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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디렉터 정다희 동문

 

남자의 종아리 속으로 물방울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방 안은 순식간에 낯선 세계로 변한다. 그림이 다채롭게 바뀔 때마다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상상 속의 일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영상과 그 안에 담긴 섬세한 메시지. 말 그대로 꿈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 정다희 동문을 만나보았다.

 

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디자인과 01학번 정다희입니다. 졸업하고 광고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다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거기서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을 전공하고 돌아와서 지금은 한국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선배님의 대학생 시절에 대해 듣고 싶어요.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저는 디자인과의 다른 수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고 영상 디자인에만 관심 있는 학생이었어요. 아, 타이포그래피 수업도 재밌게 들었네요. 그 외에 다른 디자인 수업들, 예를 들어 포장 디자인 같은 것들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그때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건드려 봤죠. 회화과 복수 전공도 했고, 조치원 캠퍼스에서 애니메이션 수업 들으려고 왔다 갔다 하기도 했어요. 전부 열심히 한 건 아니라서 학점이 다 좋진 않았지만 그냥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한 편이에요.
드로마픽이라는 영상 소모임에 들어서 방학 때마다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했어요. 거기서 했던 활동들은 되게 좋았고, 또 되게 무모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단편 영화 찍겠다고 형광등에 반사판 같은 걸 붙여서 들고 다니면서 촬영했거든요. 한겨울에.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 아니면 못 겪어볼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영화를 찍어본 게 나중에 애니메이션 실습 촬영을 할 때 많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사실 소모임 활동만 그런 건 아니고, 제가 대학교에서 배웠던 전반적인 것들이 지금 제 단편 애니메이션에 다 투영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학생 때 경험들이 지금의 작업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네요.

 

3.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그중에 애니메이션 쪽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지금은 모르겠는데 저희 땐 2학년 영상 디자인 수업 때 애니메이션 만드는 게 필수였어요. 그걸 하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영상이라는 건 시간을 다루는 작업이잖아요. 그 점이 재밌어서 다른 매체보다 영상을 좋아했는데 애니메이션은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들고, 이야기도 쓰고,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게 다 들어있었어요.
그래서 광고 애니메이션 회사를 들어가서 테크닉 같은 걸 배웠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회사는 일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 상업적인 환경이잖아요. 그 상황이 행복하지 않았어요. 결국 내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는 곳에서 보내게 될 텐데 그 일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 삶이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4.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요. 작업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은 우선 스크립트를 써요.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근데 저는 보통 스크립트를 쓰는 동시에 그림을 그려요. 이야기에 이미지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 다음으로 스토리보드를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캐릭터 디자인을 하고 배경 디자인이나 아트워크(캡션 : 시각 예술 작품의 소스가 되는 정교하게 디자인된 이미지.)를 잡아요. 그리고 제작지원을 받아서 제작비가 나오면 그때부터 실제로 만들기 시작해요. 라이트 박스(캡션 : 밑에서 빛이 비쳐 나오는 반투명한 데스크. 작화지를 겹쳐서 보거나 밑그림을 대고 그릴 때 사용한다.) 같은 데다가 작화지를 여러 장 겹쳐서 올려놓고 그리면서 조금씩 완성을 하는 거죠.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그걸로 후반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음악을 편집하고 색 보정이나 이펙트나 사운드 작업을 하게 돼요. 보통 그 이전까지의 작업은 거의 다 제가 주도하는 편이지만 사운드랑 음악은 같이 일하는 팀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거의 다 맡겨서 작업이 끝나면 배급을 하는 거죠. 배급은 영화제에 먼저 해요. TV나 다른 여러 방식의 배급은 그 다음에 시작되죠.

 

5. 작업 과정이 정말 많아요. 단편 애니메이션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세요? 또,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어떻게 정하시는지 궁금해요.

단편 하나 만드는 데는 최소 1년이 걸려요. 국가 제작지원 기간이 1년이에요. 근데 그게 되게 빠듯해서 실제로는 한 2년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요. 전 세계 어딜 가나 그 정도는 잡아요. 제작에 쓰는 기간만 1년쯤이고 그 앞뒤에도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한 편에 쓰는 시간을 다 합치면 한 2년. 저도 2년에 한 번씩 작품을 냈는데 계산해 보니까 한 달에 딱 1분 분량을 만드는 셈이더라고요. 제 작업이 완전히 수작업이라서 더 빨리는 힘들어요. 하루에 2초씩 만드는 거니까 되게 지루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2초가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정말 좋아요.
주제 같은 경우에는 제작 들어가기 3, 4년 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다 자기 인생의 궁금증이나 하고 싶은 질문들이 있잖아요. 그런 건 단순히 1년 고민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죠. 저에게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거 같아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가스통 바슐라르라는 철학자 겸 시인의 책을 되게 좋아했는데 그게 제 작업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봐요. 그 외에는 주제에 관련된 시나 사상을 참고하기도 하고요.
(웃음) 제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느낀 건 이게 되게 마라톤 같다는 거예요. 계속 달려야 하니까 체력도 좋아야 해요. 그래서 전 실제로 마라톤을 시작했어요!

