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천재이면서 바보입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은 실제로 <넛지>라는 책에 소개되었던 질문이에요. 여러분들의 답은 어떤 것이었나요? 대부분은 질문 순서대로 10센트, 1등, 겨울이라는 답을 내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정답은 5센트, 2등, 메리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아마 여러분이 틀렸다는 걸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인간은 고등한 생물로써 뇌를 가지고 “사고”한다는 특성을 보이지만 수많은 실수와 편향에 뒤덮여 체계적인 오류를 저지르곤 합니다. 이는 우리 뇌에 두 가지 사고 메커니즘이 공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에요.

인간의 사고 메커니즘은 자동 시스템과 숙고 시스템 두 개로 이루어집니다. 자동 시스템은 말 그대로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신중하고 정교하다기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사고시스템을 말해요. 반면 숙고 시스템은 자동 시스템보다 훨씬 정교한 사고 시스템으로, 인간을 보다 더 똑똑한 생명체로 만들어주는 사고 시스템을 말합니다.

생존의 불확실성에서 진화해온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인체를 설계해 진화한 거예요. 실제 우리 뇌는 자동 시스템을 80%가량 사용하는 반면 숙고 시스템은 20% 정도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동 시스템을 사용할 때 합리적인 주체가 아닐 가능성이 커지며 “편향과 실수”라는 체계적인 오류를 저지르게 됩니다.

넛지, 제대로 알아봅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때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곤 합니다. 따라서 행동 경제학은 기존의 전통 경제학의 틀을 깨고 심리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신생 학문으로, 인류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연구를 하게 된 것이죠. 결국,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인간들의 선택과, 그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자들에 대해 연구 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범하는 체계적인 오류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줄이는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죠. 넛지는 이러한 행동경제학의 일환으로 <넛지>의 저자 리처드 세일러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넛지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면, 넛지란 영어 단어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혹은 그런 동작을 의미합니다. <넛지>의 저자 리처드 세일러는 책에서 넛지는 선택지를 없애거나 줄이거나 특정한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개입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한층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혹은 그런 행동, 장치, 정책 등을 뜻하는 단어로 정의 내렸습니다. 리처드 세일러가 말하는 넛지는 “자유 지상주의적 간섭주의”에 따라 강제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자유 지상주의적 개입주의는 선택을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선택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이때, 부드러운 개입을 하는 사람을 “선택설계자”,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최종적으로 선택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선택자”라고 합니다.

넛지가 필요한 때

Q. 당신의 선택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었나요?

“특별한 주의력이 필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의사 결정 상황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할 때, 그리고 그 상황의 여러 측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넛지가 필요하다.”

리처드 세일러는 특히 위의 네 가지 경우에서 넛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럼 각각의 케이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case 1) 기억해야 하는 선택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가장 평범한 실수는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의력이 제한되어있고, 쉽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히 기억을 해야만 하는 선택을 내려야 할 때는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실행 의도를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알림이나 계획표 세우기 혹은 점검 사항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모든 것이 기억을 필요로 하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넛지가 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시처럼 민간 항공사 소속 조종사들이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통과의례처럼 점검 목록을 확인하게 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상기시키는 데 아주 유용한 넛지가 되는 것입니다.

case 2) 결과가 한참 뒤에 나타나는 선택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에는 “이익은 지금, 비용은 나중”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위의 예시처럼 사람들은 미래의 치아 건강을 위해 필요한 치실보다는 당장 눈앞의 만족감을 채워주는 초콜릿을 구매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치실을 구매하는 행동은 현재에 일어나지만, 치실을 사용한 결과는 한참 뒤인 미래에 나타나 행동과 결과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재화를 투자재라고 하는데요, 투자재는 사람들의 자제력을 쉽게 무너뜨리기 때문에 이런 투자재를 선택하기보다 초콜릿과 같은 행동에 따른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유혹재를 더 많이 선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유혹재 대신 투자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켜줄 넛지가 필요한 것이죠.

case 3) 어렵고 빈도가 낮으며 적절한 피드백이 제공되지 않는 선택

살다 보면 우리는 까다로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까다로운 문제들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죠. 이런 상황에도 넛지는 우리들의 선택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인생에서 하게 되는 수많은 중요한 선택들은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많이 해보았다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어려운데다가 경험 빈도도 낮다면 그 문제에 대한 선택을 내리기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나, 직업 선택, 결혼, 은퇴 이후 자금 마련을 위한 연금저축 등은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어렵고 드문 선택, 심지어는 내 선택에 대한 피드백도 제공되지 않는 일들은 넛지를 적용할 아주 좋은 후보군으로 볼 수 있습니다.

case 4) 경험이 분명하지 않은 선택

여러분들은 아마 여러분들의 선호 혹은 취향을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킬지, 분식집에서 떡볶이 세트를 시킬지는 여러분들의 선호에 따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항이죠. 하지만 여러분조차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질적이고 생소한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위의 사례처럼 불어도 못하고 프랑스도 처음 가본 여행객이 된 여러분이 프랑스의 유명한 레스토랑에 갔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메뉴판을 보고 큰 혼란을 느끼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메뉴를 선호할지 경험이 없어 모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이런 유명 관광지 속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경우 메뉴를 간소화하여 사람들의 선택지를 줄여주는 넛지를 통해 여러분들이 선택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선택 설계를 해두는 것입니다.

