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안녕하세요! 학생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홍익대 동양화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학부 예술학과, 대학원 미술사학과와 동양화과에서 미술이론 수업을 하고 있는 장준구입니다. 학부에서는 '동양근현대미술론', '동양화론', ‘한국근대미술사’, '한국근현대작가론' 등의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실장으로서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특히 한국화를 연구하고 관련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동양근현대미술론'에서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 알고 싶어요.

동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의 근현대 미술사 전반을 살펴보는 수업입니다. 먼저 17, 18, 19세기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보이는 서양의 영향을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서양에 의해 근대를 맞이한 이후의 20세기 한·중·일 미술을 살펴봅니다. 동아시아 미술의 근대화, 현대화는 서양이 정치 군사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와중에 주체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작품에 기존에 없던 ‘사실성’과 같은 시각적 특징이 반영되며 서구화가 이루어졌는데, 이에 한·중·일 세 나라가 시차를 두고 적응하며 기존의 전통적인 요소를 끄집어와 서양적인 요소와 절충시켜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게 수업의 핵심이에요. 같은 동아시아 국가라 비슷한 맥락을 가져가면서도 정치, 사회, 지리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특징을 보여주기에 수업은 연대기 순 안에서 다시 나라별로 구분하여 진행됩니다.

수업에서 특정 작품에 관한 미술사적 가치와 별개로 조형적인 완성도에 관한 평가를 해주시는 경우가 있어 독특했습니다. 판별하시는 기준이 있을까요?

미술사 수업에서 다루는 유명 작품 중에서도 작품의 완성도 자체는 높지 않은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있어요. 고희동의 <자화상>(1915)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유화라는 가치가 있지만, 얼굴과 자세가 경직되어 있고 의복 처리가 부자연스러워 시기상 1년 뒤에 나온 김관호의 <자화상>(1916)에 비해서도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논할 때는 주로 균형, 비례, 조화를 따지는데, 균형과 비례는 사실적인 그림에 비해 표현적인 그림에 불리한 기준일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지 화면이 조화로우면 일차적으로 완성도를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꼭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특정 연대를 알기 위해 그 시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반쪽짜리 공부가 됩니다. 전통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도 20세기 이후의 방법론으로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근현대의 시각을 탑재해야 하고, 근현대 미술도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전까지의 미술이 20세기적으로 변모한 것이기에 앞 상황에 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수업에서도 다루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까지의 미술과 그 이후의 미술이 현격히 달라집니다. 20세기 초부터 서구화가 진행되며 현재까지 우리 생활의 대부분이 서양적인 것들로 안착하여 있기에, 전통 미술을 섭렵하여 안목을 높이는 와중에도 근현대기의 맥락을 숙지해야 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고전보다 근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근현대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학부 때부터 시기, 지역별로 골고루 수강하길 권장합니다.

* '월전미술관'은 1991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현대 한국화를 육성하기 위해 삼청동에 세운 미술관으로 한국화 중심의 전시와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2007년 이후에는 월전의 고향인 이천에서 ‘이천시립월전미술관’으로 전환되며 공립 미술관으로서 더욱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 중이며, 삼청동의 ‘한벽원미술관(구 월전미술관)은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의 분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 수업 외에도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실장을 맡고 계십니다.

2011년부터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이하 월전미술관)에서 한국화 관련 전시와 연구를 총괄하는 학예실장으로 있습니다. 월전미술관은 국공립을 통틀어 유일하게 한국화에 주력하는 미술관이에요. 현재 미술계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한국화가 온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진, 중견, 원로 작가 가리지 않고 좋은 작가를 발굴하여 전시를 기획하고, 관련 연구 및 교육도 진행 중이에요.

월전미술관에서는 어떤 방식과 기준을 통해 한국화가를 발굴하시나요?

정해진 기준을 두기보다 한국화 분야에서 꾸준히 좋은 작업하시는 분들을 뽑아요. 함께 일하는 학예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미술관 안팎에서 제대로 자문받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전시를 많이 다니는데 모든 전시를 갈 순 없으니, 전시 도록을 모아 틈틈이 챙겨보며 명단을 정리해놨다가 전시를 기획할 때 적합한 작가를 골라 출품해달라고 부탁하죠. 공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면 작가 이력에 도움이 되고, 미술관에서 작품 구매 심사를 받을 때 가산점이 붙기도 하여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한편, 작가는 본인 인생이 드라마틱하거나 작품의 매체나 이미지 자체가 튈 때 더 쉽게 주목받는 경향이 있어요. 순탄하게 살며 온건한 매체와 일견 무난해 보이는 작업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세계를 이어가는 작가들은 대중의 이목을 끌기 불리하죠. 이를 고려하여 작가를 선정하기도 합니다.

