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북적거리는 곳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은 손을 타고 흘러나와 하나의 기록이 된다. 그렇게 수많은 혼잣말이 쌓이고 쌓여 두툼하게 완성된 책은, 또다시 누군가의 선택이 되어 한 켠에 수집되곤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책방에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누군가 귀 기울여줄 날을 기다리며 북적거리고 있다.

사실 혼자 산다는 건, 지나치게 적막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갔던 시끌벅적한 공간에 홀로 남아있다는 건 정말 극과 극을 부딪치는 행위와도 같으니까.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집에 들렀던 이를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간 잡음들, 그 공간을 다시 채운 잔잔함에 익숙해지기란 참 어렵다. 내 안에 생긴 모든 잡념과 상처는 대부분 사람과 마주한 소통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관계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내가 개인의 시간과 사색을 위해 새로운 공간에서 독립을 시작했다는 게 조금은 모순되고 웃기지만, 최근의 나는 지나친 혼자만의 사색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에 무작정 지배되어 외부와 내면의 경계에서 헤매다가 사색이 공상이 되고, 공상이 망상이 되는 일이 꽤 잦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날이면 우리 집에는 TV가 떵떵거리며 온종일 크게 떠들고 있었고, CD 플레이어는 항상 같은 음악을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의미 없는 영상을 틀어두곤 멍하니 빠져들기도 했다. 감정 없는 소음으로 내몰 수 없는 다른 차원에서의 잔잔함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라도 에너지를 소비하고 채워나가야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적막이 깨지지 않아 불안하다면 줄곧 책을 읽어 내려갔다. 독립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이게 아닐까. 어릴 적부터 글자를 가장 싫어했던 나는 어느새 책을 쌓아두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따지고 보자면 읽는 행위보다는 쌓아두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책이 내는 목소리는 적막을 대신 몰아내 줄 때가 많다.

그렇게 한두 권으로 시작된 수집은 어느덧 수납장 두 칸을 가득 채운 본격적인 일이 되었고, 고작 한 칸에 불과한 작은 우리 집은 꽤 많은 잡지와 서적이 재빠르게 채워지는 공간이 되었다. 비록 한정된 관심사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겠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여러 명의 작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장을 만들어낸 것만 같아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소통이 결여된 고요함을 어떻게, 소리 없는 활자를 통해 채워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적막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기에 우리 삶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극과 극의 소통이 쌓여간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쌍방향 소통’과 ‘일방향 소통’으로 나누어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말을 덧붙여보자면, 여기서 규정하고자 하는 일방향 소통이란 즉각적으로 반응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던지는 누군가의 문장을 말한다.

정말 복잡하게 얽혀있어 두 관계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쉽지 않지만, 쌍방향 소통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 고전적인 형태의 일방향 소통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 어학 사전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쌍방향 소통’과 달리 ‘일방향 소통’은 검색조차 쉽지 않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상 시대가 바뀌고, 쌍방향 소통은 얼굴을 마주 보며 감정을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차가운 물건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기에, 일방향 소통의 입장에서 사회의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더 많은 대상과 교류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저 허공에 던져진 음성 메시지와 글자들이 가득 떠돌아다니던 시간은 끝내 생을 마감했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방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찾아왔다. 그렇게 소통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적막을 줄여나갔고, 우리에게는 더 이상 고요함 속에 빠질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삶을 계속해나가면서 어느 순간 변화해버린 쌍방향 소통에 지친 나를 발견했다. 나를 망상에 빠뜨리는 적막은 끔찍하게도 싫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고 달려드는 메시지의 양은 차가운 기계 속에 쌓인 채 내게 주어진 정량을 훌쩍 넘어선 기분이었다. 과거의 고전적 얼굴 맞대기에서 벗어나 더욱 미지근해져 버린 소통의 온도 역시 주고받는 감정을 한없이 옅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고, 구식의 소통 방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자꾸 진심을 느끼고 눈길이 갔다. 소통이 쏟아지는 이 사회 속에서 내게 소통이 부재한 적막은 없었지만, 새롭게 겪은 무미건조함이 권태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대하여 무작정 혹평을 던지거나 과거를 붙잡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저 타인의 반응을 예민하게 고려하고 또 예측해야만 하는 나의 성격과 그것을 매 순간 버텨내야 하는 일상 속에서 작은 괴리감을 느꼈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우연히 마주친 사진 한 장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고, 소리 없는 활자의 형체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욱 흥미롭게 깨워주는 것만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지친 나의 마음을 채워주었던 음악, 영상, 활자 역시 누군가의 일방적인 던짐에 해당했고, 누군가 불특정한 대상에게 던지는 일방적인 문장들은 예상 밖으로 나를 위로했다. 과부하 된 소통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식으로 더욱더 세게 일방향 소통의 끝자락을 붙잡고자 한 나를 발견했달까.

