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생물학과 가기는 어렵겠다.”

많고 많은 공포증 중에 왜 하필이면 조류 공포증이었을까요. 조류 공포증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지금 진화학과 유전학을 연구하는 생물학도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장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생물학도가 되고 싶었던 꿈 가득한 16살에게 저 말은 너무나도 가혹했다는 겁니다. 지원하려고 했던 고등학교의 원서 마감 날, 결국 저는 끝끝내 일 년간 준비한 원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적당한 환멸감과 다시는 생물 공부 따윈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사춘기의 곱지 못한 마음으로, 전 그렇게 꽤 오랜 시간 겉으로 보기엔 티 나지 않는 조용한 절망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도 또 다른 길을 찾았고, 저는 제게 조류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완전히 잊을 정도로 괜찮은 삶을 살았습니다. 언젠가 나이가 꽤 들면, 66세의 나이에 법관을 그만두고 물리학 박사가 되었다는 멋진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려면 꼭 젊어서 이 조류 공포증을 극복해둬야겠다는, 조금은 오기 가득한 다짐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매년 어느 일정 시기가 다가오면, ‘조류 공포증 극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인 주간에 새 사진을 많이 봅니다. 공포증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포의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이거든요. 근데 그냥 보면 무서우니까 적당히 진화학과 관련된 생물학책을 읽어요. 생물학 전공 서적도 좋지만, 특히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인간의 유래>, <종의 기원>을 즐겨 읽었습니다. 새 사진이 엄청 많기도 하고, 좋아하는 진화론 이야기가 곁들여 있다는 장점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2023을 맞이하여 신년 기운 가득 받아 시작한 다섯 번째 조류 공포증 극복 프로젝트를 하며 읽었던 <인간의 유래>에 소개된 공작이라는 새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해요.

새로운 이론의 등장과 공작

마음 같아서는 공작 사진을 직접 실어보고 싶지만, 아직은 어려운 일이에요. 대신, 여러분께 소개할만한 만화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실제로 다윈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공작 꼬리의 깃털 모양은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라는 글을 적었다고 해요. 아, 약간의 tmi를 남발해보자면, 수컷 공작의 꼬리 깃은 엄밀히 말하면 꼬리가 아닙니다. 꼬리 위의 허리에 달린 깃이 우리가 잘 아는, 암컷을 유혹하는 데에 쓰인다는 화려한 부채꼴 모양의 깃입니다. 실제 이 허리 깃은 수컷 공작의 몸보다 두 배나 더 길다고 해요. 만화에서 공작이 제대로 날지 못했지요? 바로 이 허리 깃이 비행을 위한 용도로 진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것만 같은 비행 능력이 공작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동물원에서도 공작의 고운 꼬리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초에 날지 못하도록 날개 근육을 끊어둔다고 해요. 생존을 위한 비행보다 암컷을 유혹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걸까요?

암컷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 수컷 공작은, 놀랍게도 한 마리의 아내만을 바라보는 사랑꾼이 아니에요. 이 아름다운 수컷들은 동종 수컷들끼리 미모로 대결을 한 후, 이 경쟁에서 이긴 단 한 마리의 수컷만 여러 명의 암컷 공작들과 교미하기 때문이에요. 일부다처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암컷들이 자식을 낳더라도 함께 육아하지 않고 다시 솔로 라이프를 즐기기 때문에 대단히 독립적인 생물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서 다윈은 아주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왜 수컷 공작은 암컷과 다르게 이토록 화려한 꼬리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존 법칙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거든요. 잠깐 다윈의 가장 잘 알려진 이론인 자연선택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자연선택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 살아온 방식을 설명해주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생물이 진화해왔음을 설명해 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이론이지요. 하지만, 공작의 사치스러운 꼬리는 자연선택과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몸통의 두 배나 되는 긴 꼬리는 공작을 날기에 부적합한 생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꼬리의 사치스러운 눈꼴 무늬와 햇빛을 받으면 온갖 이목을 다 받게 해주는 현란한 색채. 포식자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일 아닌가요? 도대체 왜 공작은 생존에 이득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꼬리의 진화에 이렇게나 진심을 다해 진화하게 된 것일까요? 다윈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을 고민한 끝에 <종의 기원> 마지막 부분에 좁은 지면을 할애해서 한 가지 이론 체계에 대한 구상을 마쳤습니다. 바로 ‘성 선택 (sexual selection)’이에요.

