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2월 홍익대학교의 두 과 회화과와 판화과 사이에 학과장 회의가 열렸다. 사안은 다름 아닌 ‘회화과와 판화과의 통폐합’이다. 홍익대학교는 타 대학의 융합과 신설, 학생 수 감소 등의 이유로 통폐합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게다가 현재 판화과의 유일한 전임교수였던 임영길 교수님의 정년퇴임이 다가오며 판화과 학생들은 흡수식 통폐합이 이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통폐합에 대한 결정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통폐합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과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보며, 더불어 현재 대학가에 새로운 흐름이 된 트랙제에 대해 알아보자.

1. 학과 통폐합이란?

먼저, 학과 통폐합이란 학과를 유사한 타 학과와 통합하여 없애는 학사 구조 개편을 말한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의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있다. 2012년 통계청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당시의 대학 정원을 유지할 경우 2020년 이후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를 초과할 것으로 예측하여,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대학 정원 감축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대학 구조 개혁안을 도입하였다.

이 1주기 대학 구조 개혁안에 따른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지원, 교육성과 등의 항목으로 대학을 A~E 5단계로 나누어 평가한다. A~C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부재정지원사업에 정상적으로 참여 가능하지만 D~E 등급을 받은 대학은 국가 재정지원사업과 국가 장학금, 학자금 대출에 제한을 받는다. 또, A 등급을 제외한 모든 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원 감축 권고를 받았다. 당시 평가에서 수도권 대학에 비해 전반적으로 학생 충원율이 높지 않은 지방대학들이 통폐합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2018년부터 실시된 문재인 정부 주도의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로 이름과 일부 평가 기준이 변경되어 실시되었다. 지방 대학의 피해가 컸다는 지적을 반영하여 수도권, 충청권, 대구·경북·강원권, 호남·제주권, 부산·울산·경남권 5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 상위 50~60% 대학은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되어 정원감축에서 제외되었다. 하위 40~50% 대학은 정원감축과 재정지원 제한 또는 금지 조치를 받았다.

2021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결국 대학 입학 정원이 49만 7천 명,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은 47만 9천명으로 대학 입학 정원이 학생 수보다 많아졌다. 이에 정부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통한 학령인구 감소 대응안’을 발표하였다. 대응안에 따르면 대학을 자율혁신 역량을 갖춘 대학(이하 자율혁신 대학)과 그렇지 못한 한계 대학으로 분류하고, 한계 대학의 경우 정원감축 권고를 받게 된다. 이후 대학이 이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자율혁신 대학의 경우에도 적정 규모화 계획을 포함한 자율혁신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적정 규모화 계획을 통해 선제적인 정원 감축 계획을 세운 대학의 경우 최대 60억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평가 제도 속에서 대학들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취업률이 낮은 순수학문과 예술계열 학부를 통폐합하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말한 정책과 더불어, 교육부는 2016년부터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 사업, 짧게는 ‘프라임 사업’을 추진중이다. 해당 사업은 사회의 수요에 따라 학과를 개편하고 학과별 정원을 조정해 나가는 대학교육 변화 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에서 요구하는 ‘학과 개편’의 방법은 대학별 자유로 맡겨두고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 해석을 학과의 통폐합으로, 일부에서는 트랙제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2. 대학가에 부는 통폐합의 바람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홍익대학교 외에도 많은 대학이 유사 전공을 통합하여 대형학과제로 전환하기 위해 통폐합을 진행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급하게 이루어진 통폐합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판화과와 회화과 통폐합 논의의 이유로 홍익대학교가 타 대학의 융합과 신설을 꼽기도 하였지만, 통보식 통폐합과 미흡한 후속 조치로 인해 학생들이 불편을 겪은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건국대학교의 2016년 학사 개편안이 화제가 되었다. 건국대학교는 교내 73개의 학과 중 10개의 학과를 통폐합하고 2개의 학과를 폐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아무런 사전 공지가 없어 반발을 샀다. 특히 통폐합의 대상이 된 영상과와 영화과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통폐합 반대 기자회견과 성명을 발표하였고, 이들이 진행한 ‘saveKUFILM’이라는 구호의 SNS 피켓시위에 샤이니 민호, 고경표 등 건국대 졸업생인 유명 연예인들도 참여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건국대학교는 강경하게 통폐합을 진행하였고, 이후 ‘2016학년도 학사구조개편 후속조치’를 발표하였으나 학생사회의 혼란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연기 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드로잉 수업을 받고, 영상 전공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연기 수업을 받아야하는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

