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서사 텍스트를 읽을 때면, 항상 드는 궁금증. ‘서사의 인물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무얼까, 싫어하는 것도 알고 싶구나.’ 앵글에서 벗어난 이들의 몸짓은 앵글 속에서 움직이는 것만을 볼 수 있는 우리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딘가에서 분명 끊임없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힘차게 도는 팽이처럼, 우리처럼.

서사 콘텐츠의 대양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스핀!

바야흐로 만인 서사의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 아래 다양한 디지털 영상 서사물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서사를 창작하거나 수용할 수 있다. 아울러 서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점점 입체화된다. 이를테면 OTT 서비스 및 온라인 영상 플랫폼과 같은 디지털 영역 속 무수한 서사 콘텐츠가 생성되면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못지않게 ‘누가 이야기하는가?’ 혹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이야기하는 방식’, 즉 스토리텔링의 방식은 시대적 환경과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다.

* ‘Over The Top’의 준말. ‘셋톱박스(Top)를 넘어서’라는 의미로, 개발된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에 따르면 서사는 ‘시간의 거푸집’이다. 시간은 서사적으로 엮여 형상화될 때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서사는 반드시 시간성이 포함되어야 존재할 수 있으며, 과거·현재·미래를 각각 아우를 수 있는 ‘물리적 시간에 따른 서사 전개 방식의 구분’이 필연적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의 이야기를 읽어낼 때 수행해야 할 서사의 기본 특성이자 전제이기도 하다. 한편, 일반적으로 서사의 확장은 ‘동일 인물이 이전 편의 설정·콘셉트를 단순 반복’하거나 ‘연속극의 후속 에피소드 생산’, 혹은 ‘이전 편의 설정을 빌려 다른 곳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그중 스핀오프는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

* 여기서 잠깐. 오늘날은 미디어 발달과 수용자의 취향 반영, 문화콘텐츠 산업의 위험 분산 및 비예측성을 고려해 콘텐츠 제작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스핀오프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 방식을 구분해 이해해야만 그에 대한 이론적 정립이 이루어질 것이다.

스핀오프(Spin-off) : 원작 서사의 인물(주로 주변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전개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원작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나 원작 서사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 

외전 : 원작 서사에 제외되거나 가려진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원작의 주요 사건과 설정을 그대로 취한다.

크로스오버(Crossover) : 별개 원작의 인물들이 한 편의 서사에 겹쳐 등장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으로, 서사의 ‘조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퓨전(Fusion), 하이브리드(Hybrid), 컨버전스( Convergence)와 통하는 개념이다.

시퀄(Sequel) : 원작 서사의 후속편 혹은 그것에 대한 전개 방식이다.

프리퀄(Prequel) : 원작 서사의 과거 이야기 혹은 그것에 대한 전개 방식이다. 원작보다 나중에 만들어지지만 시공간 배경이 원작보다 앞선다.

리부트(Reboot) : 서사 시리즈물에서 연속성을 배제하고 작품의 주요 골격이나 등장인물만을 취해 새로운 서사나 시리즈로 다시 재편성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리메이크(Remake) : 이전 서사의 새로운 버전으로, 원작의 대중성이나 특성을 활용하는 전개 방식으로, 리부트와 달리 리메이크는 단일 서사 단위이며 줄거리 및 서사 진행에 비교적 큰 변화를 갖추지 않는다.

스핀오프(Spin-off)의 사전적 정의는 파생 효과 혹은 파생 상품이다. 스핀오프는 사회 속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그중 문화 및 서사 콘텐츠 측면의 스핀오프란 이전에 발표된 드라마, 영화, 책 등의 등장인물이나 상황에 기초해 다른 이야기가 새롭게 창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때 스핀오프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주로 원전의 주변 인물에 해당한다. 스핀오프 작품은 원작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원작의 서사 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 서사 전개 방식들과 차별점을 갖는다. 특히 오늘날 파생 서사는 원전 서사에 크게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세계관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닌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서사의 스핀오프 과정은 상업적으로 유의미하다. 서사 창작 주체와 수용 주체 간 상호 이익 구조가 형성되면 안정적인 서사 향유 기조가 형성된다. 이를테면, 창작자는 기존 이야기를 통해 캐릭터 구상 과정을 어느 정도 생략할 수 있어 비교적 쉬운 작품 토대를 구상할 수 있다. 또한, 기존 서사의 팬이 일부 확보됨으로 인해 마케팅 측면에서 속편 제작에 수반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창작자가 갖는 이점과 비슷한 맥락으로 서사 수용자 또한 스핀오프 서사를 반긴다. 먼저 특정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 서사 및 성격을 구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원작의 서사 줄기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세계관에 관해 여러 인물이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로 접근한다는 점은 스핀오프 서사를 수용하는 이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서사 줄기에 대한 상상력의 성장은 곧 우리가 다양한 형태의 삶을 재고하고 우리의 식견을 확장하도록 한다.

