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활하는 사회적 공간의 기본 단위로서,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도시가 주거를 담당하는 개인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공공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건강한 도시다움’은 도시 속 요소들이 각각의 의미와 함께 맺어가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복잡한 사거리와 높이 선 빌딩들 사이, 빈 곳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마구잡이로 산발되고 있는 도시 요소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테니까.

광장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많은 사람이 휴식하거나 집회하거나 하기 위해, 주로 도시나 큰 건물 주위에 넓고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소’라고 풀이된다. 실질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도시의 주거 공간, 상업 공간을 제외한 여집합이며 도시민 간의 자유로운 만남이 가능한 공간이 곧 광장이다. 또, 광장은 ‘도시와 인간의 삶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광장과 함께 논의되는 성질은 ‘역사성, 공공성, 접근성’ 등으로, 베네치아의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에 따르면, 광장은 공지, 즉 특정한 소유자 없이 비어 있는 공간이어야 함이 첫 번째 조건이며, 두 번째로는 이 ‘비어 있음’이 결여로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이 교류를 통해 도시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가능성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장에 가 본 적 있는가? 혹은, 광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 적 있는가? 광장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이 시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특정한 ‘시민’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일생을 통틀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속한 ‘도시’에 머무르는 것은 사실 굉장히 한정적이고 부족한 시간들이다.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잔다고 해서 우리가 도시를 실감하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광장에 몰입할 수 없는 이유는 확실하다. 광장을 겪어 보지 못한 우리는, ‘정의되지 않은 공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빈 공간’이라는 개념 앞에서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비어 있음’을 ‘가능성’으로 바꾸고,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역사 속 광장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기능을 통해 도시와 인간, 시민과 시민을 하나로 이어 주었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 광장, 토론의 공간

광장은 고대 그리스에서 아고라agora, 고대 로마에서는 포럼forum, 중세 시대 이후에는 피아짜piazza라고 불렸다. 광장의 이용과 개념은 민주주의가 출발했던 서양에서 주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광장’에 정확히 대응하는 동양의 도시건축 요소는 찾기 어렵지만, 비슷한 것으로는 가로, 마당, 시장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광장을 의미하는 플라자plaza가 넓은 길을 의미하는 라틴어platea에서 왔다는 것을 본다면, 초기의 광장은 길과 연속되면서 때에 따라 동일시되는 공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길’은 결국 수단이며 연결통로이기에, 초기의 광장은 별개의 기능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광장이 길에서 떨어져 나와 비로소 도시의 공공공간이 된 것은 고대 유럽에서이다.

우리는 첫 번째 광장에 들어선다. 도시국가로 구성되었던 고대 그리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아고라는 “모임, 집회”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정방형의 ‘열린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예술 및 공공건물들로 둘러싸인 ‘ㅁ자형’ 배치를 띄고 있다. 아고라의 주변부에는 행정과 상업을 위한 모든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중심의 ‘빈 곳’은 시민들의 담론장이 되기도 하고 재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500명의 아테네 시민에게 사형을 선고받은 곳이 바로 이 아고라이다. 아고라 안에는 시민들이 돌아다니며 산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회랑인 스토아stoa가 많았으며, 공식적인 의회 역할을 했던 회의장인 ‘불레오테리온’을 알리는 표지판 역시 보인다. 식당과 학원, 교육기관 김나지움과 학술원부터 감옥까지, 아고라는 그야말로 그리스 시민 생활의 중심이었다. 여러 시설로 유동 인구가 많아지고, 자연스러운 담론이 형성되며, 탁 트인 광장에서 사람들은 ‘의논하고 말할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 자유는 곧 정치적 발언권이 되었고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의 씨앗이 자라난 것도 이 아고라 덕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포럼이 존재했다. ‘포럼’이라는 이름은 공간의 형태적 구조를 어원으로 두었는데, 지붕으로 덮인 도시 사이 하늘을 향해 뚫린 ‘구멍foro’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포럼은 ‘격자형으로 계획된’ 로마 도시 가운데에 긴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건축적으로 철저히 설계된 공간이었고, 자유로운 공간이었던 아고라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율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업적인 용도의 공간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신전으로 이어지는 등 종교적인 격식을 띄고 있었다. 공과 사가 어우러진 공간이었으며 격식을 차린 채 정치적 견해, 공공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었다. 첫 번째 카테고리의 광장들, 고대의 아고라와 포럼은 모두 토론의 공간,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었다. 이러한 특징 덕인지, 아고라와 포럼은 현대에서 ‘시민 여론 광장’이라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두 번째 광장, 예술의 공간

