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더 많은 곳에 닿을 누군가의 시선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사는 세계를 재현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이만 년 전 동굴에 새겨진 벽화부터 회화와 사진의 시대를 지나, 19세기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통해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현실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떻게 현실을 기록하며,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Pt. 1 영화 속에 담긴 현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으로써 ‘진실’을 탐구하는 영화다. 이때 다큐멘터리가 기록하는 현실이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외형뿐만 아니라 영상에 담긴 인간의 내면 역시 포함하는 현실성이다. 어떤 대상을 재현(representation)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상을 다시 보여준다(re+present)는 의미이며, 이를 위해서는 각 형태와 형식이 부여되어야 한다. 인간의 손을 거친 이상 원본은 그대로 기록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속의 현실 역시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가공되며, 영화가 보여주는 진실은 ‘제작자가 믿는 진실’이다. 감독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진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배경음악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터뷰 장면과 자막, 내레이션을 통해 감독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직접 전달된다.

한편, 다큐멘터리는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앞에서 보았듯 영화의 소재와 인터뷰 대상, 촬영 방식과 편집 과정까지 모든 것은 제작자의 주관적인 판단 아래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 운동은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들은 누군가의 삶을 기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것’이라고 믿었다. 대상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가에 높은 가치를 매겼다. 따라서 시네마베리테 제작자들은 ‘실제 현실’과 ‘카메라에 의해 촬영된 현실’은 반드시 동일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영상의 진실성을 구하기 위해 객관성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카메라의 존재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제작자가 화면에 나타나 대상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거나, 대상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진실을 찾고자 했다. 시네마베리테 운동에서 파생한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 방식은 날것 그대로를 기록하기 위해 내레이션도 사용하지 않고, 광각 카메라와 롱테이크 기법으로 영상을 촬영한다. 정교한 기획과정과 촬영계획이 부재하기 때문에 종종 화면이 흔들리거나 불안한 구도로 연출되곤 하지만, 이는 기술적 결점이 아닌 진실성 강화의 도구로 작용한다.

Pt. 2 저널리즘이라는 사명감

199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에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미지기술이 확산하며 현장에서 사건을 보도하는 전통적 저널리즘은 위기를 맞았다. 정보들은 점점 간소화되고 시각화되어 사실과 의견이 명확히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론은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예산은 점차 줄어들어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 저널리즘의 한계를 ‘예술’이 넘어설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이 바로 알프레도 크라메로티(Alfredo Cramerotti, 1967- )다. 그는 전통적 저널리즘이 깊이 있는 조사와 맥락에 대한 성찰적 공간이 부족하다면, 미술은 비판적 사고를 답보할 수 있는 시간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전통적 저널리즘이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미술은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소통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에 더욱 능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적 저널리즘은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이론가 존 그리어슨(John Grerson)의 이론과도 맞닿아있다. 그리어슨은 사회문제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여 국민들이 깨달음을 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근본적인 힘은 미학적인 힘이 아니라 사회적인 힘”이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을 비롯한 제작자가 마치 저널리스트처럼 관객을 계몽 시켜 사회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자의 정치적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영화가 정치ㆍ사회적 문제를 제시하여 관객의 참여를 끌어내는 공론장의 기능을 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자료를 모으는 아카이브 작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졌기에 전통적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크라메로티의 ‘미적 저널리즘(Aesthetic Journalism)’은 진실을 구성하는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한 오랜 믿음의 연장선에 자리 잡게 되었다.

미적 저널리즘은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다. 21세기는 희귀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되는 정보 만능 시대다. 우리는 입시에서도, 주식시장에서도 희소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보는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이야기 전달 방법으로 영화라는 멋진 예술 매체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과 분노 코드를 추가하여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몰입한 관객들은 자연스레 지인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하거나 관련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곤 한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Pt. 3 다큐멘터리 영화계를 뒤집은 넷플릭스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다른 장르에 비해 공급이 많고 구매가 쉬우며 제작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남는 시간대에 송출되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패배하여 질 높은 다큐멘터리의 개발과 작품화에는 인색한 제작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이후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당시 해외에서는 다매체, 다채널,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의 등장으로 다큐멘터리 수요가 급증하는 등 많은 성장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20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해외 다큐멘터리 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현황을 살펴봤을 때, 2012년 첫 오리지널 콘텐츠부터 2020년까지 일반 시리즈물은 219편 제작되었으나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156편, 다큐멘터리 영화는 159편 제작되어 일반 시리즈물의 1.4배를 넘어섰다. 넷플릭스는 이미 오래전에 구색을 갖추기 위한 다양성 추구의 수준을 넘었고,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전문적인 플랫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을 내세운다.

1. 콘텐츠 제작비에 대해 지원을 하되,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2. 콘텐츠 소비자들이 더 편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을 제공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등을 통해 더 편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

3.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을 높인다.

