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에게서 사회를 제거한다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2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인간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에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웹툰 <머니게임>을 통해 알아보자.

머니게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상화폐 사기로 엄청난 빚을 진 주인공은 극단적인 선택 직전 붉은 빛과 함께 라이브 쇼 ‘머니게임’에 초대된다. 주최 측이 제시한 룰은 다음과 같다.

1. 참가자들은 100일간 본 스튜디오에서 생활한다.

2. 참가자들은 각자의 프라이빗 룸을 가지며 매일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는 본인의 룸 안에 상주하여야 한다. 이외 시간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배 시 잔여 상금의 10%가 차감된다.

3. 프라이빗 룸 안에서 인터폰을 통해 흉기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며, 각 참가자가 구매한 물건의 합계 금액은 총상금에서 차감된다.

4. 누가 무엇을 구매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5. 시작 상금은 448억 원이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남은 참가자들은 잔여 상금을 균등히 분배한다.

6. 단, 스튜디오 내 특별환율 정책으로 모든 물건은 소비자가의 1,000배 가격이 책정된다.

사회에서 멀어진 사회적 인간

보통의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그 사회가 오랜 기간 시간과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 이룩한 기반 시설을 공기처럼 누리고 살기 마련이다. 운송 인프라, 상하수도 인프라, 전력 인프라... 공기처럼 누린다는 말은 필요하면 언제나 거기 있었기에 그것의 결핍으로 아쉬웠던 경험이 없다는 말과 같다.

100일 동안 덜 먹고, 덜 쓰며 엄청난 돈을 챙겨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주인공은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다. 화장실뿐이 아니었다. 전기, 상하수도, 배관 시설까지, 개인이 절대 구입할 수도, 구축할 수도 없는 사회 인프라로부터 참가자를 떨어트려 놓은 것이 이 게임의 핵심적인 설계이다. 특히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던, 태어나서 한 번도 끊긴 적 없었던 공공재인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인간의 폭력성을 제지할 수 있는 법이나 규제가 없는 머니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인간이 가지는 내면적 이기심과 공격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마주한다.

폭력의 집단적 전이, 희생

“제비뽑기를 해서, 화장실을 하나 정하면 어떨까요? 우리 여덟 명 중 한 명의 방을, 화장실로. 단 한 명의 희생으로 나머지 모두가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머니게임 초반 배변 봉투를 사용해 자신의 용변을 처리하지만, 이내 쌓이는 용변과 그 냄새로 인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묶어놓은 봉투의 가스가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참가자들은 민주적 합의를 통해 제비뽑기로 선정된 한 명의 방을 화장실로 사용하기로 한다. 나머지 일곱 명의 윤택한 생활을 위한 한 명의 희생, 그야말로 이기주의의 온상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그 어떤 도덕적 관점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해당 상황에서 도출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보임과 동시에, 누구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보일 것이 자명하다는 사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작중 리더를 자처하며 공정한 제비뽑기를 진행하겠다던 6번 참가자는 2번과 자신, 두 참가자가 남았을 때 속임수를 쓴다. X가 적힌 제비를 고르려는 2번 참가자에게, 자신의 계획대로 된 듯이 일부러 엷은 미소를 보여주며 그녀가 선택을 바꾸도록 한 것이다. 주인공은 이를 알아차리지만,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이미 희생양이 정해진 상황, 괜한 분란으로 재투표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사회적 성격을 지닌 희생은 폭력을 일정한 방향으로 배출시키는 대체폭력이자 폭력의 집단적 전이’라는 르네 지라르의 표현이 떠오른다. 집단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서 발생하는 갈등과 상호적 폭력을 단 하나의 희생물에 전가하는 것으로 위기에서 해방되며, 만약 이 과정이 없다면 그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으로 붕괴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이는 집단을 위기에서 구한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다른 폭력으로 제어한 것에 불과하기에, 결국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우리의 사회에서도 적극 이용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것이 제비뽑기처럼 상호 공정한 요소가 아닌 돈, 권력, 장애 여부 등 ‘내가 노력을 덜 해서,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그렇지’처럼 원인을 자기 자신으로 돌리기에 딱 좋은 이유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제비뽑기로 뽑힌 2번 참가자가 스튜디오가 울리도록 밤새 울자, 주인공은 조용히 하라며 소리 지른 뒤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저열한 인간이 되었냐며 괴로워한다. ‘저놈들(머니게임 설계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여기선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 그래, 이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라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해버리는, 자신이 피해받는 부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결책에 대한 고민 대신 그 양심의 가책을 더욱 거대한 요소에 떠넘겨버리는 무책임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복지가 사라진 세상의 사회적 소수자