그렇다면 이제는 두 번째 광장으로 발을 옮길 시간이다.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 시민, 아니 독자가 있다면 이번 광장에 집중해 보길 바란다. 르네상스와 중세 말의 광장은 예술의 공간으로써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펼쳐낼 수 있던 일종의 빈 캔버스로써 작용했다. 중세 이후에 시민 공공 공간의 명칭은 고대의 아고라나 포럼에서, ‘건물로 둘러싸인 자유로운 형태의 외부공간’을 의미하는 피아짜piazza로 변한다. 단순히 집회나 빈 곳을 뜻하는 전 시대의 용어에서, 도시계획의 일부로서 이름에 공간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탈리아 중세도시 시에나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이 그 예시 중 하나이다. ‘캄포campo’는 이탈리아어로 들판, 운동장, 광장 등 넓은 터를 말하니 캄포 광장은 넓은 광장이라는 뜻이 된다. 캄포 광장은 초기 시장 터에서 발달하여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향유하는 광장이 되었으며, 그 이후 광장 앞에 도시의 중심인 시청이 생겼다. 캄포 광장은 다른 중세 광장이 그렇듯 문화예술의 터로 이용되었지만, 그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벽화와 제단화이다. 시청 앞 벽에 그려진 벽화에서는 ‘완벽한 정부’와 ‘그릇된 정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광장에서 이루어진 1427년 성 베르나르디노의 연설은 광장과 도시가 예술로써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설명해 준다. “나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을 본다. 나는 춤추는 사람들, 집을 수리하는 모습, 밭을 갈거나 포도밭에서 바삐 일하는 농부들을 본다. 어떤 이는 말을 타고 가는데 또 어떤 이들은 강에서 수영하며 내려가고 있다. 아가씨들은 결혼식에 가며, 양 떼나 그 밖의 평화로운 광경을 본다. 이 외에도 정의를 지키지 않아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도 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 평화롭고 조화있게 살아간다.” 이 성인이 ‘보았다’라고 언급한 모든 풍경은 90여 년 전 그림을 통해 시민들에게 전달된 ‘완벽한 정부’의 모습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설교 또한 다시 제단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공공 예술’을 제작한 계기는 정치와 종교였지만, 그 그림을 그린 것은 화가였고, 제단화와 벽화는 정치와 종교가 시민 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매개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감 나게 느끼게 한 것은, <캄포 광장>이라는 그들의 생활 터전이 공통분모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비슷한 맥락으로 통치자의 저택으로 둘러싸인 시뇨리아signoria는 시민 광장, 교회 광장, 시장 광장 등 그 기능에 따라 분류되기도 했다. 통치자들의 관리를 받으며, 도시국가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던 두 번째 카테고리의 광장들은 가문의 의뢰를 받아 예술적인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은 앞서 살펴본 <캄포 광장>과는 반대로 먼저 시청 건물을 지은 후 그로부터 광장을 넓혀나가 생겼다.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했던 만큼 광장 내부에는 그를 상징하는 조각들을 놓았으며, 시청 정면과 광장의 회랑을 정치적인 공간으로 계획하고 사용하기도 했다. 도시와 광장을 지배했던 가장 대표적인 가문은 메디치 가문으로, 시민의 것이었던 시뇨리아 광장은 15세기 이후 메디치 가문의 홍보 용도로 사용되었다. 본디 메디치궁의 정원에 있었고, 그들이 스스로 가문의 상징이라 여기던 청동 ‘유디트’는 반대 세력이 공화정을 되찾은 이후 시민정치의 회복과 함께 캄포 광장으로 옮겨졌다. ‘유디트’는 독재의 아이콘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혜의 무기를 들고 권력의 목을 친’ 슬기로운 시민정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유디트 청동상 아래의 “공공 안녕의 본보기로 시민들이 세우다, 1495년”이라는 문구는 이를 증명한다. 곧이어 공화주의자를 자처했던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 대리석상 역시 그 옆에 섰다. 대성당의 장식으로 계획되었지만 ‘공공예술은 시민 모두의 공유물’이라는 주장으로 광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방어와 자유, 힘과 지혜를 겸비한 채 거인에 맞서는 다비드 상은 유디트와 함께 시민정치의 아이콘으로 피렌체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후 공화정은 메디치 출신 교황의 등장으로 결국 무너지지만, 코시모 데 메디치가 등극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광장을 장악하고 이름을 바꾼 뒤 한가운데에 정치적 예술품을 세우는 것이었으니, 이 시대에 광장 공공예술이 가지고 있던 힘과 그 중요성, 상징성은 역설적으로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앞서 말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조각품과 예술품들은 발견되었으나, 이것은 신을 그린 것으로써 신전에 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공간인 ‘광장’에서 조각품이 발견되었던 것, 신화 속 인물들이 사람들과 목소리를 함께하게 된 것은 중세 이후의 광장에서부터이다. 광장과 그 안의 ‘예술’은 정치 이념을 전하는 데에 있어 효과적인 시각 매체였다. 앞선 캄포 광장의 벽화와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들까지, 이 시대의 광장은 예술로써 인간의 삶과 도시를 연관 짓는 역할을 했다.

