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학우들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책 만들기에 뛰어든 사람들은 대체 어떠한 애정으로 책을 만드는 것일까? 와우와 함께 우리의 주변에서 직접 책을 만드는 이들의 생각과 과정을 훔쳐보자.

- 한글꼴연구회

안녕하세요. ‘한글꼴연구회’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글꼴연구회는 작년에 30주년을 맞이한 시각디자인학과 소모임으로, 한글을 목적이자 도구로 삼아 타이포그라피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매주 회의와 워크숍, 발표, 세미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폰트(글꼴)를 만드는 것부터 이미 나와 있는 폰트(글꼴)를 연구하고 또 그것에 관한 책을 만듭니다. 가끔은 한글의 조형적인 형태 그 자체를 사용하여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작업도 하고요. 매년 시각디자인학과 내부에서 타이포그라피와 편집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신입을 선발하여 과의 선후배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활동하는 분위기입니다.

'한글꼴연구회'에서 다루는 출판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우선 현재 7호까지 발간한 『가나다라』가 가장 대표적인 출판물이라 할 수 있고, 이외에도 ‘월간 톱’이라는 월간지 형식의 한글 연구 출판물도 있었는데 지금은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매달 발행하는 형식이라 발간에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아요. 개인 작업으로 작은 책자도 만드는데요, 그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기에 출판물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가나다라』는 무엇을 다루는 책인가요?

『가나다라』는 한글에 관한 조사, 관찰, 분석 그리고 해석을 바탕으로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인데요. 『가나다라 6호』도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관심에서 나아간 책이지만, 흔히 지면 위에 종결되는 타이포그라피라는 분야 안을 살펴보기보단, 건축, 영화, 예술, 사회, 일상에서 희미하게 찍혀있는 타이포그라피의 흔적에 관심을 기울인 책입니다. 『가나다라 7호: 종이 밖으로』는 종이를 출발점으로 변화하는 매체 및 기술 환경에 대응하는 한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탐구를 담았습니다.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는 않고, 당시의 구성원이 관심 있고 같이 작업해볼 수 있는 주제 중에 선정하려 합니다.

한 권의 『가나다라』를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번 7호의 경우 총 10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여름 방학부터 각 파트의 장, 저희끼리는 ‘꼭지’라고 부르는데, 파트장끼리 모여 각 파트의 방향성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개강한 뒤에는 파트별로 콘텐츠를 제작했는데 연구부터 시작해서 글쓰기, 이미지 편집 과정까지 대략 6개월을 썼어요. 그러면서 틈틈이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겨울방학에는 책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디자인에 들어가면서는 해결해야 할 저작권 문제가 많아요. 그래서 관련하여 이메일을 보내고 허가받는 과정을 함께 거칩니다. 그러고 나서는 책이 바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때 되니까 막상 수정할 것들이 보여서 글과 디자인 모두 손을 봤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것을 마친 5월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받고, 독자들에게 책을 전달했어요. 저희가 다 같이 모여 독립 출판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사실 아직도 이 과정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입니다.

『가나다라』의 경우 7호까지 나와 있어 체계가 잡혀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시행착오가 있군요.

매번 팀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고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과정을 많이 따른 것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가나다라 6호』 때는 모든 부원이 기획부터 함께 시작했었는데,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오는 장점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파트장끼리 방향성을 먼저 논의한 뒤 부원들과 더 발전시키는 식으로 과정에 변화를 주어 봤습니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 운영되는 모임이다 보니 각자 바쁜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회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보니, 즐겁게 시작한 일인데 업무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출판과 독립 출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일반적인 출판 과정을 겪어보진 않아서 정확히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일반적인 출판물은 수익이 중요한 부분이니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려 하잖아요.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소재를 선정할 때 복잡한 논의가 필요할 거로 생각해요. 그에 비해 독립 출판은 인쇄 부수가 적고, 비용이 비교적 많이 들지 않아 콘텐츠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게 무엇이든 그것이 소재가 될 수 있고, 다수가 아닌 사람들의 얘기나 개인의 소소한 일상도 얼마든지 주제가 되어요. 오히려 타깃 설정이 좁고 정확할수록 팬층이 두껍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나다라』 도 크라우드 펀딩을 받다 보니 펀딩받는 다른 독립 출판물도 살펴보게 되는데요. 그렇게 구경하며 느끼는 점은, 다루는 소재는 물론 책을 어필하는 방식이 개성이 매우 강해요. 특히 웹 플랫폼상에서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독특하고 재미있어요. 책을 구매해주는 독자들을 위한 리워드나 특전도 많이 제공하고요.

