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는 큰 광장이 하나 존재한다. 그곳에는 항상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비둘기들이 모여 북적북적하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일제히 어딘가로 날아가곤 한다. 흔하디흔한 광경이지만, 그 흔한 장면은 어느 날 나에게 한 가지 의문을 심어주었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신호로 움직일까? 저들이 날아가기까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놀랍도록 특별한 구석이 없다. 그저 저들끼리 무리를 짓고, 먹이를 찾고, 왔다 갔다 움직이다가, 어느샌가 모두 다 짠 듯이 날아가 버리고 말 뿐이다. 혹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표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보자. 동물들은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갈까?

동물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몸짓을 이용하여 상황이나 심리상태 등을 표현하기도 하고,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서 먹이의 위치를 알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극도로 발달한 감각을 소통에 이용하는 동물들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가, 그들이 소통하는 법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보자.

몸으로 말해요

많은 동물이 몸짓으로 소통하곤 한다. 그 중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개와 고양이다. 어쩌면 이들이 반려동물로써 큰 사랑을 받아오게 된 이유가 소통의 방식이 보디랭귀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또, 그들에게도 엄청난 고역일 텐데, 몸짓 언어로나마 소통할 수 있다면 불편함이 한결 가시는 상황들이 종종 연출될 것이니 말이다.

(1) 개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가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일례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와 같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상식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이 표현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반점 짜리 지식이다.

개는 주로 카밍시그널(Calming Signal)이라는 개의 몸짓 언어로 소통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카밍시그널은 꼬리를 사용해 이루어진다. 즉, 꼬리의 움직임은 개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은 기분이 좋음을 표현하는 신호로 여길 수 있지만, 이는 꼬리의 높이나 뻣뻣함 등 여러 상태를 고려해서 파악해야 한다. 꼬리가 빳빳하게 서 있는 상태로 흔들리는 것은 집중상태를 나타낸다. 낯선 물체나 다른 생물을 발견했을 때 하는 경계나 탐색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반면, 꼬리를 세워 천천히 흔드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가 맞지만, 꼬리를 흔드는 강도에 따라 짧고 빠르게 흔드는 것은 긴장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꼬리가 말려 내려간 상태에서 짧은 범위로 흔들리는 것은 두려움이나 짜증, 불안함을 표출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꼬리로 이루어지는 카밍시그널은 꼬리의 높이나 뻣뻣함, 흔들리는 강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2) 고양이

고양이는 매력적이면서도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의문을 사는 동물이다. 물론 그 엉뚱한 행동들의 속뜻까지는 아직 완벽히 파악할 수 없지만, 고양이도 분명 그들만의 몸짓 언어로 소통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양이의 몸짓 언어는 대표적으로 하악질(hissing)이 있다. 이는 아주 어린 고양이도 할 줄 아는 본능적인 행동으로, '다가오지 마’ 혹은 ‘그만해’라는 경고의 의미로 하는 행위이다. 주로 처음 보는 물건이나 생물, 처음 듣는 소리를 접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악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한 경고의 의미로 하악질을 할 때는 소리만 내고 끝내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의미가 경고를 넘어서 위협의 단계에 이르면 귀가 극도로 젖혀지고 동공이 커지며, 낮은 포복 자세를 유지한다.

흔히 꾹꾹이라고 불리는 고양이 안마(cat kneading)에도 많은 뜻이 담겨있다. 등을 아치 모양으로 굽힌 채 앞발을 번갈아 가며 리듬감 있게 어떤 대상을 누르는 이 행위는, 새끼 고양이가 모유를 먹을 때 젖이 잘 돌게 하기 위해서 어미의 배를 누르던 행동에서 비롯된다. 꾹꾹이는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인 동시에, 발바닥에서 분비된 땀과 호르몬을 이용한 영역표시이기도 하다. 또, 발정기에는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으로써 행해지기도 한다.

소리로 가득 찬 그들의 세상

우선, 소리로 소통한다는 표현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소통은 소리를 내서 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소리는 언어가 아닌 소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언어는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소통 수단으로, 동물에게는 언어체계가 존재할 수 없다. 동물은 그저 특정 소리를 특정 신호로 여겨 소통할 뿐이다. 소리에는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날갯짓 소리 등 모든 소리가 포함되며, 소리의 크기, 높낮이, 주파수 등이 소통에 이용된다.

(1) 고래

누구나 고래가 내는 섬뜩하고 기괴한 소리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소리를 실제로 바다에서 듣는다고 생각하면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섬뜩한 그 소리가 그들에게는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소통의 과정이다.

