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큰 흐름이 된 비거니즘.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도 비건에 대한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아직도 비거니즘을 채식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지금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든 비거니즘에 대해 소개합니다.

비거니즘이란?

비거니즘이란 동물을 착취하여 생산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동물권을 옹호하고 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을 뜻한다. 본래 비거니즘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2010년대에 들어 ‘지속 가능성’이라는 시대의 화두와 함께 식생활을 넘어 다양한 산업 분야로 그 영향력을 확장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단순한 채식을 넘어 비거니즘 생활을 지향하는 젊은 층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채식주의와 관련된 구글 검색량도 90% 이상 증가했을 정도로 비거니즘은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왜 비거니즘일까

비거니즘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개인의 건강, 동물권 보호, 환경보호가 대표적인 이유로 언급된다. 현대인의 육류 위주의 식생활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심혈관 질환, 뇌졸중, 당뇨, 암과 같은 질병에 잠재적으로 노출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개인의 건강을 이유로 비거니즘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러한 식습관을 비거니즘의 실천을 통해 개선하고 동시에 건강을 되찾고자 한다.

동물보호를 이유로 비거니즘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먹는 소와 돼지 등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동물들이 길러지는 가축 현장과 도축 현장이 잔인하고 끔찍하다는 사실은 높아지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와 맞물린다. 동물권 보호의 관점에서, 현대인의 육식 위주 식생활은 이를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행위이며 이것은 동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결과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육류 위주 식생활로도 이어진다. 또한 축산업의 본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무관심도 동물을 먹거리 상품화하는 인식을 사회에 만연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현대의 식생활,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동물권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곧 동물들이 불필요하게 겪어야 할 고통을 줄이는 일이며, 동물 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비거니즘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환경보호 또한 동물권 보호와 비슷한 맥락이다. 오늘날 전 세계는 지구온난화라는 공통의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이렇게 매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를 막을 해결책으로 비거니즘이 제시되었다. 대규모 축산업으로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국가에 비교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을 정도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지구 전체 농지의 약 80%가 가축 사육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 사육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열량은 전 세계 인구 기준 약 18%에 불과하다. 다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경작지가 가축 사육에만 이용되고 있다는 것도 비효율을 극대화한다. 이렇듯 환경 악화를 막고, 지구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함이 비거니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생활의 비거니즘

식생활 비거니즘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완전한 채식주의 대신 필요에 따라 적당량의 육류를 섭취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선택적으로 채식의 정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상황에 맞게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되어 최근에는 고기, 즉 육류를 대신할 대체육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대체육이란 우리가 흔히 식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을 대체할 수 있는 고기를 의미한다. 대체육은 크게 배양육, 식물성 고기, 식용 곤충으로 분류된다. 배양육은 살아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채취한 뒤 배양해 만든 것이다. 식물성 고기는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콩고기 또한 식물성 고기의 한 종류이다. 세 대체육 중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식물성 고기다.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식물성 오일로 육즙까지 재현한 식물성 고기는 주류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식품 업계에서도 식물성 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비거니즘 상품을 개발하여 출시하는 등 고기의 식감과 맛을 살린 제품을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다.

배양육의 경우, 기존에는 실제 육류와 식감이 다르고 배양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생산 비용이 비싸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 국내 스타트업 ‘씨위드’가 한우 세포를 길러 실제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한우 배양육’ 기술 개발에 성공하는 등 배양육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다. 또한 씨위드는 해조류를 이용해 세포를 배양하는 구조체를 만들어 기존 100g당 10만 원 이상 들던 배양육 생산 비용을 2000원 선으로 줄임과 동시에, 실제 고기와 유사한 식감을 내는 구조체를 만듦으로써 기존의 배양육이 가지고 있던 생산 비용 문제와 식감 등의 한계를 상당수 극복하기도 했다. 

대체육에 대한 논의는 동물권에 대한 담론과도 연관된다. 살아있는 가축을 도살하고, 공장식 집단 사육을 통해 얻어지는 기존 육류 조달 방식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는 결국 대체육의 개발과 상용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의 육류에서 대체육으로의 전환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직접적인 동물권 보호의 한 방법이며, 이것은 비거니즘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비거니즘 음식 영역이 단순히 고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라면, 디저트, 편의식 등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비건에 대해 높아지는 관심이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이러한 음식들은 시중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해져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일례로, 미국 대체육 기업 중 가장 메이저로 꼽히는 비욘드 미트 또한 동원 F&B의 직수입으로 온, 오프라인 상점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해졌다.

