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Afghan Girl, 1984

위의 사진은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1950.4.23~)의 <아프간 소녀>다. 무엇보다 눈빛이 두드러진다.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하는 눈빛은 사진 뒤에 살아있는 인물을 느끼게 한다. 1984년에 발표된 <아프간 소녀>는 지오그래픽지에서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사진으로 선정되었으며, 이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의 삶을 알릴 뿐 아니라 맥커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초상화와 이야기

맥커리가 초상화만을 찍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초상화는 특징적이긴 하다. 보통 생각하는 초상화와는 다르다. 맥커리의 초상화들은 정해진 포즈를 담지도, 멋진 사진관에서 찍히지도 않았다. 처음 마주친 장소에서, 있는 그대로 삶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그렇다고 맥커리의 사진들이 남몰래 담은 삶의 현장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분명 ‘초상화’이고, 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한다. 맥커리가 사진을 찍을 때 상대방에게 하는 단 하나 부탁은 렌즈를 바라보는 것이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피사체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구는 사진의 역사에서 굉장히 많이 언급되는 문구로, 맥커리도 종종 인터뷰에서 그의 말을 인용한다. 맥커리가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는 방식은 인물과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을 보고 눈을 본다. 눈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맥커리가 담는 삶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사진2] Young Boy Holding Toy Gun To His Head, 2004

이 사진은 페루에서 찍은 한 남자아이의 사진이다. 페루의 한 마을에 머무르던 때, 맥커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울고 있던 한 소년의 모습을 찍었다. 맥커리가 우는 소년을 보고 다가가자, 소년은 장난감 총을 머리에 댔다고 한다. 소년은 한동안 말없이 포즈를 취하기만 하다 자리를 떠났다.

소년은 맥커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 그들의 표정은 말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스티브 맥커리의 초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진정성이다.

“ 대부분 사진은 사람을 담는다. 카메라에 대한 경계를 낮출 때를 찾는다.

영혼의 본질이 드러난다. 경험이 얼굴에 드러난다.

그 사람으로 살아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세상 속에 놓여 있는 삶을.”

- 스티브 맥커리

30년의 시간과 20개의 여권

맥커리가 사진작가의 길을 택한 건 19살 때 떠났던 유럽 여행의 영향이 컸다. 1년간 유럽 생활을 하면서 맥커리는 어떤 직업이든 여행이 있는 직업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세상을 누비면서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맥커리는 대학 졸업 이후 잠시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곧 일을 관두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일을 관둔 건 맥커리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맥커리의 활동 초기만 하더라도 세상은 지금처럼 연결돼 있지 않았다. 서양과 동양의 삶은 사뭇 달랐으며, 서양과 완전히 단절된 동양의 세계가 존재했다. 맥커리는 인도를 시작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표현하겠다는 그의 가치관에 따라, 맥커리의 사진에는 세상의 얼굴들이 담겼다.

① 고아의 어부는 오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일반적으로 몬순은 강우를 동반한 계절풍을 말한다. 몬순은 전 세계 인구 절반에 영향을 미치는 큰 자연 현상이다. 특히 인도는 1년 강우량 중 80%가 몬순 기간에 내리며, 이때 농업용수 필요량의 절반 이상을 수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몬순이 마냥 이롭기만 하지는 않다. 몬순이 불러오는 호우는 산과 건물을 무너트리고, 이 때문에 인도는 마을마다 매해 100명 남짓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맥커리가 어렸을 때 본 라이프지의 몬순 사진은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맥커리는 1983년 5월에 자신만의 몬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몬순의 경로를 따라 세계를 여행하면서 몬순 지역에서의 삶을 찍었다.

작업하는 맥커리의 사진을 보면,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로 카메라를 지키고자 머리 위로 들고 있다. 몬순 작업 당시 맥커리는 하루에 8시간가량을 범람한 도시에서 작업했고, 당시 작업을 하면서 온몸에 거머리가 달라붙어 고생했었다고 후의 인터뷰에서 전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작업 중 낙상 사고를 당해 인도의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기도 하는 등, 몬순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사진3] Tailor carrying his sewing machine, 1983

[사진4] A girl in waist-deep monsoon floods in front of her home, 1983

재봉사는 어깨까지 잠긴 물에도 웃으며 거리를 걷는다. 집이 물이 잠겼는데도 소녀는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몬순 지역 사람들에게 몬순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매해 겪는 연례행사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지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운명처럼 함께하는 공동체가 된다.

