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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인 순간들책 <태도에 관하여> / 문화공간 <탈영역 우정국>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태도가 존재한다. 태도는 한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담은 그릇과도 같다. 그렇기에 어떤 이의 태도를 이름 지어 부르는 것은 꽤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의 바른 태도, 성실한 태도, 호의적인 태도. 혹은 무례한 태도, 성의 없는 태도, 비판적인 태도. 다양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막상 나의 태도에는 쉽사리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다. 나의 태도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까?

 

임경선의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에서는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태도들을 소개한다. 바로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다. 다섯 모두 살아오면서 한 번은 중요하다고 들었던 단어들일 것이다.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친구의 잘못은 관대하게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성실하게 맡은 바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공정한 심판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이 태도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태도에 관하여>는 이 다섯 가지 태도와 인생의 연관성에 대해 알려주고, 우리의 태도는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저자가 소개한 다섯 가지 태도 중, ‘자발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1

>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 (중략) 나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의 밖을 둘러봐야 했던 것이다. <

저자는 자아 성찰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비참함을 느끼고, 여행이 끝난 후 스스로 일의 기능성을 알아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가끔 가장 중요한 일일수록 우리 스스로 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저자처럼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거나, 진정한 나의 진로를 찾기 위해 휴학을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그러하다. 여행이나 휴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낯선 상황들이 해답을 안겨줄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상황들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찾아오기 힘들다. 여행이 주도하는 여행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여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빠듯한 학기 중에 ‘고생한 나에게 주는 위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내가 상상한 여행은 이랬다. 과제, 마감, 수업. 나를 속박하던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더 들어보지 않아도 알겠지만, 꼭 청춘 영화 줄거리와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과제와 마감은 떨쳐버리려야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관광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괜히 시선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달리려던 계획과는 달리 정해진 시간까지 자전거를 돌려줘야 했기에 한 군데만 맴돌았다. 밤이 되면 어둡고 조용한 골목을 혼자 걷는 일이 무서워서 8시에는 숙소에 들어갔다. 상상했던 낭만, 나와의 대화 같은 것들을 길게 끌어가기가 힘들었다. 진정 나와의 대화를 하고자 한 여행이었다면, 순간순간의 우연적인 상황들이 아닌 나의 자발성이 개입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우연에 관한 환상은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전공에 관해서도 그랬다. 미술대학에 재학 중인 나는, 유치하게도 예술가는 어느 날 밤 영감을 받아 한순간에 대작을 탄생시키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한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예술이 어떻게 치밀한 계획과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일 거라고, 예술에 관한 나의 믿음은 우연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믿음이 깨져버린 순간은, 저자가 자발성에 대해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이라며 이야기하던 부분을 만나면서부터였다.

 

> 예술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밤늦게까지 술이나 담배를 하면서 글을 쓰고 글이 도중에 풀리지 않으면 영감을 얻겠다는 핑계로 훌쩍 여행을 떠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으로 출근했다. <

우연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그만큼 자발성을 잃는 것과 같다. 예술가들의 우연은 ‘영감’이라는 단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감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발전해나가지 않으면 결국 존재할 수 없다. 새벽 두 시쯤이 되면 영감이 찾아와서 나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미신은 이제 그만 버리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천재’라고 불렸던 수많은 이름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도 정말 자발적인 노력으로 천재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 것일까?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는 내 나이에서 열 살을 빼도 모자란 나이에 대단한 일을 해내는 엄청난 사람들밖에 없었다. 타고난 능력이 없었다면 그것들이 어떻게 실현되었을 것이란 말인가.

 

> 애초에 완벽한 선택, 완벽한 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충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정답 같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숱하게 실패한 선택들이 공존했을 것이다. <

천재는 어쩌면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가 막힌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은 모두의 바람이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 ‘천재’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대부분은 저자의 이야기처럼 자발성을 갖고 자신의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실패 속에도 끊임없이 시도했던 사람일 것이다. 물론, 평범한 우리와는 달리 날 때부터 특출난 진정한 천재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이야기이니 쿨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결론은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비현실적이라 느껴졌던 이 진부한 말이 사실은 가장 현실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천재가 된다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천재가 되는 법은 이제 알았는데, 늘 가로막히는 이유는 ‘자발적이지 않은 나’ 때문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자발성을 잃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나에 대한 신뢰 부족 또는 일 자체에 대한 흥미 부족.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나름대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때는, 작게는 아르바이트, 워크숍, 세미나, 크게는 인턴, 취업 등에 지원할 때 고민하다 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지원할 텐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시도했을 때도 낮은 자존감 탓에 자발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가기 힘들어진다. 일 자체에 대해 흥미가 부족할 때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이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응답한다.

 

>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

우리는 사는 동안 계속해서 진로와 적성을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스스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나와 꼭 맞는 한 가지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게 되든 나와 어울리도록 스스로 만들어나갈 때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이 되면 싫어진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반대로 일이 좋아하는 것이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앞뒤만 바꾼 문장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주체를 어디에 두는지가 결국 자발적인 삶을 완성한다.

 

2

태도란 무엇일까? 내 삶의 태도를 생각해보자니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해서 작은 태도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나의 대학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업에서의 태도였다.

어느 학교에서든 어느 과목에서든 태도 점수가 빠진 것은 본 적이 없다. 대학에 오기 전에는 태도 점수란 것이 하찮았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중요한 나의 수학(修學) 점수에 주관적인 태도 점수는 도대체 왜 넣는 것인지 불만이었다. 그런 표출되지 않은 불만들을 선생님들도 알고 계셨기에, 대부분의 학생은 태도 점수에서 모두 만점을 받았다. 그저 선생님 눈에 거슬리지 않게만 행동하면 만점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태도 점수였다.

