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속 잡지 vol.2 : 틈새를 만드는 잡지

잡지를 찾아서

<와우>에서 기자로 생활한 지 어언 3년, ‘정기자’라는 타이틀이 있긴 하지만 실은 크게 잡지를 즐겨 읽는 애호가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와우>의 기자로 일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글보다는 잡지라는 화려한 겉모습에 이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잡지란 줄곧 다른 소설, 교양서와는 다르게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매우 힘든 책이었다. 어릴 적 즐겨 보던 <어린이 과학동아>는 글보다는 만화를 먼저 읽었고, 스무 살이 되고 처음 구매한 <릿터>도 끝내 눈에 안 띄는 책장 어딘가로 사라졌다. <와우> 한 권 한 권을 만들어내는 동안 한편으로는 서점에 가면 습관적으로 잡지 코너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와우>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점이 비슷한지, 새로 창간된 잡지가 있다면 들춰보면서 어떤 잡지인지 살펴보는 게 전부다. 이 과정에서 꽂히는-주로 화려한 표지를 가진-잡지들을 몇 권씩 구매하고, 실패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지난한 실패의 과정을 겪은 후 지금은, <와우>의 독자에게도 내보이고 싶은 잡지가 생겼다.

한편 -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인문학 탐구

<한편>은 민음사에서 연간 3회 발간하는 인문 잡지로, 2020년 1월 ‘세대’를 시작으로 인플루언서, 중독, 콘텐츠 등을 주제로 다루어왔다. 최근에는 ‘외모’를 주제로 9호가 발간되었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인문학 탐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이 잡지는, 200여 쪽의 짧은 분량으로 철학,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신진 연구자들의 글이 한 권을 구성한다.

<한편>의 존재는 창간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 무렵의 나는 지레짐작으로 주제가 ‘인문’이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니 쉽게 흥미를 잃을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년간 시도해 보지 않았던 <한편>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 생각했던 것은 최근 발간되는 <한편>의 주제가 꽤나 흥미로웠던 것이 크다. 이 잡지가 소개하는 글들은 최근의 사회 경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평소 독자가 관심 있던 주제라면 누구나 각각의 글들이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배경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편>의 필진이 ‘교수님’ 대신 활동가, 작가, 신진 연구자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필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생동감은 평소 논문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떠오르게 한다. 또 각각의 글이 바탕으로 두는 학문의 영역은 모두 다르지만, 오히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얄팍하게나마 인문학을 ‘찍먹’하고 싶은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읽었던 <한편> 9호, 외모 편이 바로 그랬다. TV 교양프로그램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안진의 「왜 TV에는 백인만 나올까?」와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상임활동가 일움의 「외모 통증 생존기」를 두고 보았을 때, 전자는 방송 현장에서 PD로 일했던 경험이 묻어나는 논문 같은 글인 반면, 후자는 활동가로서의 필자가 느끼고 경험했던 바를 옮겨놓은 수필 같은 느낌이었다. 두 글은 그 성격으로 따지자면 사실은 잡지라는 매개체가 아니었다면 다른 영역으로 분류되어 한 번에 묶어 읽는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을 터. 이런 경험들 때문에 계속해서 잡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한편>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방식에서도 다른 잡지와 차별점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동일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릿터>가 한국문학팀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잡지라면, <한편>은 다양한 팀에 소속된 여러 편집자가 모여서 기획되는 잡지다. 각 편집자가 주력으로 하는 분야의 글을 두세 편씩 나누어 맡고, 회의에서는 그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디자인적으로는 흑백의 간결한 텍스트 디자인 위에 매호 주제를 대표하는 서체에 변주를 줌으로써 차별점을 두고 있다. 책등이나 책의 겉표지에 사소한 변주를 주는 정도가 디자인적 요소의 전부다. 잡지의 내지도 비슷하다. 사진을 넣는 대신 일반적인 인문서와 비슷한 형태를 가져감으로써 독자의 피로함을 덜어냈다.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내지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편>을 접하고 난 뒤, 하나의 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지에 집중한 디자인이 오히려 잡지를 읽는 행위에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접하는 세상의 일부분을 정확한 말로 풀어쓴 글을 읽는 건 재밌는 경험이다.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금방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호가 궁금해질 정도면 탁월한 잡지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 해서 아쉬운 점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한편>에 담기는 글들은 모두 짧은 글인 만큼, 독자들이 전문적인 인문서에 기대하는 만큼의 깊이를 갖지는 못하기에, 더 전문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가벼운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인문서를 읽기 전 마중물 역할을 할 잡지로서는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한 언어로 포착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꼭 권해보고 싶은 잡지, <한편>이다.

