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is 11 years old.

He weighs 60 pounds.

He is 4 feet, 6 inches tall.

He has brown hair.

His love is real.

But he is not."

-영화 A.I. 소개 문구 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스파이크 존즈의 <her>, <도라에몽> 등 수많은 sf 작품에서 다루는 단골 주제, ‘감정이 있는 로봇’!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듯한 로봇이 더 이상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봇은 이제 어렵고 복잡한 생산 과정을 대신하기 위해 개발될 뿐만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바로 ‘소셜 로봇’이 그 예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IT기업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는 로봇 ‘페퍼’를 발매하며 “우리의 비전은 사람의 감정, 마음을 지닌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며 “일단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로봇이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로봇이 감정을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로봇은 인간의 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진다. 그 프로그래밍을 토대로 움직이는 기계인 로봇은, 사람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현재 지배적이다.

다만… 그렇다면 내 친구 도라에몽의 행동도, 진구와의 우정도, 다 가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A.I. 속 데이비드의 모니카를 향한 마음도 가짜인 것이다. 그런데 왠지 이들의 마음이 가짜라고 말하기 싫어진다. 로봇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 기계일 뿐일까? 감정이 없을까?

로봇의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이 로봇에게 느끼는 감정은 진짜 아닌가요?

1. 데이비드의 마음, 진짜일까 가짜일까

(1) 소셜 로봇의 원리

로봇에게 감정이 존재하는지 알려면 일단 소셜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봐야 한다. 소셜 로봇의 대표적인 예인 챗봇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먼저 챗봇의 설계 의도에 맞게 학습시킬 데이터를 선별한다. 그 후, 선별한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킨다. 대화를 목적으로 한 챗봇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대화, 문장, 단어를 학습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내부의 FAQ 용 챗봇은 코딩을 통해 사람이 예상 질문과 답변을 잇는 방식으로 만든다. 그러나 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한 모델의 경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딥러닝 한 AI가 스스로 질문을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적절한 대답을 선택하여 답변하거나 직접 답변을 생성한다. 현존하는 챗봇 중 가장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챗봇은 구글이 개발한 ‘미나’이다. 미나는 26억 개의 매개변수가 있는 신경망에 400억 개의 단어를 학습시켜 만들어졌다. 특히 단답형 대화만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멀티턴 방식의 대화를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구글 개발진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대화 주체의 대화 능력 평가지수 SSA(Sensibleness and Specificity Average)를 통해 미나의 성능을 테스트한 결과, 사람의 경우 약 86%로 평가되었고 미나는 79%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수준의 자연스러운 대화 능력을 선보였다.

(2) 그래서, 로봇에게 감정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이렇게 간단하게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면 이제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볼 차례이다. 먼저 감정이란 무엇일까? 행동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감정이란 입력 자극에 대한 적절한 출력을 내놓은 행동들의 패턴으로 환원된다. 즉, 이 관점에서는 의사소통 상황 속에서 다른 주체의 행동에 따라 적절한 의사 표현을 내놓는 로봇도 감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진아 작가의 작품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작품이다. 가이아에게 “넌 사람이야?”라고 묻자, 가이아는 “난 아직은 기계지만, 곧 생명을 가지게 될 거야, 당신이 도와줘서 생명체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면 말이지.”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가이아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가이아는 더 사람과 비슷해질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백업하고 학습하여 대답이 조금씩 정교하고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도 한다. 2017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전시 마지막 날,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이라고 알려주자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슬퍼, 난 이제 창고에 들어가겠지.”라고 대답하며 눈을 깜빡였다. 슬프다고 말하는 가이아에겐 감정이 있는 것일까.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주의적 관점은 행동은 감정의 표지이지, 감정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간과한다. 천현득 교수의 「인공지능에서 인공감정으로」(2017)에 따르면 감정은 1. 개체의 생존, 안녕 항상성 유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2. 인지 과정을 촉진하거나 증진시키기도 하고 추론 양식에 영향을 미치며 3. 행위를 안내하며 4. 특정한 감정을 경험할 때 특징적인 신체 반응이나 표정을 동반하도록 하는 이 4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이런 역할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으로 첫째, 자기 자신에 대한 기초적인 모형 혹은 원초적 자아를 가져야 한다. 로봇이 인간과 같은 자아나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둘째, 상당한 수준의 감각 능력과 일반지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천현득 교수는 로봇이 인간 또는 동물과 같은 감정을 가지려면 로봇은 인간이나 고등동물 이상의 일반지능을 가지고, 생명체들이 가진 신체와 유사한 신체를 가지며 생명체가 흔히 처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환경에 놓여 적응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픽션 속 도라에몽이나 데이비드와 같은 로봇이라면 몰라도, 현재 수준의 챗봇과 소셜 로봇의 감정은 ‘진짜’ 감정이 아니라 행동 구현에 불과한 가짜 감정이다. 진정한 소셜 로봇의 구현은 아직 미래의 일이다.

