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물류센터 알바를 결심하는가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며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쓰며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생활만이 지속되니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알바를 찾기 위해 여러 앱을 뒤지던 중 아는 언니에게서 ‘물류센터 알바를 함께 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꾸준히 출근해야 하는 장기 알바는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듯한 느낌에, 내 스케줄이 알바에 지배되어 모든 일정을 알바 시간에 맞추어야 할 것 같아서 싫었는데 이와 비교했을 때 한 번만 나가도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는 물류센터 알바가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다른 단점들 보다 그 장점이 커 보여 언니에게 같이 하자고 말하였다.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

물류센터 알바는 굳이 본인이 경험하지 않아도 고되고 강도가 높을 게 뻔한 알바다. 따라서 받아들이기까지의 고민이 어느 정도 있었다. 게다가 주변인들 후기 또한 나를 더욱 고심하게 했다.

-황xx (씨유 1회):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 절대 하지 마라.

-신xx (쿠팡 2회, 마켓컬리 2회): 처음에는 힘들긴 하지만 하다 보면 별로 안 힘들다. 심지어 중독된다.

-김xx (쿠팡, 마켓컬리 등 다수): 급전이 필요할 땐 최고. 8시간 정도야 뭐 별거 아니다.

위처럼 부정적인 의견보다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기는 했으나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었다. 하지만 단기간에 돈이 필요한 입장이었기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 일종의 경험이 되겠다고 생각해 나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물류센터 단지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1타임(9:00~10:30)-설렘 반 떨림 반

내가 일할 곳인 3층의 냉장창고는 지구 반대편을 연상시킨다. 바깥은 한여름인데 냉동창고 안은 한겨울이니 말이다. 감기에 걸릴지언정 더워서 쓰러질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 아닌 안심이 된다. 짐차도 사람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와중에 일일 근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사람들을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냉동창고의 한기가 냉장창고 정도는 약과라는 듯이 몰아쳐 정신이 없다. 줄줄 나오는 콧물을 틀어막고 반장님 앞에 서니 형광조끼와 목장갑을 나누어 주신다. 주섬주섬 형광조끼를 주워 입으며 반장님이 일감을 배분하시는 걸 건성으로 듣는다. 반장님은 반은 자신을 따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도록 하고 나머지 반은 스티커 붙이기 반으로 보냈는데 나는 스티커 붙이기 반으로 배정됐다. 나도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스티커 붙이기 같이 지루한 잡무라 조금 실망이다. 그런데 보내기 전에 몇 명의 사람들을 지목하더니 “거기 안경 쓴 여자분도 이따가 같이 따라 나오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뭐 잘못했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진정하자, 냉동고에 발 들인 지 5분도 안 됐으니 그럴 리가 없어.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터덜터덜 따라 나간 곳은 냉동고보다는 한층 따듯한 기운이 돌아 한숨 돌린다. 지정해 주시는 컨베이어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냉면 소스’와 ‘매운 냉면 소스’라고 적힌 팩들을 송장에 쓰인 숫자에 맞춰서 집어넣는다. 의욕은 넘치게 시작했는데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지루하고 집중도 되지 않는다. 종류, 개수가 다 다르게 적혀있는 송장에 헷갈려 실수 연발이다. 꾸중이 연달아 이어진다.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남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쉬는 시간이 되었다.

2타임(10:40~12:10)-냉장고로 끌려나가다

30분 동안 냉장실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고 있으니 여자 반장님께서 날 부르신다. 지금까지 실수한 게 있으니 무슨 말씀을 하실지 조금 떨린다. 이어지는 말은 “(냉동실로)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축객령이다. 아무리 전 타임에 내가 못 했어도 그렇지 이렇게 냉동고로 쫓아내다니 명백한 좌천이라 그런지 속이 쓰리다. 무엇보다 냉장실은 조금 따듯했는데 다시 냉동실로 돌아가는 게 너무 싫다. 결국 다시 냉동고에서 스티커를 떼어내고 붙이기를 반복한다. 계속된 반복 작업에 몸도 적응했는지 이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붙여도 속도가 나는 듯하다. 어느 정도 즐겨보려고 스티커 붙이기의 달인에 빙의해서 프로페셔널한 척도 해본다. 일 장갑을 끼고 스티커를 붙이자니 손끝이 뭉뚝해 스티커가 잘 안 떨어진다. 그래서 장갑을 벗자니 손이 꽁꽁 얼어버려 손끝이 무뎌진다. 벗을 수도, 낄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인 기분. 결국 손의 감각을 포기하기로 한다. 내 손가락이 아닌 딱딱한 막대기로 스티커를 떼는 감각으로 2타임을 보냈다.

