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아카이브의 최고 귄위자, 김달진 관장을 만나다

김달진(1955~)은 국내 미술 아카이브의 최초이자 최고 권위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5년간 근무한 뒤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 5년을 거쳐, 더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연구를 위해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미술 사이트 ‘달진닷컴(daljin.com)’과 잡지 ‘서울아트가이드’를 선보였고, 2008년에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하며 현재까지 한국 미술정보의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박물관·미술관 활성화와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자료 수집에 흥미를 가지셨습니다.

뭐든 모으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인쇄물을 모아 스크랩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어요. 지금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많지만, 제가 어릴 때는 인쇄된 도판을 보는 게 최선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청계천의 헌책방을 드나들며 책자와 잡지에 실린 서양 명화들을 선별해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10권짜리 대형 스크랩북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거창하게 ‘서양미술전집’이라 붙였어요.

본격적으로 미술 자료에 관한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2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국립현대미술관(경복궁관)의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상범, 변관식 정도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화가의 자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단순 취미 정도였던 제 수집벽에 한국 근대미술작가의 기록을 남기겠다는 직업적 소명 의식이 더해졌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미술자료수집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당시 한국 미술계에 아카이브 분야는 황무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제 스크랩북에 관한 얘기를 담은 자기소개서를 각 언론사의 미술 담당 기자와 유명 미술평론가, 각 학교 박물관장 등에게 무작정 보내봤어요. 딱 한 분이 연구실로 와보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경성 선생이셨습니다. 당시 홍익대 박물관장이셨던 교수님을 뵙고 보자기로 싸간 서양미술전집 10권을 내미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제 등을 두드리며 다음에 기회를 보자며 격려해 주셨어요.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부임하신 이경성 선생을 따라 1981년부터 1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의 자료실을 구축하셨습니다. 큰 보람을 느끼셨을 거 같아요.

1978년 월간 ‘전시계’에 입사해 ‘근대작고미술가인명록’, ‘근대미술단체 및 주요 전시회’, ‘우리의 근대미술과 일본’ 등을 연재하며 3년간 일하던 와중에, 이경성 선생께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관장님을 찾아가 미술관에서 일하게 해달라 말씀드리니, 서무과장과의 면담 후에 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후로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15년간 일하게 되었어요. 근무 당시 어떤 자료가 우편으로 들어오면 수집이 되고, 들어오지 않으면 수집이 되지 않는 미술관의 수동적인 구조를 보고, 나 스스로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 보존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인사동과 사간동 일대에 출장을 나가서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어요. 당시 서적뿐 아니라 전시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자료를 모았어요. 티켓이나 포스터 한 장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시의 타이포그래피, 대표작품, 입장 요금을 알 수 있거든요. 백팩도 없던 시절 쇼핑백을 매고 다니느라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있어요.

처음에는 직접 자료를 모으러 다녔지만, 제 이름이 알려질수록 작가나 기관에서 제게 자료를 보내주는 역전 구조가 형성되며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었어요. 미술 자료를 수집해 통계를 내고 분석한 뒤 리포트를 만들자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 - 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이 큰 반향을 일으킨 후로 미술관을 재직하며 여러 글을 썼고, 1995년에는 그간의 글들을 모아 편집하여 ‘바로보는 한국의 현대미술’이란 책을 냈어요.

미술계에서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셨지만, 미술관에서의 대우는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15년간 근무하였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급은 없었고, 3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오히려 별정직 7급에서 기능직 10등급으로 강등되며 임금이 삭감되었습니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어요. 다행히 1996년 가나화랑(현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이 저를 가나미술문화연구소 자료실장으로 발탁해주셨고, 후에 총괄팀장으로 승진해 인터넷 사업을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연구소, 잡지사, 박물관을 가지고 일하고자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말씀해주신 대로 현재 연구소, 잡지사, 박물관의 대표로 계십니다. 먼저 연구소와 잡지사에 관한 설명 부탁드려요.

