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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브랜딩, 우리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

 

지금 앉아 있는 곳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내 시선이 닿는 반경 5m 안에, 몇 개의 브랜드가 있을까? 신고 있는 운동화, 들고 있는 아메리카노, 핸드폰에 뜬 쇼핑 앱 알림, 멀리 보이는 간판까지 모두 다 브랜드일 것이다. 그러나 브랜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홍익대학교도, 심지어는 마포구까지도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브랜드가 뭔데?

 

‘브랜드(brand)라는 단어의 기원은 노르웨이의 고어 'brandr'로 추정된다. 이 brandr는 ’burn’을 의미한다. 소나 말 등의 가축에게 불에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어 특정인의 소유물임을 표기한 낙인 관습은 점차 농장의 농산물, 와이너리의 술통에 찍는 화인 등으로 발전되었다. 이는 곧 제품의 출처를 증명하는 방법이 되었고, 여기서 브랜드의 개념이 출발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단순히 상품, 서비스, 회사뿐만이 아니라 페스티벌이나 플리마켓 같은 행사 브랜딩, 예술가나 아티스트에 대한 사람 브랜딩, 도시와 국가 브랜딩 등 유형과 무형의 많은 요소가 브랜딩의 대상이 되었다.

 

브랜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미국의 사회과학자 데이비드 아커는 '판매자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규정하고 경쟁자와 차별화하기 위한 이름, 기호, 상징, 디자인 혹은 이들의 결합’이라고 현대의 브랜드를 정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을 ‘브랜딩(Branding)’이라고 하는데, 이는 브랜드가 지향할 중심 가치, 브랜드의 성격, 브랜드의 역사 등 여러 서사적이고 구성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브랜딩은 크게는 ‘기획’ 분야라고 볼 수 있지만, 대중들은 로고나 컬러 시스템, 폰트 등 시각적인 부분을 통해 브랜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배스킨라빈스, GS25 편의점의 간판이 바뀐 것을 보고 브랜드가 리뉴얼됐음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그 때문에 브랜딩은 맥락을 동반한 시각 언어로써 ‘디자인’ 분야에 속하며 BX(Brand eXperience)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이들이 이러한 임무를 주도하고 있다.

 

* ‘브랜드는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상품의 본질(Essence), 의미(Meaning), 지향점(Direction)을 담은 상품의 정체성(Identity)이라고 규정‘ - 데이비드 아커, 케빈 레인 켈러와 함께 브랜드 분야 3대 석학인 장 노엘 케퍼러(Jean-Noel Kepferer)

 

 

 

도시 브랜딩과 일반 브랜딩의 차이

 

일반적인 브랜드와 도시 브랜드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상품이나 회사의 브랜드는 보통 처음 개발되거나 설립될 때 만들어지거나, 이미 굳어져 있는 대상의 이미지를 리뉴얼하는 ‘리브랜딩’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브랜드는 대상의 특성, 대중들에게 이미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반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기원을 따지자면 아주 먼 과거이기 때문에, 도시 브랜드는 상품이나 회사 브랜드와는 다르게 이미 형성되어 굳어진, 아주 확고한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직접적인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상업적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브랜딩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새로운 아이덴티티 형성’과 ‘자기다움을 파악하고 강조하여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도시 브랜딩은 둘 중 후자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도시가 형성된 이래로 많은 인류적, 문화적 발전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된 맥락과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표현하는 것이 도시 브랜딩이다.