패션과 뷰티 업계에서도 불고 있는 비거니즘의 바람

우리가 겨울이 되면 꺼내 입는 양털 코트, 오리털 패딩 속에 들어있는 털들은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얻어졌다. 이것 역시 질 좋은 가죽과 털을 살아있는 동물로부터 뜯어내는 등의 비윤리적인 제작 공정에 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기존의 제작 방식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악어, 뱀 등 희귀 동물로부터 얻는 가죽의 사용을 줄이고 이를 대체할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패션 업계는 기존의 동물성 소재를 대체할 다양한 비건 소재를 개발했으며, 이를 사용한 의류를 직접 판매하면서 비건 패션 시장의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비건 소재인 식물성 가죽은 선인장, 파인애플, 포도 등에서 그 소재를 얻는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식물성 가죽 ‘데세르토’가 선인장을 원료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식물뿐만 아니라 미생물을 사용하여 비건 소재를 개발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음식과 패션만큼이나 비건 열풍이 불고 있는 분야가 뷰티, 화장품 업계이다. 기존에는 화장품 개발을 위해 동물 실험이 이루어졌다. 화장품 개발에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고 언급되는 주된 이유는 ‘안전’이다. 화장품이 사람의 얼굴에 흡수되거나 밀착되는 과정에서 피부에 자극이나 염증을 유발하지 않는지 등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화장품을 정식으로 판매하기 전 동물 실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실험에 동원된 동물들에게 비윤리적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비판이 늘어나며 현재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물 실험을 통한 화장품의 유통과 판매는 금지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뷰티 업계는 동물 실험을 포함해 동물성 원료 또한 사용하지 않은 진정한 비건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대체 원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화장품에는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한 글리세린이나, 스쿠알란 등 동물성 원료가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동물성 원료를 대체하기 위해 동일한 원료를 식물에서 추출하거나, 비슷한 성분의 원료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글리세린과 스쿠알란은 사탕수수나 올리브와 같은 식물로부터 분리, 정제해서 얻을 수 있고, 색조 화장품에 이용되는 동물성 색소 또한 대체할 수 있는 식물성 색소가 속속들이 개발되고 있다. 중소 뷰티 브랜드의 비건 화장품 출시도 늘어난 한편, 대기업 뷰티 브랜드인 아모레 퍼시픽도 “충분하면 만족하세요. 우리는 이미, 이 자체로, 이렇게나 충분합니다.”라는 철학을 전면에 내세우며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불필요한 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 이너프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거니즘이 걸어가야 할 길

이렇게 국내 비건 인구의 증가와 함께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비건 산업 또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인 듯하다. 국내 비거니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뜨거운 감자였던 ‘채식 급식’이다. 화두는 모든 학생들이 먹는 급식에서 채식하는 학생을 위한 채식 급식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비건 학생들 입장에서, 기존의 급식에서 제공되는 육류를 제외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과 야채 무침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비건 학생들은 먹을 권리에 대한 보장과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준다는 것을 이유로 채식 급식 선택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채식 급식에 대한 논 비건들의 주장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급식을 소수의 비건을 위해 맞추는 것은 억지이며, 애초에 채식 급식을 특정 식품에 알러지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제공되는 대안 급식과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소수의 학생을 위해 따로 재료를 공수하고 조리하는 과정 또한 현재의 인력으로는 어렵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채식 메뉴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여 시행 중에 있지만 미국과 한국이 완전히 동일한 식문화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내 채식 급식 도입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비거니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주장이 육류 섭취 제한에 따른 영양소의 불균형인데, 정말로 비건으로 완전한 영양소 섭취는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비거니즘과 더불어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전부 섭취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효율적인 영양 섭취법이 될 수는 없다. 동물로부터 얻어진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의 경우 단백질의 보충이 현미밥, 콩, 녹색 채소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단백질을 제외한 다른 영양소들도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렇게 육류를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영양소를 채식으로 얻는 것은 실질적으로 매우 제한적이고 힘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영양소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성장기 시기 아이들의 채식은 더더욱 이러한 문제에 취약하다. 채식을 통해서도 필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한 채식’은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철저한 식단 관리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건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비건을 고집해 아이가 극심한 영양실조가 걸렸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는 것도 극단적인 채식과 함께 균형 잡힌 영양소 공급의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불교의 동자승도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위해 육식을 완전히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개인의 상황에 맞춘 식단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영양소 섭취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렇듯 비건 식생활이 무조건 영양소 불균형을 초래한다기보다, 육식이든 채식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식생활은 어느 쪽이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영양소 불균형 등의 한계를 차치하더라도 비건과 논 비건 사이의 갈등은 여전하다. 비건에게는 채식에 대한 논 비건의 차가운 시선과 무시, 논 비건에게는 비건에 대한 강요로부터 비롯된 서로 간의 갈등이 그 이유이다. ‘채식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래봤자 집에서는 고기 먹을 거 아닌가?’, 혹은 동물성 성분이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모습에 ‘많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은 비건에게 이미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논 비건 또한 식당에서 동물 학대를 그만두라는 항의 시위를 벌이는 극단적 비건들의 모습을 보며 비거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닐 만큼 비건과 논 비건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불어 국내 비건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대체육, 채식 급식과 같은 비건 상품과 정책은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비건을 내세운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또한 아직 갈 길이 멀다. ‘비건’을 내세우며 출시한 제품을 막상 구매해보면, 비건은 상품 판매를 위한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건 제품을 개발했더라도, 제품 포장을 일회성, 플라스틱 포장지로 덮어버렸다면 진정한 비건의 의미는 퇴색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비거니즘이 우리 사회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인정의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비건을 시작한 사람들의 계기와 그 정도가 모두 다르기에 어느 정도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비건과 논 비건의 공생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건과 논 비건 사이 갈등의 뿌리는 극단적인 일부의 이미지가 전체 이미지로 고착화된 탓이 크다. 그렇게 고착화된 이미지에 가려진 진실을 들여다볼 생각도 않은 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앞으로도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비거니즘이 우리의 생활 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비거니즘의 산업별 규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업 또한 소비자들이 믿고 구매할 수 있는 비건 제품을 유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모아질 때, 비로소 비거니즘이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05ov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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