업 제한’을 통해 ‘97% 독과점의 장벽’을 해체해 배급사의 원기능을 찾고 극장의 폭주를 막자는 것이다.

독립·예술영화의 소외

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대로 제작되는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한다. 독립, 예술영화는 투자, 이윤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이 창작자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기존 상업영화는 쉽게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면서 전체 영화산업의 자양분이 된다. 상업영화는 흥행과 수익을 위해 ‘검증된 감독, 검증된 배우’를 활용하는 안정적 선택을 하므로 독립, 예술영화의 침체 정고가 심할 경우 매번 같은 감독, 배우들의 작품들만 보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는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에 출연한 남성 주연 배우들은 대부분 40대에 접어든 배우들이다. 이렇게 되면 시나리오 작가들이 20대 학생 역할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를 구상하고 싶어도 배우를 구할 수 없다는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반면 독립, 예술영화는 자본의 압박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감독, 배우들도 자유로이 활동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상업영화에 새롭게 유입되어 산업 전체가 고여있지 않게 한다. 전체 영화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의미다. 하지만 상업성, 대중성이 부족하여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통의 상영관에는 잘 상영되지 않는다.

그래도 CGV아트하우스가 그동안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투자, 배급, 상영 사업을 진행하면서 독립·예술영화계 발전에 큰 몫을 했지만, 이들조차 독립·예술영화의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투자, 배급사업을 접고 떠났다. 한 독립영화 관계자는 “극장, 배급망을 모두 갖춘 아트하우스조차 철수하는데, 앞으로 어떤 대기업이 독립영화의 투자·배급에 나서겠느냐”며 “독립영화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독립·예술영화는 한 해 개봉되는 전체 작품 중 약 10%를 차지한다. 분명 적지 않은 비율이다. 하지만 관객점유율은 0.5%에 불과하다.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과가 저조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할 테지만, 볼 곳이 없다는 해석이 좀 더 합리적일 것이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벌새>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44개의 상을 받으며 작품 그 자체의 높은 완성성을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국내 독립·예술영화가 5만 명 정도의 관객 수를 기록하면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는데, <벌새>는 2019년 8월 29일 개봉 이후 같은 해 11월 30일까지 무려 14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대단히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과연 어느 정도의 스크린에 걸려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개봉 후 10일 동안 평균 118개의 스크린에 걸려, 1.72%의 스크린 점유율을 기록했다. 서울 전체의 스크린 수가 600개, 전국 전체 스크린 수는 3,128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적은 스크린에 걸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준비모임은 이에 ‘영화법’ 개정을 통해, 멀티플렉스 내 독립·예술영화상영관 지정과 해당 상영관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독립·예술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일수의 60/100 이상 상영할 것을 제안한다.

앞으로의 한국영화산업

위의 세 가지 이슈는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준비모임이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는 ‘포스트 봉준호법’이다. 이 법이 국회에서 다뤄지고, 입법되고 시행된다면 우리 영화산업은 어떻게 될까?

부정적 효과도 발생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시장 내의 다양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CGV 용산아이파크몰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를 방문해도 이전과 달리 4가지 이상의 영화를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고, 독립·예술영화를 만나보기 위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대자본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 중소배급사가 살아나는 등의 변화로 인해 산업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극장들이 드디어 미쳤다. 불가능해야 할 수치가 나오고 말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구제불능, 치료 불가, 회복 불가능이다."

“극장은 편식을 강요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앞으로도 별문제 없이 편식은 계속될 것이고 관객들은 자신이 돼지로 길들여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은 후고, 국내 영화산업이 다 망한 상태일 것”

오랜 시간 영화 배급업에 종사했고, 최근 <영화 흥행과 배급>이라는 책을 내며 흥행분석 이론을 제시한 이하영 전 시네마서비스 이사가 <겨울왕국2>가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뛰어넘는 상영횟수를 기록하자 극장들의 태도를 비판한 글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 영화계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은 남아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포스트 봉준호법에 담긴 내용들이 연착륙하여 우리 영화산업의 미래가 이하영 전 이사의 예측과 달라지길 바라본다.

이용준 yjun28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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