소통이라는 단어는 ‘뜻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한쪽으로만 향하는 소통에게 다가가 죽은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방향 소통은 때로 머릿속에 그대로 쌓여 생각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대상을 정하지 않고 허공에 적어 내려간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고, 그 문장이 내면의 생각을 바꾼다면, 물음을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가 답변을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뜻이 통하는 소통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혼자만의 생각이 계속되면 망상이 되어 길을 잃고 허우적대기 쉬우나 책을 통해서라면 문장에 담긴 작가의 말을 따라 소통하듯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생각이 오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무미건조해져 버린, 혹은 바쁘게 흘러가는 소통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더 많은 문장 속에 갇혀야만 했다. 새로운 방식을 갈망하던 나에게 누군가의 일방적인 물음이 가득한 책들로 뒤덮인 공간은 한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모았고, 책이 가득한 곳을 무작정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많은 이가 그러하듯, 닿기 쉬운 대형 서점을 자주 방문했었다. 그러나 판매량에 따라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을 달고 줄지어 서 있는 책들, 그리고 순서가 뒤로 밀려나 어디에 진열되어 있는지도 모를법한 책들이 존재하는 커다란 공간을 바라보며 점차 글자의 가치가 소외되지 않는 공간을 꿈꾸게 되었다.

대형 서점과는 달리, 동네 책방에서 북적거리고 있는 목소리는 힘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선택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문장이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오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말소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조용하고 작은 공간 역시 책과의 소통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책방을 꾸리고 있는 이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수집은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도 취향을 읽어 내려갈 수 있게 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일상 속에 책을 들여놓게 되면서 점차 소통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빠르게 주고받는 소통을 잠시 멈춰두고, 내가 이끄는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씩 기준을 세워나가다 보니 책방을 방문하는 데 있어서도 작은 패턴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책이 건네는 물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책방을 방문하기 전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했다.

1. 혼자 방문할 것

2. 잠시 핸드폰을 멀리할 것

3. 편견 없이 활자 그대로를 읽어 내려갈 것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쌓여 북적거리는,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전하기 위해 멀리도 달려왔다. 이제는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 습관처럼 즐겨 찾았던 곳을 몇 군데 소개해볼까 한다. 나의 일상이 또다시 일방적인 던짐이 되어 누군가에게 공감의 문장으로 닿는다면, 또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어 그 자체로 소통할 수 있다면, 이 글 또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 것 같아서다.

*빽빽한 이야기, ‘gaga77page’

*마포구 와우산로15길 50, 2층

학교에서 출발해 상수까지, 산책하듯 걷기에 꽤나 좋은 거리에 위치해 있다. 2층까지 올라가는 아슬아슬한 계단과 책방의 구조를 예상할 수 없는 출입문에 잠시 망설여질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한순간 많은 이의 이야기 속에 둘러싸일 수 있다. 언제부터 쌓아온 것들인지는 몰라도 입구부터 정말 많은 책이 천장까지 높고 빽빽하게 꽂혀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책과 함께 머물 수 있을 정도다. 대형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이 거의 전체 서적의 80%에 해당하기 때문인지, 책의 판형이 들쭉날쭉해서 정돈되지 않은 듯한 서재의 분위기가 흥미롭다. 포장되어 있지 않은 책을 펼치면 작가가 독자에게 남긴 글귀가 적혀있는데, 직접 펜을 쥐고 각양각색의 글씨체로 적어 내려간 작가의 말은 멈춰있는 책이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여러 사람이 앉아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커다란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고 시선을 끄는 타일이 가정집의 분위기를 풍기며 바닥을 메꾸고 있다. 특히 높은 천장과 함께 넓은 공간이 눈에 띄는데, 안쪽에는 절판된 책들을 모아 읽을 수 있도록 전시해둔 작은 바와 테라스도 준비되어있다.

얼마 전까지는 공연장이자, 자그마한 카페이자, 식당의 역할을 모두 함께하는 공간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독서를 하면서 간단한 음식을 곁들일 수 있도록 ‘가가밀’이라는 이름의 매일 색다른 요리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확실하지 않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이 책방의 특별함인 가가밀이 다시 이 공간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책방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방은 이상하게 유독 에세이가 눈에 띄는 공간이라 애정이 간다. 에세이는 공감이 배제되면 그저 지나칠 글자에 불과하겠지만, 우연히 마음이 맞는 글을 만나면 울림이 크다. 어쩌면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쳤을 법한 사소한 것들을 문장에 담아 세상 밖으로 던져보는 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를 통해 본인의 삶을 바라보고 싶다면 한 번쯤은 빽빽하게 쌓여 있는 이곳을 뒤져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 책을 마시는 곳, ‘책과 밤낮’

