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른 ‘느슨한 연대’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렇다면 ‘느슨한 연대’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변화들을 예측할 수 있는가?

사전적으로 ‘느슨하다’는 끈이나 줄 따위가 늘어져 헐겁다, 마음이 풀어져 긴장됨이 없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느슨하다’는 말을 관계 앞에 붙이면 서로 연결은 되었으나 아주 긴밀하지 않은 관계, 즉 ‘따로 또 같이’가 좀 더 원활한 관계를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장점은 취하돼,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과 복잡함은 덜어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 냈다.

이렇듯 ‘끈끈한 연대’의 주체가 ‘우리’였다면 ‘느슨한 연대’의 주체는 ‘개인’이다. 끈끈한 연대의 암묵적 조건은 ‘공동체를 위한 나의 희생’이라면 느슨한 연대는 ‘나의 감정과 개성 존중’이다. 만약 자신의 ‘감정과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느슨한 연대다.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취향과 목적에 따라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 공동체의 수는 무한하고 제약이 없다.

왜 느슨한 연대?

-혈연, 학연, 지연을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

‘우리가 남이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같은 말에서 드러나듯, 한국 사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강한 집단주의를 유지해왔다. 이에 혈연 중심 사고와 가부장적 가족관이 견고하게 유지되었고, 지연과 학연 같은 인맥을 중요시해왔다. 이러한 인맥은 소위 ‘빽’으로 불리며 이것의 유무에 따라 이득을 누리는 기회도 달라졌다. 결국 기성세대는 자신의 빽을 위해 개인 시간을 투자하면서 다양한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결된 학연, 지연, 혈연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거기에 소모되는 시간을 아깝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들의 눈에는, 기성세대가 만든 ‘빽 중심 사회’가 너무나도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취업을 청탁하는 사회가 굳어진 현재 문화에서는 실력보다 인맥과 접대가 힘을 발휘한다. 또한, 기성세대는 이러한 인맥과 접대로 이루어진 낙하산에 대해서 대부분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여 왔으며 이는 정치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쪽도 매 정권 이루어진 인사청문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낙하산 인사 혹은 입학 비리를 피해 가지 못한 부분에서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점차 기성세대의 반복적 ‘내로남불’에 이골이 났고 혈연, 지연, 학연 대신 느슨한 연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존중받으며 솔직해질 수 있는 연대

밀레니얼 세대만큼 ‘나’ 자신을 중요시하는 세대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절대적 관계 대신, 자신의 선택권을 존중받는 취향 중심의 연대를 찾기 시작했다. 이후 그들은 취향 중심의 연대를 찾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선택권을 존중받고자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느슨한 연대’에 있었다. 느슨한 연대에서는 연대의 구성원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연대의 목표나 성향이 맞는 사람과 어울리며 실증이 나면 언제든 그 관계를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이 배신인 배반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의 선택은 언제든지 나의 선택이 될 수 있기에 그것이 어떠한 선택이든 기꺼이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도덕적 관념의 억압이 없는 느슨한 연대 안에서의 개인은 ‘자아 검열’을 피해 표출할 수 있는 감정 혹은 태도가 다양해지고 이를 존중받는다. 또한, 타인의 TMI를 피하면서 나 자신에 솔직해질 수 있다. 내 의지를 묻지 않고 내 감정을 노동화 하는 현상이 느슨한 연대 내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의 개인사를 묻는 사람도 없고 서로에 대해 깊게 모르기 때문에 ‘뒷담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연대 방식을 지향한 기존 공동체에서 구성원을 강하게 연결하고 또 쉽게 분열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것은 뒷담화였다. 개인의 비밀과 사생활을 타인에게 전하여 시작되는 뒷담화는 소문에 소문을 더하며 점점 커져 공동체 내 편 가르기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느슨한 연대에서는 저마다의 개인사를 모르는 이상 뒷담화가 걱정되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못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즉, 느슨한 연대 내에서의 개인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게 된다.

