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well-being)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웰 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은 아직 조금 낯설다. 하지만 ‘웰빙의 완성은 웰 다잉’이라는 말이 있듯이 웰 다잉은 웰빙의 연장선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올바르다. 즉, 잘 사는 과정에는 잘 죽는 것이 포함되고, 잘 죽기 위해서는 먼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만의 웰 다잉을 꿈꾸며 현재에 집중한다. 그 과정은 마치 타임캡슐을 땅에 묻는 일과 같다.

웰 다잉이란?

  웰 다잉이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평안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뜻한다. 긍정적인 의미의 좋음(well)과 죽음(dying)이라는 다소 어색한 조합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좋은 삶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면 이야기하기 쉬워진다. 한 마디로 죽음이 터부시되지 않고 삶이라는 여정의 종착역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인식 문제에서 더 나아가 주위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며, 동시에 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우린 그저 각자 삶의 노선, 타인의 다채로운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면 된다.

각자의 ‘웰 다잉’

  능동적인 삶이 있듯, 능동적인 죽음도 있는 것이다. 저만의 의미가 있는 삶의 마무리 방식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이미 수많은 길들이 존재했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1) 삶의 미련을 없애는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는 버킷을 차기 전(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 리스트다. 이 항목엔 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자기실현을 위한 항목들이 의욕적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드라마 속 시한부 주인공이 멋진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일처럼 빠르게 몰입하고 동정하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한다. 나 또한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고 다이어리 한편에 버킷리스트를 끄적여 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걸 지워나가고 있냐고 내게 질문한다면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거창한 목표들이 줄지어져 있어 손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대체 몇 개의 항목을 언제까지 정해야 하는지 기준이 정해져 있지도 않아 흐지부지되기 쉽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본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지 않을까 싶은 애로사항이다. 행복하기 위해 만들었던 표는 되려 우리에게 부담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이때 해결책은 성취할 수 있는 것부터 리스트를 채우는 것이다. 퇴사하고 세계 일주, 로또 1등 당첨되기, 3년마다 직업 바꾸기… 다 좋다. 하지만 일주일 내로 당장 실행하라고 했을 때 실천 가능성은 바닥을 길 것이다. 이 말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성취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버킷리스트라면 거창해야지!’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보자. 무엇이라도 성취해냈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버킷리스트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후의 계획 단계에서 수정한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보여주기식 리스트가 아니라면 자꾸 항목에 변화가 생긴다 해서 당신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달성하기 쉬운 항목이 지워지면 그때 조금 더 난도가 있는 목표를 추가하면 되는 것이다. 보완해 나갈 용기가 있는 사람은 더 높은 레벨의 퀘스트를 실천할 용기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인 소확행은 언젠가부터 유행어 아닌 유행어처럼 일상에서 스며들듯 사용되어 왔다. 명문 대학, 대기업, 서른 전후 결혼…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기준선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성공의 기준들이 상당히 획일적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무언의 압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진절머리가 난 현대인들은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주변에 가득히 펼쳐진 세 잎 클로버를 짓밟는 멍청한 짓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행복의 기준은 나만이 정할 수 있으며 타인의 간섭을 받을 수 없는 영역이다. 남을 위해, 남에 의해 사는 데 지친 사람들은 작고 소소하여 하찮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일상 속의 확실히 보장된 행복을 곁에 둔다. 조금은 마이너 틱 하더라도 보장된 행복으로 채워진 하루하루가 쌓이면 결국엔 기분 좋은 한 달, 알찬 한 해 그리고 좋은 인생이 완성된다. 많은 양의 인풋(input)이 절대적인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에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플라스틱 행복’으로 삶을 채우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봉사활동과 기부

  과연 우리 삶은 채우면 채울수록 행복해질까. 어느 정도의 기본적 니즈(needs)는 채워져야 하겠지만 닥치는 대로 자기 배만 불리는 탐욕적인 삶을 지속할수록 망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돈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봉사활동과 기부같이 남을 돕는 행위에서 타인뿐만 아니라 진짜 ‘나’를 찾아간다.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나의 자아는 켜켜이 쌓이고 쌓인다. 그리고 오직 내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가치를 인식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은 내가 속하는 공동체, 더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해상도를 높인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재산과 시간을 끌어모아 내어주는 헌신이 더 높은 수준의 이타적 행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각자의 형편과 수준에 맞게, 진심 어린 온기를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2) 건설적인 죽음

생전 장례식

  현대인의 죽음관이 달라지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까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차적으로 제사나 성묘 같은 관례가 사라진 집이 많으며, 더 나아가 이색적인 장례 문화까지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은 사례는 ‘생전 장례식’이다. 당사자가 자리에 함께하는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노년 유니온 위원장 고 김병국 씨는 자신의 생전 식을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라 이름 붙이며 ‘살아 있을 때 하는’ 장례식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부고장 대신 전해진 초대장에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울음바다가 되는 장례식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또한 식의 구성은 당사자의 사진과 영상 감상, 지인들과의 일화 소개, 조문객이 아닌 초청객과 감사 인사 나누기, 멋진 옷, 맛있는 음식, 즐거운 노래와 춤 등으로 준비된다. 따라서 생전 장례식의 모토는 슬픔이 아닌 행복과 추억을 나누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맞이하는 죽음은 인생의 키를 내가 쥐고 항해한다는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임종 체험