점심시간

정오 기온이 28도나 되었는데 털 달린 외투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음에도 덥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온몸의 액체가 차갑게 식은 것만 같다. 이 더위에 콧물을 흘리는데 이 콧물이 차갑기까지 하다. 입맛도 돌지 않아 대충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여성 휴게실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한다. 다들 일이 많이 고된지 같이 일하던 분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나도 약 30분의 쪽잠을 위해 눈을 붙인다.

3타임(13:10~14:40)-레벨업

밥도 먹고 잠도 자니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다. 마음먹고 스티커 붙이기의 달인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냉동실 안쪽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를 부른다. 그래서 반장님을 따라가 아까 스티커를 붙였던 스티로폼 박스의 안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제가 말하는 대로만 넣으시면 돼요.”라는 반장님의 말에 따라 냉동 사골국 팩, 육개장 팩 소머리국밥 팩을 테트리스처럼 집어넣는다. 아직도 이걸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즘에는 기계가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든다는데 왜 물류센터 알바는 사람이 하는 거지?’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이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인다. ‘진짜 기계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도 좀 늘었다고 빨라진 손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나눠 담으면 담을수록 아까 냉장실에서 꾸중 들었던 게 자꾸 생각이 나서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피로가 쭉쭉 쌓인다. 눈도 뻑뻑하고 무릎은 꽁꽁 얼어서 굽혀지지도 않는다. 휴게실에서 알게 된 같이 일하시는 분이 주신 초콜릿을 받아먹으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것도 같다.

4타임(14:50~16:20)-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4타임까지 가니까 슬슬 옆자리 분들한테 정이 들기 시작한다. 원래 주변인들한테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이제는 생각할 거리가 다 떨어져서 관심 끄려고 노력해도 자꾸 관심이 간다. 이런 생각조차 안 하면 정말로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아서. 다른 건 다 참아도 머리가 비는 건 정말 못 참는다. 게다가 내가 초보라 그런지 계속 신경 쓰고 도와주셨다. 유일하게 주고받은 말들이 “제가 도와드릴게요.” 와 “감사합니다.” 였을 정도니까. 옆자리 분들은 내 양옆에 서 계셨는데 서로 아는 분들인 것 같다. 심지어 두 분 다 엄청 고참이셔서 반장님들이랑 편하게 얘기하고 중요한 일 받아서 지시를 전달하시기도 했다. 두 분이 아는 사이는 맞는 것 같았는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보여서 두 분이 어떻게 알게 됐을까 막 상상해본다. 그냥 알바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는 것이랑 두 분이 아이돌 홈페이지 운영자인데 아이돌을 찍으러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중에 뭐가 정답일까 엄청나게 고민이 된다. 이런 실없는 소리를 했지만 정말 그분들 아니었다면 일하기 훨씬 힘들었을 거다. 본인들도 힘드실 텐데 서로 돕는 모습을 보니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감동이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인간성을 박탈당한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가장 이를 실감하다니 아이러니하다.