작년 11월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여했습니다. 독립 출판에서 독립 출판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일단 독립 출판에 관심이 있는 많은 독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한글꼴연구회’를 몰랐던 사람들도 행사를 통해 많이 아시게 되고요. 반대로 저희도 몰랐던 독립 출판 단체를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얘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배우는 점도 생기고, 동기부여도 많이 받아요. 또 『가나다라』의 이전 호들은 선보일 자리가 많이 없었는데,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가나다라 7호: 종이 밖으로』를 포함한 기존 호들까지 판매하여 저희 잡지가 궁금했던 분들에게 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할 기회가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한글꼴연구회’는 전시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요. 혹시 책에 담는 내용과 전시에 담는 내용에 차이가 있을까요? 또 웹 홈페이지가 아닌 종이책으로 기록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나요?

책에 담는 내용과 전시에 담는 내용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심지어 전시 내용이 책이 되기도 하고, 책이 전시를 담아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내용보다는 표현을 어떤 매체, 어떤 방법을 통해 전달하고 싶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가나다라 7호: 종이 밖으로』를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면, 전시는 일정 기간 보여주고 사라지게 되잖아요. 반면에 종이책은 계속 남아서 기록되고, 쌓이게 된다는 의미가 있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전시는 최근에 한 것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고 책은 책을 위해 몇 달의 시간을 쏟아 연구하고, 그 연구를 통한 결과물을 담아내는 것이죠. 『가나다라』 초반에는 아카이빙을 하는 성격이 있었지만, 지금 『가나다라』에 들어가는 내용은 오로지 『가나다라』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접 책을 손으로 만드는 제책 워크숍도 진행하시고, 종이책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것 같아요.

제책 워크숍은 거의 매년 진행하고 있어서, 사실 그렇게 큰 뜻을 가지고 진행하는 활동은 아니에요. (웃음) 꼭 한글꼴연구회가 아니더라도 시각디자인학과 수업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후배들 수업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고 있어요. 그래도 요즘 시대에 왜 굳이 손으로 책을 만드는 워크숍을 하냐 물으신다면, 직접 책을 만들어보면 인쇄와 제본의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제판 기장님이 일하시는 것만 보아도 정말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다는 게 느껴집니다.

저희끼리도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을 내는 것에 관한 얘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디지털 매체가 주류가 되는 시대에 종이책이 가질 새로운 가능성이나 연관성을 탐구하는 것도 저희의 역할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실제로 QR코드나 모바일 스크린 비율을 종이책 판형에 적용하는 등 디지털적 요소를 데려오기도 했고요. 그리고 디지털로 저장된 것은 꼼꼼히 저장했다고 생각해도, 막상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오히려 실물 책으로 기록하는 것이 더 확실하게 기억되고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글꼴연구회'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목표는 매년 활동을 이끄는 멤버들이 달라지기에 그 친구들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그동안은 종이 위의 타이포그라피에 대해 다루었는데 점차 디지털 타이포그라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한글꼴연구회가 이미 30년 넘게 활동했지만, 글자가 담기는 매체는 무궁무진하기에 여전히 연구할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후에도 이렇게 변화하는 문자 환경에서 어떻게 한글을 한글답게,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나다라』 8호도 언젠가는 나올 테고요! 앞으로도 즐겁고 지치지 않게 꾸준히 활동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이름 학우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시각디자인과와 예술학과를 복수전공하고 현재 민음사출판그룹 미술부 북디자이너로 일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1인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인 큐리어스웍스(Curiousworks)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동 디렉터로서 전시 공간 팩션(Faction)과 프로젝트 그룹 그리드룸(Gridroom)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을 편집하는 일과 디자인하는 일을 모두 해보셨는데요, 두 개의 작업에 큰 차이점이 있나요?

