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도시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너무나 무거운 개념인 ‘종교’와 ‘도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지만 ‘사람’이라는 매개체로 이들은 밀접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고,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도시를 중점으로 종교를 발달시켜 왔다. 종교는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본래의 목적인 심리적 기능을 충실히 해냈으며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종교의 발달이 도시를 아름답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종교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정신을 앗아가기도 한다. 종교는 그 강력한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곳을 축복의 도시로 만들 수도, 재앙의 도시로 만들 수도 있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마음 하나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하기도 하며 방황하는 자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기도 한다. 또 기꺼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게 한다.

신과 나를 찾아가는 도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난 뒤 본래 전교하던 스페인 서북부에 옮겨져 묻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성 야고보의 전설로 전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제주 올레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하며 유명해졌다. 이에 따라 성스러운 해인 산티아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그간 지은 죄를 모두 속죄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받는다고 한다. 현재에는 이러한 종교적 의미와 더불어 ‘자아 성찰’이라는 심리적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전 세계의 사람들을 천여 년째 불러 모으고 있다.

순례길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여정 중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150개의 국가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부엔 카미노”라는 축복의 인사를 건네고, 서로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며 함께 험난한 여정을 견딘다. 2019년 tvN에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했으나 손을 다쳐 피아노를 치지 못하여 원치 않았던 은퇴를 하게 된 65세의 한국인 여성, 28번째 반복하여 순례길을 걷는 할아버지. 한가득 배낭을 채워 시작한 여정이지만 ‘짐은 두려움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짐을 버린 청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이 순례길을 찾는다. 그리고 이 순례자들은 끝없는 길을 걸으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여정의 목적지가 아닌 과정을 통해 종교의 심리적 기능을 충실히 해내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다.

동남아의 보석, 미얀마 양곤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에는 불교의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가 있다. 쉐다곤 파고다는 ‘금으로 된 불탑’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약 99m에 이르는 높이의 금으로 된 불탑을 볼 수 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보리수 밑에 앉아 있을 때 미얀마의 한 형제가 석가모니에게 공양하였다. 이에 석가모니가 마땅히 줄 것이 없어, 고마움의 뜻으로 자신의 머리카락 8가닥을 그들에게 주었다. 이후 형제는 머리카락을 왕에게 바쳤고, 왕은 그중 두 가닥을 언덕에 묻고 그 위에 불탑을 세웠다. 그 불탑이 바로 쉐다곤 파고다이다.

양곤에서는 불교가 바람직한 형태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양곤에서는 우리가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갈 때 하게 되는 소매치기, 차별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양곤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에게 친절하며 심지어는 동물들에게도 친절을 베푼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최고의 여행지로 뽑기도 한다. 그들이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이유는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에서는 ‘보시’라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보살의 실천 덕목 가운데 제1 덕목으로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보시와 자비를 통해 현세에서 덕을 쌓는 것을 중시한다. 이러한 덕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미얀마. 그러나 미얀마는 미국과 함께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국가로 선정되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2%가 기부해본 경험이 있으며, 봉사 참여 비율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미얀마의 1인당 GDP는 미국과 비교하였을 때 약 45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엄청난 격차를 넘어 가장 인심이 넉넉한 나라로 선정된 미얀마. 이곳에서 우리는 종교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종교가 모두에게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종교라는 탈을 쓰고, 종교의 최고 가치인 평화를 짓밟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믿음을 이유로 누군가는 끊임없는 고통의 굴레에서 살아가기도, 목숨을 잃기도 한다.

전쟁 중인 방공호, 미국 뉴욕

2022년,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인터넷의 존재도 모르며 햄을 먹으면 죽는다고 굳게 믿는 30만 명의 사람들. 이들은 강간을 당해도 절대 경찰이나 관청에 신고할 수 없고, 도서관에 갈 수도 없으며, 이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의 여성 얼굴은 모두 검은색 볼펜으로 지워져 있다. 이러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시디즘은 18세기 동유럽에서 시작된 공동체로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조직이다. 이들은 유대인 대학살에 따라 뉴욕으로 도망쳤고, 현재 뉴욕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하시디즘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의 공포 때문에 외부인과 완전하고 철저하게 격리된 삶을 추구하며 그들만의 학교와 의료체계 등 철저히 공동체 내부에서만 살아간다. 이들은 고대 유대어인 이디시어로 대화하며 선조와 같은 의복을 준수한다.

“전 엄마의 기능만 하도록 훈련된 사람이었고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너졌어요.” 하시디즘은 공동체를 보전하고 그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 여성들을 ‘출산 기계’로 사용한다. 하시디즘의 여성들은 공동체가 정해주는 남성과 결혼해야 하며, 공동체가 정해주는 특정일에 의무적으로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대한 어떠한 의문이나 반발심도 가지지 못한다. 심지어 여성들은 공부를 해서도,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된다. 이외에도 하시디즘 여성들에게 종교라는 명목하에 금지된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시디즘이 오직 여성에게만 차별적인 것은 아니다. 이들 공동체에서 남성들은 비교적 존중받는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도 당연히 사회와는 완전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이들은 하시디즘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공동체가 만든 유대인 학교에 다니며 공동체 내부에서 평생을 생활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은 현실 사회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다. 언어, 문화, 사고방식 모든 게 그들이 살아온 세상과는 다르다. 하시디즘 공동체를 떠나는 유대인은 2% 미만이고, 이마저도 대부분이 현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감옥 혹은 재활원에 가게 된다. 하시디즘은 구성원이 그 공동체를 떠나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새장인 것이다.

아름다운 지옥, 인도&파키스탄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였던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핵을 만들고, 크고 작은 전쟁과 테러를 저지르며 서로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다.

1526년부터 약 300년 동안 무굴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당시 무굴제국은 이슬람 국가였으며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다수의 힌두교도를 지배하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를 심하게 탄압하였고, 이들의 갈등은 점차 깊어졌다. 이후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 두고 두 지역 간의 분쟁이 심화되었다. 카슈미르의 지배자가 힌두교 신자였기 때문에 인도의 소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제 1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 발발되었고 이후에도 70년 동안 3번의 전쟁이 발생하였다. 세 차례의 큰 전쟁 이외에도 ‘빈번히 일어난 크고 작은 국지전과 전면전까지의 희생자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휴전선은 750km에 이른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지상낙원이라 불리던 카슈미르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 지역이 되었고, 높은 군사 밀도로 긴장감만이 맴돌고 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테러들이 카슈미르 지역뿐 아니라 각국에서 지속해서 발생하였다. 2008년 뭄바이 테러, 2014년 군사 통제선에서의 교전, 2019년 자살폭탄 테러와 공중전 등 양측은 끊임없이 격돌하고 있다.

종교의 가장 기본은 ‘평화’라고 종교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종교 때문에 평화는커녕 평범한 일상마저도 포기하게 되었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으로 양국 간의 피로도는 극에 달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자니, 종교를 버리는 것이 오히려 종교가 지향하는 일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종교는 아주 날카로운 양날의 검과 같아서, 이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남과 나를 찌를 수도, 지킬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종교 지도자 혹은 종교인들은 이 강력한 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사용법으로 인도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레 소외된 사람들도 생겨난다. 이에 종교는 세속화된 도시에서 약자의 편에 서고, 사랑을 베풀며 마음을 치유해주는 일이 종교가 해야 할 일이다. 온갖 추상적인 말들로 사람들을 꾀어내서 그들을 파멸케 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은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 혹은 타인을 위한 종교를 추구하되, 종교를 위한 자신과 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박시윤 yoon1081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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