 

 

 

도시 브랜딩의 힘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 브랜딩은 누구에게, 어떤 기능을 할까? 도시는 시민, 투자자, 정책관계자, 관광객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특정 타겟층으로 이루어진 기업의 판매 대상과 다르게 도시의 모든 사람이 ‘브랜딩’의 객체가 되기에 도시 브랜딩은 이토록 다양한 이해관계 속 맥락과 특성을 파악하여 대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도시의 구성원 혹은 방문객뿐만 아니라, 세계인 전반의 무의식이 이러한 도시 브랜딩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특정한 국가나 도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그 문화와 역사에 많은 부분을 의탁하고 있긴 하지만, 국가는 브랜딩이라는 설계의 과정을 통해 그 ‘인식’에 대한 관리와 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국가에 대해 편견이나 문제점, 오해를 가지고 있듯, 브랜딩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캐나다의 도시 미시사가가 90년대 전형적인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로고를 통해 도시의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존의 장점을 강조하고, 오해나 편견을 타파하는 역할뿐만이 아니다. 브랜딩은 도시라는 복잡한 유기체 속 많은 구성요소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하나의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은 고유한 인식 체계를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과정과도 같다. 섬세하게 브랜딩된 도시에 방문하는 내, 외부의 사람들은 도시를 톺아보며 교통카드, 간판, 표지판, 공사장 벽, 조형물 등에 일관적으로 표현된 시각 언어를 체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방문객들은 산발적이었던 도시의 구성물들을 하나로 묶어 ‘브랜드’로 범주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뚜렷한 인상은 개성이자 매력이며, 곧 우리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조금은 감이 오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도시 브랜딩에 대해 알아보자.

 

 

 

포르투닷의 파란 타일, 포르투를 채우다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교과서이자,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도시, 바로 포르투갈 도시 ‘포르투’의 브랜드, <Porto.>이다. 포르투는 타일 공법이 유명했던 도시로, 흰색 도자기 위 파란 유약으로 만들어진 타일이 성당 벽을 벽화처럼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포르투의 브랜딩을 담당했던 화이트 스튜디오는, 이러한 타일을 중심 모티프로 삼은 뒤 고민했다. 포르투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 답을 시민들에게 직접 듣기로 했다. 포르투 사투리 억양, 포트 와인, 루이스 1세 다리, 에그타르트 등 시민들의 답변 중 22개를 선정하여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아이콘은 각각 하나의 ‘타일’로 기능했고, 빈 벽에 타일을 붙여 문양을 만들 듯 반복되고 변주되며 포르투를 채워 나갔다.

 

 

이러한 포르투의 도시 디자인은 플렉서블 디자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본 그래픽 모티프를 만든 후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내에서 자유자재로 변형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디자인 방식을 말한다. 플렉시블 디자인은 ‘조합’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시민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부분들을 보다 융통성 있게 수정 및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일관적인 무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포르투닷의 브랜딩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디자인 체계를 만들어, 성공적인 플렉서블 디자인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초반 22개였던 타일은 시민 참여로 현재는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앞서 시각 체계만큼 중요한 것이 맥락이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 브랜딩에서 로고만큼 중요한 것이 ‘슬로건’이다. 포르투의 슬로건은 짧지만 강렬한 “Porto.”로, 무언가 경건한 느낌을 주는 저 온점까지 슬로건의 한 요소이다. 브랜딩을 칭할 때 ‘포르투-닷(dot)’이라고 읽는 등, 빼먹어서는 안 될 저 온점은 포르투의 거주민을 의미한다. 그렇다, 포르투의 도시 브랜딩은 도시에 사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도시민이 도시의 한 요소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민들은 이러한 브랜딩 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광고판이나 현수막에서 이를 확인하며 자부심과 소속감, 주인의식을 고양할 수 있었다. 도시민의 목소리를 통해 ‘포르투’를 읽어낸 화이트 스튜디오의 디자인은 외지인에게도 착실히 기능했다. 포르투는 이 도시 브랜딩을 통해 2016년, 세계 최고의 브랜드 디자인으로 선정되어 “Graphis Award”를 수상했으며 런던의 D&ED, 이스유럽 디자인 어워드에서 더블 골드의 영광을 이루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포르투의 사례를 통해 도시의 본질을 면밀히 파악하고, 구성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도시 브랜딩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도시 브랜딩은 어떨까?