그래 안다. 사람이 돈보다 귀한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금액이 너무 상식 밖이잖아. 한 알에 2억 5천만 원이라니. 아무리 착한 척하고 싶어도 그건 진짜 아니잖아. “그냥, 그냥 좀...” 하지만 다음 혼잣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이성인지 양심인지 혹은 공포인지 모를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그 말을 삼키게 했다. ‘그냥 좀, 혼자 조용히 죽어주면 안 될까’라는 말을.

‘머니게임’의 양상은 2번 참가자가 희귀병으로 일정 기간마다 약을 먹어야 하며, 그 비용이 100일로 계산하면 200억 원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것으로 급변한다. 사람들은 20세기에 다다르며 비로소 모든 사람이 형식적으로라도 평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평화로운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피상적인 계급제도는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회 구조적 요소에 따라 태생적 계급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바로 ‘복지’였다. 인간의 선한 본성 때문인지 혹은 지속적인 교육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이들의 행복과 소속감 증진에 기여한다는 사회복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복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덜 주고, 더 가지길 원하는 존재니까. 따라서 국가는 법과 사회 규범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제어한다. 법령으로 조세를 징수하고, 국방을 위한 인력을 징발한다. 이러한 규범과 통제 없이 개개인의 도덕과 선의지만으로는 모두의 행복한 삶과 평안함이 보장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머니게임은 다른 참가자들의 반대로 약을 구하지 못해 점차 미쳐가는 2번 참가자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폭력을 막는 폭력, 폭력을 덮는 폭력

5호가 지금껏 감추고 있었던 건 신비한 무기도 기발한 전략도 아니었다. 무력. 격투기에 식견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아니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정제된 폭력의 기술을 5호는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힘과 힘의 대결이, 엄밀히 말하면 막싸움과 격투기의 대결이, 끝났다.

민주주의를 주도하던 6번 참가자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뒤 전직 깡패였던 4번 참가자가 권력을 잡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나머지 참가자들의 합심으로 4번의 독재는 끝이 난다. 참가자들의 합심을 위해 7번 참가자는 소수가 다수를 제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무기, 군대 같은 것들이 스튜디오 안에 없는데, 아무리 깡패라 하더라도 나머지가 힘을 합치면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겠느냐고 묻는다. 머니게임에서 영원한 절대 권력은 있을 수 없음을, 언제라도 폭력과 그보다 강한 폭력을 통해 권력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머니게임의 또 다른 악질적인 설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다시 며칠 뒤, 모종의 방법으로 구속을 풀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던 4번 참가자를 저지한 것은 이전까지 조용하던 5번 참가자였다. 그는 압도적이고 정제된 무력을 통해 4번 참가자를 제압하고, 결국 ‘머니게임’은 5번 참가자를 중심으로 한 절대 왕정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기존의 폭력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한 폭력은 역사상 다른 폭력을 저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제시되었다. 물론 강한 폭력은 다른 폭력의 진행을 일시적으로 막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언정, 폭력을 완전히 근절시킬 수는 없다. 폭력을 통해 다른 폭력이 계속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넘어서 폭력이 인간 본성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은 매우 위험하다. 폭력으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제지한다면, 아이는 폭력에 감화되어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킨 것일까? 아니, 그저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욕망을 억눌렀을 뿐이다. 결국 폭력이 가져온 결과는 사회의 안정과 평화라는 천으로 덮어 가려졌을 뿐인 갈등과 억압, 불안인 것이다.

공리주의의 기반을 다진 제레미 벤담은 모든 처벌은 필요악이자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적용될 우려가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처벌 없이 모든 개인이 폭력성을 자제하고, 어떠한 범죄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발상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한 처벌 집행과 공포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역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지난 수천 년간의 투쟁의 역사를 통해 깨달았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 사회는, 폭력 없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무적 교육 형태의 ‘사회화’를 택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라는 기초적인 도덕률을 떠올려 보자. 이는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사항이다. 만약 이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서로에 대한 폭력과 불신으로 붕괴할 것이다. 지역마다 그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초기의 사회 집단에선 다른 사람을 때린 범죄자를 동일하게 때리는 것으로 잘못을 인지시키고, 동시에 교화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흘러 과거에 비해 범죄의 수가 늘어나고 형태가 다양화되며, 우리 사회는 필요악적 성격을 가진 폭력, 즉 육체적 처벌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폭력을 막는 행위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 대신, 우리 사회는 모든 시민들에게 어릴 때부터 일괄적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쁜 짓이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잘못이다.’와 같이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내용을 교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폭력은 절대 다른 폭력으로 근절시킬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 사회 역시 처벌이라는 폭력 대신 보다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폭력을 근절하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 그것이다.

