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뱅크오브아메리카타워, 버킹엄 궁전,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도쿄의 총리대신관저 그리고 서울시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양봉터’라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 뉴욕, 런던, 파리, 도쿄와 같은 대도시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늘었다. 바로 ‘도시 양봉’의 터라는 것이다. 도시 양봉은 말 그대로 건물 옥상, 공원, 텃밭 같은 도시 내 녹지를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양봉 활동을 뜻한다. 1990년대부터 런던, 파리 같은 유럽 대도시의 환경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도시는 열섬 현상 때문에 벌들이 좋아하는 고온 건조한 기후가 나타난다. 또 농촌에 비해 상대적으로 살충제로부터 안전하기에 도시는 의외로 꿀벌이 살기 좋은 장소이다. 덕분에 현재 런던에만 약 3,200개의 벌통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도시 속 양봉장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서도 2012년 서울시청 옥상에 5개의 벌통을 설치한 것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양봉터만 20개 이상 설치되어 있다.

1. 도시 생태계를 책임지는 꿀벌

꿀벌은 꿀을 모으면서 식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꿀벌의 수분 활동은 생태계에 큰 역할을 하는데,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의 수분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꿀벌의 화분 매개가 없을 경우 일어날 작물의 생산 손실을 바탕으로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보면 미국에서만 최소 1.6억 달러~8.3억 달러로 추정된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또한 꿀벌의 수분 가치가 최소 2,650억 유로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로 꿀벌은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도시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꿀벌은 주로 벌통 주변 2km 반경에서 생활하며 식물의 발아율을 20% 정도 증가시킨다. 꽃과 열매가 늘면 작은 곤충과 그 곤충을 먹이로 삼는 새들이 도시를 찾게 되면서 도시 생태계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꿀벌이 살 수 있는 환경은 곧 2km 이내에 일정 이상의 녹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양봉을 통해 도심 속 녹지 비율을 파악하고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꿀벌의 별명 중 하나는 ‘생태계의 카나리아’인데 위기를 알리는 새 카나리아처럼 꿀벌의 개체 수를 파악하여 도시의 대기질, 중금속 오염도와 같은 도시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도시 양봉 체험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어린이들이 꿀벌의 생태와 도시 생태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기회가 된다. 인천의 송도고에선 교내에 양봉장이 존재해, 학생들이 꿀벌을 키우며 도시 양봉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도심 속 벌통은 그 자체로 멋진 조형물이 되기도 한다. 핸드픽트 호텔 서울의 옥상 양봉장은 투숙객들에게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수확한 꿀은 손님들에게 특별한 선물과 호텔 레스토랑에서 재료로 쓰이고 있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과 한강 잠원지구에 설치된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이너 프란체스코 파친이 만든 ‘허니 팩토리’는 도심 속 잘 어우러지도록 키가 높고, 나무와 유리로 제작되었다.

2. 한국의 도시 양봉

이렇듯 양봉은 도시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한국에서의 도시 양봉 현황도 알아보자.

2012년 서울 시청 옥상에 벌통 5개로 시작된 서울의 도시 양봉은 2021년 기준 24개소에 약 332통의 봉군이 존재한다. 어반비즈 서울이 공공기관과 기업(cj, 아모레퍼시픽 등)과 협력하여 도심에 양봉장을 설치하며 늘어났다.

어반비즈 서울에서는 도시 양봉이 더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도시 양봉을 누구나 쉽게 체험해볼 수 있는 양봉 입문 과정부터 전문 양봉가 육성을 위한 실전 과정 교육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 교육을 수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반비즈 서울 소유의 양봉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양봉장 공유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현재 서울에는 서울숲, 어린이 대공원 같은 도심 속 공원이나 핸드픽트 호텔 서울, 한국 스카우트 연맹 빌딩 옥상과 같은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개인이 자택에서 양봉하기엔 시설도 부족하고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 쉽다. 양봉장 공유 서비스를 통해 어반비즈 서울에 대여비를 지급하면 따로 양봉터를 구할 필요 없이 어반비즈 서울 소유의 양봉장에서 수확한 꿀을 가져갈 수 있다.

물론 어반비즈 서울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도시 양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비나 대여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 도시 양봉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자.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양봉 전문가 양성을 위해 25회 100시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2~3월에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의 공지를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다. 100시간의 교육이 부담스럽다면 서울 도시 농업 홈페이지에서 ‘도시 양봉 체험교육’을 찾아보자. 종로구, 도봉구, 관악구 등에서 더 짧은 교육 프로그램을 봄과 가을에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뿐만이 아니라 세종시와 부산시에서도 도시 양봉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사는 지역의 도시농업센터나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에서 ‘도시 양봉’을 검색해보자!

서울 도시 양봉의 결과물, 직접 먹어보자!

하지만 도시 양봉으로 생산된 꿀에는 ‘중금속 덩어리’라는 오명이 붙어있기도 하다. 도시의 매연과 미세먼지 속에서 생활한 벌들의 꿀이니, 큰 이유 없이 꺼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유럽 환경청에 따르면 꿀벌은 중금속과 대기오염물질을 걸러내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꿀과 도시에서 생산된 꿀은 성분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모두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서울의 도시 양봉으로 생산된 꿀은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도 납, 카드뮴, 비소, 크롬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니, 안심하자.