2. 이형성, 왜 암컷과 수컷이 다른가

성 선택 이론은 약 12년 뒤 <인간의 유래>라는 책에서 구체화 되었습니다. 다윈이 주장한 이론들의 핵심은 진화론은 크게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과 ‘번식을 위한 성 선택’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론에 관해 이야기해보기 전에 조금 더 원초적인 질문부터 해결해야 해요. 암컷과 수컷은 왜 달라졌으며 우리는 왜 암수를 구별해야 하는 걸까요?

암수의 구분 기준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기준은 “생물학적 관점의 성 구분”이에요. 생물학에서 성은 오직 생식세포의 형태에 따라서만 결정됩니다. 암수를 구분하는 데에 그 외의 기준은 없습니다. 만약 생식세포가 운동능력을 갖고 있고, 오로지 자기 유전자의 절반만 가진 최소 요건만 갖춘 상태라면 우리는 이 생식세포를 정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정자를 만드는 개체를 수컷이라고 판단합니다. 반대로, 생식세포의 크기가 크고 세포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각종 영양성분을 갖추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난자라고 부르고, 난자를 만드는 개체를 암컷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세포의 성장을 담당하는 난자를 가진 개체가 양육의 책임을 더 많이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암컷은 언제나 양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수컷은 암컷에 비해 양육의 책임이 크지 않다 보니 번식 자체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컷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암컷에게 번식을 목적으로 한 구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애에도 수컷 대부분은 일평생 암컷을 만나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5%도 채 되지 않아요. 암컷은 자손을 양육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번식의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수컷에게는 그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인간들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갖추고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만들며 그 약속을 지켜나가요. 그러나 자연계 속 대부분의 동물 사회에서는 위에 말했던 수컷 공작처럼,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명의 암컷의 선택을 받기 마련입니다. 일부다처제 제도가 만연한 것이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수컷들은 더욱더 ‘구애’를 통한 암컷의 ‘선택’을 유도하고자 노력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구애하기 위해 진화한 사치스러운 외형이 생존을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번식을 위해서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생존에서 살아남더라도 암컷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자기 유전자를 지닌 자손을 남길 수 없으니 그 유전자는 세상에서 잊힐 결말이 정해진 슬픈 존재가 돼버립니다. 결론은, 생존의 단점을 상쇄시킬 만큼 번식을 목적으로 한 진화는 생물 종에 큰 장점이라는 것입니다.

3. 공작의 꼬리가 사치스러운 이유, 성 선택

이제 다윈의 주장에 따라서 공작의 비합리적이고 사치스러운 공작 꼬리에 관해 설명을 해볼게요. 다윈이 공작을 비롯한 수많은 수컷과 암컷들의 외형적 차이를 보고 던졌던 물음은 바로 ‘수컷이 밝은 신체 색을 띠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였어요. 암컷에 대한 이해보다는 수컷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보다 장식적인 개체들이 거의 수컷들이긴 한데, 반대 성 앞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과시할 때만 이 증거는 가장 완전해진다.”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형성이라 불리는 수컷과 암컷의 형태적 차이가 클수록, 수컷의 과시 행위 빈도가 빈번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시 행위가 성공할 때, 비로소 암컷의 선택을 받고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는 암컷이 자손 번식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성 선택이론의 핵심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 다윈의 성 선택은 거의 맞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즉, 공작의 꼬리가 사치스러운 이유는 성 선택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이 설명은 옳은 설명이 되는 것이지요. 현대에 와서는 자연 선택보다 성 선택과 관련한 연구가 압도적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 진화학계의 핫이슈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공작 꼬리에 관한 설명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무려 1세기가 걸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치열한 연구와 토론 끝에 정립된 자연선택과는 상반되게 성 선택 이론은 거의 무시당한 상태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어요. 암컷의 미적 취향 혹은 미적 선호 자체가 수컷의 화려한 외양을 설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써 작용했다는 성 선택은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4. 자연선택과 성 선택의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성 선택은 무시한 채, 자연 선택으로 공작의 화려한 꼬리에 관해 설명하고자 노력했어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전형적인 다윈주의자였던 러셀 월리스였습니다. 그는 수컷의 색채와 외형이 과시적이고 사치스러운 이유가 바로 보호색이 만든 선택압의 결과라고 보았어요. 다윈과는 반대로 수컷이 아닌 암컷에 포커스를 맞추고 ‘암컷들의 신체 색이 밝은 빛을 띠지 않는 선택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했던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의 적응 메커니즘에 입각합니다. 번식의 역할은 암수가 상이하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포란과 양육을 담당해야 하는 암컷은 필연적으로 보호색의 필요성이 수컷보다 짙다는 것이 월리스의 주장이었지요. 또, 그는 수컷들의 장식품은 수컷들이 남아도는 잉여의 활력 때문에 만들어낸 것이며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어요. 이제는 그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생물종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의 주장을 재반론하는 과정에서 얻은 증거들은 성 선택을 지지해주는 강력한 근거가 되기도 했어요.