폭력의 둔감해지는 사람들

게임 시작 69일째,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이번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진짜 소름 돋는 건, 사람이 죽었는데, 눈앞에 온기도 채 가시지 않은 시체가 있는데, 본능적으로 남은 상금에서 내 몫을 계산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소름 끼쳤다.

작품을 보며 가장 소름 끼쳤던 부분은 사람이 죽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장면도, 마지막 반전이 드러난 부분도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가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그 사람을 제외한 자신의 상금 분배 비율을 계산하는 주인공의 두뇌, 그것이 가장 소름 끼친 부분이었다. 주인공 역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상금이 탐나도 이건 아니라며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한다.

돈이라는 요소에 대한 집착,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성과 폭력, 그 사이에서 점차 무너지는 인간성과 도덕.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와 그리 멀리 떨어진 표현이 아니라 생각한다. 어쩌면 지구 밖, 제3의 존재가 과열되고 있는 우리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들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끔찍한 폭력과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현대 사회,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쓴 채 폭력을 주고받는 인터넷 세상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야만 하는 능력주의 사회, 서로를 공격하고 밟아야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무한 경쟁 사회의 말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만 성공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폭력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혈통이라는 선천적 요소가 신분 세습의 근거가 되었던 불평등한 전근대적 사회를 타파하고자 등장한 능력주의는 우리 사회를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노력과 개인 기량에 대한 합당한 보상 대신, 서로에 대한 갈등과 폭력을 낳았다. 흙수저는 절대 금수저를 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금수저를, 금수저는 능력사회에서 노력하지 않고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깎아내리려 한다는 의심에 흙수저를 증오한다. 중세 시대의 계급 간 갈등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름만 바뀌어 다시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

믿음과 폭력

만약, 만약 제가 이 게임 외에 또 다른 게임이 있다면, 그리고 혹시 제가 그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면, 보여주실 수 있나요. 뭔가 신호를, 사인을,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이대로... 이대로 끝내는 건. 이게 끝이라기엔! 제발!! 아. 깜빡였다. 분명. 분명, 계시였다.

게임 시작 90일째, 상금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고, 남은 참가자는 약을 복용하지 못하다 자살을 시도하여 하반신이 마비된 2번, 미쳐버린 3번, 그리고 그나마 정상적인 상태인 7번과 8번까지 총 4명이었다. 어떠한 희망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남을 길은 참가자들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게임의 설계자와 혹시라도 있을 머니게임의 시청자에게 호소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스튜디오에 있는 카메라에 대고 돈보다. 자신들의 목숨보다 당신들이 관심 있는 것은 재미. 마치 신처럼 사람을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아니냐고 물으며 자신은 오줌을 마시고 쓰레기를 씹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 재미를 줄 테니 자신에게 무언가 대답을 달라며 기도한다. 이 말을 외치고 몇 초 동안 카메라를 바라보는 주인공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한 번 깜빡인다. 주인공은 이것을 그들이 내리는 계시라고 생각하며, 이제 자신은 이 간절함이 그들에게 닿아 기적을 내리기만을 기다릴 것이라 다짐한다.