  살아 있는 사람 중 죽음을 직접 겪어 본 사람은 없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죽음 이후에 나의 몸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나의 정신 혹은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실존주의자 야스퍼스는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미리 앞당겨 경험함으로써 현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나가길 바란다. 주체적으로 살고, 능동적으로 죽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방법에는 임종 체험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자필 유언장 작성’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유언장은 돈이 넘치게 많아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는 부자들이 남기는 재산 분할서 정도로 치부되었다. 물론 실제 의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이 행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돈과 재물을 무덤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삶에서 물욕을 덜어낼 수 있게 도와주며 소유에 대한 과한 집착을 버릴 계기가 된다. 그리고 ‘묘비 문구 정하기’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헤밍웨이의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묘비 문구는 소설 <노인과 바다>의 간결한 문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꼭 글자가 아니더라도 오선지에 온쉼표를 그려 넣고 감소와 정지의 뜻을 지닌 페르마타(늘임표)와 매우 세게를 뜻하는 포르티시모를 함께 사용하여 ‘강력하고 영원한 죽음’을 뜻하는 음악가의 재치 있는 묘비도 있었다. 이처럼 묘비명과 문구는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게다가 삶의 엔딩 문구를 미리 정해두는 것은 자기암시 효과를 통해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 보고 싶다면 ‘입관 체험’을 추천한다. 간단하고 직관적이지만 죽음의 순간과 가장 유사한 행동을 함으로써 이때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미래를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게 한다. 좁고 어두운 관에서의 조용한 사색은 일상에서의 사사로운 감정과 나를 차단하여 진정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발적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와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우아한 죽음의 ‘존엄사’는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사를 유도하는 등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형태의 죽음이다. 이러한 형태의 죽음은 의식이 없거나 환자 본인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큰 고통의 상태가 지속되어 당사자에게 힘들 뿐만 아니라 주위의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비용적 부담을 안긴다. 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수준은 환자마다 다르고,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기에 모든 국가의 일괄적인 존엄사 허용에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 무분별한 존엄사 허용은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를 키울 수 있으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정말로 조금의 강요도 없이 당사자가 판단한 것인지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존엄사가 허용되는 국가는 스위스를 포함하여 몇 없다는 데에서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한 죽음은 첨예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연명의 고통에 삶의 희망을 짓눌리는 누군가에겐 웰 다잉, 말 그대로 잘 죽는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줄 수 있다.

잘 죽기 위한 발걸음

앞서 웰 다잉의 개념과 더불어 모두의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놓쳐왔을지 모를 웰 다잉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웰 다잉이 현실에서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간단히 알아보자.

제도적‧인식적 노력

타임캡슐을 묻는 마음으로

과거를 담고, 미래를 기대하며

  죽음을 두렵게 하는 수천, 수만 개의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이 나의 존재조차 없던 그때로 리셋된다는 걱정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이루어 온 커리어도, 인맥도, 재산도 속절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당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맞이하게’ 된다면, 소멸하지 않고 ‘기록’될 수 있다. 마치 가치 있는 작품들은 전시장에 오래도록 전시되는 것처럼.

  죽음이 두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타인에게 잊힐까, 세상이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걸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나의 경우만 생각해 보더라도 돌아가신 할머니부터 직접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지만 좋아했던 연예인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기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회상한다. 물리적으로 같이 할 수 없다고 일어난 과거의 흔적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일 수 있다.

  가끔 죽음이 절벽의 낭떠러지에서 무방비하게 등 떠밀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된다. 인생을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찾기가 아닌 내가 계획한 마라톤의 완주(完走)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인생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오히려 나의 페이스대로 완주한다는 사실이 뿌듯해지며 미련은 사라진다.

  물론 유명인의 자살은 전염성이 강해서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처럼 죽음은 당사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회에 큰 파급력을 가진다. 그래서 잘 죽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웰 다잉이라는 작은 날갯짓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웰 다잉이라는 나비효과를 낳을 수 있다. 죽음은 혼자 겪는 게 아닌 같이 가는 과정이다.

사실 단 몇 장, 몇천 자의 텍스트만으로 삶과 죽음의 지론을 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알량하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웰 다잉이라는 주제를 소개함으로써 ‘좋은 죽음’에 대해 곱씹어 보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는 새로운 페이지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자만의 의미를 가지길 바란다. 미래의 누군가가 내가 묻은 타임캡슐을 열어 보길 기대하는 마음에 두려움보단 설렘과 후련함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인생이란 타임캡슐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 넣을 건가요?

김영원  wonvely0205@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