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인식의 붕괴

정치권에선 전통적으로 2030세대의 젊은 층은 주로 진보 성향의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2019년부터 서서히 그 인식의 붕괴가 예상됐고 결국 2021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그 통념이 깨졌다.

이 선거의 최종 결과와 더불어 20대 남성이 국민의 힘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20대 남성의 몰표를 두고 일각에서는 "20대 남성이 보수화된 것 아니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또래 고교생들의 참사에 같이 마음 아파했고, 나라를 지키러 간 군인이 군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것을 보았고, 대통령을 탄핵한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다. 오히려 진보다우면 진보다웠지, 보수화된 세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표심은 야당에 대한 지지의 표심이 아니라 분명 여당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이탈이었다. 실제로 19대 대선, 그 직후 진행된 여론조사, 21대 총선에서 20대는 여당과 현 정부에 많은 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19대 대선으로부터 불과 4년, 또 21대 총선으로부터 1년 만에 20대 남성의 표는 보수정당 후보에게 몰렸고, 20대 여성 표는 보수정당과 대안정당으로 옮겨갔다. 이 현상은 현 정권과 여당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무너진 공정과 정의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많은 국민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것은 돈도 실력이라고 얘기했던, 특권이나 반칙의 상징이었던 정유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적 정당성 없이 권력을 휘둘렀던 최순실과 그 정권을 격파하자는 데 많은 이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국 일가의 권력형 스펙 위조, LH 투기 사태, 제대로 된 이력 한 줄 없는 청년비서관 임명 등 지난 4년간 벌어진 불공정과 불의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공정의 가치를 저버렸다는 점은 신자유주의적 교육을 받고 무한경쟁을 거치며 성장해오면서 공정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고 배워온 2030의 젊은 세대를 분노케 했다.

청년층이 말하는 불공정의 대표적 예시가 바로 2020년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다. 약 1,900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취준생들은 큰 상대적 박탈감과 불공정을 느꼈다. 지금의 20대는 성장해오면서 더 열심히 노력해 능력을 쌓고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더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는 일종의 능력주의가 공정한 것으로 배워왔고, 당연한 것으로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때 청년들이 요구하는 공정은 '절차적 공정'이다. 자신의 경쟁 상대가 금수저이든, 흙수저이든 동일한 운동장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성에 대한 회복의 차원이었다는 대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정부는 동일한 시작점에서 경쟁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을 많은 취준생과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에 앉혀놓았다. 게다가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신규채용 규모가 급감하면서 많은 취준생이 그토록 분노했다.

이번 선거 결과의 또 다른 쟁점은 20대 내 성별 간의 큰 표심차이다. 출구조사 결과에서 20대를 제외한 다른 세대에서는 남녀 간 지지율 차이가 평균 5.3%p였던 반면, 20대에서는 그 차이가 무려 31.6%p에 이르고 있어 20대가 다른 세대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부동산 문제 등의 이유가 제시되기도 했지만, 성별 간 유불리가 없는 부동산 문제보다는 현 정권 들어 극심해진 젠더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젠더 갈등이 이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그 기점은 주로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에 반대하며 젊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던 '혜화역 집회'가 꼽힌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많은 정치인이 '자신도 페미니스트'라며 페미니즘을 정치권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와 정부에서 많은 여성친화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많은 20대 남성 유권자들은 오히려 이로 인해 역차별 감정을 느꼈다고 반박하며 갈등이 극심해졌다. 현재 50~60대에 접어든 아버지나 그 위로 할아버지 세대라면 몰라도 자신들은 남성으로서 혜택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평등하게 자라왔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한 교육 영상에서 나윤경 원장이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을 때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시민적 의무'"라 설명한 것도 많은 남성에게 억울함을 안겨주었다. 20대 남성들은 남녀차별은 사회가 풀어가야 하는 숙제라는 것과 그간 여성이 차별받아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으며, 또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자신들만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남겨 간의 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의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또래 여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편에서 따라오던 상대가 아니라, 같은 교실, 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되었던 동료이자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기름을 끼얹은 발언들

젠더 갈등에 더해 많은 여권 정치인들이 20대를 폄하한 발언들도 문제가 됐다. 지난 2019년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두고 "교육을 제대로 받았나 하는 의문이 있다"(설훈 의원)라고 비난하거나 "거의 60~70년대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적대 의식을 심어줬기 때문"(홍익표 의원)이란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도 선거 유세 도중 20대 지지율이 낮은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자 "20대의 경우 과거의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보다는 경험치가 낮지 않나"라고 답해 스스로 20대 민심을 저버렸다. 많은 20대 남성들은 이러한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사고 탓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대표적 예가 2018년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발언이었다. 그는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자기들(20대 남성)은 축구도 봐야 하는데 여자들은 축구도 안 보고 자기들은 롤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롤도 안 하고 공부하지. 모든 면에서 남자들이 불리하다"라는 발언이었다.

회색지대를 만들어낸 20대 여성들

하지만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의 박탈감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느끼기엔 그동안 시행된 여성친화정책은 실효성이 부족하고 우리 사회 내에는 성차별이나 여성혐오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여성할당제나 육아휴직 등의 여성친화정책이 대부분 대기업·공공기관에 한정된 것이라 상당수의 여성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취업면접에서 '결혼 생각이 있느냐'는 식의 질문을 듣기도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남성처럼 이런 질문을 듣고 싶지 않을 뿐"이라며 불만을 토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회를 보고 자랐지만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재보궐선거가 시행된 원인인 박원순·오거돈 전 서울시, 부산시장의 성추행 파문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성들은 이 사건을 '정의와 공정을 외치던 정부와 여당의 또 다른 내로남불'이라 인식한 반면, 여성들은 '기득권 남성들의 젠더 권력의 또 하나의 사례'라 인식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 성범죄 귀책사유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국민의 힘의 남성 후보보다는 민주당의 여성 후보와 대안정당의 여성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바로 20대 여성"이며, "이번 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여야 구도 외에도 다른 대안에 관심을 갖자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 분석했다.

