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힘들 때 우울한 노래를 찾아 듣고, 또 거기서 위로를 받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꺼내 읽게 되었다. 바이러스와 감염에 대한 공포를 다룬 뻔하고 무거운 책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솔직하고 인물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페스트>는 북아프리카의 한 도시인 오랑에서 과거 중세 유럽을 덮쳤던 페스트가 다시 퍼지며, 도시가 폐쇄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오랑은 우리가 사는 도시와 닮은 점이 많다. 사람들은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보내며 매일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트는 일상의 흐름을 깨고, 규칙적이던 것을 불규칙하게 바꾸어놓는 훼방꾼이다. 이 훼방꾼의 난봉에도 내일이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성실함 덕분이다. 성실함의 이유가 꼭 이타적일 필요는 없다. 의사 리외와 신문기자 랑베르, 시청 서기 그랑과 여행객 타루가 처음부터 도시를 구하는 영웅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리외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고, 랑베르는 도시가 폐쇄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져나가려 했다. 타루는 봉사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만족감을 얻고자 하였고 그랑은 오랑의 다른 시민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쯤, 이들의 성실함이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

“이 연대기의 소재가 되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곳은 일상에서 약간 벗어난 이 사건들이 발생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사실 오랑은 평범한 도시이고, 알제리 해변가에 있는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

코로나가 처음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을 땐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 이 바이러스가 이렇게 오래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내 방에 갇혀 카메라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아니었다. 사실 코로나는 혼자 집에서 재수하던 때에도 이미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생활을 상상해볼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이 불행을 피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작년의 나는 태연하게, 지금 재수해서 얼마나 다행이냐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벌써 이 바이러스와 함께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코로나에 걸린다는 것은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테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코로나를 겪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의 잔인한 점은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고, 우리는 아플수록 타인의 손길을 찾게 된다. 하지만 이 병은 우리를 자꾸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떼어놓으려 할 뿐 아니라, 일상의 반경을 좁히며 모든 활동에 제약을 건다.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집단, 새로운 도전을 해보아야 할 시기에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하는 것은 탓할 사람 없이 속상한 일이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 집단에 들어왔고, 흔히 그렇듯 나 역시 대학교에서 기대하던 것이 단지 학업만은 아니었기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작이 엉켜버린 지금의 상황으론,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서 엉킨 실을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학교에 가지 않음으로써 편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편안함을 영영 몰라도 좋으니 학교에 가야 한다는 귀찮음이 당연한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편하다는 느낌은 잠깐이고 잃어버린 것들은 영원히 돌려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무시무시한 병은 몇 달 전부터 사람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여러 아이가 죽어 가는 것을 보아 왔다. 하지만 그들이 그날 아침부터 그렇게 하고 있던 것처럼 아이들의 고통을 시시각각 추적하면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죄 없는 아이들에게 가해진 고통은 정말로 용납될 수 없는 추한 현실로 보였다.”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 뉴스에 코로나 확진자의 모든 동선이 나오던 때,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을 욕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코로나에 걸린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가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직장에 갔다가, 학원에 갔다가, 아픈 가족을 만났다가, 집 앞에 나갔다가 일어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걸리는 기준은 없다. 이 바이러스 앞에서 ‘공정함’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리외 자신과 같은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확신, 즉 사랑과 고통과 귀양살이 속에서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고자 했다. 이리하여 자신과 같은 시민들의 불안이라면 그 어떤 것도 그가 그들과 나누어 겪지 않은 것이라고는 없고, 어떤 상황도 동시에 그 자신의 상황이 아닌 것이라고는 없었다.”

약속 없는 주말과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코로나는 가끔 알 수 없는 우울감을 가져다주었다. 단계가 격상되어도 ‘어차피 집에서 보낼 텐데’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날들을 지나, 언젠가부터 약간의 기대를 하게 되어 단계가 격상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무기력감을 느꼈다. “오늘 공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차 댈 곳이 없었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예전 같으면 “그냥 집에나 있지.”라는 반응이 나왔겠지만, 이제는 시간이 지나 “그럴 만도”라고 하게 된다.

2.

“페스트의 초기 때, 그들은 잃어버린 존재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고, 또 그 존재를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얼굴을, 그 웃음을, 나중에야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된 어떤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도, ··· 요컨대 그때 그 순간에 그들은 기억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코로나 초반에는, 소중한지 몰랐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하나둘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것들을 절실히 그리워했다. 엄마랑 단둘이 간 여행에서 아침 먹을 빵집을 찾아다녔던 일, 친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촛불을 불었던 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래방에 가서 7~8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들을 불렀던 일 등등.. 추억할 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소중한 기억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부족한 현재를 채워나갔다. 그러다 동이 나버렸다. 더는 갉아먹을 추억들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시점부터는 바라는 것들이 적어지고 점점 팬데믹이라는 상황에 무뎌지게 된 것 같다. 전에는 코로나와 싸우려 했다면, 이젠 그저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언제쯤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어도 답해줄 사람이 없다. 그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이 답을 해준다고 해도 이제는 그게 크게 의미 있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작년에는 막연하게 ‘내년에는 끝나있겠지’ 생각했다. 막상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백신이 나왔다.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에도 끝이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백신을 맞으려면 또 한참 기다려야 한다. 변이 바이러스라는 것도 등장했다. 어느 전문가는 2022년 여름은 되어야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회복은 아니란다. 이쯤 되니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계획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듯하다. 이 시간을 좀 더 잘 보내보고 싶다.