매거진 - 균형 잡힌 브랜드를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 는 잡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잡지다. 나 또한 서점 잡지 코너에서 매거진 를 본 기억이 꽤 있다. 매거진 의 표지에서 ‘BRAND DOCUMENTARY MAGAZINE’라는 글을 볼 수 있듯, 하나의 브랜드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주제가 되는 브랜드들을 선정할 때는 일시적인 뉴스나 트렌드를 좇기보다, 아름다움, 실용성, 합리적인 가격, 브랜드 철학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균형 잡힌 브랜드를 선정하여 그 가치를 담는 것에 중심을 둔다. 2011년 창간호 ‘프라이탁’ 편을 시작으로 현재 92호, ‘아라비카’ 편까지 발간된 상태다. 발행주기는 연간 5~10회로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 편이다. 한 브랜드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인터뷰와 더불어 다각도에서 분석되는 브랜드의 철학과 역사, 창업 과정 등은 매거진 의 지속적인 인기의 이유로 언급된다.

지난여름, 신문사 자료실 책상 위에 놓인 홍대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매거진 의 편집장과의 인터뷰가 담긴 기사였다. 그 기사에서, 매거진 의 편집장 박은성은 매거진 가 책을 만드는 태도나 책이 소비되는 방식에서 잡지의 입장이 아닌, 단행본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은 매거진 가 갖는 다른 잡지들과 차별화되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잡지가 정기간행물이라는 점은 필연적으로 시의성과 관련된다. 그렇기에 기존의 잡지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이 바래지는 ‘과월호’가 되지만, 매거진 는 그 대신 오랜 기간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를 통해 ‘잡지’는 각각의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나 찾아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잡지에서 다뤄진 브랜드 중 변화나 새로운 방향성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면 개정증보판의 개념으로 새로이 펴냄으로써 독자가 잡지에 기대하는 시기적절함을 놓치지는 않고 있다. 또한, 브랜딩을 업으로 가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이 잡지를 통해 누구든지 쉽게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영문판으로도 발행하여 독자층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는 매거진 가 다루는 브랜드가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으로 브랜드를 소비하는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매거진 는, 잡지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잘 만들어진 잡지였다. 내가 읽은 ‘하와이’ 편은 하나의 도시를 깊고 넓게 다루는 ‘도시 시리즈’다. 매거진 의 도시 시리즈는 각기 다른 문화와 역사, 미감과 정서, 사람과 공간들이 어우러진 도시를 ‘브랜드’로 삼는다. 하나의 주제를 잡고 그 주제에 대해 일관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인 브랜드라는 특정한 대상이 정해진 것도 아닌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것은 더 난감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매거진 의 도시 시리즈는 "만약 이 도시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 그 해답을 찾는다. 도시의 생김새부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심지어는 가치관과 성격과 같이 도시를 사람에 빗대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기획을 거쳐, 매거진 가 발견한 도시의 가치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낸다. ‘하와이’ 편의 경우 하와이를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알로하’, ‘관광지’와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넘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하와이의 여러 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인터뷰한 기사들이 여러 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하와이’ 편의 경우 하와이의 전통춤인 훌라를 가르치는 기술인과의 인터뷰부터, 하와이의 대표 액티비티인 서퍼와의 인터뷰까지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인터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깊이 있는 질문과 함께 기사로 정리된 인터뷰를 읽다 보면 매거진 에디터들의 노련함을 자연스레 가늠해 보게 된다.

잡지의 발간에서 끝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획되는 발간 후 행사도 매력적이다. ‘하와이’ 편의 경우, 발행을 기념하여 하와이 관광청과 함께 《Faces of Hawaii》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시 일정과 함께 진행된 하와이 취재기를 주제로 한 토크 세션은 단순히 잡지를 읽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매거진 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넓고 깊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틈새를 만드는 일

다시 돌아와서, 본질적인 잡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서, 잡지를 ‘죽어가는 종이’에 빗댔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잡지를 포함한 저널리즘을 두고 ‘묘지에서 하는 운동회’라는 말에 심히 공감하면서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했다. 사실 잡지에 대한 고민은 교지 <와우>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잡지를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인 고민일 테다. 그에 대한 각자의 답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일 것이리라 생각한다. 잡지는 초 단위로 쏟아지는 기사 중에서 가장 템포가 느리지만, 그렇기에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조금은 빗겨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저마다의 잡지는 그 빗겨진 틈 사이를 포착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앞서 소개한 잡지들을 살펴보며 더 절실히 느꼈다. <한편>, 매거진 , 그리고 <와우>를 포함한 잡지들이 만들어 낸 틈새들에 기꺼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박지원 05ov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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