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익 스마일 - 홍익대교지편집위원회

태초의 인류부터 현재 인류까지 우리가 그림과 조각으로써 표현할 대상으로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은 사람의 모습이다. 이처럼 긴 미술사의 시발점에서는 ‘재현’을 빼놓을 수 없다. 앙드레 바쟁은 “인간은 존재의 육체적 외형을 고정시켜 존재를 시간의 물결에서 건져내고, 그리하여 영생의 언덕에 살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라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재현하며 심지어는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는 절대자의 모습까지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아르카익시기의 조각상

사람을 표현한 그림은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에서도 발견될 만큼 그 역사가 매우 길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자연주의적 재현이 모든 미술의 시작이라고 볼 때, 원시인들이 사람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 행위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를 거치고, 고대 이집트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집트의 기하학적 미술 양식은 그리스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대 그리스 미술은 크게 네 시기인 기하학적 시기, 아르카익기, 고전기, 헬레니즘기로 나뉘게 된다. 특히 두 번째 시기인 아르카익기의 경우 아직 이집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바로 이전 시대인 기하학적 시기와는 뚜렷하게 차별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성향을 지닌 시기이다. 아르카익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 크기와 비슷한 사람의 형상을 담은 조각상이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젊은 남성의 누드 입상인 ‘쿠로스’와 착의 상태의 여자 입상인 ‘코레’라 불리는 조각상이 이 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이 조각들은 이집트 미술의 영향으로 몸통의 표현이 이집트의 조각양식을 따른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쥐고 있는 경직된 상태의 정면 입상 포즈에서 이집트 조각상과의 유사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히 절제된 표현으로 만들어진 몸과는 다르게 얼굴은 몸통과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아르카익기 이전 시대와 이후의 미술품들에서는 사람을 표현할 때 ‘무표정’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왕과 귀족의 초상화 사진을 떠올려 보더라도 환하게 웃는 미소를 가진 작품은 쉽게 생각해 내기 어렵다. 하지만 아르카익기의 조각상에서는 얼굴에서 공통된 미소가 포착되는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이 미소만으로도 아르카익기에 제작된 조각상임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미소를 미술학계에서는 ‘아르카익 스마일’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575년~550년에 제작된 그리스 조각상의 얼굴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미소이다. 미소의 모습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삶의 행복과 건강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미소를 조각했다는 설과 조각상의 네모난 머리에 음선형의 입을 조화시키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다 필연적으로 발생한 결과라는 설이 있다. 고전기와는 다르게 딱딱한 돌에 사람의 복잡한 얼굴 표현을 세부적으로 하기엔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지 기술적 결함 때문에 생긴 미소라고 단정 짓기에는 미소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어눌해 보이고 어색하며 경직된 몸과는 확연히 다른 대비를 이루고 있지만 분명 아르카익 시기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표정임이 틀림없다. 이 시기에 제작된 조각상들은 심지어 죽어가는 기사의 모습을 표현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아르카익 스마일을 짓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이 시기의 미소를 두고 조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이라고 해석한다. 이들이 만들었던 것은 인간이 숭배하는 신의 모습이다. 당연히 신의 모습을 본 인간은 아무도 없기에, 그들은 인간과 닮은 조각상을 만들고 웃는 얼굴의 표현을 통해 낙천적인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미소를 짓는 조각상은 이 시기에만 잠시 제작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끈 헬레니즘기에 접어들자 조각의 기술이 더욱 발전했음에도 무표정을 고수했던 당시 분위기로 인해 아르카익 스마일은 그리스 미술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

무불상 시대

불교 혹은 절을 떠올렸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상’의 모습일 것이다. 불교의 영향이 강한 동아시아 지역은 불교미술이 고도로 발전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불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불상은 불교미술에서 매우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불상이 처음부터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현재 밝혀진 여러 사실을 기반으로 할 때, 석가모니 붓다의 열반을 기원전 4세기로 본다면 석가모니 시대 이후 약 400년 동안은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기를 가리켜 불교미술에서는 ‘무불상 시대’라고 부른다. 무불상 시대에는 단순히 불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부처의 모습을 회화로써도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부처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것들로 부처의 존재를 암시했을 뿐이다. 대표적으로 붓다를 상징하는 것에는 부처의 발자국을 나타내는 불족적과 보리수, 빈 대좌가 있다. 초기 불교미술 작품들의 모습에서 부처의 뚜렷한 형상을 찾아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혹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도판에 그려진 사람의 모습을 보고 부처를 표현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는 부처를 표현한 것이 아닌 불도를 표현한 것이다.

