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 그 도시에는 밀려난 사람들과 새롭게 밀려날 사람들밖에 없었다.

난장이와 도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중략)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첫 대목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소설로, 철거 계고장이 난장이 가족에게 도착하는 소설의 도입은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이다. 난쏘공이 배경으로 하는 1970년대는 산업화와 함께 도시 재개발이 한창이던 때였다. 재개발될 지역은 많은 노동자의 터전으로, 옛것을 지워내고 새로운 아파트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기 바빴다. 난장이 가족의 집도 재개발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무조건 집을 떠날 것. 집을 떠나는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입주권’이었다. 하지만 입주권은 재개발 이후 들어설 아파트에 우선 입주할 수 있는 ‘권리’만을 보장해 줄 뿐, 당장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난장이 가족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종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난장이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투기꾼들에게 입주권을 싼값에 팔아 돈을 받았다. 입주권을 사 모은 투기꾼들은 더 배불러 가고, 노동자들은 더욱더 가난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렇게 많은 도시인, 특히 대부분의 노동자는 도시에 뿌리박지 못한 삶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야 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중략)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보호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난장이 가족은, 그 시대의 노동자들은 끝도 없이 추락한다. 이미 1970년대 도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난쏘공의 ‘나’가 느꼈듯이, 도시는 개발된 곳과 개발되지 않은 곳, 개발된 곳에 사는 사람과 개발되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을 구분했다. 그렇게 다수의 노동자는 도시의 변두리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레 그 지역과 아파트로 개발된 지역은 대조를 이루었다. 이는 단순한 주거지로서의 공간 구분이 아닌, 도시 내에서 분리된 계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더 상징적이다. 그 누구도 도시를 나누지 않았지만, 당시 사회 흐름은 자연스럽게 도시 질서를 재배열하고 있었다.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난장이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그 질서는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도시가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경계’로부터 분리된 이들에게 우리는 ‘도시빈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도시빈민의 화두 - 노동자라는 정체성

도시빈민은 해방 이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도시빈민이 단순히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큰 사회적 흐름에 따라 도시빈민 개념이 갖는 주요 특징이 달라져 왔는데, 도시빈민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도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노동자’라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의 특성이 도시빈민에 포함되기 시작한 출발점이 난쏘공이 쓰인 1970년대이다. 1970년대는 활발한 산업화와 함께 현대 사회와 비슷한 결의 노동자 개념이 출발한 시기였다. 1970년대 이전의 노동자 대부분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농업 위주의 1차 산업에 종사했다면, 1970년대에는 산업화에 따라 도시에 많은 일자리가 생기면서 다수의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이 정착하지 못하고 ‘뿌리내리지 못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난쏘공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수의 한국소설에서도 목격된다. 1970년대 한국소설의 또 다른 대표작인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1973)의 주인공들도 모두 고향인 농촌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이고, 난쏘공에서 인쇄 공장에서 일하는 영수와 영호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중략)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공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영수와 영호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기술도 없고 학력도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도시로 이주하더라도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갑을의 고용 관계에서 항상 을에 위치했다. 또한 1970년대의 노동 환경을 나타내는 많은 지표가 가리키고 있듯이, 당시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매우 열악한 시기였다. 근로기준법도 존재했지만 지켜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법이었다. 많은 노동자가 그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말 그대로 노동만을 위해 존재했으며, 노동 강도와 시간에 비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당대의 캐치프레이즈인 ‘비약적인 경제 발전’ 속에 경제 성장을 이끈 주체인 노동자들의 권리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은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노동자가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 섰을 때,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가 선택한 것은 ‘달나라로 떠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결말이다. 난장이 아버지는 이미 ‘죽은 땅’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달나라로 상징되는 낙관적이면서 합리적인 세상을 꿈꾸며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설 속 한 인물의 선택에 그치지 않고, 난장이로 대변되는 그 당시의 도시빈민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얼마나 많이, 그리고 조용히 소모되며 닳아갔는지를 생각해 보게끔 한다.