스핀오프 서사의 처음과 지금, 그리고

국내외 최초의 스핀오프는 특정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구체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례를 논하기에 앞서, 초기 스핀오프 작품은 원작 서사 주·조연의 관계를 강화하거나 여운을 연장한다는 점이 강조됨을 알아두면 좋다.

서사 콘텐츠의 사상 첫 스핀오프 작품은 미국 라디오 코미디인 <The Great Gildersleeve>(1941~1958)다. 이는 짐 조던(Jim Jordan)과 마리안 조던(Marian Jordan)의 라디오 코미디 <Fibber McGee and Molly>(1935~1959)의 주변 인물인 ‘길더슬리브’를 중심으로 파생된 작품이다. ‘길더슬리브’는 원작의 주인공이자 습관적 이야기꾼 ‘피버 맥기’와 자주 다투며 비판하는 역할인데, 이는 중심인물이 이끌어가는 서사에 감초 역할을 하며 원전과는 다른 서사를 상상토록 돕는다. 이러한 기능적 측면과 해당 역을 소화해낸 배우의 역량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길더슬리브’라는 중요한 캐릭터가 탄생했으며, 나아가 그를 중심으로 창작된 스핀오프 작품까지 큰 인기를 끈다.

국내 서사 콘텐츠의 첫 스핀오프 작품은 신동헌·신동우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호피와 차돌바위>(1967)다. 이는 신동우 화백의 만화 <풍운아 홍길동>(1966~1969) 및 신동헌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홍길동>으로부터 파생된 후 큰 인기를 누린다. <호피와 차돌바위>의 주인공 차돌바위는 전작 <풍운아 홍길동>의 인물인 ‘홍길동’·‘백운’ 도사의 제자로, 그는 두 스승의 부재 이후 새로운 스승을 찾는 여정을 통해 직접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관객은 ‘차돌바위’가 이끄는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홍길동이 이루어내지 못한 사회의 부조리 타파를 기대하는 등 원전의 여운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오늘날은 스핀오프 서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과거에 비교해 크게 늘었다. 콘텐츠 창작 사업의 수완과 서사를 바라보는 다각화된 방법은 스핀오프 서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특히 OTT 플랫폼, 스트리밍 서비스 등 서사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점은 다양한 서사물을 원하는 수용자와 이를 해소할 창작자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며, 스핀오프가 다양한 서사의 연장을 도모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인간이 동질성과 같은 지속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 속에서 변화를 찾으며 개별적인 분화 과정을 추구하는 성향을 동시에 지닌다고 논한다. 나아가 이를 곧 유행이라고 칭한다. 커다란 중심 서사와 자잘한 세부 서사의 줄다리기는 세계관을 지속하게 하면서도 서사를 끊임없이 분화하게 해 새로운 영역을 발굴한다. 이는 곧 서사의 스핀오프 현상이 스스로 유행을 일구는 동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한편, 양측 서사 간의 관계를 떠나 우리 개개인은 커다란 서사 줄기에 대한 각자의 상상력을 펼침으로 서사의 스핀오프 유행에 가속력을 더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동안은 지금도 스핀오프 서사는 꾸준히 가속하겠다.

가속하는 서사 스핀오프

오늘날 유튜브를 켜면 우리는 서사물이 창작되는 만큼 그에 대한 수많은 영상 리뷰를 볼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영상 제목의 문구. ‘OO 시점으로 ~ 보기’는 우리가 거대한 서사 줄기를 수많은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욕구의 반증이다. 서사의 시점은 기본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특정 주체의 큼직한 인식 방식은 서사의 구심점이 되어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다양한 사건들에 의미를 채워 넣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원작의 커다란 서사 줄기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시점의 다양화는 하나의 서사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스핀오프를 택한다. 우리 개개인의 상상력이 발휘된 원작 서사에 대한 2차 창작, 혹은 공식 스핀오프 서사에 대한 요구와 수용이 낳는 또 하나의 세계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주변 인물의 시점으로 원전을 바라보는 것은 특정 캐릭터에게 서사를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었을 때 가능하다. 이에 대한 일례로 국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의 ‘변기태’는 원작 서사의 판도를 바꾸는 ‘이야기 반전’의 역할을 맡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아울러 매력을 갖춘 서브 주인공이 메인 주인공으로 거듭날 때 부여받는 또 다른 역할은 서사가 지닌 시점 설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것이 <수리남> ‘변기태’ 역할에 대한 스핀오프작 요구가 빗발친 까닭이다.

