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1일, 8세 여자아이를 납치하여 성폭행한 후 신체를 훼손하여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그가 12년이라는 형을 선고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분노를 담아 항의하였으나 결국 그의 형량이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12년이 지난 지금, 조두순은 형을 마치고 출소하게 되었다.

조두순의 출소

2020년 12월 12일 새벽, 코로나19가 만연하던 시기였음에도 조두순의 마지막 수감 장소였던 서울남부교도소 앞은 그의 출소를 반대하는 시위대로 가득했다. 자신이 살던 안산시로 돌아가는 조두순에게 사람들은 각종 질타와 욕설은 물론, 관용차량을 발로 차거나 창문을 깨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안산시 또한 한동안 조두순의 집 근처에 몰려든 취객과 유튜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12년 전 조두순이 형을 선고받고, 피해자 가족들이 법원에서 피켓을 들 때는 뭐하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건 구독자 수를 늘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가장 분노에 빠트린 사실은 조두순의 안산 복귀를 막지 못하여, 피해자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는 딸이 이사로 친구들 잃는 것을 원치 않아 미루고 있었지만, 조두순이 안산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이사를 결정하였다. 아동 성범죄자가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허용한 것은 정부가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집중된 관심을 계기로 성범죄자 처벌과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 검토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며 조두순 관련 뉴스는 점점 줄어들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지고 있다. 하지만 조두순을 ‘불편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해야 하는 안산시 주민들에게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법무부는 1대1 전자감독을 통한 24시간 밀착감시, 주거지 반경 1km 이내를 여성안심구역으로 지정, 2021년 상반기까지 안산시 전체에 3,000대 이상의 CCTV 추가 설치, 무도 실무관 등 12명을 24시간 순찰조로 투입, 조두순에 대한 음주, 아동시설 출입 금지 등의 대안을 내놓았지만, 주민들의 불안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조두순이 외출 시 보호관찰관이 따라붙지만, 이동 반경에 제한이 없기에 안산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이를 법무부에 보고할 의무는 없다는 사실 역시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실제로 조두순이 거주지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보는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두순으로부터 심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가해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피해자가 떠나는 나라. 국회에서도 물론 이런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2020년 12월 15일 일명 ‘조두순 방지법’이라 불리는 아동청소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는 성범죄자에 대한 정보 공개 범위를 읍·면·동에서 도로명·건물번호로 확대, 유치원을 아동·청소년에 대한 가해자 및 대리인의 접근금지 범위로 확대, 아동·청소년 통학 시간까지 외출 제한 시간대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조두순의 외출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거나, 재범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며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만 가고 있다. 각 당 의원들은 재범 위험성이 큰 성범죄자를 출소 후에도 사회에서 격리하는 보호수용법,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종신형 선고를 내용으로 한 조두순 재발방지법,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를 허용하는 성충동 약물치료법 개정안 등을 쏟아냈지만 대부분은 기각되었다. 법적 실효성이 부족하거나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점, 그리고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조두순에게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따른 문제는 조두순이 출소하기까지 걸린 12년 동안, 국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조금만 일찍 했어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늑장 대응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애초에 왜 12년에 불과한가?

조두순의 출소 반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60만 명을 넘어섰고, 조두순에게 형을 선고한 판사를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도 수백 개를 넘어섰다. 대정부질문에서는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은 검사를 질타하는 질문이 쏟아졌고, 조두순과 관련된 기사는 검사와 판사를 욕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그렇다면 12년 전 9월 24일, 조두순에게 징역 12년, 전자발찌 7년, 신상공개 5년의 형이 확정되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 확인해 보자. 이것이 정말 검사와 판사의 능력 부족으로 생긴 문제였는지, 혹은 그 이상의, 대한민국 사법제도 상의 문제였던 것인지 말이다.