2001년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차리며 독립했고, 이듬해 미술 잡지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어요. 연구소의 기본적인 업무는 서울아트가이드를 발행하는 것과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진행하고 결과물을 보고하는 일이에요. 현재 주력하는 프로젝트로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하는 두 가지 사업인데, ‘원로 작가 디지털 아카이브’의 데이터를 검수 및 보완하는 작업과 한국미술의 전시 및 미술단체 자료집을 제작하는 일 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미술관에서 프로젝트를 의뢰받는데, 최근에는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전남 미술사 기초연구 사업’,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울산미술사 기초연구 사업’, 그리고 천안시립미술관에서 ’천안미술사 기초연구 사업’을 받았어요. 연구소가 미술계에서 얼마나 신뢰받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죠.

관장님께서는 잡지를 직접 만드실 정도로 잡지와 인연이 깊으신 거 같아요. 『서울아트가이드』의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사에서 근무했고, 가나아트센터에서 대략 6년 정도 자료 실장으로 있으면서 『가나아트』 잡지에도 관여했습니다. 그러면서 잡지의 중요성을 알았고, 가나에서 독립하면서 2002년 1월에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죠. 처음에는 잡지 형식의 무가지에 불과했지만, 점점 내용이 많아지고 새로운 콘텐츠가 포함되면서 지금의 형태로 발전했어요. 작가들이 전시를 하면 자기를 알려야 하는데, 각 잡지에 광고하려면 광고료가 많이 필요했고 신문사에 발송해도 기사화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래서 작가들을 최대한 널리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시장을 인사동, 청담동 등 구역별로 나누어서 지도를 만들고, 한 달 동안의 전시 일정을 실어봤어요. 처음에는 기반이 없어 고생했지만,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며 지금은 광고료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광고를 통해서 홍보도 되는 선순환 시스템을 형성한 거죠. 또, 『서울아트가이드』에는 고정 필진 이외에도 평론가, 큐레이터, 연구자들 등 다양한 외부 필진을 섭외하여 전문성 있는 기사를 실어왔는데, 이후 우리 연구소와 이들 간에 꾸준히 교류하며 서로 도움이 된 경우가 잦았어요.

2008년 그간 수집하신 자료를 모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여셨습니다. 아키비스트의 박물관인 만큼 매 전시에 연구와 조사가 빠지지 않는 거 같아요.

당시 40여 년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하며 현재까지 매년 많은 전시와 관련 연구를 진행했어요. 한국미술에 관한 특정 주제를 세워 자료에 기반한 미술사적 전시를 꾸민 뒤, 이를 갈무리해 학술도서도 발간해왔습니다. 도서에는 전시에 관한 증거물을 제시하고 연표를 비롯하여 전문가 집단의 설문조사와 관련 자료의 목록화도 함께 거쳐요. 박물관 2층에서는 일부 자료들에 관한 열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끼시는 박물관 소장품이 있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잡지인 『서화협회회보』 1호(1921)와 2호(1922)를 꼽겠습니다. 2호를 끝으로 종간한 『서화협회회보』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했더라는 얘기 등 풍문만 돌았지 실물이 확인되지 않아서, 박물관이나 한국근대미술 연구자들도 복사본을 참고자료 삼아 희귀자료로 회자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자료전》에서 서지학자 안춘근 선생이 소장하던 『서화협회회보』 원본이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주무자로 『서화협회회보』를 대여해서 전시에 쓴 뒤 돌려드렸었는데, 시간이 흘러 바로 그 자료가 코베이 경매에 나온 것을 제가 낙찰받았습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근대서화 특별전(2019)에 대여해주기도 했었고, 우리 박물관에 얼마 전 입사한 직원이 서예, 철학을 공부한 분이라 옛날 문체로 된 『서화협회회보』를 요즘에 맞게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홍대 근처에서 4년간 박물관에 세를 들어서 운영하시다가, 2013년 종로구 홍지동에 정착하며 자료 2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셨습니다.