*마포구 독막로 54, 2층

조금 더 걸어 내려와 합정동과 상수 사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달리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법한 위치에 숨어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조차 우연히 들어서기에는 쉽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오로지 마음먹고 찾아온 사람들의 모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을 열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싶게 만드는 배경을 지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딥 그린 톤과 버건디 톤의 인테리어 그리고 브라운관 TV가 대신 인사를 건넨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책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띄엄띄엄 놓여있는데, 빈 공간이 꽤나 있어 책이 숨 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은 긴 테이블 위에도 책들이 줄을 맞춰 진열되어 있지만, 원래 이곳은 음료와 함께 책을 음미하는 공간이었다. 음료뿐만 아니라 책 역시 메뉴판을 보며 주문하고, 다 읽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책을 가게에 키핑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손글씨로 책의 한 구절을 티 코스터에 적어주는데, 그 또한 사람을 다시 이끄는 데 한몫했다.

이곳에는 판매하는 서적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흔적이 묻은 사용감이 있는 책들도 많기 때문에, 모양이 깨끗하게 갖추어져 있는 새 책 대신 누군가의 흔적이 거쳐 간 책들을 다시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는 것도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방문하는 사람이 적은 책방은 아니지만, 대부분 혼자 또는 둘이 방문해 조용히 활자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들어서기 힘든 이 공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책방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우연히 들어섰는데, 어떤 이가 방문할지 모르면서도 취향을 담아 공간을 꾸미고 진심으로 책을 추천하고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져 그 자체로 다시 방문할 가치가 있었다. 책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취향이 맞는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다면 더없이 완벽한 장소가 될 것이다. 공간에 흐르는 여유를 느끼며 누군가의 제안으로 독서를 시작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잘 정돈된 수집, ‘어쩌다 책방’

*마포구 월드컵로19길 74 어쩌다 가게 1층

합정에서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걷다 보면 사람이 북적이는 시장에 다다른다. 갑자기 채워진 소음을 피해 망원동의 작은 골목에 도착하면, 한순간 고요함이 퍼지고 규모가 있는 한 직선의 건물을 마주할 수 있다.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게 우뚝 서 있는 건물이지만, 이 책방은 한쪽 벽면이 내부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문밖에서도 잘 정리된 책 박물관의 느낌이 든다. 묵직한 미닫이문에 체중을 가득 실어 드르륵 열고 나면, 낮게 울리는 음악 소리가 깊게 퍼져 밖과 단절된 느낌을 준다. 고작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다른 공간에 들어선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책방은 한 달에 작가 한 명을 선정해 그의 저서와 추천 책을 공유하는 공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직접 만날 수는 없겠지만, 독자와 작가를 잇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가장 잘 눌러 담은 공간이 된 듯했다.

앉아서 읽을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찬찬히 책의 내용을 읽어보기보다는 책의 제목에 빠져 책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점이자 단점인 이 책방의 특징으로 인해 책의 내용에는 집중할 순 없었지만,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오로지 제목만을 보고 데려온 책은 때로 내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하기도 했다. 대형 서점에 있는 고전 소설이나, 유명한 시집도 꽤 눈에 띄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잡지와 에세이도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소개한 책방 중에서 규모는 가장 작지만, 책 하나하나에 가치를 가장 많이 부여한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단순한 수집을 넘어선 큐레이팅이 주가 된 것 같은 공간이랄까. 책 사이에 놓인 화분들도 하나의 전시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시선을 따라 책을 구경하기에 좋고,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작가들이 건네는 말이 더욱 돋보이기에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공간을 알차게 사용했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잘 정돈된 공간에서 작품을 관람하듯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작은 골목에 숨어있는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세 책방은 학교에서부터 출발해 한강이 가깝게 위치한 망원까지 흐른다. 앞서 언급했던 소통에 관련된 나의 작은 이야기에 공감이 더해졌다면, 잠시 즉각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책을 통해 작가의 말을 온전히 느끼고 한강에 들러 자연의 목소리를 바라보는 것도 완벽한 하루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소통은 삶에 있어 꼭 필요하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수신인이 확정된 오고 가는 소통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가끔은 누군가의 혼잣말이 가득 찬 공간에서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 쌓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복잡한 사회의 소통을 힘들게 따라가고 있는 당신이라면, 가끔은 이처럼 능동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을 통해 얻은 것들을 수집해나가는 여유로운 소통의 맛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글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그 생각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생각을 선사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소통의 형태가 더욱 다양해진 먼 훗날에도 책이 그저 추억으로 소비되며 수집되기보다는 또 다른 소통의 방식으로 인식되기를, 또 수많은 책이 자리 잡고 있는 이 공간 역시 구식인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을 위한 양분이 가득한 생각의 장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김지윤 jy0007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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