그래서 먹어보았다! <제1회 와우 달콤한 나의 서울 시식회>

어반비즈 서울의 <달콤한 나의 도시> 세트를 구매하여 직접 서울에서 만들어진 꿀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강로1가, 여의도동, 상도동, 성수동 4개 지역에서 생산된 숙성 꿀을 먹어보았다.

홍익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의 시식 결과, 여의도동의 꿀이 평균적으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꿀맛이면서도 과하지 않은 꽃향기 덕분에 물리지 않는 맛이라는 평이다. 서울 내에서도 각기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꿀을 음미하며 먹어보니, 맛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 이전엔 ‘꿀=달다’로 끝이었던 꿀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반성하기도 했다.

또, 내가 먹은 꿀이 어디에서 어떤 꽃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먹으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가고 싶었던 카페 바로 위에서,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서, 자주 산책하러 가던 서울숲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도시 양봉이 스며들어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꿀과 기원을 알게 되니, 괜히 서울숲의 벚나무를 한 번 더 뿌듯해하는 성동구민이 되어있었다. 어반비즈서울 외에도 사회경제적협업브랜드 배터비나 로컬푸드 판매점 싱싱드림에서도 도시 양봉으로 생산된 꿀을 구매할 수 있다. 어떤가? 한번 우리 지역에서 만들어진 꿀을 찾아 먹어보는 건? 도시 양봉으로 생산된 꿀을 구매하면 좋은 점은 또 있다. 어반비즈 서울과 성동구 지역자활센터는 2018년부터 협약을 맺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서민들이 도시 양봉가로 제 2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비긴 어게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생산된 꿀의 수익금은 비긴어게인 활동가들의 월급과 꿀벌 숲 조성을 위해 쓰인다. 도시 양봉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 한국의 도시양도시 양봉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바로 한국에 소규모 양봉 관련 조례나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 도시 양봉 제정의 필요성

2021년 4월에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편의점을 꿀벌 떼가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근처 주택에서 소규모 양봉을 하던 중 분봉이 발생해 벌떼가 도심을 습격한 것이다. 소규모 양봉은 신고 의무가 없어 자칫 양봉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도시 양봉을 시도하면 분봉이 일어나 이웃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서울에선 아직 소규모 도시 양봉에 아무런 조례가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보다 20년 가까이 도시 양봉을 시작한 해외에서는 도시 양봉에 행정적인 제도가 제정되어 분봉으로 인한 피해와 이웃과의 마찰을 줄이고 있다.

뉴욕의 경우 양봉가가 양봉 사실을 지자체에 알리고 양봉가로 등록해야 한다. 물론 벌통의 설치 위치 또한 제한되어있다. 양봉가는 사람들이 벌통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표지판을 설치할 의무가 있고, 벌통 주변에 6피트의 펜스를 설치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넝쿨식물을 심어 이웃들이 직접 벌통을 보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시간주에서도 주택에서 12~45m 떨어져 있는 경우에만 벌통을 2개 설치할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 상업적인 도시 양봉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취미생활으로의 양봉만 가능한데, 벌통의 숫자를 4개로 제한하여 분봉이 일어나도 피해가 크지 않도록 제한하였다. 앨버타에서는 양봉가가 지역 양봉협회에 등록한 후, 이웃에게 서면으로 승인 허가 내용을 알릴 의무가 있다. 또, 벌통이 놀이터, 운동장, 학교, 교회 등 어린아이가 자주 다니고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최소 2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봉 관련 제도 도입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김현권 의원이 양봉 전문가 육성제도 신설을 요구하였지만 결국 제정되지 못하였다. 서울에서 도시 양봉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다. 하지만, 아직 도시 양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미미하기 때문에 시의회에서도 선뜻 조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에서 도시 양봉이 더 알려지고, 활발해지기 위해선 양봉가와 그 이웃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행정제도가 필요하다.

사라져가는 꿀벌

‘만약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다’는 말이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프랑스 양봉업자들이 수입 꿀에 대한 관세 인하 반대를 위한 시위 팸플릿에서 적힌 말이라고 한다. 꿀벌의 수분 가치를 생각해보면, 단순한 선전 문구만은 아니다. 우리 생태계에는 꿀벌이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2006년부터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이상기후로 급격히 올라가고 내려가는 기온에 봄이 되기 전에 수분 활동에 나선 꿀벌이 동사하거나, 전자파로 인해 꿀벌의 길 탐지 능력이 저하, 꿀벌 전염병과 인간의 과다한 살충제 사용 등 다양하게 꼽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환경파괴 때문이다.

한국의 토종벌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10년 남충봉아부패평이라는 꿀벌 전염병으로 90%가 폐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남충봉아부패병은 2008년 처음 국내에서 발생하여 토종벌 유충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치사율이 90%에 달하기 때문에 '꿀벌 흑사병'이라고도 불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토종벌 농가 수는 3,800가구로 10년 전인 2008년에는 약 4만 가구였던 것에 비하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꿀벌이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태계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꿀벌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도록, 멸종하지 않도록 꿀벌의 서식지를 늘리고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시 양봉이 이런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 분명 도시는 인간이 모여 살기 위해 탄생한 공간일지라도, 결코 인간’만’ 모여 살 수는 없다. 모두 함께 공존하며 살기 위해 열심히 도시를 돌아다니는 작은 친구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자.

이정윤  sironbaha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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