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아주 오래전,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교회를 다녔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성탄절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았고, 크리스마스가 되자마자 집집을 돌아다니며 새벽 송(캐럴)을 불렀다. 12월 31일 한 해의 끝도 교회에서 촛불을 손에 들고 마무리했으며, 1월 1일 한 해의 시작도 교회에서 떡국을 먹으며 보냈다. 그렇기에 일요일에 교회가 아닌 다른 곳을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강조한다. 사랑을 이유로 내 이웃을 돕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던 탓에 내게 세상은 한없이 따뜻했고, 그 따뜻한 세상을 위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가끔은 세상의 차가운 면을 마주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필요하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열아홉,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교회에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이 시간이면 강의 2개는 더 볼 텐데’ 하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트렸다. 목사님의 설교 속 성경의 내용이 모두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경 속 모순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쓰여 있지만, 성경의 수많은 구절에서 죄짓는 자를 보면 돌로 쳐 죽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수기 31장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그러므로 아이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민수기 31:17-18

사람들끼리 죄의 무게를 재며 돌로 쳐 죽이고, 신의 뜻을 이유로 전쟁을 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간이 타락했다며 노아의 가족과 모든 동물의 한 쌍씩을 빼고 모든 생명을 죽이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이유였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정말로 아들과 산에 올라가 장작을 쌓고 머리 위로 칼까지 들었는데, 이것도 한 인간의 믿음을 보기 위한 테스트였지 않나? 신이라면 인간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걸까? 신의 뜻을 인간이 모두 이해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런 궁금증은 일요일마다 새롭게 늘어갔고 누군가에게 물어봐도 해답을 시원하게 얻을 수는 없었다.

예술학 전공 수업을 들으며 동양미술사 공부를 하다 보면 불교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잠깐 살펴본다 하더라도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이 수많은 불상과 불화, 불전의 제작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탄생설화는 수없이 많이 들었고, 심지어 어릴 때는 부직포 옷을 입고 그 내용으로 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나였다. 알 필요성도 못 느꼈고, 알아볼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업을 통해 불교를 접하고 보니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고통을 겪지 않는 삶이란 없기에 그런 실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존재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육체의 쾌락을 벗어나 자신을 비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했던 석가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들의 모습은 내면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삶의 어떤 궁극적 의미를 쫓고 있었다.

학기를 마치고 필수 교양을 듣기 위해 계절학기를 신청했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에, 계절학기를 신청한 그 순간부터 나는 종강하자마자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템플스테이 후기를 읽게 되었다. 스님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좋은 풍경을 보며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가 가득했다. 지난 학기에 불교 공부도 나름 한 것 같은데, 가서 마음을 환기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하고 같이 갈 친구들을 모아 예약을 마쳤다.

가지 말걸 그랬나 봐

내가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한 절은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화계사’였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이름부터가 ‘오직 쉴 뿐’으로, 정말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휴식하고 재충전하는 일정이라는 소개에 끌려 선택한 곳이었다.

템플스테이를 떠나기 전날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달 전의 내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계절학기 끝나고 조금 쉴 시간을 가지고 나서 떠날걸,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예약할 걸 하고 후회를 했다. 심지어 템플스테이를 가는 당일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전날 받은 문자에는 절이 산에 있어서 매우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적혀있었지만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옷을 많이 껴입으면 가는 길이 힘들 것 같아서, 또 입고 갈 옷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가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는데 그 고생을 해서 절에 가야 하나…. 정말 가기가 싫어서 오만 생각과 핑곗거리를 만들어 냈다.