고래는 12~26Hz 정도의 주파수로 소리를 내 소통한다. 짧고 날카로운 초음파를 내어 물체와 먹이의 위치를 감지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들은 주파수를 상황에 맞게 활용하여 소통하기도 한다. 일례로, 돌고래의 경우 넓은 주파수의 범위를 이용하여 물체나 먹이를 발견하게 되면 물체와의 거리에 따라 저주파와 고주파를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하여 주변에 알리는 상당히 지능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고래의 소통이 흥미로운 점은, 서식 지역과 무리, 종마다 조금씩 다른 신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혹등고래와 이빨 고래, 긴수염고래의 울음소리가 관측된 바에 의하면 모두 다르며, 심지어는 동태평양에 사는 대왕고래와 서태평양에 사는 대왕고래의 울음소리 또한 다르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도 그들만의 소통방식이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방언 즉, 사투리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2) 꿀벌

시끄럽게 날아가는 벌들을 보며, 저들의 날갯짓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고 느낀 것은 나뿐일까? 다른 곤충들에게는 없는 위협적인 침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리까지 시끄러운 이들이 날아다닐 때면 마치 ‘나 위험해요!’하고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꿀벌은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끼리 소통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소통방식은 매우 특이한데, 일단 한 마리의 꿀벌이 먹이에 접근하면 아주 낮은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발산한다. 그러면 같은 벌집에 사는 벌들이 그 소리를 감지해 우르르 몰려오는 형식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꿀벌이 먹이에 접근하면 할수록 더 격렬하고 빠르게 날개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먹이에 접근할수록 벌이 발산하는 소리가 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움직임으로 인한 소리는 꿀벌의 안테나 안쪽에 위치한 잔스턴 조직이라는 부위에서 감지한다. 잔스턴 조직은 벌 안테나의 양방향으로 나 있어 스테레오로 들을 수 있는데, 꿀벌들은 이를 사용해 좌우에 도달하는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분석하여, 먹이를 발견한 꿀벌이 어디에 있는지, 먹이는 어떤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후각으로 알아듣는 신호

기본적으로 동물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물론 ‘비교적 낮은 지능으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발달한 감각이 낮은 지능을 상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치부하기에는 그 이상으로 뛰어난 감각을 자랑하는 동물들이 있다. 감각, 그중에서도 후각을 극대화하여 살아가는 동물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들의 소통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1) 개미

여러 마리의 개미가 힘을 합쳐 자신들보다 큰 물건을 옮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오는 그 장면은 이들이 얼마나 협력적인 종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뿐만 아니라 개미들은 무리를 이루어 많은 활동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무리가 생기는 곳에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들은 소통이라는 현명한 방법을 선택했다.

개미는 다양한 종류의 페로몬을 신호로 다른 개체들과 소통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개미가 식량을 발견하면 다른 수렵 개미가 식량 수집에 함께하도록 길에 냄새를 남긴다. 그리고 식량을 집으로 운반할 때 페로몬의 종류 중 하나인 길잡이 페로몬을 더 뿜어서 냄새를 강화하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 먹이의 양이 줄어들면, 수렵 개미는 더 적은 페로몬을 내보내기도 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냄새의 강도는 식량의 양을 나타내고 다른 개미들이 길을 따라 식량을 수집할 필요가 있는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천적이 침입했을 때 동료들에게 이를 알려주는 경보 페로몬, 산란할 장소에 너무 많은 곤충이 모이지 않게 분산시켜 주는 분산 페로몬을 비롯하여 성페로몬, 집합 페로몬 등의 페로몬을 활용하여 상황에 맞는 목적을 가진 물질을 내뿜어 소통한다.

(2) 미어캣

사막이나 초원에서 앞발을 들고 항상 주변을 경계할 것만 같은 이들. 우리에게는 영화<라이온 킹>의 티몬으로 익숙한 동물. 바로 미어캣이다. 항상 경계 태세를 지킬 것만 같은 이들은 어떻게 소통할까?

미어캣은 극도로 발달한 후각을 이용하여 소통한다. 이들은 적과 아군을 냄새로 판단할 만큼 민감한 후각을 가진 동물로, 바람에 실린 냄새가 적이라고 판단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즉각 몸을 펴고 같은 곳을 쳐다보며 위험을 알리는 동작을 취한다.

또, 한 연구에서 미어캣이 소통에 있어 박테리아의 냄새를 활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어캣은 적뿐만 아니라 다른 미어캣 집단과 자신의 집단을 구분하고 소통에 있어 냄새를 이용하며, 그 냄새는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에 사는 박테리아를 기준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꼬리 아래에 달린 주머니에서 나오는 냄새 즉, 박테리아를 자신의 주변 바위나 풀에 묻혀둠으로써 주변에 있는 미어캣이 동료인지 경쟁자인지 판단할 수 있다. 미국 듀크대 진화인류학과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어캣의 냄새 주머니에서 1,000여 종의 박테리아를 찾았으며, 특히 같은 집단에 속한 수컷 미어캣의 경우 유사한 박테리아 종을 공유해 그 냄새로 소통한다는 사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어쩌면 조금은 어긋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식이 다를 뿐, 모든 동물은 결국 소통이 필요한 사회적 존재이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동물에게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은 종을 막론하고 살아감에 있어 소통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또 그들은 오늘도 살아간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하면서.

윤도진  yundojin1116@naver.com

<저작권자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