① 주취감형(酒醉減刑)

대한민국 형법 제10조 2항의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라는 원칙에 따라 정신적 쇼크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신경 쇠약, 심신장애가 있는 사람의 형벌은 그 양을 일반적인 상황보다 적게 부여할 수 있다. 조두순 사건의 1심 판결문에서 본래 무기징역이 합당하다고 보지만 심신미약 상태임을 고려하여 12년 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되었고, 이후에 각종 형사소송에서 “술을 마셔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라며 변명하는 상황이 만연해졌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음주 후 범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사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음주를 통한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경하는 상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영국은 주취가 감형 사유로 작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 굉장히 확고하다. 미국의 경우에 뇌에 이상이 있을 정도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이상자 수준의 진단을 받는다면 감형이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 입증 가능한 방법이 많지 않으며 그 사례도 매우 적다. 중국은 중국 형법 제18조 4항에서 ‘주취자가 죄를 범한 경우라도 마땅히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명정죄, 즉 술이나 약물에 취한 사람의 범죄에 대해 가중하여 처벌하는 법규를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② 판결 시스템의 문제

주취감형으로 인한 형벌 감면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과연 조두순이 범행 당시 정말 음주 상태였는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우리 형법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만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두순 사건 당시 범인은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등 굉장히 이성적인 행동을 취했기에, 이를 심신미약 상태로 판결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이었다. 즉, 해당 조항이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되던 2018년 이전까지는 피고인이 심신미약으로 판단된다면 반드시 형을 줄여야만 했다. 당시 판결을 맡았던 판사 역시 “재판 당시 조두순의 만취 주장을 입증할만한 명확한 증거 자료는 없었다. 하지만 검찰 측에서 조두순이 만취 상태였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판사의 입장에서 피고인 측의 주장을 인정하고 감형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게다가 판결 당시에는 감경 사유가 인정된다면 유기징역은 반드시 법정형의 1/2, 사형은 10년 이상의 유기징역, 무기징역은 7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감경해야만 했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인정하나 범행이 악독하고 계획적이었기 때문에 1년만 감형하겠다.”라는 판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1심 판결문에서 주취감형이 적용되지 않았더라면 무기징역이 합당하다는 내용을 언급한 만큼, 7년 이상의 유기징역만이 가능한 상황에서 12년은 판사 입장에서도 굉장한 중형을 선고한 셈이다.

③ 검찰의 실수와 성범죄 형량 자체의 관대함

조두순 판결의 근거로 적용된 법률은 형법 제297조(강간)와 제301조(강간 등 상해, 치상)로, 이는 단순 강간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간죄에 해당하는 자가 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으로 정해진 형량 자체가 적다 보니 판사의 재량으로 수십 년의 형량을 부과할 수는 없었다. 또한 당시 대한민국 유기징역 최고치는 15년으로, 12년이라는 형량이 당시 법안을 고려했을 때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법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검찰이 적용한 형법상 강간상해의 법정형은 무기 혹은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당시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는 무기 혹은 7년 이상의 징역이 구형될 수 있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 검찰은 법 적용에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였으나, 결국 범죄자에게 적절한 형을 부여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기에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원래의 무기 혹은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외국과 비교한다면 어떨까. 영국은 피해자가 13세 미만일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무기징역에 처하고, 유사성행위 역시 성폭행으로 간주하여 성관계 장면을 16세 이하의 미성년자에게 강제로 보이기만 해도 10년 형에 처할 수 있다. 스위스 역시 아동성범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종신형에 처하고 있다. 중국, 이란 등 처벌의 수위가 높은 국가에서 14세 이하에 대한 아동 성폭력은 반드시 사형에 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른 법률을 가지고 있지만, 두 번 이상 아동성범죄 재범으로 재판을 받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만약 조두순 사건이 외국에서 발생했더라면 조두순은 평생을 교도소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④ 대륙법과 영미법의 간극, 그리고 대한민국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미국처럼 징역 천 년, 이천 년을 선고하지 않는 것일까? 그 대답은 각 국가를 구성하는 법의 기본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의 법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대륙법과 영미법이 그것이다.