대학에 와서 놀랐던 점은 태도 점수가 꽤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태도에 대한 분류도 교수님마다 달랐다. 태도에 있어서, 어떤 교수님은 성실한 출석을 보셨고 어떤 교수님은 질문이나 발표와 같은 수업 참여를 보시기도 했다. 그 하찮았던 태도 점수를 보는 기준이 제각각이고, 모두가 만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태도 점수를 향한 나의 태도는 이전과 같았다. 거슬리지 않게만 행동하기. 그랬던 나의 태도가 바뀌게 된 것은, 한 수업에서 ‘탈영역 우정국’을 방문한 후였다.

탈영역 우정국은 우체국 통폐합으로 말미암은 유휴공간이었던 창전동 우체국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리니어 콜렉티브의 장기 프로젝트이다. 5년간 사용허가를 받고 2015년 6월 개국한 우정국은 현재까지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탈영역 우정국은 영역을 벗어난 우체국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예전 공공기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외관은 우정국이라 불리기에 충분했고, 그런 모습이 주위의 높은 건물들과는 너무 달라서 영역을 벗어난 듯했다. 네모반듯한 베이지색 벽돌로 만들어진 2층짜리 우정국은 오히려 다른 문화공간에 비해 너무 평범해서 그 속이 더욱 궁금해졌다.

작은 입구와 좁은 통로를 통해 우정국 1층으로 들어섰다. 막힌 곳 없이 트인 공간이 여러 용도로 쓰이기에 알맞아 보였다. 본래 우정국의 정문이었던 큰 입구를 막고, 옆의 문을 입구로 고쳤기에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었다. 크고 편한 입구를 남겨두는 것보다도 그 안의 전시물을 배려해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입구가 막힌 자리에는 멋진 포스터 작품이 있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의 <운동의 방식>이라는 전시 포스터였다. 전시장 안 작품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본래 작품들에 정해진 자리는 없겠지만, 우정국의 공간과 작품들이 정말 잘 어울려서 그랬다. 특히 우정국의 금고까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 자리 잡은 작품은 관람자에게 몰래 해킹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옛날 금고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에 전시되니 작품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정국은 작은 공간 하나까지 놓치고 있지 않았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다 살짝 눈을 찌푸렸다. 생각지 못한 햇빛 때문이었다. 1층과 같은 전시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테라스와 이어져 있었다. 2층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테라스에서는 우정국 주변 환경이 훤히 보였다. 울타리 너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높은 아파트와 작은 상점들을 드나드는 주민도 엿보았다. 그런 풍경 속에서 테라스에는 입체 작품 하나가 전시되어 있었다. 하얀 벽의 전시장이 아닌 테라스에서 본 작품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테라스 한쪽에는 잠시 휴식을 할 수 있는 나무 의자와 탁자도 있었다. 의자는 조금 삐뚤어져 있고, 탁자 위에는 재떨이에서 담배 향이 살짝 나는 것이 누군가 이곳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았다. 우정국의 테라스에는 여유와 사색이 머물고 있었다.

테라스를 지나 2층 전시장으로 향했다. 막힌 곳 없이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이루어져 있던 1층 전시장과는 다르게, 2층 전시장은 방이 여러 개였다. 각 방에는 비슷한 특색을 가진 책들과 포스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층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간에,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이루어진 2층 전시장은 좁다기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책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정국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는, 아쉬움보다 ‘다음에는 이곳이 어떻게 꾸며질까’하는 기대로 한껏 들떴다.

 

탈영역 우정국은 내가 여태까지 방문한 곳 중 가장 자발적인 공간이었다. 예술가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우정국을 찾기도 하고, 우정국이 먼저 예술가들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상호 간의 자발성으로 열리게 된 프로젝트들에서는 다양한 작업들이 펼쳐진다. 전시, 공연, 워크숍 등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우정국이라는 공간 안에서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다.

유휴공간이었던 이곳이 탈영역 우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발성이 필요했다. 2년 전 이곳을 자생적인 문화공간으로 탄생시킨 리니어 콜렉티브의 자발성, 우정국에서 자신의 예술 작업을 펼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발성, 그리고 그런 우정국에 발걸음 한 사람들의 자발성. 그런 태도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탈영역 우정국이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분명 거슬리지 않게만 행동하는 곳이 아니었다. 우정국과는 너무 다른 나의 태도가 떠오르면서, 바뀌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언제나 행동은 생각을 따라갈 수 없는 법. 그렇다고 우정국을 방문한 이후 나 자신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우정국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생겼다. 어떤 일에 도전할 수 있을지 주저하고 있을 때는, 공고를 확인한 당일 오후까지가 입찰 마감이었음에도 창전동 우체국을 입찰한 리니어 콜렉티브가 떠올랐다. 작업을 하다말고 ‘이쯤에서 그만둘까’하는 유혹이 찾아올 때면, 탁 트인 우정국에 전시되어있던 작품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우정국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우정국답지 않은 그곳을, 타의에 의해 정해져 있던 이름을 벗어나 행동하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때 임경선 작가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정국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 탈영역 우정국처럼 나도 나의 의미를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이미 영역을 벗어난 우체국을 보며 언젠간 나에게도 올 그 날을 믿기로 했다.

 

나의 삶은 정말 나에게 온전히 맡겨져 있을까? 때로는 나의 자발성이 아닌, 타의의 자발성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연을 바라지 말자. 우연은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발적인 노력 끝에 얻어지는 보상이기에.

이민지  leereum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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