동국대 또한 2011년 학문구조 개편안을 발표하여 문예창작과와 국어국문학과 통폐합, 윤리문화학과 폐지, 물리학과와 반도체 학과 통폐합을 진행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연합총회를 만들어 반대 농성을 진행하였다. 당시 연합총회 회장 최장훈 대표는 “학교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학과를 통폐합한다. 학생이 자신의 학과가 없어지고 통합되는 것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연합총회는 총장실을 점거하며 농성을 이어갔지만, 동국대학교는 퇴학 3명, 무기정학 2명을 포함한 29명의 학생들에게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강력히 대응하며 통폐합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통폐합이 일부의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가 전반에서 유도하고 있다는 것은 학과의 개편이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인력 불균형 문제의 해결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공계열은 인력이 부족하고, 인문 사회 계열은 남는 인력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러한 인력 미스매치의 문제는, 대학의 여러 기능 중 ‘사회 인재 육성’이라는 목적과 결부되어 있다.

물론 대학의 목적은 단지 취업뿐만이 아니다. 또한 취업이 아닌 작가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부 미술 대학 학과의 경우에는 특히나 목적과 현실이 괴리되어 있는 해결 방향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대안 중 하나인 ‘학과별 트랙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교육의 질을 높이면서 학생들의 진로 선택 자율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대학가 학령인구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 역시 해결할 방법으로 조명받고 있다. 특히나 탈 장르화가 진행되고 있는 미술계 전반에서, 트랙제는 미래의 창작자들이 작가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스스로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3. 학생들의 학습 자율권을 위해, 트랙제

한성대학교에서는 2017년 위 대학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학사를 개편하였다. 바로 전면적인 ‘트랙제’의 도입이다. 한성대학교는 세부 전공 없이 단과대학별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트랙을 제공한다. 트랙은 학과 간 벽을 허물어 세분화하고, 정원 제한 없이 독립된 교육과정을 갖춘 학사 단위로써 크리에이티브인문예술대학,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디자인대학, IT공과대학 4개의 단과대학에서 50개의 세부 트랙이 제공된다. 1학년들은 입학한 단과대 내에서 다양한 트랙을 경험한 후 2학년에 올라가 입학한 대학과 전체 대학에서 각각 하나의 트랙을 선택하여 총 2개의 트랙을 이수하게 된다. 단과대 내에서 일부 트랙제를 도입한 대학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전체 학부를 대상으로 경계와 정원 없이 전공 트랙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한성대학교와 다른 대학교의 차이점이다. 한성대학교는 2019년 트랙제 운영 3년 차를 맞아 ‘2019년 제1회 HSU 교육혁신 성과 공유 세미나’를 통해 트랙제의 성과를 알렸다. 세미나에서 조세홍 교무처장은 도입 당시 우려했던 인기 학과 대상의 쏠림현상에 대해 “2019년 초 학부별 융합 현황을 도출해 본 결과, 일부 트랙에 학생들이 편중되지 않고 생각보다 다양한 조합의 트랙을 골고루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홍익대학교의 현재 졸업 커리큘럼에는, 본인이 전공하고 있는 학과의 전공과목 학점, 그리고 교양 필수 및 타 교양 학점을 제외하고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한 ‘일반 선택’ 분과의 최소학점이 존재한다. ‘일반 선택’ 분과는 곧 타 학과의 전공을 의미한다. 현재 시스템에 자유롭게 다른 전공 수업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이 이미 존재하나, 실상 ‘타과생’을 위해 열린 수업은 아주 기초의 수준이거나 분반이 수요만큼 존재하지 않아 경쟁률이 높은 현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랙제’의 해결책은 학생이 원하는 타과 전공의 과목을 자유롭게 이수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개발원의 대졸자 진로 조사 결과,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직장을 얻은 비율이 30.5%에 이르렀으며 인문대 졸업생의 경우 53.9%로 과반수를 넘어섰다. 지금의 대학에서는, 다양하고 분화된 학과를 전공하는 것보다, 대학에서의 전공 학습 경험을 그대로 진로에 유의미하게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대학은 상기 서술한 학과 개편의 방법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려 노력했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중앙대학교는 2009년 12월경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부를 40개로 통폐합’하는 학과 구조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반면, 계원디자인예술대학은 ‘학과를 통폐합하는 대신 군으로 묶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트 앤 플레이(Art and Play)군, 비주얼 다이얼로그(Visual Dialog)군, 라이프스타일(Life Style)군, 휴먼 스페이스(Human Space)군, 디지털콘텐츠 (Digital Contents)군의 5개 군’ 속에 기존의 17개 학과가 나뉘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분류된 개별 학과는 사라지지 않고 군 안에서 존재하며, 학생들은 1학년 1학기에만 군별 통합 커리큘럼을 따른 후 1학년 2학기부터 학과나 세부 전공트랙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렇게 5개의 군으로 구분한 결과, 군 안에서 학생들이 개설된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게 된다.

