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조각’ 아닌 ‘비미술’이 쓰였는가

지난 3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展에서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승택(李升澤, 1932-)의 화업을 주요 작품 250여 점으로 조망했다. 전시는 이승택이 1980년 『공간』지의 「내 ‘비조각’의 근원」에서 밝힌 ‘비조각’이라는 개념이 그의 작업에서 태동, 발현하는 양상에 따라 총 7개의 관으로 나뉘었다.

1960년대 작가는 옹기,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로 재료 실험에 몰두하며, 당시 제도권의 전통적인 조각 개념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1관). 1970년대에는 사물과 자연물을 노끈으로 묶는 ‘묶기’ 작업을 본격화하며 사물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였고(2관), 바람, 불, 연기와 같은 비물질적 요소와 장소, 상황을 작품화하였다(3관). 기성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작업관으로 정립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작가의 관심은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비조각’은 내용(개념, 주제)과 형식(재료, 기법) 양쪽 모두에서 발전을 이룬다. 한국의 근현대사, 예술 제도와 문화 권력, 우상화된 종교, 금기시된 성, 훼손된 자연환경 등과(4관), 한국 무속의 기이하고 섬뜩한 분위기는(6관), 작가가 거꾸로 바라보아야 할 ‘비미술’의 주제로서 ‘비조각’의 탐구에 동원되었다. 작품의 형식에서는 회화에 불에 탄 흔적이나 물이 흘러내린 과정을 담거나 작품을 산에 들고 올라가는 등 삶의 현장성, 수행성을 중시했고(5관), 인화된 사진에 다른 사진을 콜라주하거나 페인팅을 추가했던 1960년대의 시도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구체화되어 ‘포토콜라주’나 ‘포토픽쳐’로 불리는 작품으로 다수 제작되었다(7관).

복잡한 전시관 구성과 모호한 개념 설명

전시는 두 가지 한계를 보였다. 우선, 전시장에서 ‘비조각’, ‘비미술’의 개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비조각’, ‘비미술’은 회고전 전체를 관통하는 이승택의 작업관이다. 하지만 전시 서문과 1~7관의 소개글에서는 ‘비조각’에 관해 ‘서구 근대 조각의 문맥에서 탈피했다’라는 내용이, ‘비미술’에 대해서는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라는 작가의 언명을 인용한 것이 전부였다. 또한 ‘비조각’과 ‘비미술’이 별도의 설명 없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시 도록의 「큐레이터의 글」에는 이들 개념이 더 자세히 설명되어있으나, ‘비미술’에 관해 “예술과 삶을 분리하는 예술 태도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강조하는 등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했다.⑴ 이승택은 그간 인터뷰나 직접 작성한 글에서 ‘비미술’과 ‘비조각’을 분리하여 설명한 바 없고, ‘비미술’은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문다는 측면보다 ‘비조각’과 같이 이전의 것을 탈피하려는 반(反)개념의 맥락에서 사용됐다. 작가는 전시 도록에 작성한 「이승택 작품세계에 대한 언명(言明)」에서 ‘비조각’, ‘비미술’, ‘반예술’, ‘반개념’을 구분되지 않은 채 당신의 “작품세계와 그 개념”으로 함축하며, 비(非)와 반(反)의 개념을 모두 일컬어 기존 예술영역에 대한 거부, 즉 ‘단절’의 개념으로 이해해주길 바랐다.⑵