눈 내리는 화계사

예상대로 눈은 미친 듯이 내렸고 지하철은 더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눈을 맞으며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가져온 필름 카메라로 예쁜 풍경을 한가득 담으며 천천히 걸었다. 앞은 하나도 안 보였고 길은 미끄러워서 절에서 자고 오려다 정말 부처님 만나러 갈 뻔했다. 일주문을 지나니 곳곳에 한국적인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문자로 안내받았던 건물인 국제선원으로 들어가 1박 2일 동안 머물며 입을 옷과 묵을 방을 안내받았다. 혹시나 절이라서 더럽거나 오래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내부는 매우 깨끗했고 바닥은 더울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예쁜 연등도 방에 놓여있어 정말 템플스테이가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이동했다. 같이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한 친구들이 있어 함께 움직였다. 오리엔테이션은 템플스테이 일정 소개와 절하는 방법과 인사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일정이 짜여있긴 하지만 하고 싶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 자율형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었다. 타종 체험을 하기 싫다면 그냥 혼자서 절을 둘러봐도 되는 것이고, 방안에 누워서 있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왜인지 모를 부담감을 가지고 왔던 나는 이때부터 서서히 마음을 놓고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이 오셔서 화계사에 대한 소개와 함께 간단한 불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불교가 어떻게 창시되었고 석가모니의 일생은 어떠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성경의 내용조차 의문스러운 와중에 다른 종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저 허무맹랑해 보였다. 그렇지만 단군신화에서도 각 소재는 모두 어떤 부족을 상징하거나 당시의 농업환경을 의미했던 것처럼, 신화 속에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정신이나 의미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걸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재미있는 옛날얘기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닥에 기댈 곳도 없이 앉아 허리가 아플 참이었는데, 누워서 진행하는 명상으로 몸의 피로도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아로마 테라피라며 오렌지 오일과 라벤더 오일을 뿌린 휴지를 눈에 올려주셨는데, 뭔가 민간요법 같아서 의심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냄새를 맡고 나는 잠이 들어 코를 골 뻔했다.

절에서는 저녁을 원래 일찍 먹는다고 한다. 화계사는 4시 20분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시간 맞춰 식당으로 향했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떠서 먹을 수 있었는데, 당연히 고기는 없었고 내가 담은 음식은 다 먹어야 했다. 식당 내 벽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을 모두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공양게라고 하는 건데,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식사 전에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친근함에 웃음이 나왔다. 이날 저녁에는 떡볶이와 감자튀김, 볶음김치와 겉절이를 비롯한 다양한 반찬이 나왔다. 하나도 빠짐없이 너무 맛있었고, 밥이 맛있으니까 또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빠르게 먹고 숙소에 와서 친구들과 잠깐 쉬었다.

해가 진 후에는 타종 체험이 있었다. 각자 돌아가며 두 번씩 종을 치고, 그 울림을 느끼며 사찰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무니 낮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신년을 맞아 사람들이 달았던 연등들이 줄지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종을 치는 동안 연등에 적힌 소원들을 읽으며 등까지 전해지는 종소리의 울림을 끊임없이 들었더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갈 때면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저 사람들도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고 있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각자의 인생에서는 각자가 주인공이다. 살면서 내가 고민하는 것들, 바라는 것들이 많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바랄 테다. 어쩌면 나를 괴롭게 하던 선택이나 후회 같은 것도 멀리서 보면 스쳐 지나가는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종 체험을 마치고 저녁예불이 있어 친구들과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왜인지 불상에 절을 하는 행위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다른 종교를 체험해보고자 온 자리였지만 뼛속까지 기독교인에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야심 차게 108배까지 해보자며 결심했던 나였는데, 스님의 목탁 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 장엄한 분위기 속 불상의 모습을 만나자 갑자기 몸이 굳었고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태어나서 제사 한번 안 지내본 내겐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결국, 인사를 하는 수준으로 세 번 절하는 것을 끝으로 불전을 나왔다.

사찰은 밤에도 평온했다. 바람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고, 눈이 내린 뒤라 풍경은 배로 아름다웠다. 오리엔테이션 때 보았던 암자를 다시 돌아보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템플스테이 후기를 보면 가끔 고양이를 만났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나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화계사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뚱냥이였다. 열심히 귀여워하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찻잎과 함께 다기가 놓여있었다. 일정 중간중간이나 자기 전 등 쉴 때 언제든 마실 수 있었는데, 녹차가 부드러우면서 끝 맛은 깔끔해서 밤에 내내 내려 마셨을 정도로 맛있었다. 친구들이랑 못해도 열 잔씩은 나눠 먹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 교지 원고 마감일 전날이었던지라 친구들은 노트북을 들고 왔지만, 나는 템플스테이나 제대로 하고 사진만 잘 찍자는 생각으로 안 가져와서 혼자 뭘 하나 걱정했는데…. 다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니 뜨끈한 방바닥에서 결국 졸고 말았다. 방이 너무 뜨끈해서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는 변명을 더 해본다. 겨우 일어나서 다시 녹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내일의 계획을 짰다. 저녁 예불의 인상이 너무 진했던지라 새벽예불은 가볍게 패스하기로 했다. 대신 아침밥은 맛있을 테니 무조건 먹기로 하고, 못 일어나면 서로 깨워주자며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 녹는 화계사

[아침 사진]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두 번 정도 끄고 나서, 최후의 알람이 울리자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방이 따뜻해서 그런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완전히 방바닥과 하나 된 채로 잠을 잔 느낌이었다. 겨우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해도 뜨기 전에 밥을 먹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뜨끈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맛있는 반찬을 올려 먹으니 행복했다.

