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미술 칼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하이퍼리얼리즘

수채화, 유화, 아크릴화…. 캔버스 위에 화가가 물감으로 수놓은 작품들이 즐비한 미술관의 한가운데에 느닷없이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이것도 그림이었다.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에 감탄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휴대폰 하나로도 현실을 똑같이 담아낼 수 있는 ‘21세기 현대’에 이러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하이퍼리얼리즘, 넌 누구니?

 

1. 하이퍼리얼리즘이 뭘까?

극사실주의. 즉 주관을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예술 양식이 하이퍼리얼리즘이며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미국 미술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이다. 슈퍼리얼리즘(superrealism),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래디컬리얼리즘(radical realism), 샤프포커스리얼리즘(sharp focus realism), 포토 아트(photo art)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예술 양식은 주로 의미 없는 일상을 완벽에 가깝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사진 수준의 사실성을 추구하다 보니 카메라와 사진을 주로 사용하고 환등기*나 격자 등의 반기계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리얼리즘의 극한을 보여주기 위해 캔버스에 감광제를 발라 사진으로 인화하는 경우까지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파퓰러 아트(popular Art), 줄여서 팝 아트의 영향을 받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팝 아트의 대중적인 성격이 그대로 이어져 의미 없는 일상의 소재, 예를 들면 골목길에서 볼 법한 전봇대 또는 길거리에 있는 흔한 상점들이 작품의 주 소재가 된다. 하지만 팝 아트보다 소재를 좀 더 극단적으로 취급하며 이는 종종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피부조직이나 상흔들을 기계적으로 확대하여 관람객에게 충격을 주는 ‘즉물주의’로 이어진다. 이 모든 하이퍼리얼리즘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결국 이것도 사실이 아닌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환등기 : 렌즈의 성질을 이용하여 슬라이드·그림·사진·실물 등을 정지 상태로 스크린에 확대 투영하여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보여 주는 광학 장치이다.

 

2.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

결국 하이퍼리얼리즘의 작품들도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와 가상이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접했을 때는 작정하고 가상이라고 인식하고 보더라도 현실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의 손끝에서 발생한 가상은 오히려 내가 있는 이 현실이 더 가상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이제 그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작가들을 만나고 놀라운 작품들을 차근차근 감상해보자.

 

2.1. 디에고 파지오, 연필 한 자루로 현실을 복사하다.

<반사>

‘디에고 코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간단한 스케치 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일방향 작업으로 작품을 만든다. 처음에는 문신을 하는 타투 아티스트였다가 리얼리즘 작가로 전향한 이탈리아의 연필 화가다. 인간 내면의 심리적인 상태를 작품에 극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에고의 작품의 특징은 자극적인 색을 배제하고 단순히 연필. 흑연. 목탄을 사용하여 극사실묘사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모습은 흰색, 부정적인 모습은 검정으로 표현하면서 정교한 형태와 명암으로 의도를 보여준다. <반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얼굴에 물이 흘러내리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인 <반사>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물의 표현이 일품이다. 여성의 감고 있는 눈과 감싼 얼굴은 현대사회를 향한 절망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보다는 시각적으로 놀라움을 주는 묘사가 더 눈길을 끈다. 그림에 실제로 물을 끼얹은 것 같은 표현과 물을 맞은 여성의 모습은 연필 한 자루로 그린 그림이 아닌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작품은 연필, 종이 외에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작품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완성해나감을 알 수 있다.

 

2.2. 마크 시잔,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술사.

<포옹>

마크 시잔은 하이퍼리얼리즘 조각을 이끄는 세계적인 리더로서 사실적인 신체조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인물들의 굳은 표정에서 느껴지듯이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를 극대화하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질적이고 냉정한 관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무기력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 왜곡이 전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체형이다. 이는 마크 시잔의 대표적인 작품인 <포옹>에서 잘 나타난다. 작가 자신과 아내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남녀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여자의 편안한 표정과 남자의 경직된 모습의 이 대비를 이룬다. 전라 상태의 조각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이질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구석에 있는’, ‘공중 부양’ 등 인간의 신체를 모사한 조각상들도 신체적 미화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볼록 나온 배, 축 처진 살갗, 주름과 실핏줄 그리고 움푹 팬 눈까지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시잔은 이렇게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구현해냈다.

