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세상.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일들이 이상적으로 흘러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발을 맞춰 나아가야 할까?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

- 정의 및 필요성

‘장애인 이동권’이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인권의 한 종류로,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권리를 의미한다.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에는 이동권을 비롯해 노동권, 교육권, 선거권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중 장애인 이동권은 다른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권리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서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 결과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들은 한 달간 매일 외출하는 경우가 38.5%로 3분의 1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주 3~4회 외출이 17.0%, 주 1~2회 외출이 20.2%, 월 3회 이내 9.1%였다. 또한 거의 외출하지 않는다고 답한 장애인은 15.2%로 10명 중 1.5명 이상으로 적지 않은 수치를 보였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 참여에 큰 어려움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사회에서 만나고 이해할 기회가 부족하여 이동권 개선의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 시작과 현재

1999년 혜화역, 뇌 병변 장애를 가진 이규식 씨의 리프트 추락사고가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혜화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으며, 서울지하철공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500만 원을 배상받으며 장애인 이동권을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채 지나지 않아 2년 후인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노부부의 추락사고로 그들 중 아내가 사망하는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하였다. 그 이후 이규식 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현재,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0%가 넘었다. 언뜻 수치만 본다면 꽤 양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이동권의 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역사가 완전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당신은 ‘한 역쯤이야 안 가면 그만이지’라고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역이 일정하게 사용 가능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이동권의 완전 보장이란 단어는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에 리프트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더라도 문제가 되는 일도 많다.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작동시키기 어렵게 설계되어 사용자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이규식 씨의 리프트 사고도 같은 경우이다. 보기 좋게 구색만 갖추었을 뿐 실제 이용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작동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담당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저상버스는 서울에서 50%가량 운행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약 28%의 저조한 수치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28%의 저상버스마저 휠체어 발판이 인도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택시를 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애인 콜택시의 배차간격은 최소 몇십분 이상으로 이동 수단으로서 기능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 이렇게 무용지물, 보여주기식 시설물 설치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장애인들에게 가혹했다. 한 마디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사회’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던 것이지, ‘사회에 필요한 장애인’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a.k.a. 전장연)

우리에게 ‘전장연’으로 잘 알려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 12월부터 지하철 역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 나가고 있다. 특히 대구 지하철 1호선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시위는 수도권 지하철의 출퇴근 시간대에 발생하였다. 이는 시민들에게 단체의 입장을 전하기 위한 처사였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발을 묶어 놓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단체의 행보

198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리고2007년, 현재의 전장연이 설립되었다. 정부는 2013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절반 이상을 저상버스로 운행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이행하지 못하였다. 그에 목표를 낮추어 2016년까지 시내버스의 약 41%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 약속, 그러나 다시 지난해까지 시내버스의 약 42%를 저상버스로 하겠다고 거듭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실제 저상버스 도입률은 2013년 16.4%, 2016년 22.3%, 지난해 27.8%로 아직도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물론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본래 세운 기준치부터 50%가 안 된다. 이는 수치상으로는 절반이지만, 이동에 큰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는 어느 시간에 올지 모르는 저상버스를 찾아 다니는 것부터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저상버스 등의 장애인 편의시설의 설치율이 100%에 가까워지지 못한다면 장애인들의 일상을 유의미하게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전장연은 이동권 투쟁을 비롯한 범사회적인 분야의 장애인 인권운동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 시위의 양상과 의의

전장연 단체는 1995년 영국의 장애인 대중교통 시위를 모티브로 하여 8개월간 50회 이상(2022년 7월 기준)의 지하철 시위와 거리 행진을 진행하였다. 2022년 2월, 대선 토론에서 장애인 예산 언급이 있고 난 뒤 3월 2일까지 잠정 중단되었으나, 이후 재개하여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용자가 많은 편인 3, 4, 5호선에서 출퇴근 시간을 위주로 시위가 진행된 경우가 많으며, 정확한 날짜를 사전에 알리지 않는 게릴라성 시위가 특징적이다. 시위 시작 직전에 언론을 통해 일정을 예고하여 인터넷 기사 혹은 서울교통공사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른 학교나 회사 등의 지각 처리는 서울교통공사에서 지연 증명서를 발급받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지하철 시위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하철에 휠체어를 탄 상태로 탑승하거나 휠체어 바퀴를 출입문과 스크린 도어 사이에 걸치게 하여 운행을 지연시킨 후 시위를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 행해지는 큰절의 한 종류인 ‘오체투지’ 방식으로 지하철에 탑승하는 방식도 있다. 이때 시위자는 시위 피켓을 들거나 몸에 걸어 장애인의 이동권, 탈 시설권 등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함께 목소리를 내어줄 것을 호소한다. 이렇게 지하철 운행 자체를 지연시켜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 외에도 역 내에서 장애인 권리에 대한 요구사항이 적힌 벽보 스티커를 부착하고, 삭발 결의식을 진행하여 그 결의와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 왔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 측에서는 이로 인해 약 3천만 원의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8천 건 이상의 민원이 발생하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22년도 장애인 권리예산 추경을 촉구하는 긴급행동으로 4호선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까지 출근길 거리 행진 시위를 이어가며 경찰과 대치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전장연의 시위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일상의 불편함 없이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건이 있던 2001년부터 역과 국회 앞에서 시위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불편함에 비해 그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었으며, 사회가 보낸 시선은 냉담했다. 20년간의 노력에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한 기본적인 권리를 알리는 방법으로 출근길 지하철을 선택했다. 그들도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고, 모두가 앞다투어 비판할 것을 알았지만 따가운 시선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심정으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입장정리

