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취향에 취향을 더해서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공간은 취향을 말하는 또 다른 언어다.

누군가 우연히 마주친 텅 빈 공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흔적을 잔뜩 비축한 채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간은 끊임없는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는 개인의 취향을 향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한정된 공간에 갇혀있는 것만 같아 조금은 괴로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많은 사람과 밖을 돌아다니기에는 힘든 상황이지만, 상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 몸을 담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취향에 싫증 나버린 당신이라면, 잠시 눈을 따라 함께 다른 이의 정원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

학교에서 내려와 굽이굽이 연남동의 작은 골목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취향 박물관에 놀러 온 듯한 착각을 느낄 때가 많다. 향초로 가득 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향기부터,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온갖 잡동사니가 정신없게 진열된 공간까지. 다른 사람의 취향을 구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어디를 들어갈지 고민이 되어 우두커니 선 방랑자가 되어갈 때쯤, 따뜻한 목소리가 말을 건넸다.

“저희는 작고 소박한 고양이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집에서는 3냥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 부부이기도 하죠. 잠시 저희 얘기를 들어보실래요?”

* 연남동 고양이가 있는 액자 가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희로1길 46

Instagram : @yeonnam_cat_popart

입구부터 늠름한 고양이가 압도하는 분위기에 넋을 놓아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사장님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담긴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공간에 서 있자니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

고양이에 이끌려 들어왔는데, 중간중간 위치한 커다란 액자가 시선을 빼앗는다. 다시 밖에 나가 간판을 살펴보니 가게 이름은 ‘고양이가 있는 액자 가게’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저희 가게를 방문해주신 걸 환영해요. 주위 카페 사장님들께서는 저를 ‘고사장님’이라고 불러주시는데, 그 느낌이 구수하고 편해서 좋아해요. 괜찮으시다면 고사장이라고 불러주셔도 될 것 같아요.

상상이 안되시겠지만, 사실 저희 가게는 원래 이름도 고양이도 없는 ‘액자 가게’였답니다. 저희 부부는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자주 가던 방콕에서 ‘페이머스 팝아트’ 액자의 매력을 느껴서 처음 액자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평소에 모아두었던 고양이 소품을 매장에 하나둘 가져다두기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 모습의 시작이 되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처음 왔을 때 심플한 1인 미용실이었던 공간이 알고 보니 고양이 책방을 운영하시는 김대영 작가님의 작업실이기도 했대요. 공간의 기운을 이어받은 건지, 지금은 액자보다 고양이 소품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네요. 팝아트도 좋은데, 고양이는 더 좋아서요.”

잠시 시선을 돌려 가게를 구석구석 구경하는데, 좁은 공간이 작은 빈틈 하나 없이 수많은 소품으로 뒤덮여있다. 어느 하나 손길 닿지 않은 것이 없는 듯한 수집품이 눈을 즐겁게 한다.

“무척 작은 공간인데, 저희가 좋아하고 보여주고 싶은 소품이 많다 보니까 냥글냥글 복잡하게 쌓여있죠? 이 작은 공간에는 국내 작가님들의 제품과 대만, 일본, 태국, 미국에서 구해오는 핸드메이드 제품, 빈티지 소품이 있어요. 보통 해외의 낯선 곳들을 다니면서 많은 작가님을 만나고 소품을 수집해서 소개하는데, 최근에는 그럴 수 없어서 조금 속상했죠. 그렇지만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만큼 저희 부부가 갖고 싶은 소품들로 채워나가야겠다는 다짐만은 여전히 이어가고 있어요. 그래야 방문해주시는 손님분과도 나눌 이야기가 있고, 저도 행복할 테니까요. 특히, 지금 들리는 이 노래 CD는 대만 여행을 갔다가 구해온 수집품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 컸어요. 고양이 목소리가 담겨있는 CD라니! 잊히지 않아서 2주 넘게 찾아 헤맸던 것 같아요. 가끔 손님께서 3년 내내 매장에서 같은 고양이노래를 듣고 있어도 괜찮냐고 물어보시는데요, 그럼요. 너무 괜찮답니다! 오히려 노래가 가끔 멈출 때면 어색한 저를 발견하곤 하는걸요.”