 

2.3. 척 클로즈, 하이퍼리얼리즘을 완성해나가다.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가 한 명만 이야기해 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평소 리얼리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중 다수가 ‘척 클로즈’ 라 대답할 것이다. 극사실주의의 대가로 칭송받는 척 클로즈는 놀랍게도 초기에는 사실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한 장르에 멈추지 않고 계속 바뀐다는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 대칭점에서고자 자신의 초기작품에 썼던 재료, 기법 등을 전부 반대되는 것으로 바꾸었다. 컬러에서 흑백으로,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두꺼움에서 얇음으로 색다른 시도를 한 결과물은 리얼리즘이었다.

<Frank>

사람의 안구보다 더 밝은 시야를 가진 190mm 렌즈로 찍은 사진을 토대로 에어브러시를 이용하여 그린 인물화 작품 <Frank>는 얼핏 보면 흑백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마감처리로 1960년대 후반기의 그의 작품 기조를 보여준다. 이는 70년대로 넘어가 사진 그 자체를 추구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Mark>는 위 작품과 리얼리즘 인물화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채색이 더해졌다는 것과 프린트 인쇄술과 같은 원리의 작업방식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하이퍼리얼리즘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작품이다. 80년대 이후 그는 기계적 방식을 동원하여 현실과 완벽히 일치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지문을 찍어내 초상화를 만드는가 하면 거대한 캔버스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멀리서 볼수록 자연스러워지는 작품도 만들었다. 척 클로즈의 대단한 점은 하이퍼리얼리즘을 단순히 차가운 기계문명에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영역인 추상표현과 결합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주관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리얼리즘 미술에서 더 진보된 모습을 보인 업적이 있어 척 클로즈는 현대 미술계에서 칭송을 받고 있다.

<Mark>의 작업장면

 

3. 현실 같지만 왜곡된 현실

척 클로즈의 자화상. 하리퍼리얼리즘에 추상표현주의를 섞어낸 작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그림조각들의 모임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사실적으로 그린 자화상으로 보인다.

상술한 작가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이 단순히 현실을 똑같이 옮긴다는 프레임을 깨는 데 성공했다. '차라리 사진을 찍어라'라는 혹자들의 평가에 디에고 파지오는 흑연으로, 마크 시잔은 조각으로, 척 클로즈는 추상표현주의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실물에 근접한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내면 감정을 보여주었다. 즉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히 현실을 완벽하게 ‘복사’해낸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벗어나 현대인의 삶과 그들이 마주하는 일상적 풍경에 담긴 내면 심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극사실묘사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 내면에 자리한 심리적 이상과 잠재되어있는 감정들을 다루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의 끝은 가상현실이다. 상술했듯이 하이퍼리얼리즘의 궁극적인 의미는 실제와 99.9% 같은 묘사를 통해 이것 또한 허구임을 관람객들에게 폭로함으로써 현대인의 사회생활이 가상과 현실이 뒤바뀌어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작품들은 현실과 똑같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 기법이 현실을 닮았기 때문에 작품 내에 자그마한 왜곡을 더하더라도 눈치채기 매우 어렵다. 이것이 바로 하이퍼리얼리즘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실 속에 가상현실이 비집고 들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최근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애플리케이션이 대유행하면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가상을 즐기는 현상들이 두드러졌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점점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순히 현실 같은 가상도 가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을 넘어서 현대인들의 일상이 ‘선 가상 후 일상’이 되어버린 사실을 조용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단지 어떤 풍경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고 그 여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SNS에 사진을 업로드했던 것이 옛날이라면, 지금은 SNS에 올리기 위해서 좋은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과 가상의 지위가 역전되어 버렸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감성적인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 차갑고 건조한, 감성이 철저히 배제된, 렌즈와 기계를 통해 본 세계이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진실과 허구의 위치가 뒤바뀌어버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여 현대인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망설임 없이 외치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대 미술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이것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기계적 방법을 쓰더라도, 현실과 똑같더라도 연필에서 사람 향기가 묻어나고 조각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과는 또 다른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의 심리와 미디어 현실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상세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 하이퍼 리얼리즘은 현실세계와의 데칼코마니를 통해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던 것이 아닐까?

김현섭  hskim_328@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하이퍼리얼리즘
[문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하이퍼리얼리즘
[커버스토리]
아웃트로
[커버스토리]
( )
타이포그래피의 빛
[커버스토리]
타이포그래피의 빛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