기획하신 전시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나요?

2017년에 월전미술관 재개관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먹의 멋과 맛: 현대 수묵화 다시 보기》전을 꼽겠습니다. 채색을 배제, 최소화하여 먹의 표현에 집중하는 '수묵화'는 20세기 이전까지 문인화가와 지식인의 창작과 감상 속에 그 가치가 두루 인정되었으나, 서구화, 현대화가 이루어지며 예스럽고 구태의연한 것으로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어요. 이에 해당 전시에서는 장우성, 민경갑, 송영방, 심재영, 임송희, 하태진, 이철주, 홍석창, 이석구, 오용길, 원문자, 정종해, 이길원, 김대열, 오숙환, 최성훈, 하철경, 홍순주, 김대원, 조순호, 안호균, 문봉선, 백범영 등 중견부터 원로 한국화가 23인의 수묵화 중에서도, 먹의 특징이 살아있고 각자의 개성과 시대성이 더해져 재해석된 작품을 모아 선보였습니다. 인물화, 화조화, 산수화 그리고 추상화에서 드러나는 다채로운 먹의 표현에 많은 관객이 좋아해 주셨어요.

한국화가들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제공해온 '동방예술연구회' 활동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장우성 화백께서는 좋은 작업을 위해서는 회화적 기량과 더불어 이론적인 토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며, 1991년 월전미술관 개관과 함께 동방예술연구회를 직접 조직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술 이론 강의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이후 동방예술연구회는 30여 년간 한국화 작가들을 대상으로 미술사 중심의 인문학 강좌를 제공해왔고, 수료 이후에는 전시회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한국화가들의 작품세계 형성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코로나 여파로 2년간 중단되었다가 올해부터 다시 진행할 예정이고, 2023년 두 학기 동안 진행될 강좌 <중국 회화의 여정>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어요. 작가나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웃음)

이쯤에서 한번 질문드리겠습니다. '한국화'란 무엇인가요? 한국화, 동양화, 채묵화, 수묵채색화 등 관련 용어에 관한 논의가 치열했고 아직 통일되지 못했습니다.

'한국화'라는 개념이나 정체성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걸로 힘 뺄 필요도, 여유도 없는 것 같아요. 동양화, 한국화 등의 용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각각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있었기에 그 상황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 것인데, 현재 사람들이 그 당시의 맥락으로 동양화, 한국화를 사용하지는 않잖아요? 즉, 많은 사람들이 수묵채색화를 관용적으로 '한국화'라고 부르기에 그대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거 같아요. 한국화라는 용어에 특별한 의미나 정체성을 부여하지 말고, 한국화는 '수묵과 채색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장르 개념으로 보자는 겁니다. 중국에서 '중국화'와 일본에서 '일본화'를 구분하는 기준도 그저 재료예요.

재료 구분 없이 모든 평면 작업을 회화로 간주하자는 주장 하에 동양화과와 서양화과를 회화과로 통합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20년 전과 달리 동양화과가 서양화과에 비해 선호도가 낮은 지금 학과가 통합된다면, 동양화 전통이 도태할 확률이 높아요. 동양 전통을 계승한 한국화만의 미감이 분명히 있기에, 이 조형성을 잘 살리는 작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충분히 조명받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졸업 후에는 보편적인 회화를 지향하더라도 학교의 동양학과(한국화과)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양의 전통 미술이론을 배우고, 서예나 전각, 먹과 전통 채색을 이용하는 법을 충분히 수련, 습득하는 작가가 필요한 거죠. 동양화, 서양화뿐 아니라 조각, 공예 등 모든 미술 장르는 각자 쌓아온 미감이 있기에 이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 발전할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미술을 장르 구분으로만 봐야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특정 장르의 부침이 있을 수 있는데 안 좋은 상황일 때 쉽게 사라진다면 오래 마련해온 미감과 앞으로의 가능성이 아깝다는 거예요.

