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에 앞서 학생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카이스트와 University of Pennsylvania(Wharton)에서 경영 과학으로 각각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류춘호입니다. 홍익대학교에 온 지는 29년 가까이 되었고,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어요.

홍익대학교에서만 거의 30년 가까이 근무하셨어요. 교수님께서는 회사생활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다 교수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학창 시절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남게 된 큰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학기는 공부도 못해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학교가 문을 닫기도 했었죠. 그래서 공부를 한번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던 시기를 그냥 지나치게 된 경험이 있었어요. 다행히 3, 4학년 때는 상황이 안정되어 공부를 더 하기기로 했지요.

당시에는 취업이 굉장히 잘될 때라서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공부를 하기 위해 카이스트에 진학을 했어요. 학부 시절 공부했던 경제학 분야 중에서 저에게 가장 잘 맞는 과목이 계량경제학, 수리경제학이었거든요. 이렇게 계량화하는 과목에 관심있는 상황에서 카이스트 경영과학과(석사과정)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어요. 경제학과에서 경영대학으로 옮겨갔지만, 사실상 공부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었죠.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 이어 나가 와튼 스쿨로 유학을 갔다 오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교수라는 직업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을 진학하진 않았어요. 한국에 들어와서는 연구원으로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대학교수’라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홍익대학교로 오게 되었어요. 저는 공부를 하면서 좋은 은사님들을 만나 공부했고, 마찬가지로 저 또한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네요,

교수님께서는 전공하신 경영 과학 분야를 꾸준하게 강의해 오고 계세요. 이번 학기에는 ‘경영과 의사결정’ 과목을 강의해 주셨는데요, 학우들에게는 생소한 학문인 것 같습니다. 과목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질문이네요.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의사결정을 해요. 어떤 의사결정은 직관적이고,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지요. 반면 또 어떤 의사결정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야 하고,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요. 이 과목은 후자에 해당하는 복잡한 의사결정에 대해 다뤄요.

‘의사결정을 얼마나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근간에는 최적화가 있어요. 최적화라는 것은 내가 놓인 상황에서 외부 요소들을 고려하면서도, 내가 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 방안을 찾는 것이지요. 결국 경영과 의사결정 과목이란, 최적화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들의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특히 수학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셨어요. 교과서에도 수식이 가득하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아쉬움이 있어요. 우리 과목은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배우지는 않아요. 단지 배우는 내용이 최적화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수학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거든요. 정작 과목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인 훈련’입니다.

수학을 잘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마케팅이나 조직행동과 같은 다른 과목도 조금만 깊게 배우게 되면 매우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다만 경영과 의사결정에서는 과목의 재료가 수학적 표현인 것이고, 다른 쪽은 수학적 표현 대신 다른 걸 쓸 뿐이지 사실은 똑같은 것이라고 봐요. 따라서 경영과 의사결정 과목에서 추구하는 것은 수학을 이용해서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의사결정을 구축하느냐 하는 것에 더 비중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학생들에게는 ‘수학’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과목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사람의 주관적인 선택을 확률로 표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우리 과목에서 다루는 의사결정은 앞서 언급했듯이 아주 복잡한 ‘기업의 의사결정’입니다. 이런 의사결정은 계량화되지 않은 경우에 해결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기업의 존망이 걸린 의사결정은 각 요소를 계량화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하지요. 이런 의사결정은 계량화되지 않은 경우에 해결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물론 정성적인 요소들을 수치화하는 계량화 과정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주관에 따라 A 혹은 B라는 선택지를 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기업의 목적에 가까운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이지요.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올바른 의사결정이란 무엇인지, 이 과목에서 배운 것들을 과연 우리 실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제가 매 학기 수업 첫 시간에 피터 드러커 이야기를 꺼냅니다. 피터 드러커는

‘네가 무엇을 관리하고 싶다면 측정을 해야 된다.’

라고 말을 해요. 측정이라는 말은 그 어떤 정도를 수치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학생이 ‘나 지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할 거야’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할게요. 이때 단순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나 오늘은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아’ 혹은 ‘나 오늘은 공부를 덜 한 것 같아’라는 생각은 목표에 다가가는 데에 있어서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아요. 반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 시간을 수치로 바꾸면 ‘내가 오늘은 여덟 시간 반을 공부했어. 어제는 일곱 시간을 공부했으니까, 오늘은 한 시간 반 공부를 더 했네.’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지요.

따라서 일상에서도 나라는 개인이나, 내가 속한 조직이 어떤 목표에 대해서 얼마만큼 성장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목표를 이루는 요소들을 계량화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기업처럼 큰 주체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우리 과목에서 배운 체계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실천해 볼 수 있어요.