세 번째 광장, 혁명의 공간

세 번째 광장은 근대의 광장이다. 두 번째 광장 이후, 광장은 점점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표상하는 장소로, 그리고 도시민들은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강요받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를 전복시킨 것은 시민혁명이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과 도시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와 함께 성장한 도시의 시민들은 권리와 가치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 있어, 프랑스의 콩코르드 광장의 이야기는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다. 이 광장의 원래 이름은 광장에 설치된 루이 15세의 기마상을 따라 “루이 15세 광장”이었다. 지어질 당시, 아직 미완성인 광장에서 1770년 5월 30일 곧 ‘루이 16세’가 될 왕세자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축하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불꽃놀이 도중 사고로 화재가 발생했고, 대중들은 놀라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 하던 난장판 사이 13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직접적인 혁명의 불씨가 되지는 않았지만, 루이 16세 즉위 이후 전대부터 이어져 온 빈곤과 위법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15세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콩코르드 광장은 증오의 힘으로 폭발했다. 광장은 “혁명 광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며 시민들은 기마상을 철거하고 단두대를 설치해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베스, 로베스피에르 등을 처형했다. 과거 왕의 결혼식의 사고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던 광장에서, 시민 모두의 것이 된 광장에서 그들의 상징이었던 기마상을 부수고 권력자들을 처형했다는 것은, 이 광장이 당대의 시민들에게 단순한 집결지 이상의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콩코르드 광장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795년이었으며, 공식적으로 차용된 것은 1830년이었다. 화합과 일치를 의미하는 단어인 콩코르드를 사용함으로써, 어두웠던 역사를 넘어 평화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같은 광장이 권력자의 이름이었던 <루이 16세 광장>에서, 시민들의 분노로 혁명을 이룩하고 처형을 집행한 <혁명 광장>이 되고, 이후 평화를 지향하며 다시 <콩코르드 광장>이 되기까지, 콩코르드 광장의 이름 역사에는 근대의 광장이 가지고 있던 시민 ‘혁명’의 정신이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

같은 해의 소르본 대학, 1987년의 서울시청 광장, 1989년의 천안문 등 근대의 광장들에는 저항의 목소리가 고여 넘쳤다. 이러한 광장들은 일차적으로는 당연히 시위의 물리적 거점이 되었지만, ‘군중의 목소리’라는 결집성을 표방하는 정치적 상징 그 자체였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이 넘실대고, 같은 뜻을 이룩하기 위해 모인 몇십만의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한데 모인 광장을 생각해 보아라.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이 넘쳐흐르는 그 공간은 담론인 동시에 축제의 성격도 띠고 있다. 도시를 시민의 공간으로 되찾아 온 공간,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던 허브인 이 세 번째 광장은 말 그대로 ‘혁명의 공간’이었다.