오리와 관련한 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대전에서 살았던 저는 카이스트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프로젝트 활동 때문에 거의 주말마다 갔던 것 같은데요, 카이스트는 신기하게도 학교 내에 흰색 거위 가족과 청둥오리 가족이 돌아다닙니다. 거위 연못이라 불리는 큰 호수도 있어요. 그것 때문에 대전에서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나들이 장소로 카이스트가 꽤 유명합니다. 물론 저는 같은 이유로 카이스트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거위랑 오리랑 길 가다 마주칠까 늘 노심초사했었지만요. 제가 다른 조류 중에서도 특히 오리를 무서워하는 이유는요, 오리의 특성에 대해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은 오리를 어떤 생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의 수컷 청둥오리는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이 과정에서 암컷 오리가 죽는 경우가 빈번할 정도로 그 습성이 무섭습니다. 얼핏 보면 수컷의 강압적인 암컷 쟁취의 과정은 성 선택의 반례인 것 같지만 해부학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어요. 이런 오리조차도 짝짓기의 주도권은 암컷에게 있습니다. 청둥오리의 경우, 암컷의 교미 중 무려 35%가 강간에 의한 수컷의 강요로 일어나지만, 실제 수컷 청둥오리가 암컷이 낳은 새끼의 아버지가 되는 경우는 고작 3~5%에 불과합니다. 해부학적으로 봤을 때, 암컷 오리는 생식관을 조이거나 다른 통로로 우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수컷과 교미를 하게 될 경우, 정자가 난자와 수정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고, 심지어는 교미 직후 총배설강을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정자를 배설해낼 수 있어요. 결국 청둥오리의 사례는 극단적인 성적 폭력 상황에서도 결국은 암컷에게 번식 능력의 주도권이 있음을, 다시 말해서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는 성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5. 암컷의 미적 선호

성 선택 이론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있었습니다. 월리스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인간이 아닌 조류에게 미학적 감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미적 감각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다. 또한 암컷의 취향은 변덕스러운 것인데 어떻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암컷의 취향이 하나의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수컷의 외형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설명이 필요하다’라고요.

성 선택 이론이 지난 100년간 외면받았던 이유에는 사회적 관습뿐만 아니라 이런 중요하고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 연구가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도 분명 한몫을 했습니다. 다윈을 비롯한 성 선택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진화적 동인이 오직 미학에만 기반하는 선택압을 초래한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오랜 이야기 끝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피셔가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피셔는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왜 암컷들은 이러한 취향을 가지게 됐는가. 겉보기에 쓸모없는 것 같은 이 장식을 선택하는 일이 이 종에게 대체 어떤 쓸모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만 한다고요.

