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를 연결하여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어주는 ‘시’. 이런 시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함께 어루만져 보는 ‘현대시론’ 수업의 전소영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학생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전소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현대시론을 포함하여 문학사, 문학이론, 비평 수업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지 지면을 통해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쁘네요.

현대시론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대시론 수업에서는 기본적으로 현대시의 일반적인 법칙과 구조, 형식 등을 다루고 있어요. 전반적인 수업의 진행을 먼저 살펴보면, 수업 전반부에는 시에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고 시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함께 해요. 시어, 이미지, 비유, 상징, 리듬 등을 원리의 차원에서 만나며 시를 깊이 읽어봅니다. 예를 들어 ‘이 시에서 쓰인 기법은 은유’라는 사실을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여러 시를 통해 은유의 효과를 직접 먼저 느껴본 다음 은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고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각자 시를 읽을 때도 은유라는 방식으로 떠올리고 적용해 볼 수가 있거든요. 이러한 과정을 천천히 경유한 뒤에 수업 후반부에서는 사회, 문화적인 최신 이슈들과 관련된 시와 시인의 삶을 조명해보면서 시로 우리의 삶 읽기를 함께 해보고 있어요.

수업에서 다루는 시들은 우선 ‘현대시’의 범주에 속한 시들이 주류가 되고요, 그 안에서도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시들, 혹은 독특한 어법을 지니고 있어 한 번쯤은 만나볼 필요가 있는 시들, 아울러 지금, 여기를 환기하는 현장성을 지닌 시들을 자료로 선정하고 있어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시를 가감하고 우리 삶의 변화를 고려하여 시를 선별하다 보니 매 학기 다루는 시나 주제가 얼마간 달라지고 있어요.

현대시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 가지 목표를 학기 초에 학생 여러분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정해진 해석을 답으로 수용하고 암기했던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자는 것. 대학 진학 이전에, 우리는 이 수용과 암기의 과정을 거쳐 시에 관해 배우고 또 시험을 치렀어요. 반대로 그와 ‘다른’ 생각, 나만의 답을 만들고 발화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이 방식을 대학에서까지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대시, 나아가 현대문학의 미덕은 작품 읽기를 통해 나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어요. 그러니 시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이제 ‘나’가 되어야 합니다. 수업 시간에 물론 저의 시 해석을 사례 삼아 보여드리기는 해요.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여러 가지 답 중 하나이고, 학생 여러분께서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통해 나름의 해석을 마련해 주시는 일이 소중하고 의미 있어요. 실제로 여러분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창의적이고 훌륭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현대시를 읽는 것은 창문 앞에 서는 일과도 닮아있어요. 창은 나와 외부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창에 비친 나-나의 얼굴을 발견하는 거울이 되기도 해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를 읽으며 이 세계의 표정과 비밀에 대해 알게 됩니다. 또 자기 마음에 남는 시들을 통해 내면의 무늬를 헤아릴 수도 있겠죠. 그러니 시를 읽으며 세상의 표정과 우리의 내면을 같이 어루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업에서 다뤘던 시 중에서 학생이 자율적으로 택해 필사하는 ‘오늘의 필사’라는 과제가 있어요. 학생들에게 필사를 권유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종의 후행학습으로 <오늘의 필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학생들께서 수업 시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면 해당 시의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고 관련된 생각을 간단히 덧붙여보는 활동이에요. 취향의 발견, 수업 내용의 자기화, 생각의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 도입했는데 저에게는 학생 여러분에 대해 알아가는 좋은 매개가 되어주기도 해요.

필사는 여러모로 유용하지만 무엇보다 깊이 있는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 독서의 단계는 내용을 파악하는 인지 단계, 책 내용이나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는 사고 단계, 이런 사고의 결과물을 언어화하는 표현 단계로 분해되는데요, 필사가 이 과정을 보조해주거든요. 내가 유의 깊게 읽은 내용을 보관하고 그로부터 발견한 생각을 언어로 남길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니까요.