이에 더해, 1~7관을 구성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비조각’은 내용(개념, 주제)과 형식(재료, 기법)의 차원에서 작품으로 구현되는데 개념, 주제, 재료와 기법은 전부 ‘비조각’의 주요 지점으로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들을 포괄하는 단일 기준이 부재한 채 각자가 파편적으로 전시관에 반영되어서, 전시의 전체적인 구성이 설득력을 잃었다. 각 전시관에는 ‘비조각’의 내용과 형식을 다룬 작업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전시관마다 둘 중 더 크게 체감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1관(재료의 실험: 조각에 대한 질문), 2관(줄-묶이와 해체: ‘비조각’을 향해), 3관(형체 없는 작품), 5관(행위·과정·회화), 7관(사진과 회화 사이)은 작품의 형식을 내세웠고, 4관(삶·사회·역사), 6관(무속과 ‘비조각’의 만남)은 작품의 내용을 강조했다. 특히, 4관의 제목인 ‘삶·사회·역사’에는 ‘비조각’의 재료, 기법은 고사하고 개념이 드러나지 않은 채 오직 주제만이 명시되어 다른 전시관과 결이 달랐고, 4관에서 다루는 ‘비조각’의 내용은 개념 및 기법에서 5관과 상당 부분 겹쳤다. 큐레이터가 이를 인지했는지 전시 도록의 「큐레이터의 글」에서는 1~7관 중 4관과 5관이 하나의 소제목(‘수행성 : 삶의 문맥 속으로’) 아래에 합쳐져 있다. 해당 글에서 4관의 ‘삶·사회·역사’는 ‘삶의 문맥 속으로’, 5관의 ‘행위·과정·회화’는 ‘수행성’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소제목 아래에서 하나의 글로 수록되어있다. 결국, 복잡한 전시관 구성은 ‘비조각’, ‘비미술’에 대한 부족한 설명과 오해의 여지가 있는 서술 방식과 함께 관객의 전시 이해도를 낮췄다.

‘비조각’과 ‘비미술’의 차이

전시 제목에 사용된 ‘비미술’은 그동안 이승택의 연구나 평론에 쓰인 용어가 아니었다. 필자는 ‘비미술’이 이번 전시 이전에 이승택 관련 논문, 평론, 전시나 카탈로그의 제목 등에서 사용된 선례를 찾아내지 못했다. 작가의 저작 「내 ‘비조각’의 근원」(1980), 「무속과 ‘비조각’의 만남」(1986), 「반개념의 정신과 ‘비조각’」(1988), 「나의 反개념 정신과 방정식」(1989), 『Lee Seung-yaek: Non-Material Works』(2004)에서는 물론, 이일의 「이승택의 ‘비조각’ 또는 ‘형체없는 조각’에 대하여」(1988), 조안 키(Joan Kee)의 “The Non-Sculptures of Lee Seung-taek”(2013) 등 미술사가나 평론가의 저술에서도 작가의 개념을 논할 때는 ‘비미술’ 대신 대부분의 경우 ‘비조각’, 간혹 ‘반개념’이나 ‘비물질’이 쓰였다. 특히, 이번 전시를 비롯하여 최근 불붙은 이승택 연구에 토대를 마련한 이인범의 「이승택 작품 연구: ‘비조각’ 개념을 중심으로」(2017)와,⑶ 이인범의 해당 논문 이후 유일한 관련 논문인 김이순의 「역설과 저항의 미학 - 이승택의 ‘비조각’」(2020)에서도 ‘비미술’이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고 ‘비조각’을 위주로 내용이 전개된다.⑷ 개인전 《이승택 ‘비조각’》(1983, 토탈미술관), 《이승택 ‘비조각’》(1986, 후화랑), 《‘비조각’-이승택》(1987, P&P갤러리), 《비물질화, 이승택의 그려지지 않은 그림들》(2004, MIA미술관), 《이승택-거꾸로》(2014, 갤러리현대)에서도 ‘비조각’, ‘비물질’, ‘반개념’(거꾸로)만이 쓰였다.⑸