지난 2010~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공간지원사업을 통해 건물의 전세보증금을 지원받았어요. 하지만 일몰제*에 따라 전세금 중 8억여 원이 회수되는 바람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언론에도 많이 노출됐죠. 당시에 경기창작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구예술발전소 등 수준 있는 기관들이 장소 제공의 뜻을 밝혔으나, 아카이브 기관은 접근성이 특히나 중요하다는 생각에 서울 외 지역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150평 공간을 사용하다 86평 공간으로 좁혀서 이사하는 바람에 자료 2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기증했습니다. 아쉽지만 자료가 잘 활용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

연구소와 박물관의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그 서비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소장 자료 대부분은 박물관 홈페이지(daljinmuseum.com)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운영하는 e뮤지엄에서 검색할 수 있는데, 저희 자료 중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D폴더’입니다. 가령, ‘천경자 D폴더’라고 하면 천경자와 관련된 도록, 팸플릿, 작가론, 전시 기사, 뉴스 등 모든 자료를 제가 하나하나 스크랩북처럼 모아둔 거예요. 천경자 선생은 D폴더가 8권이나 되죠. 현재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 330여 명의 D폴더를 마련해 가지고 있어요. 인터넷 검색도 안 되고, 우리만 가지고 있는 자료이다 보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때 대여해 가고, 국내외 연구자들도 많이 찾습니다. 자제분들이 부모님 자료를 찾으러 오기도 하고, 해외에서 오신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아르코에 앞서 우리 박물관에 먼저 들러요. 다만, 공간이 좁고 자료가 방대하여서 보고 싶은 자료가 있으면 예약하고 오셔야 해요.

민간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거 같습니다. 가장 힘드셨던 점이 무엇인가요?

가장 큰 문제는 물리적인 공간의 부족입니다. 제 소유의 박물관을 얻은 지금도 일부 자료는 박물관 근처에 월세를 내가며 임시로 마련한 공간과 경기도 여주의 컨테이너, 그리고 제 사옥에 보관 중인 상황입니다. 아무리 자료를 취사선택해서 쳐내어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오래된 자료는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보관해야 하는데 재정 지원이 충분치 않아요. 이런 상황은 모르고 요새 스캔은 기본 아니냐, 검색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 이용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말들을 들으면 김이 새요.

저희 작업을 보존의 가치가 아닌 이용자의 숫자로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도 속상합니다. 외국에서 온 미술계 인사들은 우리 박물관 아카이브를 보고 크게 놀라곤 해요. 어떻게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한 개인이 지금까지 해 왔냐는 거죠. 제가 하는 작업은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박물관과 연구소를 운영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예산은 어떻게 조달하시나요?

재정의 대부분을 월간지인 ‘서울아트가이드’의 광고 수익으로 조달 중입니다. 박물관 후원회의 도움도 일부 받고, 간혹 프로젝트도 수행하지만 이제 한계에 봉착했어요. 코로나 이후 잡지의 광고 수익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자료의 디지털화 작업도 예산이 많이 들어 막막합니다. 현재 직원 10여 명의 인건비도 아직까지 밀린 적은 없지만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에요. 공공을 위해 운영되는 자료박물관과 연구소를 언제까지 개인이 버티며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선진국이라면 미술의 토대에 해당하는 아카이브와 사료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관리돼야 합니다. 기초를 단단히 다져야 미술시장도 크고 미술 한류도 뻗어나갈 텐데 답답합니다. 많은 미술관의 한 해 예산 중 자료 구매비가 1%도 안 돼요. 연구나 전시할 때에는 자료가 필요해서 찾지만, 자료 그 자체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간 아카이브 관리에 있어서 표준화 문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해오셨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듯합니다.