한국화의 범주를 확장하여 전시하는 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화 전시에서 정작 수묵채색을 탐구했던 작가들이 내쳐지는 사태가 발생할까 우려됩니다. 한 학술대회에서 한국화의 범주를 넓혀 전시하는 것에 대해 대전시립미술관 선승혜 관장님하고도 의견이 갈린 적이 있는데, 저는 취지는 좋지만 그러는 순간 한국화라는 장르가 무색해지기에 반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이남의 작품은 애초에 그림(화)도 아니잖아요. 김학량의 <부작란도>도 한국화 개념에 의미 있는 작업이기에 한국화 전시의 한 스팟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한국화로는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2015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전을 보면 온 장르를 통섭해놨었습니다. 한국화 전시가 아닌 한국 현대미술 전시에 가까웠던 것인데, 보편적인 현대회화나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적합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 미술관에서 얼마 전에 끝난 <견월사>전만 해도 참여작가 5명 중 2명은 각각 캔버스에 목탄, 캔버스에 종이와 아크릴을 사용했기에 한국화가로 볼 수 없어요. 전시 주제인 달을 모티프로 삼은 실력 있는 작가들이었기에 전시에 참여 못할 이유가 없던 건데, 이때 이들을 한국화 전시에 포함하거나 한국화가로 칭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최근 한국화 관련 전시들이 주요 기관들에서 많이 열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2022)는 기획이나 내용에 큰 문제가 있었어요. 한국화, 채색화, 민화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에서 오류를 범했고, 젊은 작가들의 선정 기준도 불투명하여 의구심을 사기 충분했습니다. 일민미술관의 《다시 그린 세계: 한국화의 단절과 연속》(2022)은 미술관이 원래 소장하던 유명 한국화가들을 전부 꺼내 놓고, 거기에 젊은 작가들을 무작위로 연결 지어 놓았기에 좋은 전시라 생각하지 않아요. 두 전시 모두 한국화를 잘 아는 큐레이터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2017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20세기 한국화의 역사전>을 개최하며 관련 전문가 20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화의 문제점과 나아갈 길, 주목해야 할 한국화가 등에 관한 답변을 받아 수록한 책을 발간한 적이 있어요. 답변 내용들을 살펴보면 객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으며, 한국화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은 몇 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동양미술 기반의 큐레이터, 연구자가 부족해 한국화 전시 수가 계속 줄거나 최근의 사례들처럼 부실하게 진행된다면 한국화는 관객에게 점차 잊힐 거예요. 그럼 다시 관련 전공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현장에 동양미술 기반의 큐레이터, 연구자가 적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기본적으로 인력 수급의 문제가 있어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일하고 싶은 전공자는 많은 거죠. 요즘과 달리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양미술 전공자는 국공립 미술기관에 취직하기 애매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은 물론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이상범, 변관식을 중요히 다루던 시기라 한국미술 전공 선호했거든요.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한국미술 전공자를 위한 자리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간 공부하다가 졸업을 한 한국미술 전공자들이 계속 누적되어 취직이 예전보다 어렵습니다.

앞으로 근현대 한국화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연구자, 컬렉터 그리고 작가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한국화의 위상이 회복될 수 있을까요?

한국화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화가 학술적 차원에서 충분히 조명, 연구되지 못한 게 큰 문제입니다. 20세기 후반 한국화의 성과가 규명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21세기 이후 한국화도 온전한 평가를 받기 어려운 거죠. 이 부분에서 미술계 종사자들이 할 역할이 있습니다. 모든 시각, 물질 문화가 서구화, 현대화된 상황에서 한국화를 예전처럼 주류로 올리는 것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열 자리 중 한두 자리는 정당하게 차지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월전미술관에서 한국화가들이 그린 금강산도만 모아서 전시한 적이 있는데, 조선시대 금강산도 정도만 알던 관객들이 현대 작가들의 금강산도를 보시니 익숙한 듯 새로웠다고 좋아하셨어요. 잘만 기획한다면 현대미술관의 전위적인 전시들보다 대중성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만약 접근성이 좋은 서울에서 전시했다면 파장이 더 컸을 테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20세기 한국화를 미술사적, 미학적으로 정리하면서도, 한국화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큰 규모의 전시를 하고 싶어요. 한국 근현대 미술사는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그중 한국화 파트는 일부만 할애되어 있어 통사화가 잘 안되어 있습니다. 한국화의 객관적인 특징들을 잘 잡아낸 적합한 작가와 작품군을 넣어 그 지점을 보강하고 싶어요.

민태홍  mr.podobunja@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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