‘비미술’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출현한 용어로 보인다. 이승택은 전시 도록에 수록된 「이승택 작품세계에 대한 언명(言明)」⑹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작가 인터뷰」에서 직접 ‘비미술’을 언급한다.⑺ ‘비미술’이 작가가 제창한 용어이든 전시 준비 중에 큐레이터가 제안한 것을 작가가 수용한 것이든, ‘비미술’과 함께 쓰인 글의 내용을 보면 ‘비미술’은 이전부터 쓰인 ‘반예술’, ‘비물질’, 비(非)와 반(反)의 개념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같은 도록의 조수진과 이영철의 평문에서 ‘비미술’에 관한 이해가 상충하며 용어의 불안정성이 드러난다. 조수진은 「이승택의 ‘한국적’ 비(非) 미술」에서 ‘비미술’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작품명에 사용된 경우를 빼고는 ‘비조각’이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승택이 그의 작업관에 “반(反)이 아닌 비(非)의 개념을 끌어왔다”라고 오독했다.⑻ 이는 그간 축적된 1차 자료와 연구는 물론 같은 도록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 및 언명과도 모순된다. 애초에 전시명에 ‘비미술’과 함께 사용된 ‘거꾸로’는 반(反)의 개념과 상통한다.⑼ 조수진과 달리, 이영철은「“세계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 이승택 이전과 이후」에서 ‘비미술’을 ‘비조각’, ‘반개념’, ‘반예술’과 같은 작가의 주요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작가가 부정한 ‘미술과 ‘비미술’의 구분’에 관해 말하는 도중에 기존 이승택 예술론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활용했다.⑽

이처럼 ‘비미술’이라는 용어는 이승택이 오랜기간 사용한 ‘비조각’, ‘반개념’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승택 연구에 비추어 보아 당위성이 없는 용어인 ‘비미술’을 사용한다면, 조수진의 경우에서 살펴봤듯 연구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이번 전시가 대규모 회고전이었던 만큼, ‘비조각’으로 포섭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1980년대 중반 이후의 페인팅, 포토콜라주, 포토픽처 등의 평면작업이나 퍼포먼스를 아우르기 위한 키워드로 ‘비미술’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연구는 전시에 선행해야 한다

큐레이터 배명지는 죄가 없다. 이제껏 나온 작가 연구를 면밀히 검토하여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주목받는 여러 지점을 균형 있게 다루려 했다. 복잡한 전시관 구성은 정리되지 않은 작가론에서 불가피 했을 것이고, 도록에서는 각 전시관에 호응하는 글을 배치하여 풍부한 논의를 담으려 했다. 하지만 도록 필진으로 참여한 학자 사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용어는 ‘비조각’을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엄밀하지 않은 작가론 아래에서 ‘비미술’은 ‘비조각’ 대신 회고전의 전시명으로 쓰였고, 중성적인 용어 ‘비미술’은 봉합되지 않은 작가 연구를 포괄하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전시의 연계 학술세미나에서 이인범은 전시가 아카이브 자료를 늘어놓은 수장고 전시를 떠오르게 한다며 미술관의 역량을 의심했고, 이영철은 전시에 앞서 학예실 직원들이 더 공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승택展을 개최하기에 미비했던 학술·비평적 근거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학계에 있다. 60년 화업을 가진 원로 작가의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승택은 비슷한 위상의 동년배 작가들과 비교해봐도 유난히 잦은 오독과 저평가를 감수해왔다. 현대 한국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주요 미술운동이나 단체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과 동료 작가, 큐레이터, 미술사가, 평론가를 가리지 않고 비판해온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2009년 제1회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받은 이후 해외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고,⑾ 최근에는 국내 전시와 연구에도 활력이 돌고 있다.⑿ 2020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고, 국내 주요 미술사가들이 연사로 참여한 연계 학술 세미나도 개최되어 고무적이다.

재평가의 흐름 속에서 부적합한 용어나 개념을 통한 때 이른 서사화는 지양해야 한다. 작가 연구를 초기 단계로 되돌려서 1차 자료를 중심에 두고 작가와 관련자의 교차 검증을 통한 작가 연보 정리가 우선 과제이다.