5타임(16:30~18:00)-어디에도 끝은 있다

마지막 타임이란 게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거 다하면 진짜 집 가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6시간 동안 냉동고에서 물건 나눠 담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너무 추운 곳에 오래 있어 감각도 없어진 얼굴과 찢어질 것같이 아픈 손끝에 ‘오래 하긴 했구나….’싶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이어트 빵을 나눠 담는다. 라벨지 확인하고 개수대로 카스텔라를 넣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그리고 증정품으로 스콘을 넣는 작업도 함께한다. 처음에야 힘들었지 일하다 보니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반장님이 오셔서 힘들게 두 가지 일 한 번에 한다고 자기가 하시겠다고 하신다. 몸이 편해져서 좋은 마음과 할 게 없어 머쓱한 마음에 뻘쭘하게 옆에 서 있으니 반대편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로 부르신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서 선물 박스에 담았다. 아이스크림이 먹음직스러워서 이름을 기억했다가 한번 시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름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시켜 먹는 아이스크림 종합 세트도 누군가가 손수 나눠 담았겠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묘하게 소름이 끼친다. 확실히 완벽하게 소비자의 입장에 서 있다가 갑자기 내가 시킨 상품이 우리 집에 오기까지의 한 장면을 보니까 앞으로 쉽게 무언가를 시켜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업시간이 끝나 냉동고 안을 청소하고 물류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따듯하다 못해 더운 공간으로 나왔음에도 나와 언니의 손은 여전히 새빨갛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진다. 그 하늘을 배경으로 물류단지의 물류센터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이렇게 나의 첫 알바는 끝이 난다.

알바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서 언니에게 “별로 안 힘들다면서?”라고 물었더니 물류센터 알바 중에서는 가장 힘들지 않은 알바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1시간 30분으로 끊어서 쉬는 시간을 주고, 새벽에 하지 않는 물류 알바가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한여름에 가면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더운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 냉장센터는 냉장고 안에서 일하는 거라 덥지도 않아서 좋다고 했다.

알바 앱에서 주로 찾을 수 있는 물류 알바들은 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혹은 오후 3시부터 오전 1시까지 진행된다. 내 친구들도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일을 하고 셔틀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낮에 8~9시간 일하는 알바도 한 번 하고 나면 상당히 피로한데 새벽 물류 알바는 얼마나 피로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요인이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과로사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새벽에 노동이라는 요인이 적절한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이용하는 쿠팡 로켓배송, 마켓컬리 새벽 배송, 알라딘 양탄자 배송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자기 전에 시켜서 다음 날 아침에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새벽 동안 ‘누군가’가 잠을 포기하고 일하고 있어야 한다.

물류 알바가 고된 것은 시간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물류 알바의 시설적인 문제도 항상 대두되는 문제이다. 물류센터는 냉·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한겨울에는 추운 환경에서, 한여름에는 더운 환경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류센터는 여름과 겨울에 항상 물류센터 내 온도 문제로 항상 지적받아왔다. 여름에는 센터 내 온도가 너무 높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야 하고, 무더위에는 마지못해 얼음 두 조각을 주며 버티게 하기도 한다. 내 친구들도 너무 더워 땀을 폭포처럼 쏟아내며 일했다고 한다. 반대로 겨울에는 온도가 너무 낮아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복지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내가 간 곳은 직원 휴게실이 있기는 했지만, 웬 창고 한가운데에 있어서 시설이 썩 좋지는 못했다. 이처럼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이 부재한다. 또한 일부 센터에서는 알바생들에게 심한 언행 등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로 같이 알바한 언니는 다른 물류 알바에서 반장님에게 심한 욕설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언니에게 다음에 물류 알바를 또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자신은 돈이 조금만 궁해져도 바로 할 것이라고 했다. 물류센터 알바만큼 효율적인 알 바가 없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나 힘든 물류센터 알바는 소위 말해 ‘가성비 좋은’ 아르바이트가 된 것일까?

먼저 ‘자유로운 시간 조절’이라는 이점이 있다. 보통 알바는 매주 정해진 시간이 있어 자유롭지 못한 데에 비해, 물류센터는 자신이 원하는 요일, 원하는 타임을 지정해 일할 수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알바로 여겨진다.

‘교통비와 식비 절약’ 또한 장점이다. 대다수의 물류센터에서 셔틀을 보내 알바생을 픽업해주고, 일이 끝난 새벽에도 셔틀을 통해 귀가시켜준다. 점심이나 저녁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기 때문에 식대가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후일담

보라카이에 가서 공항에서 셔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내가 5시간 내내 포장했던 상표의 쇼핑백을 단체로 들고 있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한여름의 필리핀에서 냉장센터의 냉기를 느끼고 괴로운 감정까지 느껴졌다.

지승효  seunghy56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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