편집과 디자인은 제게 아주 다른 일은 아닌 듯 해요. 회사에서는 한 권의 책이 편집자와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기에, 저는 편집자로부터 전달받은 텍스트 상태의 원고를 디자인 툴을 활용해 책의 형태로 디자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큐리어스웍스에서 1인 출판으로 책을 만들 때는 ‘인디자인(Indesign)’이라는 하나의 툴 위에서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며, 편집과 디자인을 함께 수행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편집과 디자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기에 제게는 책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책 『리아의 나라』를 디자인한 뒤 남기신 후기를 읽고 나니 북디자인을 단순히 표지 디자인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디자인에서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화려하고 매력적인 표지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에 힘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의 디자인이 그 속의 텍스트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펼쳤는데 그 안의 내용이 독자의 생각과 다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되도록 책이 품은 텍스트에서 표지의 형상을 추출하려 합니다.

그 예로 『리아의 나라』라는 책을 디자인했을 때의 경험을 공유해 드리고 싶네요. 『리아의 나라』의 본문에서 저자가 주인공인 ‘리아’가 태어나고 자란 머세드 지역의 몽족을 ‘루빈의 꽃병’에 비유한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 꽃병이 이 책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어요. 책에서 다루는 미국과 몽족의 관계도 상당히 이와 유사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꽃병 바깥, 즉 얼굴 부분에는 각 문화를 상징하는 패턴을 만들어 집어넣고, 꽃병 안에는 책의 제목과 부속 텍스트가 들어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의 과정이 저에게는 한땀 한땀 수를 놓는 수공예적인 경험처럼 다가왔어요. 질감이 잘 묻어나는 종이를 사용하고, 꽃병의 입체감을 살리는 형압을 넣고, 또 책을 코팅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죠.

큐리어스웍스에서 독립적으로 출판한 『리뷰력』과 『재생산』 시리즈에 관해서도 얘기 듣고 싶습니다.

먼저 『리뷰력』은 젊은 예술가의 작품을 리뷰를 통해 소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리뷰력』의 이름은 꾸준히 리뷰하는 힘(力)과, 달력(曆) 형태로 31개의 리뷰를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한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요. 제 주변에는 하나 같이 멋진 작업을 하시는 창작자들이 많은데, 이 작업을 어딘가 모아 기록하여 오래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창작자들이 리뷰를 통해 응원받고 서로 영감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창간호인 ‘Vol.1 Home ( ) Home’을 발행했고, 웹과 출판물을 통해 작품과 리뷰를 소개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 여러 창작자가 모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리뷰력 웹사이트(https://reviewryeok.com)를 통해서 직접 찾아보실 수도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재생산 시리즈’는 예술 작품이나 전시를 도록으로 옮길 때 책이라는 형태로 발행이 되지만, 그것이 원본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서 시작됐어요. 물론 책이라는 완전히 다른 매체로 작품을 옮기는 것이니 동일한 것이 되기는 어렵지만, 도록을 단순히 원본의 복제품 역할이 아닌 그 자체가 원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더 잘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생산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예술 작품을 책으로 ‘재생산’하려 시도한 책입니다. ‘재생산 시리즈' 중 『폐관』은 퍼포먼스 작업을 객관적인 정보 전달보다 동행자의 시선으로 기록했고, 『부피』는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숙지하지 않고 제3의 해석을 통해 발견되는 흥미로운 실수와 유의미한 오해를 담으려고 시도한 것이 그 예시입니다.