 

6.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고 나서 이 일이 정말 좋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반대로 어렵다고 느꼈던 순간은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가서 엄청 큰 극장 안에 앉아있으면 꼭 제 것이 상영되는 때가 아니더라도 이게 진짜 좋구나, 하고 생각해요. 이걸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이렇게요. 내가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에요.
물론 이건 좀 아니다 싶을 때도 있죠. 아시아에는 단편 애니메이션 시장이 거의 없어요. 유럽이나 캐나다만큼 존재감 있는 시장이 있어야 애니메이션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데 우린 그런 게 부족해요.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방송사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돈을 투자하고 그걸 다시 자기들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식으로 순환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하면 그런 채널도 한정되어 있고 유통되는 시장도, 제작지원 개수도, 금액도 다 한정돼 있어요. 그 차이가 엄청나요. 산술적으로는 5배, 10배 정도 차이 난다고 봐야 해요. 환경이 이렇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순간 ‘이 일을 그만해야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돼요. 저는 해외 일도 같이 하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중이고요. 현재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은 환경적인 한계를 느끼죠.

 

7.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 바람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영화도 그렇고 어떤 작업을 발표하고 나면 항상 그 다음 작업에 부담이 생겨요. 그 부담을 좀 내려놓고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우리나라엔 아직 없는데, 스위스나 캐나다 같은 경우에는 50년 넘게 단편 애니메이션만 만드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분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평생에 걸쳐서 아주 성실하게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게 결코 쉽지 않아요. 저도 그 정도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장편이든지 단편이든지요.

 

8. 선배님 같은 애니메이션 디렉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는데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니까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얘기였어요. 뭐냐면, 눈을 한국 안에 두지 말라는 거예요. 전 세계를 보라고. 그게 저에게는 되게 인상 깊었던 얘기라서 저도 그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전 세계에서 굉장히 잘하고 있어요.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중요한 상도 많이 타고요. 스케일 크고 다양한 것들을 많이 보고 접하면서 한국에 국한된 생각을 세계로 넓혔으면 좋겠어요. 저도 대학교 다닐 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많이 갔었는데 국내에서 개최하는 것도 많으니까 꼭 가보는 게 좋아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도 있고, 인디애니페스트는 작년에 아시아 경쟁이 추가돼서 해외 특별 작업들을 볼 수 있고요.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10월에 하는 건데 작품 수가 제일 많아요. 단편 애니메이션은 페스티벌에서 상영하는 동안에는 인터넷에 공유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최신작을 보려면 직접 가셔야 해요. 전 요즘도 페스티벌 엄청 다녀요.

 

 국내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SICAF) : 1995년부터 매년 여름에 서울 코엑스 등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 장편 애니메이션이 출품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전시회나 이벤트가 동시에 열리기도 한다.
- 인디애니페스트 : 매년 9월에 개최되는 국내 유일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독립보행(일반) 부문과 새벽비행(학생) 부문 등으로 섹션이 나뉘어 있고 인디애니인 만큼 출품작들의 성격은 실험적, 도전적이다.
- 부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BIAF) : 부천시에서 해마다 10월에 개최되는 경쟁 영화제다. 각종 단편, 장편 애니메이션은 물론 TV시리즈 작품도 받고 있다. 상영작을 감상하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9. 마지막으로 홍익대학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모님이나 사회나 선생님이나, 어떤 외부에서 원하는 거 말고 자기가 무엇을 할 때 진짜로 행복한지를 꼭 찾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재작년에 강의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 학생들 분위기가 우리 때랑은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사회가 불안정하다 보니까 학생들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아요. 우리처럼 무모한 행동도 쉽게 못 하게 되고요. 전 이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 거 같은데, 아직은 안 그래도 될 거 같은데, 하면서요. 다른 누군가 원하는 삶을 내가 산다고 해도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 보상은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꼭 하고 싶은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정말 원하는 길을 가세요.

 

최소현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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