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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내 인맥은 생각보다 넓다고 한다.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렇게 여섯 다리만 거치면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다 지인이라는 이론도 있다. 바로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단계 법칙. 나도 그 법칙에 따라 여섯 다리 만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정답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 시도는 해보자.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이란?

케빈 베이컨은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로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터라 아는 배우가 상당히 많았다. 어느 날 케빈 베이컨이 한 토크쇼에 3명의 대학생과 함께 출연했는데, 이 대학생들은 그가 신(神)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인즉슨 청중들이 호명하는 모든 할리우드 영화배우가 두 단계 또는 세 단계만 걸치면 그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이것이 실제임을 증명했다. 이를 계기로 여섯 단계만 거치면 미국 전역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론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케빈 베이컨의 여섯 단계 법칙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혈연, 지연, 학연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필요한 경로가 3.6명이라는 조사도 있다.


1. 누굴 만날까.
  일단 만날 사람부터 정해야 한다. ‘연예인을 만나는 게 좋겠지’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다.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누굴 만날지도 꽤 고민이다. 잠시 후, 뇌리를 갑자기 스쳐 간 그 단어, 야구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를 만나야겠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팀인 두산 베어스 선수로.

 

2. 다리 건너건너.
  두산 선수를 만나자고 생각은 했는데 대체 어떻게 만나지 라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찾아봐야겠다. 두산 팬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선수 한 명의 연락처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2시간 동안 팬 카페, 갤러리 등등 무수한 곳을 찾아봤지만 나올 기미가 전혀 없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나를 원망하며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중얼거리고 있자 옆에서 안쓰럽게 보던 동기가 한 줄기 희망을 보여주었다. “전에 어디서 들은 건데 우리 과 졸업생 선배님 중에 야구기자 하시는 분이 계신대” 그걸 왜 2시간의 노동 끝에 얘기해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다음에 밥 한번 사겠다고 말할 정도로 고마웠다.

* 첫 번째 다리: 나 → 국문과 12학번 선배님
  야구기자를 하신다는 선배님이 누구신지부터 알아야 했다. 연락처가 있는 사람 중에 국문과 12학번이신 선배님께 물어봤다. 일단 그분이 몇 학번이신지부터 물었다. 08학번이라는 답과 함께 두 달 전쯤 기자를 그만두셨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친한 야구 선수 한 명쯤은 있지 않으시겠냐는 생각으로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내 사전엔 포기란 없다!

* 두 번째 다리 : 국문과 12학번 선배님 → 국문과 07학번 조교님
  12학번 선배님이 이 분이라면 08학번 선배님들의 연락처는 거의 다 알 거라며 07학번이신 국문과 조교님에게 찾아가 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 과 조교님이지만 평소 연락을 하지 않고 조교실에 갈 일도 거의 없었던 터라 직접 찾아가 보기가 망설여졌다. 과 사무실 문 앞에서 10번 정도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용기를 내 들어갔다. 다행히도 바로 연락처를 주셨고 힘내라면서 응원도 해주셨다. 사무실을 나오며 ‘진짜 두산 선수를 만나면 얼마나 기쁠까’라는 기대와 함께 08학번 선배님의 연락처를 저장했다.

* 세 번째 다리 : 국문과 07학번 조교님 → 국문과 08학번 선배님(야구기자 출신)
  여기서 잘 풀리면 바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연락했다. 최대한의 정중함과 간절함을 담아 문자를 작성했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기자를 그만두신 후 두 달 동안 스포츠 관련 사람들과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지내서 직접 도와주기는 힘들 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 기획 최고의 고비를 만났다. ‘방법이 더 이상 없는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러다가 못 만나는 거 아니야?’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물론 선배님은 일단 주변에 되는대로 연락해보신다고는 했지만, 결말이 점점 어두워져만 가는 듯했다. 다음 날 오후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간 스포츠에서 기자를 하고 계신 홍대 출신의 경영학과 03학번 선배님이 계시는데, 그 선배님이 기사 기획을 듣고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셨다면서 문자로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이게 웬 횡재야.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 네 번째 다리 : 국문과 08학번 선배님 → 경영학과 03학번 선배님(현역 기자)
이 귀한 연락처를 받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린 건지 모르겠다. ‘좀 이따가 연락 드려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나서 핸드폰으로 야구 기사를 보다가 두산 전지훈련이 다음 주부터 시작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음 주부터 선수들이 외국으로 나가 전지훈련을 시작해서 약 1달 반 후에 끝난다는 비보를 접했다. 이렇듯 계속되는 변수가 야구 선수 말고 축구나 배구 선수를 만날까 하는 유혹으로 날 이끌었다. 하지만 처음 정했던 두산 선수를 만나겠다는 일념 아래 ‘두산 선수를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경영학과 선배님께 문자를 보냈다. 급한 마음 때문인지 답장이 없는 그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다음 날이 돼서도 연락이 없으셨다. 문자는 못 보시는 걸까 싶어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시도했더니 몇 시간 후 드디어 답장이 왔다. 긴장을 풀기 위해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나서 답장을 확인해보니 WBC 대표팀 소집일인 2월 11일에 두산 소속의 대표팀원 중 한 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만남을 확정 지었다. 게다가 대표팀 선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다. 아직 만난 것도 아니지만 만나서 뭘 할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쁜 마음으로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 어렸을 때 이후로 빨리 그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건 오랜만인 거 같다.

 

3. 진짜로 만났습니다.
  2월 11일. 드디어 그 날이다. 2시간 걸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WBC 대표팀의 숙소라 그런지 이미 많은 기자가 모여 선수들이 도착할 때마다 플래시 사례를 연발했다. 그런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긴장은 배가 됐다. 게다가 만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선배님이 연락이 없으셔서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드디어 선배님과의 만남.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할 새도 없이 10분 후에 선수를 만나러 가자는 얘기를 해주셨다. 이렇게나 빨리 만나다니. 만나면 뭐를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봤지만 긴장 때문에 머릿속이 백지장이다. 10분 후, 시간이 됐다. 3층에 가보니 내가 정말로 보고 싶어 하던 선수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두산 팬이라면 멀리서도 알 수 있는 그 선수는 바로 두산 베어스 허경민 선수. 보자마자 기뻐서 웃음부터 튀어나왔다. 세상에, TV랑 야구장에서만 보던 그 선수가 내 눈앞에 있다니. 순간 너무 긴장되고 신기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쳐다보고 서 있기만 했다. 선배님이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하냐며 말을 걸지 않으셨으면 계속 쳐다보기만 할 뻔했다. 급하게 정신 차려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허경민 선수와 야구 이야기도 해보고 다른 두산 선수들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다 잊어버리고 훈련 힘내시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 말과 함께 허경민 선수는 작별인사를 한 뒤 방으로 돌아갔고 나에겐 힘들게 만나놓고 그럴듯한 말 한마디도 못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집에 도착해 그동안을 떠올려보니 아쉬웠던 마음도 잠시, 과정 하나하나가 큰 의미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SNS를 이용하면 누구에게나 바로 연락할 수 있는 게 요즘의 현실이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 직접 연락을 하거나 만났던 아날로그적 과정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결국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까지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주변에 있는 홍익대 사람들만으로도 내가 보고 싶은 야구 선수를 만나게 됐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이 알고 보니 학교 사람들 네 다리 정도만 건너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이런 걸 보면 세상 참 좁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재밌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도 한 번쯤은 도전해보시길. 그 사람을 만나든 못 만나든 그 도전 자체가 의미 있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야구 선수를 만날 기회를 준 케빈 베이컨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임창열  cy1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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