이와 같은 전장연의 시위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시위의 당사자인 전장연 단체에서는 기본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가장 중요한 슬로건으로 내걸며 다양한 장애인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몇 가지 대표적으로 장애인 콜택시(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의 재정기획부 국비 책임, 광역 이동 지원센터 확대, 장애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지원주택 10만 호 공급, 탈 시설 권리 예산 증액,

장애인 활동 지원 최대 24시간 보장과 2023년까지 2조 9000억 원 편성 요구 그리고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국비 책임 등이 그에 포함된다. 이에 옹호 의견을 가진 시민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 보장 시위가 누군가의 배려 영역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인권 운동의 지지를 표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장연의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했다. 먼저 같은 장애인들에 전잔영의 미군 철수 및 반미 집회, 이석기 석방 요구 집회,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표명 등은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이는 장애인의 이동권 혹은 인권과는 관계없는 정치색을 드러내는 일들에 관여하는 전장연이 모든 장애인을 대표하는 성격을 가질 수는 없다는 반대 의견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한국 장애인단체 총연합과 한국교통장애인협회 등의 다른 장애인 단체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관한 요구사항에는 동의하나, 과격하고 일방적인 시위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장애인 단체와의 협의 없이 진행된 시위로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위 대상을 행정적 결정 권한이 없는 일반 시민들로 설정한 것이 효과적이지 못하며, 시위 방법이 다소 과격하여 철도안전법 제48조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 철도안전법 시행규칙 제85조(질서유지를 위한 금지행위), 형법 제15장 교통방해의 죄 등 법적인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장애인들도 같이 불편을 겪게 하는 방식의 시위는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게 하기보다는 피로도를 누적시켜 시민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또한 극단적인 의견으로는 왜 장애인 권리를 위한 예산 배정으로 세금이 현재보다 더 많이 사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하는 입장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시위 방법이 계속된다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극단적으로 장애인 혐오가 만연할 수 있다며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지하철 시위 이후로 현재 전장연에 협박 메일 등이 수도 없이 오고 있다. 자칫하면 장애인이 혐오범죄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평행선이 만나기 위해서는

이 시위를 누구보다 멈추고 싶은 사람들은 사실 전장연 단체 본인들이다. 시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합의에 있는 것이지, 시민들을 괴롭히며 갈등의 골을 깊게 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단체는 없다.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당연한 권리 주장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또 다른 누군가의 지속적인 불편함을 동반하는 일은 신중해야 하며, 상호 간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더불어 살아가길 바란다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싶게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 혹은 계단의 문턱이 낮은 저상버스처럼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는 유니버셜 디자인의 시설은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노약자와 임산부 등의 약자들의 삶에 큰 도움을 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례로는 미국의 옐로우캡 택시가 있는데, 이처럼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제작된 대중교통은 특별한 등록 절차 없이 운행이 가능하며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잡을 수 있다. 이는 1990년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merican with Disabilities Act, ADA)의 영향으로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좋아진 결과이다. 이렇게 격리 혹은 배척이 아닌 ‘통합’의 방식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활동공간을 분리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방식을 통한 ‘배려’가 아닌 일상의 ‘공유’는 건강한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다. 이로써 장애인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꾸준한 관심과 연대, 적절한 예산 편성, 확실하고 구체적인 정책 이행 약속 등의 개선책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절대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각각의 평행선도 서로 각도를 조금씩만 틀어준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게된다. 

김영원  wonvely0205@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