이후의 광장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장소에 고정되었던 인간과 인간 사회는 ‘탈공간화’ 되었다. 거리감이라는 개념은 사라졌고, 인간은 이전의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특정한 장소에 존재하던 인간은 어떤 한 곳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여기라는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어느 곳에서든 현존하는, 유비쿼터스 적인 존재가 되었다. 혁명의 광장 이후, 광장의 개념이 다시 한번 뚜렷하게 변화한 것은 ‘매체’가 등장하고부터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빈 곳, 가능성으로서의 광장은 개념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물리적 증거와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변화는 이전의 변화들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현실의 광장은 분화되었고, 이윽고 탈중심화의 과정을 거쳤으며, 그 의미의 소멸을 앞두고 있다. 공간의 용도 혹은 작용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광장이 하고 있던 역할이 동시다발적인 행위들 사이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의 발전과 분화, 정보의 접근성, 같이 고민할 필요 없이 믿고 따를 ‘전문성’의 등장 등으로 인해 공공공간의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며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던 광장은 해방된다. 여전히 남아 있는 광장은 공원의 역할에 가깝다. 사람들은 광장을 거닐지만 거니는 그 행위 자체에 가까울 뿐, 각자의 길을 걷고 각자의 생각을 한다. 매체는 끊임없이 발달하여 책과 신문 등 유형의 정보들을 무형의 공간으로 옮겨 왔고, 이에 더불어 메타버스와 AR 등의 기술로 무형의 공간에서 유형의 관계를 표방하거나, 둘을 섞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광장에서 일어나던 빠른 소통과 즉각적인 파장들은 거의 그대로 가상 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에 전사되었고, 과거 광장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담론들 역시 유사한 속도와 무게로 다뤄지게 된다,

그러나 실제 광장이 도시에 가져왔던 ‘도시성’에 비해, 이 가상 광장에는 실제로 그 도시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며 바꿔 나간다는 실제감, 지역을 기반으로 한 로컬 공동체라는 요소가 부재하고 있다. ‘익명성’, ‘유희성’ 등, 변해 버린 사회와 함께 변한 시민성은 담론장이 그 뿌리를 현실에서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온 것에도 필히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의 포럼들은 대부분 그 역할이 뚜렷하다. 동물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진보 성향을 다루는 뉴스 미디어, 팬 활동을 하는 동호회까지. 분화된 현대의 포럼과 아고라를 표방하는 ‘자칭 광장’들이 이전 광장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보기엔, 이 ‘자칭 광장’들은 너무나 깔끔하게 정의되어 있다. ‘빈 곳’이 가지고 있던 가능성보다는 원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나와 같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소속감’이 주가 된다. 이 소속감 안에서, 도시민은 도시민이 아닌, 그저 한 개인이 될 뿐이다.

광장의 미래

매체의 발달로 인해 해체되고 분화된 공간이 비단 광장뿐만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 ‘회색빛 도시’에 갈증과 허무를 느끼는 사람들이 과거의 광장에서 잃어버린 ‘어떤 도시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광장이 표방하던 가능성과 자유, 여유가 도시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일 것이며, 우리가 광장에 특히나 주목할 계기가 되어 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도시에 새롭게 광장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이미 있는 광장들에서 유의미한 대화가 다시 솟아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은다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과거의 광장이 도시를 ‘도시답게’, 즉 ‘공동체답게’ 만들었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차와 지하철 대신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소규모 공동체이던, 지역 사회 기반으로 의식주가 이루어지던, 대면 관계를 기본으로 여겼던 과거의 ‘도시’에서의 경험을 간직한 도시민이 없다면 광장은 다시 완벽한 광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와, 우리가 우리의 광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이 광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 보자. 광장의 여백을 통해 도시가 도시답게, 시민이 시민답게 되는 것은 단지 공동체에만 효과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자연스럽고 우연적인 사람들과의 만남, 스며드는 시간,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 ‘은연중에’ 고민해 볼 기회는 현대 사회 속 우리에게 쉽사리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먼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도시는 결국 그 사람들,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본질로 하고 있다. 그 본질을 한데 뭉쳐 가시화하는 것이 과거 광장의 역할이었다고 본다면, 단순히 공간을 회복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인이 속한 도시에 애정을 느끼게, 자신을 그 구성원으로 여기게끔 소속감을 충원해 주는 것이 바로 광장의 역할이 될 것이다.

조민재  coconite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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