-좀 예민해도 괜찮아

기존의 방식으로 묶인 공동체에서는 예민함을 드러내도 안되고 들켜서도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나와 같은 예민함을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는 이를 숨길 필요가 없다. 느슨한 연대가 성행하는 요즘 ‘예민하다’는 ‘섬세하다’, 또는 ‘세심하다’와 같은 긍정적 의미가 부가되면서 어떤 대상에  대한 수용의 정도, 혹은 태도를 설명할 때 쓰인다. 또한, 느슨한 연대는 이 예민함을 존중함으로써 공평한 관계를 보수한다.

「2020 트렌드 노트: 느슨한 연대」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이 원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나를 침범하지 않을 것, 나의 즐거움을 해치지 않을 것,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 사실 이 세 가지는 나와 공동체를 모두 지킬 수 있는 가장 명확하고도 중요한 원칙이다. 이 원칙 중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공동체에서 탈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민함을 지키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를 고찰한 장윤미 문화평론가에 따르면 나의 예민함을 지킬수록 개인의 일상은 훨씬 풍부해지고 즐거워진다고 한다. 이는 예민할수록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잘 인지할 수 있게 되며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변화시키는가?

느슨한 연대는 인간관계를 넘어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며, 이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조직문화와 주거문화, 크게는 도시구성에도 변화를 주어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메가트렌드’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 새로운 직장문화

넷플릭스가 자사의 조직문화를 정리해 놓은 문서 ‘컬처 덱’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We’re a team, not a family(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할 수는 있겠지만, 회사는 일하러 모인 곳이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보다 누가 가장 실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번 유능했다고, 계속 그 유능함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변화를 계속 받아들이며 실력을 키워 가야만 유능함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직문화에서도 능력 위주, 수평 주의가 확산되며 호봉이 없어지고 연봉 평가도 역할과 능력 위주로 바뀌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추세이다. 나아가 예전에는 사표 쓰는 동료를 배신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요새는 적극적으로 사표를 내는 이들이 늘었다. 오늘날에는 한군데 오래 있으면 유능하고, 자주 직장을 옮기면 끈기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대와 시대가 달라지고 산업 환경도 달라지니 사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 것이다.

직장은 친목이 아닌, 기업의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과거식 끈끈함을 운운하기엔 평생 같은 직장을 다니며 종신 고용을 보장받았던 과거의 산업 환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한번 입사했다고 퇴사할 때까지 책임져 주는 기업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지금의 직장은 영속적 연대가 아닌 일시적 연대에 불과하다.

-결혼이 비주류가 되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결혼과 출산을 필수라 여기지 않고, 독신과 자발적 고립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역대 최저의 혼인율과 출산율, 이건 밀레니얼 세대가 가족을 원치 않아서 생긴 현상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가부장적 가족관 아래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져서가 원인일 것이다. 이는 결혼이란 제도와 그에 따른 출산을 포기한 것이지, 혼자서 고립되듯 외롭게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느슨한 연대는 전통적 가족관이 무너진 시대에 필요한 사회적 대안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연결된 끈끈한 관계만을 가족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도 유럽에서 보편화된 결혼과 동거를 절충한 대안적 제도가 필요하다. 예로 요즘 급부상하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시대, 연인 간의 동거만이 아니라 친구 간, 이성 간, 동성 간 다양한 동거가 이뤄진다. 싱글맘끼리의 동거도 가능하고, 노인들끼리의 동거도 가능하다. 느슨한 연대를 활용한 이러한 가족 형태에 대한 정책 이 요구되었고, 이러한 흐름에 맞춰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었다. 생활동반자법은 합의에 이루어진 동거가족을 법률로 보호함으로써 유럽에서 보편화된 결혼과 동거를 절충한 대안적 제도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새로운 취향 소비문화, 살롱의 등장