이뿐만 아니라, 원작 서사를 이루는 주체의 실질적인 수가 많을 때 우리는 시점의 다양화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DC 확장 유니버스’ 등 애초에 다양한 주변 서사를 통해 커다란 세계관을 확보하는 유니버스 체제의 서사 형태는 우리의 상상력을 여러 방면으로 끝없이 자극한다. 이는 유니버스 서사의 큰 줄기이자 핵심, 즉 크로스오버를 통해 마련된 거대 서사에 다양한 인물의 관점이 부여될 가능성 그 자체다. 일례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어벤져스라는 단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곧 주변 서사들로 구성되므로 커다란 서사에 연결될 수 있는 시점이 다발적으로 마련된다. 즉, 셀 수 없이 많은 구도로 서사를 바라볼 수 있는 시점 변화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는 무한한 서사 스핀오프의 초석이 된다.

한편, 프리퀄 형태의 스핀오프 서사는 원작 서사에서 회수하지 못한 복선을 다시 한번 재배치하여 서사 관객의 궁금증을 푸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일례로 세계관 속 수많은 메타포와 그에 대한 여지를 남긴 <해리포터> 시리즈와 해리포터 원전의 과거를 조명하는 스핀오프 <신비한 동물 사전> 시리즈 사이의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원전 속 ‘알버스 덤블도어’의 사망은 그와 관련한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환경으로 이끌었는데, 이는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알비스 덤블도어’라는 핵심 인물에 대한 구체적 서사는 세 가지 성물, 덤블도어의 코가 부러진 이유 등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축하는 경중 요소들을 보충 설명한다.

원작 서사에 놓인 사건과 이후에 창작된 스핀오프 서사의 사건이 연결되어 서사 감상에 더 큰 재미를 부여하는 서사 형태도 있다.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과 <고양이의 보은>의 사건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벌어지지만, 스핀오프 서사 <고양이의 보은>의 사건은 원작 서사에 포함된 일부 사건을 모티브로 확장된 것이다. 이 두 작품이 연결되는 지점의 중심엔 ‘바론’이 있다. 원작 <귀를 기울이면>의 ‘바론’ 인형은 말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나 주인공 ‘시즈쿠’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며 꿈을 실현케 돕는다. ‘시즈쿠’가 ‘바론’의 영향으로 쓴 소설의 내용은 곧 스핀오프 서사인 <고양이의 보은>인데, 이는 ‘바론’이라는 인물의 서사를 확장하기 위한 상상력의 실체다. 아울러 이는 하나의 서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물리적 공간’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의 예시이기도 하다.

원작과 스핀오프작 사이에 종종 나타나는 주객전도 현상은 서사 스핀오프의 오늘날 지속되는 상업적 가치의 특징적 일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슈퍼마리오’. 다양한 시리즈물이 파생된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본래 원작이 아닌 스핀오프작이다. ‘슈퍼마리오’를 탄생시킨 제작자 미야모토 시게루는 <동키콩>으로부터 <슈퍼마리오>를 기획했으며, 이는 원작보다 강한 스핀오프 서사가 구축되는 과정의 첫걸음이었다. 스핀오프 서사의 주객전도 현상은 새로운 창작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주목할만한 콘텐츠 사업의 가치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논한 서사 스핀오프를 바라보는 방식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스핀오프 서사들은 방대한 서사의 우주 속에서 점차 가속도를 높이며 스스로 역동성과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트랜스미디어 콘텐츠 시대에 빠질 수 없는 서사의 확장과 연장. 우리는 이제 스핀오프 서사를 점점 더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미국 여행할 때가 있었는데, 2층짜리 버스를 탔어요, 그때 어떤 여성분이 매니큐어를 칠하고 계셨는데. 만약 내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너무 사랑스럽게 그리고 싶은 인물인 거예요. 그렇게 보니까 싫은 사람이 없어요.”

영화감독 이옥섭의 여행담은 ‘누구나 주인공일 수 있다’라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누가 사연이 없냐는 듯이. 우리 대부분은 타자보다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에 익숙하다. 타자를 의식하며 자기객관화를 시도하지만 우리는 이로부터 실패를 경험할 때가 더 많다. 그렇다면 실패로부터 얻은 상실감은 어디에서 회복할 수 있을까.

스핀오프 서사는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인물을 조명한다. 우리는 서사의 스핀오프를 각자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즐기면서 중심 서사라는 거대한 중심으로부터 멀어진다. 이는 서사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느낀 피로를 무의식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시도들 아닌가.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으로서 삶을 살아내는 만큼, 서로를 주인공처럼 인식하며 돌 볼 필요가 있음을 헤아리게 하는 스핀오프 서사들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커다란 세계관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작은 태풍들 속에 기꺼이 빠져드는 건 어떨까. 사소하지만 강력한 스핀오프 서사의 매력을 타고 더 큰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보자.

홍기수  rltn03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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