현대시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업 초반부에 학생 여러분과 약속하는 것 중 하나가 ‘시를 마음으로 읽자’라는 것인데요, 말하자면 처음부터 시의 메시지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시의 정서와 각자의 감정을 맞대어 보자는 것이지요. 이것이 시를 더욱 깊이 만날 수 있는 방식이어서 실제로 제가 시 평론을 쓸 때도 그런 독서를 가장 먼저 수행하고 있어요. 물론 이 이야기는 현대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학을 읽어내는 일반론적인 방식이기도 한데, 시가 지닌 정서와 우리의 감정을 겹쳐볼 수 있다는 것은 현 사회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견인되는 이즈음의 사회 안에서 감정 인식과 표출의 중요성은 다소 간과되는 측면이 있어요. 감정 연구라든가 공감 관련 이슈가 지속해서 제기되는 것이 그 근거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 현실 속에서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 세계의 감정을 접속시키는 시를 읽는 것이 우리에게 충분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현대 사회에서 시는 어떤 가치를 가지게 될까요?

바로 앞의 답변과 연결해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면 시가 유통되는 방식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일례로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에는 시와 그 BGM이 될만한 음악을 함께 추천하는 채널도 여럿 생겼어요. 이런 플랫폼의 순기능은 해당 리스트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댓글로 감상을 겹쳐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어요. 시가 비교적 짧은 몸체를 지니고 있어 이런 나눔이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고요. 비대면 만남이 대면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이즈음에는 이런 작은 계기들도 참 소중하게 느껴져요.

시의 미래에 관해 조금 덧붙여보자면, 피에르 레비는 활자 문명 시대에 문학의 주도적 매개가 되었던 책은 점차 종이-인쇄 매체로서의 위상을 잃고 책성book-ness으로서 그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책의 내용은 존재하되 그것이 담기는 그릇의 형태는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예요. 문학이나 종이책의 위기에 대한 언급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어요. 얼마 전에는 그러한 위기설을 방증하기라도 하듯이 대형 서점 브랜드인 반디앤루니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요. 전문가들은 디지털 사회가 발전할수록 출판업계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는데, 실제로 온라인 소통이 확대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0년대 이후 책의 역할은 많이 축소되었어요. 이를테면 과거에 책이 수행했던 정보나 교양의 전달도 요새는 OTT 등의 콘텐츠가 대신하고 있잖아요? 통계를 참고하면 2019년 이후 종이책 독서 인구는, 성인 기준 대략 50%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해요. 이 비율도 앞으로는 점점 더 감소할 것이고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시 역시 SNS를 지면 삼는 시, 미디어의 댓글을 발원지 삼는 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 진화하고 있어요. 최근 e-book으로 발간된 일부 시집에는 시 본문과 함께 시인의 시 낭송 음원이 탑재되어 있기도 한데, 이런 식으로 독자의 기호와 실체를 분석해 그것을 반영한다면 시집의 그릇이 종이든, e-book이든 또 다른 플랫폼이든 우리 곁에 좋은 시가 늘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시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은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도 잘 모를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시에 입문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시나 시집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우선, 선집을 통해 시를 만나보시기를 권해요. 좋은 시를 엮어서 펴낸 시 선집이 우리 학교 도서관에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 책을 일독하면서 시선을 멈추게 하는 시를 찾아보는 거예요. 그런 다음 발견한 시인의 시를 더 찾아 읽으며 독서의 범주를 넓혀갈 수 있어요. 물론 시 읽어주는 유튜브 채널 등을 활용해도 좋고요. 녹록지 않다면 그냥 저한테 메일로 추천을 부탁하셔도 괜찮아요. 좀 더 본격적인 독서를 원하실 경우 필사를 추천해요. 처음에는 그냥 시의 구절을 옮겨 적기만 해도 충분하고 그에 익숙해진 다음부터는 필사로 얻은 생각도 몇 문장씩 덧붙여보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태주 시인이 쓰신 <안부>라는 시가 있어요. “오래 / 보고 싶었다. // 오래 / 만나지 못했다. / 잘 있노라니 / 그것만 고마웠다.” 이 안부 묻기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이즈음인데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가 생각보다 여러 겹의 도타운 마음을 전제 삼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상대를 아끼는 마음, 그가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의 무사함에 감사하는 마음. ‘우리’라고 한 번쯤 발음해 볼법한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 어떤 끈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 매우 가늘고 느슨해서 어느 한쪽에서든 쉽게 놓쳐버릴 수 있어요. 그런데 안녕을 묻고 또 그것을 돌려받는 과정이 지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이의 끈이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학교에서 다시 만날 날까지 부디 안녕히, 잘 지내 주세요.

박지원  05ov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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