노동자는 여전히 난장이로 남아 있다.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는 2005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200쇄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말했다.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읽히는 것은 역설적으로 30여 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약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소외되어 있으며, 대기업의 횡포는 만연하고 노동자들의 죽음 또한 빈번한 기삿거리로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매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하나둘씩 생기고, 또 사그라들기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에서. 과거의 비슷한 일들과는 다른 특이점이 두드러진다. 바로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휘말린 사용자-근로자 관계에 속하지 않은 타인, 즉 사회 구성원의 시선이 더욱 냉담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SPC 삼립 노동자 단식 투쟁에서도 이러한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SPC 삼립 노동자 단식 투쟁은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승진 차별,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SPC그룹의 부당노동행위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임종린 파리바게뜨 노조 지회장은 이와 같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규탄과 함께 SPC그룹의 사회적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53일 동안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당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들의 주력 브랜드인 배스킨라빈스, 삼립SPC에서 여러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나 올해 상반기 최고 유행이었던 포켓몬스터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을 더 공격적으로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로 보이기도 했다. 분명 단식 투쟁과 SPC 그룹의 만행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SPC 그룹에 속한 브랜드를 소비하지 않는 불매에 동참했지만, 그 와중에도 한편에서는 ‘포켓몬 빵’이 기록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심지어는 새로운 종류의 콜라보레이션 빵들이 출시되는 시점에도 단식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 사람을 50일 넘게 단식하게 만든 것은 단순히 기업의 횡포 하나로만 정의될 수 없다. 타인에게 무감각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대학생인 우리 주변은 또 어떠한가. 최근 교내에서 붉은색 조끼와 피켓을 든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본교 서울캠퍼스 내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시설노동자, 청소 미화 노동자, 경비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교내 곳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청소 시급, 경비 시급의 인상을 통한 생활임금 보장과 더불어 노동자 인원 감축 반대, 샤워실 설치 등을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에 대해 해당 계약은 하청업체와 용역노동자 간의 계약이므로 본교는 계약당사자가 아니기에 책임이 없다며 노동자와의 협상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일이 단지 홍익대학교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홍익대학교와 연세대학교를 포함한 서울 13개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근로 환경 개선을 공통으로 요구하며 각각의 대학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연세대 학생이 노동자 집회의 소음으로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에 대한 관심의 불꽃이 일었다. 단순히 학생의 학습권 침해라는 표면적 이유보다도, 지금껏 교내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학내 구성원으로 여기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제동을 걸며 노동자를 ‘외부인’으로, 학생을 ‘내부인’으로 돌리는 모습은 그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 긋기’이기에 더 문제가 있다. 이렇듯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에서 일어난 사회적 냉대는 앞으로 더욱 서로의 목소리에 무뎌지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지금도 도시빈민은 존재하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여러 차례 개정되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했음에도 많은 노동자가 도시빈민에 머무는 것처럼, 도시빈민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다. 과거에는 도시빈민이 겪는 주된 어려움은 ‘절대적 빈곤’의 문제였고, 그 때문에 이들을 가리킬 때 ‘빈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빈부격차를 넘어서 ‘도시빈민’ 개념은 이에 해당하는 대상의 폭을 넓히며 사회 구성원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변화해왔다. 즉,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도시빈민이 생겨나고 있다.

이렇듯 도시빈민 개념은 최근 젊은 청년들까지로 그 범위를 넓혀 ‘청년 빈민’이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쌓이고 쌓인 결과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크게 청년 실업과 주거 문제로 일컬어진다. 과거 많은 젊은이가 공부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70%를 웃돌 정도로 청년층의 고학력화가 두드러짐에도 대학 진학과 함께 도시로 모여든 많은 청년이 대학 졸업 후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청년 실업 문제는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 직업 수요와 전공 선택 간의 격차 등 복잡한 사회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오랜 시간 실업 상태에 있는 청년들은 단순히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넘어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구직 포기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국의 저성장 경제와 함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더 악화되었다.

젊은 청년들이 생계를 이어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거 문제 또한 실업 문제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큰 과제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며 근로 소득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갖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가 되었다. 정부 또한 청년 주거 문제를 인지하고, 청년들을 위한 주택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주거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이 주류를 이룬다. 최근 윤석열 정권에서도 청년 주거 문제를 인식하고 청년 세대를 위한 주거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춘 주거 정책은 주택을 최대치로 공급한다 하더라도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청년 세대가 극히 일부라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점을 갖는다. 공급된 주택을 구입하기를 원하는 청년층에게 대출 비율을 늘려주더라도 대출을 제외한 여유자금이 부족한 소위 흙수저 청년 세대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청년을 포괄하지 못하는 정책은 더 많은 도시빈민, 또 다른 난장이를 낳고 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난쏘공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남아 있다. 혹자는 도시를 기회의 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도시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박지원  05ov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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