<머니게임>의 작가는 참가자들이 보이는 다양한 정치 형태를 하나의 손 모양으로 표현하는 장면을 자주 묘사한다. 6호를 중심으로 한 민주정은 거수로, 3호의 폭력을 기반으로 한 독재 권력은 주먹으로, 폭력을 기반으로 했으나 이상적인 지도자에게 무한한 권력이 부여되었다 평가받은 5호의 절대 왕정은 엄지를 치켜든 손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표현한 90일째의 주인공의 모습은 하늘을 향해 펼쳐진 손바닥 그림, 즉 머니게임의 내부 양상이 보다 초월적인 존재를 따르는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머니게임 마지막 날, 주인공은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2, 3번 참가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7번 참가자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삶의 의지가 충분하고, 재참가의 계시를 받은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며 호소한다. 7번 참가자는 주인공을 가여운 사람이라 부르며, 카메라에 대고 자신이 8번 참가자의 고통을 끝내주기를 원한다면 불빛을 깜빡여 달라며 말하고, 놀랍게도 몇 초 뒤 카메라의 붉은 불빛은 한 번 깜빡인다.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에게 7번 참가자는 카메라의 깜빡임이 계시 같은 것이 아닌, 가끔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일갈하며 주인공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다. 초월적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은 인류의 역사와 그 발걸음을 함께했고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결국 개인을 수렁으로 빠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머니게임>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머니게임 종료, 그리고...

새로운 게임, 재참가의 기회, 더 많은 상금 따위의 헛된 망상은 애초에 접었다. 알아버렸으니, 일반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가늠도 할 수 없는 힘과 부를 지닌 존재들이 있다는 걸. 그들이 설계된 판 안에서는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우리는 한낱, 개미와도 같은....

7번 참가자의 무차별적인 공격마저 이겨내고, 결국 머니게임 종료 후 남은 참가자는 주인공 혼자, 남은 상금은 –5억 원. 설계자에게 5억 원 정도는 푼돈이어서인지, 좋은 쇼를 보여준 것에 대한 대가인지 주인공에게 비용이 청구되지는 않는다. 건물 외벽 유리를 청소하는 업무를 하며 천천히 원래 빚을 갚아나가던 주인공은 이후에 같은 기회가 오더라도 게임에 참가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다짐을 반복하며 유리를 청소하던 주인공의 뒤쪽 전광판에서 처음 머니게임에 초대되었을 때 나왔던 붉은 빛이 비치고, 다시금 홀린 듯이 그 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웹툰 <머니게임>은 끝이 난다.

<머니게임> 내에서의 공격성은 모든 사회적 인프라나 규범과 완전히 차단된, 기존의 모든 것이 무력화되는 새로운 사회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이 작품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사회 규범이 명확하게 확립된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타인에게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고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곤 하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부당하게 피해를 보거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좌절되면 분노의 감정을 가지기 마련이며, 이때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그 공격성을 표출하고자 한다. 하지만 법적 체계, 사회적 질타와 처벌의 정교화에 따라 현대에 타인에게 공격성이 분출되는 방향은 조금 더 간접적으로, 보다 교묘하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갈등’이라는 단어이다. 세대 갈등, 성별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 아마 미래 인류가 21세기의 초반부를 정의하면 갈등의 시대라고 명명하지 않을까.

최근 사회 집단 간, 혹은 집단 내에서의 이해관계 차이와 충돌로 인한 갈등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갈등 규모는 작아졌으나 빈도는 높아졌고, 특정한 장소가 아닌 어디나 편재한 현상이 됐으며, 갈등의 성격도 이념보다는 이해관계 충돌이 압도적이다. 여기에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의 발전도 한몫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면 가장 장벽이 적은 언어적 폭력으로 이를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익명적 소통 공간인 온라인은 이에 가장 적합한 표출 장소이다. 최근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 혹은 익명 간의 다툼이 더욱 자주 보이는 상황이 코로나 19와 더불어 수많은 갈등으로 쌓인 사람들의 공격성을 반증하는 듯하다.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공격적 표현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보복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이다. 모욕과 같이 공격적 행위에 노출된 사람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기가 받은 행위 혹은 그 이상을 돌려주는 전략을 취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하나의 공격적 표현이 또 다른 공격적 표현을 양산하는 것이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은 익명적인 상황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행동이 더욱 쉽게 일어나는 현상도 이러한 상황에 한몫했다. “인터넷 기사 대댓글이 50개 이상이라면 댓글 펼치기를 클릭하지 마라. 싸우고 있을 확률이 90% 이상이다.”라는 농담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해적 담론보다는 공격적 담론에 익숙함을 확인할 수 있다. 과잉공격과 과잉보복이 지속되는 인터넷 공간은 사회에 정치적 냉소주의를 만연하게 하고, 정치적·사회적 참여의 효능감이 떨어지게 만들며, 사회적 신뢰의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바뀌어야 한다. 자신의 공격성을 인터넷상에 무차별적으로 표현하는, 익명성에 가려진 전쟁을 계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태섭 taesub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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