미술계에는 아직도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개발,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민간에 적극적으로 배포하여 사용을 권장, 지원해줄 기관이 없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연구지원사업을 비롯하여 관련 데이터를 생산할 미술기관이 각자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용한다면 예산이 낭비되고, 기관끼리 상호검색도 어려울 거예요. 국립현대미술관이 국가 대표 미술아카이브인 미술연구센터를 가지고 있고 미술관 협력망 사업을 진행해왔으니 표준화는 앞으로 의지를 다지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현재 예술자료 관리를 위해 AMS(Archive Management System)를 운용하고 있는데, 예전에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차원에서 2018, 2019년 두 차례 공유를 요청했으나 프로그램을 개발한 업체의 보호를 이유로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이와 달리,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KOLAS(공공도서관표준자료관리시스템)를 통해 공공도서관을 네트워크화하여 민간에서도 같은 형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표준유물관리시스템을 만든 후 이를 밀도 높게 구축하고 있는데, 한국박물관협회를 통해 인력과 소장품 촬영까지 지원하여 e뮤지엄을 통해 누구나 자료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못하니까 아쉽다는 거죠. 국립현대미술관의 AMS가 하루빨리 민간에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만든 후의 운영도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할 거 같아요.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완성해서 운영할 것이냐가 더 큰 문제예요. 예를 들어, 2000년부터 김대중 정권 시절에 정보화 사업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큰 예산을 들여 ‘DA Arts’라는 한국미술작가 500인의 공간을 만들었어요. 작가들 500명에 대한 미니 홈페이지 같은 것이었는데 만들어 놓고 운영이 잘 안 되었습니다. 사이트를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없었거든요. 작가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이에 관심이 있는 작가가 있는 반면, 나이 드신 분들 대부분은 관리하기 번거로우니 유명무실해졌죠. 사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리 미술연구소에 이 일을 업데이트 해달라고 요청하여 MOU까지 맺어 신문에 보도까지 되었는데, 그 후에 그쪽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었어요. 관심 밖으로 밀려나니까 없었던 일처럼 된 겁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희 달진닷컴은 이제까지 리뉴얼을 두 번 했으나 그 이상은 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홈페이지에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이걸 전부 리뉴얼하려면 저희 재정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요. 뒤뚱거리며 그냥 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개인적인 유튜브 ‘DJ Muse’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영상 아카이브로 기능하는 것 같아요.

영상으로 자료를 남기는 시대에 발맞춰 2018년 말에 시작했습니다. 네 가지 종류의 콘텐츠를 일주일에 10여 개씩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어요. 부족한 재원을 유튜브에 쓸 수는 없기에 제가 직접 편집해서 올립니다. 큰 미술관이나 기관의 동영상만큼 퀄리티를 뽑아낼 수는 없지만, 이 기록들도 축적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끝으로 한국 미술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예전에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방명록에 남겨준 말인데,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내 일은 내가 죽어야 끝이 날 수밖에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해요. 수집해서 기록을 남기는 입장이니 끝이 없는 일이거든요. 이걸 저 혼자 짊어진다는 생각에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미술 아카이브는 김달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후세에 남겨줘야 하는 공유 재산입니다. 앞으로 미술계에서 미술 자료에 관한 논의점을 구체적으로 끄집어내서 다 함께 고민을 해 주면 좋겠어요. 모든 박물관에서 큐레이터와 별도로 아키비스트를 최소한 한 명 채용해야 한다는 법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게 그 시작이 될 수 있겠네요.

학우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제가 종이 쪼가리 오려서 모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느냐 걱정하고,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일인자가 되었잖아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예요. 더불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한 분야에서 미쳤다는 소리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때,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밑에서부터 꾸준히 차근차근 쌓아 올리세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도 어떤 목표를 만들어서 거기에 매진해서 달성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메꿔갔던 사람이에요. 자기가 조금 손해 본다고 생각되어도, 노력했던 모든 것은 결국에는 다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민태홍 mr.podob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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