그는 암컷의 선호와 수컷의 장식이 ‘유전’됨에 집중했습니다. 태초의 암컷 공작이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그의 주장은 시작됩니다. 암컷이 선호하는 형질을 어떤 수컷이 가지고 있을 때, 이 형질이 발현된 수컷의 장식은 더 이상 장식이 아닌 번식에 있어서 유리한 ‘이점’이 됩니다. 그리고 이 암컷과 수컷 사이에는 번식을 통한 자손의 탄생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암컷의 선호 유전자도, 수컷의 장식 유전자도 모두 자손에게 유전되게 됩니다. 딸이라면 암컷의 선호 유전자를 물려받게 될 것이고, 만약 이 자손이 아들이라면 장식 유전자가 발현되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력적인 아들 효과’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번식에 성공했을뿐더러 이 자손도 다시 한번 암컷에게 선택받기 유리한 조건을 갖고 태어남으로써 번식의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이렇게 대를 거듭할수록 긍정 피드백의 폭주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수컷 공작의 긴 꼬리가 진화되었음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셔는 이 긍정 피드백의 폭주 과정을 수리 모델로써 설명하여 그 주장에 신빙성을 얻었습니다. 즉, 우리가 걱정해왔던 생존에는 다소 불리해 보이는 수컷 공작의 꼬리가 사실은 생존의 불리함을 메꿀 만큼 암컷의 선택으로 인한 보상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6. 여전히 공작의 꼬리 깃은 볼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어땠나요? 공작이 왜 화려한 꼬리를 갖게 되었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나요? 저는 주로 공작이라는 한 종의 새에 대해서만 성 선택에 기반 한 설명을 했어요. 성 선택의 결과물들은 생각보다 더 만연하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자료를 찾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칠 일이 잦더라고요. 특히 오늘 아침,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집에서 꽤 놀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커피를 마시는데, 식기세척기 설치 기사님이 오시기로 하셔서 인터폰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리고 곧 울린 인터폰 소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트로피컬 한 새 컬러링이었습니다. 온 집안 스피커가 극락조의 새소리를 내뿜는데 내뿜어진 것은 새의 노래뿐만 아니라 제가 내린 커피도 포함되었지요.

그래요, 아름답기로 유명한 극락조의 노래소리는 – 제게는 전혀 노래 같지 않지만 말입니다. – 공작의 허리 깃과 비슷한 포지션을 맡고 있어요. 극락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새소리는 아름답다고 하잖아요? 괜히 핸드폰과 인터폰 컬러링이 새소리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니겠지요. 인간에게도 듣기 좋은 이 소리는 암컷에게도 매우 유혹적인 소리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새들의 화려한 날갯짓, 현란한 색의 깃털 등은 모두 성 선택의 결과라 볼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 선택의 범위가 조류를 넘어 인간에게까지 매우 다양한 생물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만큼이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제프리 밀러는 그의 저서 <the mating mind>에서 인간 남성에게도 성 선택이 미친 영향이 지대함을 밝히고 있어요. 인간의 예술성, 창의성, 유머, 도덕관념 등은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부산물에 불과하고 다소 비적응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성 선택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번식의 이점을 얻기 위한 필연적인 진화 과정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의해야 하고 연구해야 하며 토론해야 해요. 다윈과 월리스처럼요.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여전히 성 선택은 다툼의 여지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 대안 이론이 성 선택만큼 합리적인 설명을 해내지 못해서 성 선택이 더 주목받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성 선택과 자연 선택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성 선택을 통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 종에 대해 연구 중이라면 ‘인간의 관점’이 개입되어 연구를 흐리는 것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가 조류와 인간에게만 ‘화려한’ 것이고 다른 포유류에게는 오히려 위장 색으로 보여 그 화려함이 묻힌다는 점이라던가, 제게는 새소리가 공포의 소리나 새들에게는 ‘구애의 세레나데’일 수 있는 것처럼요. 인간의 관점에서만 다른 생물 종을 이해하려 든다면 성 선택 이론에 대한 연구는 편향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유전자 만능론’입니다. 분명 유전자는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생물을 암호로 설계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과는 다르게 수천 년 진화의 역사를 설계한 위대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유전자가 꼭 다 맞는 설명일까 되묻는다면 확실히 명쾌한 대답을 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에 더해 아직도 조류 공포증이 있는 제게는 여전히 공작의 꼬리 깃은 볼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조류 공포증인 것 치고는 새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나요? 언젠가는 진화론에 기대어 새를 마주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봤던 ‘한국 조류 백과사전’을 빌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저는 오늘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공작에 대해서 많이들 알아가셨으면 좋겠네요. 저와 긴 여정을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워요!

최수경  waterglasse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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