대륙법은 근대 로마법을 기초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형성·발전한 법계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 일본 등이 현재 독일의 대륙법계를 따르고 있다. 대륙법의 가장 큰 특징은 성문법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문서의 형식을 갖춘 법을 기반으로 법체계를 형성한다는 성문법주의는 법규의 구체화, 체계화에 용이하며 법관의 재량보다 법령 자체가 우선시되어 재판 간의 편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법의 개정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단점 역시 존재하고, 조두순 사건 역시 이러한 성문법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범죄자 교화를 중심으로 하는 낮은 형량을 들 수 있다. EU(유럽연합)의 가입 조건 중 하나가 사형제도의 철폐인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 대륙법계의 형벌은 각각의 범죄에 대한 엄벌이 아닌, 범죄자의 교화와 사회 복귀를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영미법과는 달리 복수의 죄가 경합할 경우 가장 중한 죄의 형량을 바탕으로 추가적인 가중을 하여 처벌하는 가중주의를 택하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따라서 조두순 사건에서는 아동성폭행 따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폭행 따로, 증거 인멸 시도 및 도주에 대한 각각의 형벌을 따로따로 부여하지 못하고, 가장 형량이 높은 아동성폭행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와 달리 영미법은 영국에서 처음 발생하여 미국, 그리고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캐나다, 호주 등으로 퍼져나간 법체계로 영국의 대헌장, 즉 마그나 카르타(*)를 그 기초로 한다.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불문법, 그리고 판례법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판결에서 중요한, 제1차적인 법원은 다른 사건의 판례이다. 이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는 법조문에 의한 판결보다, 상세한 내용이 유사한 사건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법 적용의 융통성을 위해 도입했음에도 기존의 판례에 불복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 판례의 누적에 따른 법관의 숙지 부족 등을 단점으로 꼽는다.

(*1215년 잉글랜드, 국가의 무리한 정책에 대항해 귀족 연합체가 당시 존 왕을 협박하여 얻어낸 서약서. 왕권신수설의 영향력이 강하던 시대에 일어났기에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미법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형량에 있다. 가중주의를 택하는 대륙법과는 달리 영미법은 병과주의를 기반으로 판결을 내린다. 병과주의란 범죄자에게 적용되는 죄목별 형량을 전부 더해서 선고하는 것이다. 예로 수백 명을 죽인 폭탄 테러범에게 형을 선고할 경우, 폭발물 설치, 살인, 상해, 건물 파괴 등에 대한 징역형을 전부 더하기 때문에 수백, 많게는 수천 년의 징역형이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형량이 높다고 좋은 판결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방법과 제도가 마련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의 인권을 먼저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형량이 선고되는 모습은 사람들이 불만과 분노를 쏟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두순 사건은 지금까지 서술한, 대륙법을 기반으로 영미법적 요소를 추가한 한국 법체계의 부정적인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판결 과정에서 성문법을 중시하였기에 이전까지는 없던 극악한 범죄자에게 적합한 형량을 부과하지 못했으며, 동시에 판례법적 요소를 포기하지 못해 기존의 판례들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형량을 부과하지 못했다. 또한 대륙법의 가중주의를 채택하였기에 긴 형량을 통해 재범 위험, 피해자의 이사 등 2차, 3차 피해를 막는 데도 실패했다. 이를 통해 조두순의 교화에 성공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피해자 아버지의 말처럼 그가 과연 충분한 반성을 했더라면 안산으로 돌아오는 만행을 저질렀을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문으로 남았다.