오랜 기간 수집을 이어온 만큼, 수집에 대한 애정도 클 것 같다. 이렇게 본격적인 일이 되기까지, 수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이 커진 나는 조심스레 고사장님 곁으로 다가가 여쭤보았다.

“수집의 의미는 아마도 추억이겠죠. 저희 부부는 제가 20살 때, 한 학번 선후배 캠퍼스 커플로 만나 8년 연애 후 결혼해서 벌써 26년째랍니다. 저에겐 첫사랑이죠. 그만큼 같이 만든 추억이 어마어마해요. 매장 앞에 놓여있는 꼬질꼬질한 턱시도 고양이 인형도 20년 전에 신랑이 저에게 선물한 인형이에요. 저희가 이렇게 고양이 잡화점을 하게 될 줄 그때도 알았던 걸까요? 고양이 소품들을 수집하고 모으는 시간 동안 늘 함께였기 때문에 소품마다 각기 다른 추억이 담겨있어요. 오늘도 먼지가 쌓인 대만 파인딩 캣 도자기 인형을 닦으며 얘기해요. ‘우리 길 잃고 헤매다가 아들이 배 아프다고 해서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이 고양이 발견했잖아. 카페 사장님을 졸라서 작가님을 무작정 소개받고 작업실까지 계획도 없이 떠났었는데, 그때 기억나지?’ 이렇게 저희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그러면 다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막 즐거워져요. 소소한 이야깃거리와 추억은 그 자체로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인연을 맺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연남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미로 골목에서는 좋은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고, 손님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고양이 별’로 고양이를 먼저 보낸 집사님들이 오셨다가, 너무 닮은 그림이나 소품을 발견하고 뿌듯해하시면 사연을 듣고 같이 울기도 하고요, 단골손님이 돌보던 길고양이는 어느새 저희 셋째 고양이가 되었죠.

한 번은 일본 아티스트 ‘Pepe Shimada’님과 인연을 맺기도 했어요. 대만 여행 중에 특유의 그림체와 색감이 너무 좋아 한눈에 반해버렸는데, 가게에 둘 소품을 수집하고자 작가님을 뵈러 일본으로 떠났다가 우연히 작업실도 방문하고 저녁 식사도 함께하면서 원화를 구입할 수 있었어요. 한국에 오셨을 땐 저희 집에서 저희 둘째 고양이를 직접 그려주시기도 하고, 최근에는 작가님의 그림으로 에코백도 만들어 판매를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수집을 통해 만난 이 작은 순간과 인연들이 다 보람 있고, 감사해요.

혹시 지금 제 얘기를 읽고 계신 분이 더 있다면, 나중에 살짝 얘기해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반려묘가 있으시면 닮은 그림을, 아니더라도 예쁜 그림엽서를 선물로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저의 인연이 되어주어 감사해요.”

고사장님과 함께한 대화는 여운이 되어 멈춰있는 나의 공간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취향이 가득한 공간에 있다가 다시 돌아오자니, 갑자기 나의 방은 한없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달까. 열정은 정점을 찍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채워나가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 나의 공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조금 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방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시네마틱 빈티지 감성 브이로거, ‘아라보다’

Instagram : @ara.boda

-빈티지 주방 셀프인테리어 영상을 시작으로

홈 스타일링과 일상을 기반으로 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영상 속에 나온 집은 그야말로 취향이 진하게 담긴 공간이었다. 창밖은 코끝이 시린 추운 겨울임에도 고풍스러운 소품들의 조화는 한없이 따스하게 느껴졌고, 차분한 색감은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돋보였다.

보고 있자니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취향을 쌓는 것을 넘어 공유하고 있는 그에게 무작정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곳은 원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제가 함께 살던 집이었어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가정집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연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우연한 계기로 이 집에 혼자 살게 되었는데, 평범한 인테리어를 저의 취향으로 채워 나가보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그렇게 TV와 소파가 있던 공간을 비워내고, 소품들을 수집해나가면서 집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어요.

