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있어서 제가 가장 우대하는, 존경하는 덕목은 바로 ‘솔직함’입니다. 느끼는 바를 내 맘대로 남 앞에 대충 부려 놓는, 포장된 무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남에게 솔직해지는 것, 정제된 언어로 나의 모순과 욕망을 인정하고 잘 가다듬어 상대방에게 건네 보는 것, 오기와 자존심은 잠시 내려 두고 마음 대 마음으로 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소통, ‘막히지 않고’ 통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도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삶의 규칙에 맞춰 살아야 하는 세상 사람들은 때론 스스로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을 깨닫기도 힘들거든요. 메타인지의 정신은 그렇게 쉽게 발동되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버거운 스트레칭 단계를 지나더라도, 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가식 혹은 거짓말을 눈치 챘다고 하더라도, 이를 벗어내고 마땅히 추한 자신을 내비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당신의 이런 모습이 참 어렵습니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이 이렇기를 멋대로 바라고 있습니다. 무례할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저것도 궁금합니다, 하고... 어떤 멋진 타인에게,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겨 왓던 것들을 털어놓아 버리는 상상을요. 의아해하는 두 눈알이 데굴데굴 당신을 응시합니다. 마치 토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누군가와 직접 마주한 채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어후...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이라는 가시 박힌 철문 옆의 개구멍, ‘글’을 들여다봅시다. 펜과 빈 종이 혹은 쿼티 키보드가 우리를 올려다봅니다. 우리는 활자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습니까? 글을 통해 솔직해질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일기도 아니고, 글 앞에 완전히 솔직해지기란 역시나 힘든 일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활자의 실체성에 있습니다. 녹음되어 있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색함이 느껴지듯이, 우리가 지우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을, 활자로 번역된 나의 생각들을 다시 마주하는 과정은 언제나 어색합니다. 즉흥성에 기댈 수도, 적당히 말꼬리를 얼버무릴 수도, 비언어적인 표현 방식을 곁들일 수도 없으니까요. 잘 정돈되어 줄글과 간격을 맞추어진 채 화면 안에 버무려져 있는 맥락들에게, 우리는 깔끔함과 객관성을 기대하게 되곤 합니다. 어쩌면 나름 멋있다고 생각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에서부터 나만의 감성을 잔뜩 버무려 낸 절절한 사랑 이야기까지, 우리의 머릿속을 떠도는 수많은 잡념들은 키보드를 두드려 워드프로세서 종이 위에 인쇄해 놓고 나면 어쩐지 부끄러워집니다. 아마추어에게 언제나 관념은 쉽고 실체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는 훌륭한 연습이 됩니다. 활자를 통한 소통의 종류는 아주 많겠지만, 이 시간을 빌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초성 남발의 메신저 대화나 불특정 다수에게의 가시성을 가지고 있는 댓글, SNS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입 안에서 굴려 보고, 의미 모를 기시감 혹은 어색함에 대체제를 찾고, 문장을 계속해서 다듬고, 빼먹은 이야기는 없는지 혹은 너무 구구절절하진 않았는지 화면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게 되는 글에 대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당당히 내밀 수 있고, 나를 정량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증거로 남길 만한 글 말입니다.
이렇게 쓰여질 글은 자기고백적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일기장에는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 보고 쓰는 일기는 소통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특정 인물에게 쓰는 편지, 특정 독자층을 향한 칼럼 혹은 기고문, 자기 자신에 대한 거대한 소개, 사회를 향한 대자보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트렌드한 방법 중에는 블로그나 브런치 등의 매체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를 통한 글쓰기에 너무 개인적인 배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과제로 쓰는 에세이도 나쁘지 않아요. 교수님이 필히 읽고 피드백을 주실 테니까요. 그룹 멤버들끼리 글을 돌려 읽는다고요? 더할 나위 없이 좋네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글로써 정돈된 생각들이 타인에게 닿을 수 있도록, 박쥐가 낚아채는 초음파처럼 그 반응이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활자 앞의 솔직함은 때론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겐 부적절해 보일 욕망과 불편한 진실을 품은 채로 세상에 공개될 테니 말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를 제쳐 놓고서라도, 우리 모두 공감하지만 입 밖으로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추어 내려는 시도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솔직함은 곧 진심입니다. 사람들은 진심에 움직이고 진심에 쉽게 감동받습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개인적인 사안이 아닌 이상 우리의 ‘진심’은 비슷비슷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합니다. 요즘에 들어서는 진심으로 포장한 위선과 허울이 많은 만큼, 오히려 조금은 ‘추하고 찌질한’ 솔직함에 대한 평가가 발전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용기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죠.