친구가 설거지하기로 해서 밥을 먹고 나서 식당에 앉아 기다렸다. 보살님은 설거지 봉사자를 지원받을 때 ‘설거지로 마음의 짐을 씻어내린다’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오만 원이나 주고 와서 내가 먹은 걸 내가 치워야 한다는 게 의문이 들었다. 쉬러 왔다고 생각한 곳에서 작위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봉사를 할 사람을 구하니 왠지 모르게 속 좁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성경은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나누어야 하기에 기독교인들은 봉사한다. 기독교의 근원이 사랑에 있다면, 불교는 자비에 있다. 자비는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없애고 평온함을 주려는 마음이기에 불교 사람들은 자비스러운 마음에서 봉사한다. 종교와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당시의 불편한 마음은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나의 자본주의적 사고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돈을 냈으니 보상받아야 한다는 마음. 그런 등가교환의 원리로만 생각하며 살다 보니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아침을 먹고 화계사의 주지 스님과 차담 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를 마시며 사람들이 스님께 질문하면, 스님이 좋은 답변을 해주셨다. 1박 2일의 템플스테이 일정 가운데, 스님과의 차담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참가자들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엮어 Q&A로 재구성하였다.

Q. 스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A. 22살에 출가를 했어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직으로 많이 고민했었는데, 공대를 다녔기 때문에 어디를 갈지만 정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를 가야 더 멋있을까, 어디를 가면 더 행복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상여금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누구 밑에서 내 노력의 대가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의 쳇바퀴 아래에서 사는 것이 그리 멋있는 삶은 아니라는 답을 내렸어요. 저는 불교적 삶이 제일 아름답고 멋있어 보였어요. 원대한 목표는 없지만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충실하고, 차 한잔 마시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지금이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Q. 저만 뒤처지는 것 같은 마음을 어떻게 달래는 것이 좋을까요?

A. 과정이 있기에 결과가 있죠. 모든 존재는 과정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 질문하신 한 분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에요. 고속도로에서 운전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빨리 가고 싶어서 눈앞의 차 한 대를 추월한다고 해도, 그 앞에는 또 다른 차가 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완벽히 같은 시작점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사람은 몇 없어요. 차도 다양하죠. 스포츠카도 있지만, 트럭도 있는 거예요. 눈앞의 차를 추월하기 위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늦으면 어때요? 살아가는 순간순간 즐겁다면 괜찮은 거예요.

Q. 과거에 했던 선택이 후회돼서 남는 미련은 어떻게 지워야 할까요?

A. 두 갈래 길이 있다고 합시다. 내가 왼쪽 길을 걸었다면 오른쪽 길은 가지 않은 길이 되겠죠? 그럼 왼쪽 길은 현실이 되고, 오른쪽 길은 환상이 돼요. 현실에는 슬픔과 괴로움, 고통이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통이 아예 없어질까요? 선택하지 않은 길이 환상이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현실의 슬픔과 괴로움 사이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보세요.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즐겁게 걸어가느냐는 현실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니까요.

Q. 필요할 때만 절에 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아요.

A. 힘들고 지쳤을 때 찾아오는 게 종교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요. 경찰서도, 병원도 필요할 때 가는 거지 매일 가는 곳이 아니잖아요. 서구 종교에서는 신께서 나를 창조하셨으니 주일마다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하지만, 불교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불교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성찰하라고는 하지만, 필요할 때 찾아온다고 해서 그걸 잘못했다고 하지는 않아요. 종교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극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증거죠.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필요할 때 오세요. 아프고 힘들 때 언제든지 와서 쉬어가세요.

나를 구하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을 완전히 말려버리고, 미래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하게 유행할 것입니다.”

숫타니파타 949절

1박 2일의 템플스테이를 통해 불교를 조금 더 알아갔다거나, 불교에 더 관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추측해보고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계속해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며 질문을 던졌던 것은 정말 이해하고 싶고 믿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면 자기도 모르게 절대적인 존재를 찾게 되니까.

“노력은 내 황소이어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숫타니파타 79절

템플스테이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오히려 나를 더 알아갈 기회였고, 나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왜 나는 마음 편히 믿지 못할까, 왜 나만 제자리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 대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여전히 종교는 나의 버팀목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적 문제와 과거의 후회와 같은 마음의 짐은 절대적 존재에게 맡길 것이다. 다만, 신의 뜻을 인간인 내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의 뜻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의 선택과 결정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제부턴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김예진  dimplezy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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