 

 

 

I.SEOUL.YOU?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너는 무엇?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인 “아이 서울 유!”.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 모를 단어이다. “I♥NY”의 패러디인 것인가, I가 서울이고 U는 관광객인가? 낯선 듯 익숙한 이 슬로건을 모두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쯤, 영국의 ‘더 가디언’에서 “한국 수도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며, 서울의 도시 브랜드를 리뷰하는 기사가 나왔다.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영어 문법에 맞지 않아 억지스럽다(...)’ 등의 언급은 국내와 해외의 감상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가디언지는 ‘서울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적 근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적 근대화의 힘’이라고 말하며, 외국의 도시들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서울 본연의 독특함과 창의성에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한국의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이 기사를 인용하며 뼈아픈 비판이라고 공감했으며, 한국의 도시 브랜딩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I와 U를 프레임으로 고정한 뒤 ‘SEOUL’의 자리에 광화문 사진, 해태 캐릭터 등의 ‘서울 상징’을 끼워 넣는 시각 모티프 역시 아쉽다. 플렉서블 디자인은 세심히 기획한다면 정말 효과적이지만, 체계에 충분한 규칙을 세우지 않는다면 일체성을 잃어 심하면 같은 브랜드의 결과물인지도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브랜딩에서의 리서치 문제라기보단 물질적 근대화를 우선시하며 급하게 달려왔던 서울의 역사 자체에 맥락이 부재했던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서울은 급격히 근대화된 대한민국의 발전 과정이 도시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지역이다. 먼 과거 외세의 침략부터 한국전쟁과 여러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다사다난한 변화를 겪은 서울은 이제는 누가 봐도 ‘현대적인’ 도시가 되었지만, 그 역사는 오롯이 도시에 ‘정체성’으로 녹아들고 있다. 휘황찬란한 여의도 마천루, 알록달록한 한강 거리 사이의 꼬인 전깃줄, 다닥다닥 붙은 벌집촌 역시 서울이니 말이다. 과거에만 집중해 역사성과 전통성을 강조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서울시민의 목소리가 더해졌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이 서울 유’ 브랜딩 이후, ‘MY SOUL SEOUL’, ‘다시 뛰는 서울’ 등 다른 서울 브랜드 슬로건들이 사용되고 있는 듯한 상황이지만, 사실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세련된 어감, 멋진 문구는 중요하지 않다. 도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본질을 앞세우고, 도시의 가능성에 대해 논해볼 수 있는, 서울을 넘어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멋진 브랜딩이 탄생하기를 기다려야 할 듯싶다

 

 

 

우리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법

 

도시 브랜딩은 그 역사와 환경만큼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표현 방법은 다양하지만, 해당 지역에 대한 높은 이해와 애정을 기반으로 진행되었을 때 멋진 결과를 낸다는 점은 모두가 알 수 있는 공통점일 것이다.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브랜딩’의 과정에서는 로고, 색, 폰트, 표지판 등 ‘시각적인 언어’가 가장 먼저 다가오며, 그 외에도 공고문의 말투, 도시의 음악, 도시의 향 등 부가적인 감각이 보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브랜딩은 기존의 대상을 현대의 감각과 미적 기준에 맞추어 환골탈태시키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모델의 체형, 성격,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혀 그 대상의 특성과 장점이 돋보일 수 있도록 세심한 분석을 덧붙이는 과정이다. 멋진 로고와 휘황찬란한 그래픽도 좋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도시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그 맥락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다.

 

도시 브랜딩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어떠한 맥락이 ‘녹아들어’ 있는지, 우리가 그 시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하고 모호한 감정들, ‘인상’이 무엇으로부터 유래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시를 ‘브랜딩’ 한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어떤 것이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고, 어떤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가? 그렇게 모인 단서들로 만들어진 ‘도시 브랜드’는, 곧 우리가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조민재  coconite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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