어려운 과목을 담당하시는 만큼, 경영과학을 강의하시기 위한 교수님의 특별한 교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저는 꾸준하게 판서 수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에 의하면 학생들이 눈으로 듣고 머리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착각인 경우가 많아요. 분명 나는 이해한 줄 알았는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는 거예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손으로 써보게 해서 머릿속에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직접 일일이 써야 하다 보니 속도는 떨어지고, 배우는 양도 줄어들 수 있어요.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 같이 시간을 들여 한 줄 한 줄 써가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전체적인 학습 효과가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요.

수업 시간에 배운 다양한 최적화 알고리즘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대신, 직접 손으로 풀어보게 하시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네요.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업 시간에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우선 학생들이 스스로 굉장히 빠르게 프로그램을 학습할 수 있을뿐더러,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컴퓨터만 돌리면 얻어가는 것이 없기 때문이에요. 물론 과제로 프로그램을 돌려오게끔 하는 숙제는 내줘요. 다만 수업 시간을 할애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해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알고리즘을 직접 써보면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컴퓨터를 쓰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시험도 실제로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두 서술형으로 출제하세요. 수업 시간에 교수님과 문제를 풀어내는 것처럼요.

서술형으로 출제하는 것은 교수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도 왜 출제하냐고 묻는다면 학생들의 정확한 이해도를 파악하고 점수를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객관식으로 냈을 때 정답을 맞은 학생들은 완벽하게 이해해서 맞을 수도 있고, 찍어서 맞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잘못 알고 있는 상태에서 풀었는데 우연히 맞을 수도 있거든요. 저는 이런 경우에 같은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이 문제 풀이를 해나가는 과정 전반에 걸쳐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를 정확히 가려내고 부분 점수를 챙겨주고 싶었어요. 학생들에 따라서는 답보다는 풀이 과정에 중점을 두고 채점한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학생들에게 더 적절하고 정확한 평가를 해주고 싶기에 서술형으로 출제하지요. 물론 교수가 사용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훨씬 크지만, 교수자로서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이 과목에서 얻어갈 점에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경영과 의사결정 과목에서 학습한 내용들이 직접적으로 실무에 드러나진 않아요. 그런도 이 과목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 학생들이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혹은 회사에 들어가면 널리 사용하게 될 컴퓨터 프로그램 패키지들의 기저는 전부 최적화예요. 최적화 프로그램이 돌아가지 않고서는 만들 수 있는 통계 패키지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컴퓨터가 내놓은 결과만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렵지요. 따라서 우리가 수업에서 배운 이론적인 근거가 생각보다 언제든, 여기저기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과목을 배워두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학생들이 우리 수업에서 배운 의사결정 과정의 논리를 활용해 목표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배운 내용을 일상생활에 끌고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에요. 경영과 의사결정과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나면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분명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니다.

학생들이 이 과목을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수학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이 과목을 피해 가기보다는, 논리적인 훈련을 배워본다고 생각하고 이 과목을 공부해 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공부를 하다 보면 다소 딱딱한 과목도 있고 혼자서도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부드러운 과목들이 있잖아요. 딱딱한 과목은 학창 시절에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을 때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에 나왔을 때 독학할 수가 없어요. 어려운 과목이더라도 수업을 수강하게 되면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연습문제도 숙제로 풀어보는 일련의 과정이 있으니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거든요. 하지만 졸업 이후엔 습득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학교에 다닐 때 딱딱한 과목이라 불리는 과목들을 들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과목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강의해 주시는데, 강의 외적인 것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해주시는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교수가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영대학 학생 모두가 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보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제게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는 말들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수업 시간에 잔소리하기도 하고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에게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요. 또 3시간짜리 수업을 하다 보면 쉬는 시간이 있더라도 내내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중간중간 주의를 환기시키고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도 학생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 해주신 말씀 혹은 배포해 주신 읽기 자료를 바탕으로 에세이 쓰기 과제를 내주시는 등 학생들의 인문학적인 요소도 빠지지 않게 챙겨주신 점이 수업을 들으면서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에세이 쓰기 과제 같은 경우는 과목과도 연관이 있어요. 우리 과목이 특히 수치, 계량화 등에 대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이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있어요. 사실은 숫자가 굉장히 한계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단 수치로 바꿔버리면 숫자를 다루는 사람은 그게 전부인 것처럼 함부로 결과를 재단하거나 판단하는 우를 범할 수 있거든요.