‘도둑 도상 연구 : 도둑의 시각적 규칙’이라는 연구의 결과물을 전자책(E-book)으로 제작하셨어요. 실물이 있는 책과 전자책에서 추구하는 것이 다른가요?

『도둑 도상 연구 : 도둑의 시각적 규칙』은 전시 공간 ‘d/p’에서 진행한 ‘도둑 연구 모임’에 참여하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보통 ‘도둑’하면 떠오르는 검은 복면을 쓰거나 훔치는 듯한 몸짓을 취하는 등의 도상이 어떤 규칙을 가졌는지 연구한 결과를 전자책으로 발행했어요.

종이책은 아무래도 전자책보다 고려할 것들이 많아요. 일단 비용 면에서도 고려해야 하고, 종이책의 물성이 실물로 나왔을 때 어떻게 보일지도 되게 까다로워요. 종이의 질감이나 후가공 방식이 디지털 파일로 봤을 때와는 책의 이미지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기도 하거든요. 반면 전자책은 모니터에서 작업한 그대로 결과물이 완성돼서 실물 책에 비해 제작 과정에서 고민할 게 비교적 적습니다. 좀 더 간편하게 책을 발행하고 싶거나 번거로운 제작 과정보다는 콘텐츠에 더 집중하고 싶을 때 이용하고 있어요. 한번 업로드해 두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끔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에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서울국제도서전’과 같은 북 페어에서 실험적인 책들을 많이 선보이셨어요. 출판 행사에 참여하며 기대하시는 것이 있나요?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몰랐던 분들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것도 크고, 지인이 아닌 분들이 제 책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했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에는 소규모 창작자나 작가분들처럼 독립 출판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 관람자가 많았다면, ‘서울국제도서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분들이 부스를 찾아 주셨어요. 물론 체력 소모도 컸지만, 설명해드리는 과정에서 제 책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한 부분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책을 비롯해 그래픽, 전시 등 다양한 작업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제가 애정하는 디자인과 전시, 두 분야를 접목하여 ‘디자인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고, 계속해서 북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으며 팩션의 공동 디렉터로도 활동하려 합니다. 또 요즘은 큐리어스웍스와 그리드룸의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는 작업실도 마련하고 있어요.

저와 같이 출판, 디자인, 전시 등 독립적인 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자신을 믿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실천하기”를 권해봅니다. 저는 활동을 활발히 시작하기 이전에 주변에 취업 준비를 하거나 안정적인 길을 가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렇지 않은 제가 불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취업 준비를 하기도 했고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결국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또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라면 ‘whatreallymatters(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나 ‘Platform 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와 같이 출판 창작자를 지원하는 센터의 도움을 받아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두 센터를 통해 저는 『리뷰력』의 발행에 도움을 받기도 했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거든요. 마침 두 곳 모두 홍익대학교와 굉장히 가깝고,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으니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이시원 학우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캠퍼스자율전공에서 예술학과를 주전공으로 하는 21학번 이시원입니다. 책이 주는 따스함과 행복을 참 좋아해서 책방들을 드나들면서 책을 읽고 만들고 있습니다.

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늦둥이 동생이 있는데 어릴 땐 외동이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고 글을 써서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순정 만화 같은 걸 그려서 친구들이랑 돌려보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자유학기제에서 ‘나만의 책 만들기’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를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놀이처럼 해오던 일이 아트북이나 독립 출판물을 접하면서 이제는 이시원 글·그림으로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생겼어요.

책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특히 관심 있는 분야가 있나요?