자막과 영상만으로는 저희 집 구조가 연상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선 저희 집은 드레스룸과 침실이 있는 작은 투룸 형태의 공간이에요.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거실과 주방이 한 공간에 있답니다. 작은 집이기도 하고, 혼자 사는 집이라서 방문을 사용하지 않고 가리개 커튼을 사용해서 집이 답답해 보이지 않게 인테리어를 했어요. 또, 아늑함과 편안함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컬러인 딥 그린을 더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맞춰 나가기 시작했죠.

모든 공간을 좋아하지만, 특히 주방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인데요, 주방은 제가 이 집에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시공한 공간이에요. 필요 없는 상부장을 제거하고, 벽지를 전부 떼어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단열벽, 주방 덧방 타일, 세세한 하부장 시트 작업까지 제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어요. 직접 공간을 꾸미다 보면 고난의 시간이 길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희열감이 정말 대단하답니다!”

셀프로 시공까지 하다니. 단순한 수집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수집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도움을 얻고자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기도 전에 조금 소심해지고야 말았다. 과연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하는 걸까.

“셀프인테리어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가장 큰 장점은 제가 원하는 느낌을 상상했던 그대로 연출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온전히 혼자 시공해서 현실로 끌어냈을 때 굉장한 뿌듯함이 느껴지고 공간에 대한 애정도 확실히 높아진답니다! 저는 인테리어와 관련된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다른 집 인테리어를 많이 찾아보고 참고하곤 하는데요, 제가 열심히 추구하고 찾던 것들을 저의 공간에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다는 것. 그 점이 너무 좋아서 셀프인테리어를 이어나가는 것 같아요.

한 가지 집을 꾸밀 때 주의할 점은, 컬러 배치를 신경 써야 한다는 거예요.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역시 제 취향의 색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겠죠. 채워나가고 싶은 메인 컬러를 하나 정해두고, 어울리는 색을 찾아 수집해나가는 편이에요. 너무 많은 컬러가 들어가면 조잡하고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한 가지 색을 커다란 비중으로 잡아두면 쉽게 멋들어진 인테리어가 되더라고요. 저희 집의 경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딥 그린을 대표적인 컬러로 잡고, 거기에 어울리는 월넛 컬러와 오렌지 컬러를 조합해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바라던 취향을 눈앞에 이끌어낸다는 것. 그 자체로 어렵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답변 속에 정답은 없었지만,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저는 빈티지 소품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TV를 보는 것보다는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해서 TV가 있던 공간은 과감하게 LP로 채웠고, 가구들은 원목 형태의 나무 가구를 사용해서 느낌을 더했어요. 촛대나 엽서 같은 소품을 모으면서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나가기도 하고요. 그것들은 삶에 있어 저만의 힐링 포인트가 되어줘요. 조금 지칠 때 LP를 틀면 특유의 지지직함이 좋고, 그 따뜻한 공간은 마음을 편하게 먹도록 도와주거든요.

그래서 원하던 것을 하나씩 모은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물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수집이 시작될 수 있고, 관심이 계속되어야 이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만족스럽고 그 자체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쏟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언젠가 취향이 변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저는 저희 집 분위기가 좋아서 기존에 제가 쌓아온 것들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제 채널도 역시 제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취향대로 공간을 채워나가는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정보를 위주로 계속되지 않을까 싶고요. 새로운 취향이 저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저만의 이야기 방식으로 공간과 채널을 꾸준히 쌓아볼 생각입니다.”

공간을 통해 들어본 두 취향은 완전히 달랐지만, 나의 관심사를 알아가고 수집하는 행동 자체가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지금 이 공간도 결국은 나의 취향이 쌓이다 멈춰버린 것이겠지만, 새롭게 취향을 더해간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알아가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집에는 끝이 없지만, 시작은 있다. 나의 취향을 기록하기 위한 일이자 공간을 더 사랑하기 위해, 오늘의 나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김지윤 jy0007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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