⑤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

형사소송법 제368조,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이란 피고인이 상고한 사건, 혹은 피고인을 위하여 상소한 사건에 대하여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이야기한다. 얼핏 들었을 때는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공권력의 횡포가 심각한 국가에서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만으로 형량을 높이는 예도 있어,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즉, 이 사건에서 조두순 측 변호사가 1, 2심의 12년 징역형이 부당하다며 항소, 상고했을 때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사는 12년 형이 부당하게 높은가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을 뿐, 원심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형법은 1심의 형량이 대법원까지 이어져야만 하는 불합리한 구조인가? 그렇지는 않다.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에 있는 가장 크고, 자주 발생하는 예외상황은 검사 측이 함께 항소, 상고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선행 판결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있기 때문에, 판결 당시 상고하지 않은 검사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현행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검사는 징역 10년 이상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상 오류를 제외하고는 상고할 수 없다. 즉 피고인 조두순의 불이익, 예를 들면 12년 형이 죄질에 비해 너무 가볍다는 등의 이유로는 상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대한민국은 대륙법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판례는 대법원의 관점을 대변하는 과거의 판결 기록일 뿐, 명문화된 규정이 아니므로 검사가 상고하는 것이 절차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무상의 괴리는 항상 존재하는 법, 실무적으로 법관들을 구속하는 것은 법원이 과거에 만든 판례이다. 법적으로 이를 따르지 않아도 문제는 없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책임소재의 문제가 터질 위험이 있고, 이후 학계에서 논란거리가 될 우려가 있기에 어지간하면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판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당시 상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12년 징역형 이상의 처벌을 받기는 어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한민국에는 판결의 용이성을 위해 양형위원회에서 양형기준을 제작하고 있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범위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는 법률보다 비교적 특정한 각각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한국은 대륙법계로, 성문화된 법률을 판결의 첫 번째 사용하기 때문에 양형기준이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으나, 판결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나는 경우 판결문에 반드시 양형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실무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시 양형기준의 권고사항은 11년으로, 판사 입장에서는 이를 넘어서 12년 형을 선고한 것 자체가 부담이었고, 그 당시 성폭행 범죄에 12년 징역형이 나온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당시 검사는 상고 자체가 피고인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하지 않았다는 자기변호를 할 수 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조두순의 만취 상태에 대한 반박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점,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판례에 매몰되어 상고하지 않은 점은 현재까지도 비난받고 있다.

12년 전 그날,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12년 전 그날 판결에서, 대륙법계인 대한민국에서 법률을 무시하고 사형이나 수백 년의 징역을 구형할 수는 없다. 무기징역은 음주 상태의 범죄기에 심신미약이라서 불가능하고, 반드시 7~15년 사이의 징역형으로만 감형이 가능하다. 15년을 주려고 보니 11년이 적혀있는 양형기준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12년 징역형을 선고하고 검사의 상고를 바라지만, 대법원 판례가 발목을 잡아 이마저도 흐지부지되었다. 그렇게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던 극악한 범죄자는 고작 12년 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다. 재판의 판사를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폭행범에 대해 관대했던 법체계, 주취감형에 대해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은 검사, 의아한 감형 시스템, 이전의 양형기준과 대법원 판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시 시간을 돌려 2021년이 되기까지, 대한민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조두순 사건은 이러한 법체계의 부실한 부분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대한민국 유기징역의 최고치는 15년에서 30년, 형을 가중할 시 25년에서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고, 문제가 되었던 형량 감경의 범위도 상당히 올라갔다. 무기징역을 음주 등의 이유로 감형할 때 7~15년의 유기징역으로만 감형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10~30년, 가중 사유가 있을 시 50년, 즉 유기징역의 최고치를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또한 술을 마셔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형이 감경되는 사례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성폭력특별법 제20조에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한해서는 법관 재량으로 심신미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흔히 ‘조두순법’이라고 불리는 이 규정으로 인해, 검사의 잘못으로 증거가 없는 심신미약이 인정되어버리는 사례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출소 후 안산으로 돌아가는 조두순을 막을 방법은 여전히 없고, 급하게 제작되는 중인 추가적인 법안 일부는 조두순에게 소급 적용이 불가능하며, 피해자는 가해자를 피해 이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조두순 사건 이후 많은 법과 체계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제2의, 제3의 조두순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 법체계는 지금도 보완되고 있고, 이러한 발걸음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박사방의 운영자로 붙잡힌 조주빈. 그에게 1심에서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범죄단체 조직 등 14개의 혐의로 징역 40년, 전자발찌 30년이 구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20년 9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범죄를 두 번 이상 반복하여 저지른 경우 최대 징역 29년을 선고할 수 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초범인 경우에 감경한다는 조항도 정비했다. 12년 전의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관심은 사회 어두운 곳에 있던 범죄자를 끌어올리고,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만들어낸다. 여론은 견고하게 세워진 법체계라는 벽을 두드리고, 수십만 명의 두드림은 대법원의 양형기준과 범죄자의 형량마저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진다. 긴 형량만이 좋은 처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합한 형량은 범죄자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며, 예비 범죄자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사법부는 그날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형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죄질에 적합한 형벌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우리는 그날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항상 눈을 뜨고 목소리를 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김태섭  taesub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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