저는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는 그림책을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여겼지만, 요즘에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많이 나오면서 그림책을 향유하는 층이 넓어졌어요.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그림이 글을 보조하는 것도, 그 반대도 아닌 두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매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가끔 마음이 헛헛하고 힘들 때 그림책을 보면 많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작년에는 제가 만든 토끼 캐릭터로 입이 너무 크고 이빨이 날카롭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웃지 못하는 토끼 그림책을 낙서처럼 계획해본 적도 있어요. 자기가 가진 콤플렉스 때문에 웃지 못하는 토끼가 ‘나는 왜 다른 토끼들처럼 귀엽지 않고 인상이 사나울까’라는 고민에 맨날 침울하게 다니다가 결국에는 함박웃음을 짓게 되는 장면에서 끝나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지만요.

가장 최근에 제작한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가장 최근에 만든 책은 『새, 그림자』라고 ‘파주출판도시 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서포터즈 활동하며 만든 책이에요. 파주의 ‘자연 친화적’, ‘건축적으로 뛰어난 설계’, ‘책의 도시’라는 특성 중에서 저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초점을 맞춰서 대규모 철새 도래지인 파주에 서식하는 새들의 안내 도감 책자를 만들었어요. 출판도시에 오시는 분들이 책을 보러 오시기도 하지만 탐조 활동을 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새들은 제대로 눈에 담기도 전에 날아가서 탐조할 때 순간적으로 보게 되는 건 새 실루엣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먼저 재빠르게 앞장에서 확인하고, 바로 뒷장에 그 실루엣에 해당하는 새의 세밀화와 설명을 통해 정확한 형태와 새 이름, 학명까지 볼 수 있게 배치했어요. 책의 외관은 책등 자체에 제본하여 장식적인 요소를 주는 ‘노출 제본’으로 수시로 펼쳐 보거나 주머니에 보관하기 쉬운 크기예요. 이 방식은 책이 끝까지 잘 펴진다는 장점과 동시에 보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독립서점에서 북아트 워크숍을 통해 작품 전시를 한 경험도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책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을지로의 ‘그래서 책방’이라는 곳에서 북아트 워크숍을 할 때는 아이패드를 처음 사서 그린 그림들을 모아서 책을 만드신 분도 계셨고, 자녀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나 친구에게 받은 편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으신 분도 있었어요. 그분은 책을 소개할 때 '이 책의 처음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입니다.'라고 소개한 게 기억에 남아요. 각자의 이야기가 개성을 담은 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 책이 굉장히 매력적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걸 기반으로 <책의 처음>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회화 같은 평면작업을 전시할 때랑은 다르게 관람자가 직접 책을 펼치고 넘겨볼 수 있도록 공간을 계획했어요. 이 과정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종이라는 2차원 평면의 시각적인 효과를 활용하면서도 책 자체의 물성을 다루는 3차원적인 작업이라는 걸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로잉 아카이빙북 마포동네책방 52곳> 프로젝트에 작가로도 참여하셨어요. 어떤 경로로 참여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책을 함께 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 프로젝트는 책방에 다니길 좋아하는 독자들을 각각 마포 동네 책방과 매칭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하는 아카이빙북을 만드는 활동이었어요. 저는 마포구 토박이이기도 하고, 동네 책방들 다니는 걸 되게 좋아해서 알고리즘으로 광고가 뜨더라고요. 같이 참여하신 분들을 제가 다 만나볼 수 있었던 건 아니라서 좀 아쉬웠지만 직종이랑 연령대가 되게 다양해서 디지털 드로잉과 색연필화, 수채화 같은 아날로그 방식을 섞어서 그리는 다양한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접해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어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이신 분, 다른 지역에서 직접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 그리고 완전 다른 일을 하시는 일반 독자분들도 계셔서 되게 신선했어요. 그걸 보면서 제가 아는 책방이 나오면 괜스레 반갑기도 했고요.

