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넘게 들었던 오해들, 무시가 답이라 생각했는데 저도 지쳐요.

이제 그만해주세요. 버티기 힘들어요. 이젠”

故 김인혁 선수가 생전에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배구를 좋아했던 나는 종종 배구장에 가서 경기를 관람하곤 했었다. 김인혁 선수의 뛰어난 실력과 훌륭한 팬서비스는 다른 선수의 팬인 내가 봐도 멋있었다. 그의 외모 또한 배구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하였던 그에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몇몇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동성애자다.”, “화장을 한다.”, “av 배우로 활동했다.” 등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이에 그는 수차례 이런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으나 사람들은 당사자의 말을 그저 일축하며 계속하여 그를 공격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한 가지 루틴이 있다. 이를 따르게 되면 분명히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그러나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이 이를 따르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하나의 사건에 대한 수많은 의혹이 생겨난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고, 추측과 의혹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사람들은 진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혐오의 정서를 표출할 수 있고,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 대상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각종 SNS에서는 ‘릴스’, ‘쇼츠’가 대유행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기능을 통해 의도가 눈에 훤히 보이는 15초에서 1분 남짓한 영상을 만든다. 해당 영상은 특정인의 말과 행동 일부를 발췌하거나, 짜깁기하여 만들어진다. 과연, 영상에서 보여주는 것이 온전한 진실일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의 대부분은 가공된 정보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분량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특정 부분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회적, 상황적 맥락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듣는 의혹들이 온전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이는 말인 ‘잘한다.’ 글자 그대로 무언가를 훌륭하게 해낼 때 사용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잘하지 못한 것은 비꼬아 말할 수도 있다. 이 세 글자짜리 한 문장이 맥락에 따라 정반대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글과 말은 얼마나 많은 오해에 덮여있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속보] 서울 강남 아파트에서 발견된 아사다 마오.

눈물 터진 김연아 선수, 결국… 서울대 병원 응급실'

이는 유명인의 목숨을 주제로 한 황당한 가짜 뉴스였다. 하지만, 이 가짜 뉴스 영상 3개로 해당 유튜브 채널은 약 3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약 2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 유튜브 채널의 예상 한 달 수익은 약 4천만 원이다.

자, 이제 이 루틴의 최대 수혜자들이 주관하는 최악의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1의 의혹을 100의 진실로 만들어 내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사이버 렉카’들이다. 사이버 렉카란, ‘교통사고 현장에 빠르게 등장하는 견인차처럼, 인터넷상에서 이슈를 빠르게 선점해 조회수와 수익을 올리기 위한 콘텐츠와 그 제작자’들을 칭하는 말이다. 이들이 제작하는 콘텐츠는 한 마디로 저질스럽다. 주로 유명인의 성형 의혹, 인성 논란, 연애, 사생활 등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조회수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구조에서 사이버 렉카들은 사실확인이나 정확한 근거 없이 더욱 자극적인 정보를 더욱 빨리 전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 경쟁이 그들만의 경쟁에서 그친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들의 경쟁은 사상자를 낸다. 인터넷 방송 bj였던 故 조장미씨.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의 중심에는 사이버 렉카가 있다. 2019년 ‘뻑가’라는 유튜버는 조장미씨의 ‘남혐’ 의혹을 제기하였다. 그녀가 남성 혐오로 의심되는 손 모양과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후 수많은 루머가 그녀를 공격하였고, 딸에게 쏟아지는 루머와 악플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의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을 하였음에도 불구, 그녀를 향한 비난은 계속되었다. 결국, 그녀까지 죽음에 이르자 ‘뻑가’는 사과 영상을 올렸다. 물론 사과 영상을 빙자한 자기 합리화였지만.

“아픈 마음을 감싸주는 그런 예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 연예인이면 감수해야지.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사람이 수많은 악플러에게 호소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악플러들은 이를 보도한 기사에도 수많은 악플을 남겼다.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은 펜에 찔려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펜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잘못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악플러들이 악플을 다는 이유는 뭘까? 정답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재미있으니까, 심심해서 악플을 남기고 자신이 남긴 악플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실제로 한 악플러는 ‘세상이 너무 무료해서 똥 싸듯이 찍’ 악플을 남긴다고 한다. 악플이라는 누군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몇몇 기자들과 사이버 렉카들이 펼쳐 놓은 판에는 엄청난 수의 악플러들이 모여 ‘찌라시’를 근거로 특정인에 대한 비방을 쏟아낸다. ‘비판’,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에서 이들은 펜으로 사람을 찌르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악플러들을 대거 고소하며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고소를 당한 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개인이 느낀 감정을 댓글로 썼을 뿐인데 아이유가 입막음을 하고 있다. 뒷배에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심한 쌍욕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고소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커뮤니티도 그 정도 댓글은 충분히 있을 건데 우리 커뮤니티만 노린 것으로 보인다.” 등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상처를 주기 위한 말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고,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에는 허위사실 유포, 비방, 험담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듯 악플은 일차적으로 그 대상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이미 피해자인 대상을 또다시 공격하는 ‘2차 가해’의 형태로 퍼지기도 한다. 2차 가해란 ‘성범죄 등 특정 범죄의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근거로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배척하는 행위이다.’. 최근 발생한 인하대 성폭행 사망 사건에서 피해자를 향한 심각한 2차 가해가 발생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피해자의 신상 및 외모를 알아내려 하고,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등의 글들이 빈번하게 보였다. ‘안타까움을 가장한 2차 가해’도 명백한 가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일찍 일찍 다녔더라면.” 이 말 모두 2차 가해이자 악플이다. 피해자를 위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바로 이전까지는 모두가 과도하게 열정적이라 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난 뒤이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1초라도 더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짧고 자극적인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니 넘쳐나는 콘텐츠들이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닐뿐더러 사람들도 이를 가벼운 가십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기도 전에 또 다른 자극적인 혐오 사건에 가 있다. 이렇듯 단발적이고 휘발성 강한 콘텐츠들은 모든 것의 단면만을 바라보게 하고, 사건의 내막 혹은 진실은 보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이 느낀 바는 다양할 것이다. 사이버 렉카 유튜브 채널처럼 자극적인 섬네일을 가진 영상을 본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악플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한 작가는 “우리 사회는 지금 혐오가 보편의 정서가 되어 가고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혐오가 보편의 정서가 된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죽일 듯이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무서울 지경이다. 이제는 과열된 혐오 경쟁을 멈춰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플랫폼 차원에서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 의도가 담긴 영상은 자체적으로 막아야 한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네트워크 집행법에 따라 이용자 수가 200만 명이 넘는 SNS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 콘텐츠가 올라오면, 플랫폼 사업자가 이를 24시간 이내에 차단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유튜브도 대상이 되어 유튜브는 독일의 영상에 대해서는 혐오 콘텐츠를 삭제하고 있다.

또한, 법적 대책 마련의 차원 이전에 우리가 소비하지 말아야 할 필요성도 크다. 이들이 피해자의 경고 혹은 법적 제재에도 계속해서 영상을 올리는 것은 그만큼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행동들, 누군가의 아픔을 조회수로 바라보는 행동을 그만해야 한다.

우리가 펜을 쓸 때는 늘 책임이 따른다. 말과 글은 오직 당신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만 세 명의 사람이 펜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이 죽기 직전, 죽는 순간 그리고 죽은 후에도 펜은 계속해서 그들을 찔렀다. 이제는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분명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

박시윤  yoon1081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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