(1) 배명지, 「큐레이터의 글: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의 세계」,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1), p. 10.

(2) 이승택, 「이승택 작품세계에 대한 언명(言明)」,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1), p. 467.

(3) 이인범은 해당 논문에서 아카이빙을 통해 이승택의 작품, 생애사에서 1차 자료의 오류를 수정했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기존의 ‘비조각’과 연구자가 제시한 ‘포토픽쳐’ 등을 활용하여 시기별로 구분했다. 이 성과가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展의 구성 및 소개글에 활용된 것으로 보이고, 전시 도록의 ‘작가 연보’(pp. 478-502.) 또한 이인범의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아카이빙 연구에 기반한다.

(4) 이인범과 김이순은 모두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학술 컨퍼런스에서 이승택의 ‘비조각’을 주제로 발제하였다.

(5) 이승택의 작품세계는 《실험미술 50년 이승택 초대전》(1997,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실험미술’로 공인되었고, 이러한 평가는 미술사가 김미경의 『한국의 실험미술』(2003)을 거치며 더욱 견고해졌다. 이듬해 《비물질화, 이승택의 그려지지 않은 그림들》(2004, MIA미술관)에서는 ‘실험미술’의 맥락에서 작품들을 16개의 키워드를 분류하고 이를 통틀어 ‘비물질화’로 묶어냈는데, ‘비물질화’는 이번 전시에서 ‘비미술’이 제시된 것과 겉아 작가의 작품세계를 포괄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용어였다. 당시 ‘비물질화’는 충분한 연구 없이 ‘실험미술’과 함께 작품, 이승택의 작품세계를 ‘비물질화’라는 틀 속에 가두었고, 이는 이후의 이승택 연구와 비평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6) 2018년 12월에 작성되었다고 표기되어 있으나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展이 열리고 있다는 식의 표현으로 보아 수록 과정에서 일부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때 ‘비미술’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기한 내에 본 글에서는 검증하지는 못했다.

(7) 이승택, 「이승택 작품세계에 대한 언명(言明)」,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1), pp. 465-476. 이승택,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작가 인터뷰」,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1), p. 452.

(8) 조수진, 「이승택의 ‘한국적’ 비(非) 미술」,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1), p. 181.

(9) 《이승택-거꾸로》(2014, 갤러리현대)에 출품된 <반(反)예술가>(2012)에는 이승택이 ‘Anti Art’라는 문구가 적힌 망토를 입고 있다. 여기에서 ‘거꾸로’, ‘반(反)’, ‘Anti’가 상통하는 개념임을 유추할 수 있다.

(10) 이영철, 「“세계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 이승택 이전과 이후』(국립현대미술관, 2021), pp. 317-323. 또한, 이영철은 2021년 3월 6일 진행된 전시 연계 학술세미나에서 사용한 “‘비조각’ 내지 ‘비미술’”이라는 표현을 통해 두 개념의 차이를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1) 2011년 시드니현대미술관,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이승택의 작품을 구매해 소장 중이고, 《프라하 비엔날레 6》(2013, 화물역사, 프라하, 체코), 《아르테비다》(2014, 카사 프랑카-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Postwar: Art Between the Pacific and the Atlantic, 1945 – 1965》(하우스 데어쿤스트, 뮌헨, 독일) 등의 단체전에 초대되었다. 2017년에는 뉴욕의 레비고비갤러리, 베니스의 팔라초 카보토에서, 2018년에는 런던의 화이트큐브에서 모두 《Seung Taek Lee》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12) 2016년 제30회 김세중 조각상을 받고, 이인범과 김이순의 논문이 발표되며,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 –가볍거나 유연하거나》에 주요 작가로 참여했다. 특히, 김이순은 최태만 이후 한국 조각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통용되는데, 그가 이승택을 연구 주제로 잡고 논문을 내었다는 점은 작가 연구에 고무적이다.

민태홍 mr.podobunj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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