저는 합정동의 ‘B-Platform(비 플랫폼)’과 서교동의 ‘공상온도’라는 두 책방으로 매칭이 돼서 참여했어요. 마포에 있는 동네 책방을 아카이빙하고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여서 마포문화재단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자책으로 누구나 열람하실 수 있으니 관심을 두고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과 책을 혼자 기획해서 제작까지 하는 일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책까지 만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형태로 만들지에 대해서 먼저 계획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요. 이 경우에는 안에 들어가는 그림들끼리 어울리는지, 책 형태와 내용이 잘 맞는지,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돼요. 그럼 그림 자체에 집중한다는 느낌보다는 책 자체를 하나의 완성품으로 생각하고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책을 직접 만드는 게 더 뿌듯하긴 하지만 좀 더 골치 아프긴 해요. (웃음)

반면에 그림 작가로만 참여하는 경우에는 그림 하나에 내 개성과 스타일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림 한 장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가로서 그림을 딱 보내면 어떤 느낌으로 책이 나올지 전혀 모르잖아요. 그런 기대감이 또 있어요.

최근 수강하신 판화과 <아티스트북> 수업은 어떤 수업인가요? 제작한 작품도 궁금합니다.

<아티스트북> 수업에서는 먼저 체인스티치, 콥틱 바인딩, 클램셀 박스 등 다양한 제본 방식을 익히고,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의 아티스트북 작품을 많이 접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각자가 책으로 엮고자 하는 메시지, 각자의 작품에 가장 잘 맞는 책의 형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마지막 시간에는 헌 옷을 이용하거나, 불로 태운 종이를 활용한 작업처럼 실험적인 것들도 있었고, 펼치면 무언가 튀어나오는 입체적인 팝업북 등 다들 너무나도 다른 작품을 꺼내 보이는 게 신기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다른 만큼 책의 형태도 다양한 걸 보면서 책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린 말, 어른 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제작했어요. 제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은 동물 소재가 유독 많은데, 최근에 10년 만에 제주 여행을 갔다 와서 마방목지의 말들을 보니까 어린 시절 순수하게 말을 그리던 때가 그립더라고요.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제가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르셀 뒤샹의 <여행 가방 속의 상자>처럼 상자가 닫혔을 땐 뭐가 들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상자 속에 넣어 둔 먼지 쌓인 스케치북을 꺼내 보듯이 간직해온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 볼 수 있게 제작하였습니다.

특히 수제본이나 북아트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책 내용뿐만 아니라 책 자체를 작품으로서 제작하는 작업을 통해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나요?

책을 만드는 일은 표지 아래로 흩어져 있는 낱장의 이야기를 묶어내서 의미 있는 걸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갖가지 형태의 아트북을 자주 접하다 보니까 다양한 형태의 제본 방식은 책이 품은 내용이랑 어우러져서 그 책의 첫인상을 완성해 주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용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책의 형태를 고민하는 일은 되게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도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북아트에 대한 관심을 이어오게 되었어요. 사실 정보를 얻는 건 책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 됐잖아요. 이제 책을 예술이라는 분야로 가져와서 생각하면 책의 물리적인 속성 자체가 주목받게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점점 사람들이 특이하고 예술적인 형태로 책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꿈에 대해서 전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책은 우리한테 제일 친숙한 매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무궁무진한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체감하고 있고요. 저는 읽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만들 것 같아요. 특히 기상천외한 책들이 가득한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같은 북 페어들이 너무 재밌어서 제 손으로 만든 책을 가지고 그런 북페어에 한번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취미가 그림책을 사서 모으는 건데요, 최근에는 요한나 콘세이요라는 폴란드 작가분 그림이 너무 좋아서 그분 그림책들을 모으게 됐어요. 최근에 산 그분 책의 특이한 점은 속지가 다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로 인쇄가 되어서 각 장의 색연필화가 다 겹쳐 보인다는 거예요. 저도 언젠간 그런 독특한 소재를 활용해서 책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재밌겠다 싶은 일들을 찾아서 계속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어느새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영원, 박한비 wonvely02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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