넷플릭스는 꼼꼼한 분석을 거쳐 콘텐츠 투자를 결정하지만, 한번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 ‘쇼 러너’라는 콘텐츠 책임자를 운영하는 것도 여기 해당한다. 쇼 러너(Show runner)는 대본을 쓰고 제작, 감독을 맡는 등 콘텐츠 생산의 핵심 영역 또는 특정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전문가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장르에서도 높은 자율성과 통제력을 가진 다큐멘터리 쇼 러너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제작자가 자신만의 색깔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넷플릭스는 부티크 다큐멘터리(Boutique Documentary)를 보장한다. 부티크 다큐멘터리는 대형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배급하는 대규모 자본에 의한 기존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비교적 소규모, 소자본으로 만들어졌더라도 다양한 층위를 보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뜻한다. 넷플릭스는 신선하고 과감한 주제나 소재를 선택하고, 새로운 시각이나 개성적인 연출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수 있도록 하여 부티크 다큐멘터리의 배급사로 자리 잡았다.

또한, 넷플릭스는 이용자의 지속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한다.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은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과 ‘콘텐츠 기반 필터링(Content-based Filtering)’이라는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한다. 협업 필터링은 취향이 비슷한 사용자들을 같은 그룹에 놓고, 그들에게 비슷한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며, 콘텐츠 기반 필터링은 사용자가 소비한 콘텐츠를 기준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진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태거(Tagger)라는 대규모 전문가 인력을 활용한다. 이들은 온종일 넷플릭스 콘텐츠를 감상하고 핵심 키워드인 태그(Tag)를 기록한다. 영화 한 편의 태그는 30쪽을 넘을 정도로 방대한데, 이를 협업 필터링과 함께 데이터화하여 분석하고 머신 러닝을 통해 사용자들을 2천여 개의 취향 그룹으로 분류한다. 심지어 같은 콘텐츠라도 나라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섬네일 이미지가 다르게 표시되도록 한다. 뮤지컬 취향이 강한 사용자들에게는 춤추는 장면이, 로맨스 취향이 강한 사용자들에게는 키스 장면이 섬네일로 보인다. 콘텐츠의 첫인상인 섬네일을 개인의 취향에 맞도록 바꿈으로써 콘텐츠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시청자에게는 다양한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추천하며, 그중에서도 중동지역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면 계속해서 중동지역의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이처럼 넷플릭스는 개인의 취향을 계열로 만들어 앞으로도 지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할 넷플릭스의 충성고객이 되게 한다.

Pt. 4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미적 저널리즘으로 기능하는가

한국은 아직 다큐멘터리의 제작 지원 및 배급 방식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지 않아 20년 전과 비슷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TV 다큐멘터리는 정규 슬롯 중심으로 규모나 횟수에 큰 변화 없이 제작, 방영되고 있으나, 사회적 영향력이나 화제성 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적극적인 모색의 시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독립 제작자들과 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들을 비롯한 젊은 인력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산업에 뛰어들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낮은 목소리>(1995), <송환>(2003)>이 극장에 개봉된 이후 최근 10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산업적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성장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디어 생태계를 이해하여 다큐멘터리를 위한 플랫폼을 마련이 절실하다.

해외의 경우 이미 ‘Doc-Ville’과 ‘GuideDoc’ 같은 다큐멘터리 전문 플랫폼이 등장한 지 오래다. 특히 미국의 다큐멘터리 플랫폼인 POV(Point of View)는 미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의 시기적 상황과 창의적 스토리텔링 다큐멘터리가 더 많은 시청자에게 소개되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결합하여 탄생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POV는 전국적 공영방송 네트워크를 가진 PBS를 통해 수준 높은 독립 다큐멘터리를 배급하고, 전국의 공동체 상영을 체계화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소비자를 확보한다. 넷플릭스가 제작자들의 개성을 존중했던 것처럼, POV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저작권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들의 편의에 맞춰 극장 상영, 영화제 상영, 디지털 관련 계약 등을 추진하는 전략을 취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건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POV는 방송국과 제작자의 중재자 역할을 균형 있게 수행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은경, 임소연이 진행한 ‘다큐멘터리 생태계 활성화 방안 – 독립 다큐멘터리의 성장과 미국 POV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에서는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수행하여 향후 다큐멘터리 생태계의 방향성과 대안을 탐색하고자 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전반적으로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의 소재별 경쟁력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TV 방송에서 영화로 제작 및 배급 통로가 확장하면서 콘텐츠에 힘이 생겼고 배급과 펀딩에도 유효한 경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전통적 유통, 배급 구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점이 문제다. 한 인터뷰 참여자는 다큐멘터리를 돈을 주고 송출해달라고 해도, 틀어주는 배급사가 없다고 한탄했으며, 또 다른 참여자는 한국의 OTT가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음을 지적했다. 다큐멘터리 활성화를 위해서는 플랫폼 개발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국은 이미 많은 방송사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방송사의 프로그램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용자 수 추이의 격차를 벌렸다.

*주요 OTT 앱 월간 이용자 수 그래프. 2020년 12월 기준. 단위: 만 명. 출처: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만약 정부가 국내 OTT와 협력하여 다큐멘터리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어떨까? 앞서 언급했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서의 기술적 조건은 어느 정도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 지원부터 배급, 홍보까지 이미 방송사들은 베테랑 수준이니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여기에 제작자가 다큐멘터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작가가 자신만의 색깔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질적으로 우수한 다큐멘터리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다큐멘터리 플랫폼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영화계 종사자들이 협력한다면 이른 시일 내에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국내 제작자들의 시선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그 날을 기대해본다.

김예진 dimplezy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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