계원예술대학교의 경우, 17개의 학과 중 5개 학과는 3년제이며, 12개의 학과는 2년제이다. 디지털콘텐츠 군의 4개 학과 중에서도 3개 학과는 2년제이며, 애니메이션과 하나만 3년제라는 문제점이 발생한 바 있다. 이에 연수별로 구분하여 학과를 군으로 묶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교육 내용이 비슷한 학과끼리 군을 만든다’라는 기본 원칙을 중시했기에 현재에는 2년제 학과와 3년제 학과가 섞여 있다. 그 때문에 학과 전부를 3년제로 전환할 계획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학과 시스템 개편과 함께, ‘학생들이 듣고 싶었던 과목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한다’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학과별 필수 전공 교과목 학점을 절반으로 축소해, 전과를 줄이고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학과 개편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또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려면, 오래도록 유지해 왔던 관련 기존 시스템의 조정 역시 필요할 것이다.

계원예술대학교는 과거 한성대학교의 전면 트랙제와 같은 트랙제를 실시한 후 현재의 군 단위 교수 트랙제로 전환한 바가 있다. 잠시 이슈가 되었던 회화-판화과의 학과 개편안과 같이, 미술대학 일반처럼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의 교육 커리큘럼은 학과제 운영에서 흡수식 통폐합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교육에 직접 참여토록 하는 트랙별 운영 방식의 학과 개편이 더욱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군단위 교수 트랙 운영은 서로 다른 개성, 특성과 취향이 있는 학생들이 본인의 분야를 확장시키거나 혹은 특정시키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확보한다는 효과를 가진다. 이렇게 교수별 전공 트랙제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 해당 전공 분야의 심도 깊은 교육이 가능해지며 학생의 학습에서의 융통성을 보장할 수 있고, 이로 인한 학업 성취도가 더 높아지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홍익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의 학과 개편 사례와 방향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판, 회화과 사안의 경우, 통폐합에 대한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당장 내년인 2023년 홍익대학교 수시 입시 요강에서 판화과와 회화과가 각각 독자적인 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익대학교도 논의에 대해 통폐합을 진행하기 전,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의견 파악에 나선 것뿐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전하였다. 판화과 사무실 또한 불안해하는 학생들에게 사무실에서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동요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학생들은 통폐합 이전에 현재 운영되는 복수전공, 부전공 등의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세분된 대학의 교육환경과 구조조정을 권장하는 교육제도 속에서 홍익대학교도 통폐합과 같은 학사구조 개편이 필요할 수 있다. 또 융합 교육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학과 간 통합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다만 통폐합만이 유일한 개편방안은 아니다. 현재 홍익대학교가 다양한 매체 교육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캠퍼스 자율전공 제도, 복수전공 및 부전공과 융합전공 등의 제도를 검토 및 확대하는 방안 또한 존재한다. 홍익대학교는 여러 대학의 사례를 참고하여 여러 방면에서 현 학사제도를 바라보고,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에 통폐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학생들 또한 현 상황에 대해 과도한 우려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내어 교육과정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정윤  sironbaha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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