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쉽게 왜곡되는 기억을 무던히 마주하고 싶었다.

언젠가 눈에 파묻힌 숲의 나무들이 녹아내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숲을 통과해야만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도 우리는 유체처럼 꺾이고 있는 나무가 우리를 덮칠 것만 같아 숲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숲 입구에서 서성였고 그사이 해가 졌다. 눈이 점점 세차게 내렸던 겨울의 꿈.

과거는 보존될 수 있는 영역일까.

기억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간에 잠들어있다는 점에서 꿈과 닮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꿈과 기억을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구출해내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에게 닿지 않는 과거가 잠에서 깬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다룰 수 없는 과거의 편린들을 애써 외면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 그 대신 모든 꿈과 기억은 꼭 변형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것, 똑바로 대응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부정할수록 꿈은 더 빠르게 왜곡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편이 좀 더 낫겠다.

2

아무도 없는 하얀 숲은 입자 형상의 세계들로 이루어진다.

겨울 숲에 내리는 눈은 자유낙하하며 각자의 궤적을 그린다. 눈 결정 하나하나는 개별의 세계. 생명력 없이 차가운 숲은 온통 희어지고, 희어져가는 만큼 낯설다. 그렇게 우리는 눈 덮인 숲에서 새로운 세계로 매초 진입한다.

이 계절의 숲에서 만나는 것들. 언덕 아래로 깔린 실안개, 하늘에서 내리는 점들이 뭉뚱그린 아치 군락, 우리가 밟는 눈의 소리와 그 뒤로 남겨지는 발자국들. 눈이 숲을 채워 갈수록 숲은 점점 빈 곳이 돼 버린다. 수많은 우리가 있었던 곳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3

· : 소리와 흔적은 온통 과거와 맞닿아 있어. 그래서 우린 불안정하면서 불일치하는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아니, 그것보다 먼저. 우리가 같은 곳에서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게 맞을까. 너는 눈을 밟으면서 숲속으로 들어갈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니. 뽀드득 뽀드득… 사박사박… 서걱서걱… 저기 먼 나라의 이누이트족 사람들은 눈을 가리키는 말이 수없이 많대. 그들은 이 계절을 우리와 어떤 식으로 달리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의 세계는 훨씬 복잡한 입방체로 되어 있겠지. 굴절되는 빛들은 더 많을 거야… 이것 봐. 우리가 남긴 서로 다른 모양의 발자국은 배열조차 다르잖아.

홍기수  rltn03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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