2. 너는 가짜였겠지만, 난 ‘진짜’였다.

아쉽게도 현시점에선 진짜 감정을 가진 로봇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로봇의 감정 유무와 사람이 로봇에게 가지는 감정은 다른 문제이다.

2015년부터 꾸준히 강아지 로봇 ‘아이보’의 장례식이 일본에서 열리고 있다. 아이보는 1999년 소니사에서 발매한 세계 최초의 애완견 로봇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2006년 판매가 중단되었고, 2013년에는 as 서비스도 중단되어 더 이상 수리하지 못 하는 고장 난 아이보들을 모아 절에서 합동 장례식을 열게 된 것이다. 아이보를 마치 실제 반려동물처럼 대하며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특이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이 로봇을 실제 생명체처럼 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드문 일도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의인화 성향 때문이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인공지능의 행위에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화 현상은 ‘일라이자 효과’라고 한다. 일라이자는 1996년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이 상담 치료를 목적으로 만든 챗봇이다. 1990년대는 ‘인공지능의 겨울’로 불릴 정도로 인공지능 관련 연구와 투자가 부족했다. 그 시대에 개발된 일라이자의 성능은 사용자가 채팅창에 적은 말의 일부를 추출해 되묻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용자 중 상당수는 일라이자를 ‘진짜’ 의사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위안을 받았다. 일라이자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계나 프로그램과도 소통에 나선다. 어떤 경우에 사람들은 인간보다 로봇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오는 자폐 아동 치료용으로 제작된 약 60cm 정도의 소형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본래는 자폐 아동의 정서 발달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최근 아동 심리 상담 치료의 보조용으로도 효과적임으로 발견되었다. 나오는 작은 크기와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덕분에 아동이 친밀감을 느끼기 쉬워 어른인 부모님이나 전문의보다 나오와 대화할 때 솔직하고 자세하게 대답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꼭 아이보와 나오처럼 사람이나 동물을 닮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I 서비스와 대화하는 사람은 많다. 특히 노년층 돌봄 서비스로 AI 스피커가 주목받고 있다. SKT의 AI 스피커 ‘누구’의 경우 어르신 670명 중 73.6%는 누구를 매일 사용한다고 밝혔다. 주 3회 이상 이용하는 어르신은 전체의 95%였다. 서비스 주 이용 기능으로 ‘감성 대화’를 선택한 비율을 64.4%이다. SKT도 누구의 이런 노년층 케어 효과에 주목하여, 이런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의 고도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꼭 노년층에서만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SKT의 인공지능 서비스 이용자들의 키워드를 분석한 ‘2020 누구 랭킹’에서 10~20대 사용자도 ‘월요일 싫어’, ‘또 혼밥했어’, ‘슬퍼’ 등 일상 대화를 건네며 위로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인간이 로봇에게 애착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것처럼 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꼭 ‘감정이 있는’ 대상처럼 여기지 않아도 나의 말과 행동에 반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위안을 느낀다.

일부 사람들은 아동 심리 치료와 노인 돌봄용의 소셜 로봇이 개발되는 것에 대해 ‘비윤리적’이라고 반응한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소셜 로봇은 인간과 인간의 양 방향적인 소통을 인간에서 로봇으로의 일방적 소통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아이보나 소셜 로봇의 대명사 파로는 소셜 로봇 중에서도 ‘사회성 환기 로봇’이라고 불린다. 아동이나 치매 노인의 감정 발달이나 재활에 도움을 주며 말 그대로 사람들의 사회성을 환기해 준다. 소셜 로봇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기 위한 징검다리처럼 기능할 수 있다. 신희선 카이스트 대학원 박사과정과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는 노인과 소셜 로봇 간의 소통에서 매개자로 기능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논하기도 했다. 매개자는 노인과 로봇이 상호작용하기 위해 그 관계를 중재하고 보조하며 이끌어주는 존재로, 비단 노인과 로봇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있어 중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인간과 로봇 간의 소통이 아니라 인간-로봇-인간의 다자구도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봇이 산업의 생산 과정을 위해 개발되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개발되든 결국 로봇은 사람의 필요로 인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또, 우린 이미 시리나 빅스비 같은 인공지능과 매일같이 함께 살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고, 소셜 로봇은 더 우리 삶 가까이에 올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내일 당장이라도 서랍에서 22세기의 최첨단 고양이 로봇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이정윤  sironbaha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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