밀레니얼 세대는 획일화된 소비를 하기보다 개인의 취향을 소비하고자 한다. ‘프랑스어로 ‘방’을 뜻하는 ‘살롱’은 18~19세기 프랑스 예술가와 지성인들의 사교 장소를 의미한다. 당시 살롱을 출입하던 이들은 남녀노소, 신분·직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화하고 토론했다. 출신이나 소속, 심지어는 이름이나 나이보다도 각자의 생각과 취향을 더 중히 여겼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마치 살롱과 같은 일종의 취향 공동체 속에서 각자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살롱문화를 표방하는 현재의 커뮤니티들도 프랑스 살롱과 마찬가지로 ‘사색과 대화 있는’ 성격을 표방한다. 사람들은 우연히 만난 상대와 커피·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시간과 주제가 정해진 콘텐츠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가입 절차를 통한 멤버십 형태로 모임을 운영하지만, 과도한 소속감을 요구하진 않는다. 회장이 회원들의 신상을 모두 파악하고 모임을 주도하는 구도도 아니다. 공간을 매개로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하고, 관심사에 따라 모임을 구성해 그때그때 장소와 시간을 정해 만난다. 오직 취향이 권력이 되며 모임의 누구도 서로의 신상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현재 대표적인 살롱 단체 ‘취향관’ 고지현 대표는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눈 회원들 간에도 직업이 뭔지 나이가 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며 “사회에서 중요했던 타이틀이 이곳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즉, ‘친목’보다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질 높은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는 것이 살롱문화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느슨한 연대는

느슨한 연대가 새로운 메가트렌드로 꼽히고는 있지만 아직은 낯선 주제인 만큼 그 본질에 대한 여러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다.

Q) 지나친 개인주의를 느슨한 연대로 미화한 것이 아닌가?

A) 약한 연결이라고 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는 기존의 관계와 연대가 가진 문제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등장했다. 분명한 것은 느슨한 연대는 개인이 공동체에 귀속된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가 아니라 공동체를 수용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아가 이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감정이고 느슨한 연대에서의 이 감정은 앞선 ‘왜’ 부분에서 설명한 내 감정에 솔직한 ‘불편’과 ‘예민’이다. 즉, 느슨한 연대는 개인주의를 무조건 옹호, 미화한다기보다는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개인의 태도 변화에서 시작된 집단의 자연스러운 변화일뿐이다.

Q) 너무 급진적이고 일시적인 인맥관의 변화가 아닌가?

A) 아니다. 느슨한 연대란 표현은 1990년대 후반 정치‧경제권에서부터 기존 협력 시스템이나 제도가 지닌 물리적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적 방식 혹은 참여 형태를 제안하는 방법의 하나로 쓰여 왔다. 특히 4~5년 전부터 느슨한 연대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의 개념으로 정착되었고 이후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문화 현상의 전반을 설명하는 데 두루 사용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누구나 친구 추가 한 번으로 친구가 되고, 누구든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면서 관계에서의 수평화가 이뤄졌다. 그리고 쉽게 친구가 됐듯 쉽게 단절도 가능했다. 이렇듯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소통과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보니 진짜 현실과 달리 일방적이어도 무리가 없었고,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이어도 무방했다. 그렇게 소셜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느슨하게 연결되는 경험을 준 것이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에서만 통하던 코드가 현실로 넘어오면서 느슨한 연대란 지금의 새로운 인맥관을 흥행시킨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느슨한 연대가 급진적이고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 예전부터 새로운 문화로 천천히 자리 잡아 오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인간에게 연대는 생존이라 한다. 하지만 기존의 공동체를 향한 충성으로 여겨졌던 감정 노동은 인간에게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못하였다. 공동체의 유익을 목적으로 내 감정을 훼손하는 것은 폭력이 되어 돌아왔고, 이는 끈끈한 연대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서로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생존을 위한 연대는 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나만 된다’가 아닌 ‘누구도 된다’라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느슨한 연대를 즐기면 될 듯하다.

전현영  leoniejj1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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