② 전쟁터에서도 일상은 멈추지 않아

인도와 파키스탄 최북단에 카슈미르주가 있다. 카슈미르주는 한반도의 면적만 한 넓은 지역인데,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영토 갈등으로 오랫동안 분쟁 지역이 되고 있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라지면서 카슈미르는 국교가 힌두교인 인도와 이슬람교인 파키스탄 중 하나로 귀속해야 했다. 힌두교 신자였던 당시 카슈미르 지도자는 인도로의 편입을 결정했는데, 이슬람 신자였던 카슈미르 주민들은 파키스탄 귀속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카슈미르에서는 무장투쟁이 3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맥커리의 카슈미르 촬영은 3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였다. 카슈미르를 촬영하면서 맥커리의 원론적인 관심은 카슈미르 분쟁 자체보다는 그들의 삶에 대한 것이긴 했지만, 그가 찍은 사진들이 카슈미르 분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는 달 호수로 유명하다. 달 호수에서는 새벽마다 수상 시장이 열린다. 대부분 거래되는 것은 주변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야채들이다. 맥커리는 달 호수를 찍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주 이른 시간에 나는 특정한 물길에서 아름다운 빛과 물 위에 안개가 껴 있는 매우 조용한 순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사진5] Father and daughter on Dal Lake. 1996

[사진6] Fishermen Checking their Nets, 1999

카슈미르의 하루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내일이면 사라질 수 있는 일상에도 그들은 뿌리 깊은 전통을 지킨다. 오늘도 시장에 나간다. 항상 긴장감이 서린 내전 지역에서의 삶, 그들의 표정에는 인내심과 회복력이 드러난다.

③ 목숨은 앗아가도 의지는 빼앗을 수 없어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몽골계 민족이다. 이들은 시아파 종교를 믿어 수니파 위주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박해받는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데도 대다수 하자라족은 동굴과 빈민가에 거주하고, 전쟁 난민, 거리 행상과 같은 하층 노동자로 살아간다.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하자라족 혐오가 표출되는 일도 많아서, 하자라족의 학교가 테러당해 많은 학생이 희생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맥커리는 아프가니스탄 공산 정권이 붕괴한 1992년 이후 하자라족을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주로 파슈툰족이 대다수인 지역에서 촬영하였는데, 맥커리의 작업 지역은 하자라족,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심한 동네로 맥커리 자신이 두 차례나 강도를 당하기도 했다. 맥커리의 사진들은 하자라족이 경험하는 부당함을 언론에 노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맥커리는 2005년 이매진 아시아 재단을 설립해 재단을 통해 하자라족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진7] Bamiyan Schoolgirl, 2006

[사진8] Hazara School Children, 2017

맥커리의 하자라족 작업에는 유독 아이들과 학교 사진들이 많다. 실제로 교육은 하자라족 문화에서 큰 가치를 차지한다. 하자라족은 교육에 남녀 차별이 없어 아이들을 똑같이 가르치고, 실제로 하자라족이 아프가니스탄의 대입 수험생 중에서 1/3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사진 속 학생들의 표정에서 교육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이들에게 교육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그라운드 제로

“그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할 누군가가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기록이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 기억을 전해야 했다.”

- 스티브 맥커리

맥커리는 사진을 찍으면서 종종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자문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휩쓸리면 안 된다고 했다. 오로지 기록하기 위함, 감정에 무게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진은 가장 감정적이다. 국가 간에 포탄이 오가고, 마을을 휩쓰는 폭풍이 지나는 중에 그 속에서 가장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담는다. 맥커리의 사진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드러난다.

맥커리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사진 또한 여럿 찍었다.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아프가니스탄 군과 함께하며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2001년 9·11테러 당시 우연히 맨해튼에 머무르던 그는 9·11테러의 참상을 담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여느 사진작가와 마찬가지로 맥커리의 사진들에도 작가만의 스타일이 드러나지만, 그는 항상 익숙한 스타일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17년에 딸을 갖게 된 그는 딸을 데리고도 세상을 세 번 넘게 여행했다. 딸과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종종 딸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맥커리의 사진에는 새로운 시선이 담긴다.

세상 곳곳의 비일상적인 일상, 그들의 표정에서 공통된 건 무엇일까?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릿과 유머가 그들의 일상을 지킨다.

정휘진  challenz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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