다시 말하면 수치화시키고 나면 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지요. 어쨌든 의사결정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숫자를 많이 다루는 과목이더라도 우리 학생들한테 그런 숫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로 에세이 숙제를 내주고 있지요. 주로 에세이의 주제가 나 자신을 돌아보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 내용에 대한 점검과는 거리가 멀어요. 대신 살면서 꼭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만한 주제를 직접 읽어보고 서술하며 고민해 보라는 취지의 과제를 내주곤 합니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도 모두 기억하고 계시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교수님의 애정이 느껴지는 지점이었거든요. 게다가 영타 검정도 시행하시고, 시험 기간에는 학생들의 2주 동안 질문을 받아주는 office hour도 운영하세요. office hour 주간에는 오후 9시까지 웹엑스로 질문을 받아주시잖아요. 이렇게 체계적인 수업을 진행하시기에 힘드시진 않으신가요? 

물론 힘들고 어렵지요. 이걸 부인하고 싶지는 않은데, 수업 시간에도 여러 차례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우선 내가 뭔가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교수님들은 누구나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한테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 해요. 다만 그걸 어떤 형태로 실행에 옮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요.

저 같은 경우는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을 더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교수 연구실 문턱을 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office hour를 시행하게 되었지요. ‘내가 이렇게 시간을 비워두었으니, 여러분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물론 이렇게까지 해도 학생들이 교수를 찾아오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도 꼭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고, 학생들이 생각보다 이 office hour를 좋아해요. office hour를 시행하는 2주 동안 저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못 하지만 학생 중 한 명에라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할 가치가 있는 것이거든요.

영문타자 검정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에 나가면 꼭 필요한 것 중에서 다른 수업 시간에는 다루지 않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학생들에게 영타 검정을 실시하기 시작했어요. 학기 중에 2달 정도의 시간을 주고, 학생 스스로 연습한 다음 연구실로 찾아와서 영문 타자 시험을 보게끔 해서 연구실 문턱을 한 번이라도 넘어오게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학생의 얼굴이랑 이름도 외울 수 있고, 학생은 교수님 연구실 문턱을 한번 넘어 봤으니, 다음번엔 들어오기 더 쉬워질 거잖아요.

이렇게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수업에도 분명 효과가 있어요. 막연히 내 수업을 들었으니까 내가 더 잘해줘야지 하는 마음을 떠나서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인데 그 학생에 대해 이해하고 기록해 두는 것은 힘들더라도 가치 있는 일이에요. 내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지속하게 되는 것이지요.

교수님 강의를 들으면 꼭 읽게 되는 <졸업생들이 후배에게> 프로젝트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시행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1995년도에 홍익대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당시 저는 큰 꿈을 품고 ‘나도 한번 교수로서 잘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름 큰 결심이었기에, 못해도 내가 이 마음을 10년 동안 잘 유지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다짐했어요. 그래서 첫 학생이었던 93, 94학번 학생들과 약속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10년 동안 좋은 교수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이 마음을 여러분들 앞에서 약속한다.”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2005년이 되어 정말 10년이 지났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고 내가 이런 약속을 왜 했을까 후회도 들은 적도 있었겠죠, 당연히. 그리고 이제 또 다른 10년도 다시 이 약속을 연장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가 온 거예요.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당시 내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돌렸어요. 그 메일 질문지의 11번 문항이 내 수업을 듣고 있는 여러분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답변을 모아 만든 파일이 <졸업생들이 후배들에게 1>(2005) 이예요. 당시 또 10년의 약속을 하는 것에 졸업생 90% 이상의 학생들이 찬성해 주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 월등히 높은 찬성 비율이 나왔죠.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약속을 지켰고, 또 메일의 답장들을 모아 <졸업생들이 후배들에게 2>(2015) 까지 나올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은퇴를 앞둔 지금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학생들과 했던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었네요. 수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제공해 주는 것들이 분명 힘들기도 하지만, 이 약속이 제게는 변치 않고 한결같이 학생들을 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교수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사회에 나가게 되면, 내가 내 앞날을 이끌고,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내가 중심일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가족도, 친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은 내가 이뤄나가는 것들이 오로지 내 노력 100퍼센트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는 것이에요. 내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요. 물론, 성취를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내 주변 가족, 동료, 친구, 선후배 등 이런 인간적인 관계들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뤄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인 관계라는 게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서 술 마시자 이런 것은 아니에요.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을 꾸준하게 두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타인에 대한 애정이라는 건 ‘나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 대신,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타인에게 노력을 할애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최수경  waterglasse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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