넛지 있는 선택자로 살아가는 방법

위의 네 가지 경우처럼 사람들은 잘 잊고, 유혹재에 자제력을 잃으며, 어려운 문제를 만나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하고, 경험이 부족해 선택을 망설이는 등 여러모로 유연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넛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의 선택을 도와줍니다. 하지만 꼭 넛지가 우리를 올바른 선택으로 인도해주는 것은 아니에요. 가령, 마케터들처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내야 하는 이해관계가 얽힌 주체들은 적극적인 넛지를 사용하여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넛지가 잘 알려지기 전부터 가장 많이 연구했던 분야가 마케팅이라는 학문이었고, 여전히 이 학문에서는 넛지를 고도로 발전시켜 우리들의 일상에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설계자들이 어떻게 넛지를 만들고 우리에게 적용하는지를 알고 오히려 비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부적절한 넛지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럼 지금부터 선택설계자들이 넛지를 구성하는 방법들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 선택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1) 선택설계자가 만든 큐레이션 활용하기

먼저 선택 설계자들은 자신들만의 차별화된 넛지를 만들기 위해 큐레이션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큐레이션이란 너무 과다하게 많은 선택지를 지양하고, 나쁜 선택지는 과감히 제거하며, 동시에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해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 위해 대형 마트에 갔다면 그곳엔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파스타 재료가 전부 존재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많은 선택지는 우리들의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요. 이때, 이 대형마트 바로 옆의 이탈리안 음식 재료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소매점은 각 재료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물론, 면의 식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식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당연히 파스타 재료를 사러 온 여러분들은 가격경쟁력이 다분한 대형마트 대신, 이 소매점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경험하고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때, 선택설계자들이 큐레이션을 통해 제공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들은 쉽고 재미있는 구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넛지>의 저자 리처드 세일러는 넛지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가 쉬움과 재미라고 주장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행동 부드럽게 개입해서 변화시키려면 그 방법이 쉬우면서도 선택자들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큼 재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제공하고 선택지를 늘리는 것만이 합리적인 선택을 유도하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모두 차별화된 경험과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선택설계자를 찾고, 그들의 넛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선택설계자가 만든 슬러지 피하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선택 설계자들은 큐레이션을 통해 쉽고 재미있는 올바른 방향의 넛지를 구성합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 설계자들이 올바른 방향의 넛지를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선택설계자는 많은 사람의 행동을 설계하고 유도하고자 할 때 절차의 단순화와 행동의 번거로움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으로써 행동의 난이도 자체를 쉽게 만드는 넛지를 구상합니다. 같은 원리로 많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고자 할 때는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행동을 번거롭게 만들며 전체적인 행동의 난도를 높이는 넛지를 구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어렵게 만드는 선택 설계의 어떤 측면이라는 뜻을 가진 용어가 “슬러지”입니다. 슬러지는 선택 설계의 어두운 측면을 나타내는 용어로써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리 일상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독 취소인데요, 이런 몇몇의 선택 설계들은 선택설계자들이 슬러지를 고의로 끼워 넣어 선택자들의 목표 달성 과정에 마찰을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구독 취소의 사례를 통해 슬러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생각해봅시다. 먼저, 대부분의 구독 취소는 슬러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독 시스템은 매우 단순화되어 있어 사람들이 구독을 더 많이 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선택 설계되어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결제가 되게 한다거나, 이미 존재하는 SNS 계정과의 연동을 통해 버튼 한 번만 누르면 회원가입이 되도록 쉽고 빠른 넛지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구독 취소는 구독과는 정반대의 원리를 사용합니다. 클릭 한 번이면 가능했던 구독이 취소 시에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꼭 고객센터에 전화로 문의해야 한다거나 구독 취소 이메일을 담당자에게 보내야 하는 등 “구독 취소“라는 행동을 하는 데에 수많은 방해 요인들을 가득 배치한 선택설계를 해두는 것입니다.

앞선 방식의 슬러지와 더불어 여기 또 하나의 슬러지 사례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요즘 유행하는 OTT의 자동 결제 시스템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OTT의 경우 첫 달 무료, 혹은 파격 할인을 통해 사람들이 가입하도록 유도합니다. 이후 자동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며 정기 결제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때, 정기 결제에 대한 알림은 앞서 설명했던 넛지가 필요한 행동 유형 case 1)에 해당하기 때문에 알림을 통한 기억의 상기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택 설계자들은 첫 달의 파격적인 할인은 과장하여 홍보하는 대신, 정기 결제가 돌아올 시기가 되면 선택자들에게 정기결제에 대한 명확한 알림 넛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선택자들이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슬러지가 들어간 넛지가 우리들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더 깊고 신중한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항상 의식적으로 기억을 상기하고 유혹재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선택설계자가 넛지를 어떻게 구성했을지를 확인하며 선택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넛지가 무엇인지 언제 필요한지 왜 잘 알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선택자로, 수많은 선택을 유도해야 하는 선택설계자로도 살아야 해요. 따라서 오늘 이 글이 여러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합리적인 선택을 구성하거나 실천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최수경  waterglasse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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