이러한 20대 여성의 여론은 출구조사 기준 약 15%의 회색지대를 만들어냈다. 거대 양당의 후보 이외에 김진아 후보(여성의 당), 신지혜 후보(기본소득당), 신지예 후보(무소속), 송명숙 후보(진보당)의 군소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여야는 72.5%라는 숫자에 압도되어 20대 남성만을 주목했지만, 여성계와 소수의 정치권 인사들은 이 15%의 회색지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15%의 여성들은 '애초에 이 선거가 왜 치러지는가'에 집중했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들의 성파문 사건 말이다. 하지만 야당과 오세훈 후보는 이 사건과 정권에 대한 심판을 외치며 젠더에 대한 공약을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았고, 그의 옆에서 선거운동을 지도했던 이준석 당시 본부장은 선거 내내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를 표현했다. 여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당의 박영선 후보는 '최초의 여성시장'이라는 슬로건을 언론 인터뷰에 내밀면서도 이른바 '피해 호소인'이라는 멸칭을 만들어낸 여권 인사들을 자신의 캠프 요직에 앉히기도 했다. 이 15%의 20대 여성들에게 이러한 정치권의 반응은 결국 자신들을 이용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졌고 이들의 표심은 결국 회색지대로 흘러갔다.

여당의 집 나간 토끼 잡기 작전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뼈 아픈 성적표를 받은 여당은 집 나간 토끼, 즉 20대 유권자들을 잡으려 구애 작전을 펼치고 있다. 선거 이후 민주당의 2030 초선 의원 5명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년간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정부와 지도부 판단에 의존했다"라며 "당의 관행과 기득권 구조, 국민과 공감하지 못하는 오만과 독선에 더 이상 눈감거나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 반성하며 쇄신을 약속했다.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또한 청년층을 타겟으로 삼은 '민심 경청 투어'를 시작했다. 비상대책위원들이 직접 서울과 부산 등을 찾아 시민들을 만나 쓴소리를 듣겠다는 계획이었다. 비대위 체제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자 송영길 신임 당 대표도 '민심 경청 및 국민소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청년들과 간담회 자리를 열어 청년 문제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당의 많은 인사들은 20대 남성을 잡기 위하여 단순히 목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여러 정책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개별의원 차원에서는 군 가산점을 재도입하거나(전용진 의원), 군 경력을 인정하는 방안(김남국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고, 최근 시작된 대선 레이스에 올라탄 대선후보들도 군필자에게 제대자금으로 3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거나(이낙연 전 대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자에 대해 세계여행비로 1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거나(이재명 경기도지사), 사회초년생에 대하여 1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정세균 전 국무총리)이 주된 제안이다.

민주당에서는 선거 이후 특히 20대 남성을 겨냥한 군 문제나 할당제 관련한 논의들이 다수 나타나고 있는데, 그 방향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내놓은 모병제나 군 가산점 부활 등의 제안은 당장 현실성이 떨어지고, 특히 군 가산점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선고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권이 청년 문제를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이번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이다. 나이나 배경을 꼬집는 것이 아니다. 자그마치 1급 비서관에 임명될 만한 능력과 이력을 가진 인물이냐는 의문이다. 이 의문에서 많은 또래 20대들이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당장 노량진만 해도 박성민 청년비서관보다 능력이 뛰어난 공시생이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지점에서 '청와대가 성급히 청년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인사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청년 문제는 굉장히 다차원적인 문제인데, 접근은 1차원적인 것이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서 연구원은 "20대 남성만 하더라도 남녀 모두 겪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 자산불평등과 자산세습 문제가 가장 밑자락에 있고 그 윗자락에 코로나19, 그다음에는 교육제도와 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해결책이 개별 차원에서 모두 나와야 하는데, 정치권에서는 남녀갈등이라는 한 차원으로만 접근한다."라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또한 이 지점에 대해 "정책을 구사할 때 특정 성을 우대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남녀 모두 차별받는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라며 "이 경우 정책 효과는 사라지고 논란만 남을 수 있다."라고 했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20대, 특히 20대 남성의 표심은 비록 보수정당으로 다수 향하기는 했지만, 이 표심이 고정적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대가 보수화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닌, 민주당에서 이탈한 표들이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야당도 이번 선거에서 '무서운 민심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새로운 지지층을 계속 묶어둘 수 있을지, 이번에도 단순히 말만 하고 넘어갈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정말 정치권이 드디어 20대 청년층을 주목하고, 이들 간의 젠더 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정작 20대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이대남', '이대녀'같은 단어를 만들어내고, 남성/여성 일방에게 편향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주택·취업난과 같은 본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현금을 나눠주겠다는 식의 주먹구구식의 관심주기는 당장 멈춰야 한다. 어찌 되었건 20대 청년층의 안건이 정치권에 의제화되었다는 사실에 20대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지만, 이번 주목이 단발성이 아닌, 그리고 특정 세대와 성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청년'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숙고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용준  yjun2812@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