솔직해지는 글쓰기를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가 ‘에세이’라고 부르는 형식이 익숙한 예시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보고 읽을 수 있는, 다른 여지 없이 맥락 그 자체로만 해석되는, 굉장히 딱딱한 매체를 통한 말랑말랑한 글쓰기의 연습은 분명 모두에게 시도 그 자체로 멋진 경험이 도리 수 있습니다. 너무 솔직해서 탈인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잘 버무려 정제해내는 방법을 연습할 길이 될 것입니다. 한 번도 솔직해져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세상에 나르 ㄹ드러내는 방법을 연습할 길이 될 수 있을 테고요.
1. 활자 앞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시도합시다.
2. 스스로의 감정에 확신이 없을 때에는, 다른 누군가의 자기고백적 글쓰기를 훔치세요. 어떤 부류의 공감들은 무엇보다 진심에서 우러나올 때만 가능하고, 그러므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남의 글들을 모아두는 것이 허울뿐인 글을 쓰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누군가의 고백을 훔쳤을 때는, 나의 언어로 번역하거나 짧은 소회를 덧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4. 타의가 나의 진심을 가로막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직함을 공유해도 괜찮은 공동체를 찾으세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지만, 세상은 결국 여러 겹의 우물일 뿐이니 안주하지만 않는다면 아늑한 울타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5. 우리 모두는 솔직함을 무기로 휘두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활자 앞에 솔직해지는 연습은 성숙한 자기성찰로 나아가는 발전의 한 과정일 뿐이지, 어떤 폭력이나 배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솔직함의 미학에 오명을 씌우는 일이겠지요.
6. 구태여 어려운 단어를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나의 단어들을 잘 정돈해 마무리하도록 해 봅시다.
7. 솔직함은 보통 감정과 연관되기 쉬우나, 그 감정의 뿌리를 파헤쳐 사건과 논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보통 그런 일이니까요. 온통 감정으로 범벅된 글이 정돈되어 보이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해소를 목적으로 연습을 시작해도 좋지만, 그 감정을 소통의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하지, 전염시켜서는 안 됩니다,
8. ‘활자 앞에 솔직해지기’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수행적인 연습일 뿐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알아낸, 혹은 정리해 낸 말들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실천합시다.
9. 쉽지 않겠지만, 써낸 활자들을 너무 자랑스러워 하지도, 너무 부끄러워 하지도 않도록 노력해 봅시다.
10. 마지막으로, 맞춤법을 가다듬으세요. 소통을 위해, 활자 앞에 솔직해지는 과정에서 문법이란 기본 그 자체입니다. 솔직한 심정을 어긋난 활자로 쏟아내는 것은 세수를 하지 않고 약속에 나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어느 깐깐한 누구씨들은 글에 대한 당신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주어지는 기회들에 긴장하세요. 써낸 글을 프린트해서 얼굴 앞에 테이프로 붙이고 사람들을 마주한다고 생각하세요. 내 글 한 장 따위가 내 인생 전체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위압감과 책임감을 느끼면서, 그 앞에서 가식 따위는 부리지 않고 솔직해져 봅시다. 내 목구멍을 울리며 직접 뱉어 내든, 몇천 몇만 자고 적어 내려가든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언젠가는 원하는 만큼 솔직해져도 무탈한 사람이 되도록, 맹연습합시다.
조민재 coconite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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