“필요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쓸데없는 잔영을 쫓아 버리면서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확신은 저기, 바로 매일매일의 노동에 있었다. 그 나머지는 실오라기나 무의미한 움직임에 달려 있었으니 그것에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사실 다 알면서도 지키기 힘든 것이다. 그만큼 꾸준함과 성실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일 테다. 내 주변 상황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흔들리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믿고 묵묵히 나아가야만 한다. 더 쉽고 간편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다는 걸 안다.

“손으로 쓴 50쪽 정도의 짧은 글이었다. 리외는 원고를 훑어보고서 거기에는 수없이 다시 베끼고, 고치고, 가필하거나 삭제한 같은 문장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인공 그랑은 하루의 대부분을 시청에서 보낸다. 퇴근하고 나면 마을의 자원 위생 보건대로서 일한다. 다른 이들의 하루가 끝날 늦은 시각, 집에 돌아온 그는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상상하는 그림을 완벽하게 글로 표현하기 위해 같은 구절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고친다. 그는 하나를 완벽히 해내고 나면 그때부터 나머지 것들은 쉬워질 것이라 믿기에, 첫 구절이지만 정성을 다한다.

사실 나는 그가 첫 구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책을 쓰는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완벽하지 않아도 끝내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하고, 그렇다면 분명 그다음은 전보다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남을 도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또 열심히 일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랑의 성실함과 꾸준함은 동경하면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의지, 열정, 끈기 다 맞지만 나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두 그랑이 될 수 있다. 그처럼 살려는 약간의 용기가 있다면.

3.

“그런데 어떤 것을 정상 생활로의 복귀라고 하는 겁니까?”

“영화관에 새 영화가 들어오는 거죠.”

그럼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상으로 돌아왔다.’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캠퍼스로의 등교? 외국 가수가 내한한 공연에서의 떼창? 해외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껴지는 습한 공기?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테지만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하나로는 안 될 것 같다. 봄이 되면 학교에 나가고 여름에는 축제가 열리며 긴 방학에는 여행을 떠나는 것. 식당에선 손 소독제 대신 사탕이 놓여있고 영화관에선 팝콘을 먹으며 한강에선 야시장이 열리는 것. 명절에는 기차를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며 새해에는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다 같이 숫자를 외치는 것. 마지막으로 미루었던 약속을 모두 다 지키게 되는 것.

“우리 시민들의 가장 강한 욕망은 물론 마치 아무것도 안 바뀐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고 또 그것이 될 것이니,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것도 안 바뀔 것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어지간한 의지가 있다 해도 모든 것을 잊을 수는 없으며, 페스트는 적어도 많은 이의 마음속에 흔적들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를 완전히 지워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이 길었던 2년, 어쩌면 3년은 우리의 삶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단순히 코로나가 없어진다 해서 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리고 코로나는 끝이 나도 우리의 삶에 코로나 같은 존재는 언제든지 또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를 한번 지독하게 겪어봤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앞으로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의 삶에 예기치 않게 나타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에 떨어졌던 만큼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가 다른 무언가를 견딜 수 있는 백신이 되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힘들었다고 해서 코로나 이후 바뀔 세상까지 암담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코로나가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계란후라이조차 제대로 못 했던 나지만 지금은 오므라이스도 할 줄 안다. 문학은 영영 내 취향이 아닐 줄 알았지만 이젠 가끔 시집도 읽는다. 방 청소는 봄에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일어나면 청소기부터 돌린다. 아침은 늘 5분이 모자랐지만, 지금은 물 한 잔도 15분 동안 마신다. 우리 집 고양이가 내가 없는 동안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이제는 그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잴 수 없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비현실적인 것, 즉 곧 사라지고 말 악몽으로 여긴다. 하지만 재앙은 사라지지 않으며,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사람들인데, 그 선두에 인간주의자들이 서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앙에 주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는 이미 찾아왔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했던 고등학교 3학년, 미래에 대한 확신 없이 했던 재수 모두 코로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 없었고 생활 반경은 매우 좁았으며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했다. 그때와 지금에 차이가 있다면 입시와 재수는 나의 선택이었기에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코로나는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 말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앞으로도 나의 선택에 의해서든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든 나를 조이고 괴롭게 하는 상황에 얼마든지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에 대처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나는 그것들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그게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예측하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게 때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나를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경계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는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되었을 때, 리외나 랑베르가 될지 파늘루 신부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코타르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박한비  kkkanbi@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