불상을 제작하지 않았던 이유에는 여러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형상 숭배 문화가 인도 지역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많은 종교에서 절대자를 형상화하고 조각상을 만들어 그 상을 절대자라 여기며 숭배하고 믿는다. 현대인의 종교문화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아 형상 숭배가 없었던 시기를 쉽게 떠올리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모든 종교가 상을 숭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 불교는 상을 숭배하는 대신 상징적 표현 방법을 택하여 부처를 표현했다. 이때 종교에서 절대자를 나타낼 때 형상을 사용하는 방식이 더 우월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징적 표현 방식으로 형상에 고정되고 제한된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 교리 전달의 무한한 가능성을 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 자체에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형상과 상징적 표현 중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각 종교의 특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두 번째 이유로는 불교는 원래 붓다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석가모니 붓다는 수행을 통해 진리에 깨달은 자로서 존경받지만,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게다가, 육신과 감각의 세계를 아득히 초월한 열반의 세계로 접어든 석가모니를 현실 세계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 또한 불교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붓다의 모습을 형상화할 당위적인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무불상 시대의 무불상 표현양식은 지역에 따라 기원후 200년까지도 이어져 왔으며 불교의 본토인 인도 내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이전의 관행과는 다르게 붓다를 신처럼 숭배하는 분위기가 점차 고조 되었다. 이런 시대적 양상에 따라 무불상 표현을 딛고 불완전한 형태의 초기 불상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최초 불상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불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으며, 이때의 불상은 인도의 고유한 양식으로 형성되었기에 우리가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가 흔히 ‘불상’이라며 떠올릴 수 있는 완성형 불상의 모습은 이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인도의 마투라와 간다라 불상에서 시작된다.

부처의 미소

아르카익 스마일과 바로 앞에서 언급한 완성된 형태의 불상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도의 간다라와 마투라 양식 중 특히 간다라 양식의 불상은 여러모로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는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상의 얼굴이 그리스인을 닮은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된다.

스물아홉 살의 알렉산드로스는 이전에는 매번 실패했던 험준한 힌두쿠시산맥을 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힌두쿠시산맥 남부의 카불 분지, 스와트, 페샤와르 분지 등을 차례대로 정복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마케도니아 왕의 오랜 소원이었던 힌두쿠시산맥 정벌은 지금의 인도 지역에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했다. 이때 인도에 ‘아르카익 스마일’이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간다라 양식에서는 부처가 자애로운 웃음을 짓는 불상들이 많이 제작되었고, 이는 다시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가 전파되며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 아르카익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미소가 멀리 떨어진 아시아권에서도 쉽게 포착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또한 아르카익 스마일을 짓고 있는 많은 불상이 있다. 대표적으로 백제의 미소가 그렇다. 서산 마애여래 삼존불상의 잔잔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미소는 아르카익기의 코레와 쿠로스의 미소와 사뭇 닮았다.

이뿐만 아니라 석굴암의 본존불, 미륵 반가사유상의 미소 또한 아르카익 스마일이 시발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반가사유상과 금동반가사유상은 모두 자애로운 미소로 유명한 국보이며, 깊은 생각으로 초월적인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얼굴에 닿아있는 손동작 또한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애도의 표현으로 쓰이던 동작과 유사하다.

간다라 양식을 따르는 불상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러 불상의 모습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미술 양식이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얼굴형과 눈, 머리 스타일의 외형에서 직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원래 불도들은 석가모니처럼 머리를 깎고 수행하는 것이 관행이나, 많은 불상의 모습에서는 긴 머리를 땋아 올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교에서는 제대로 된 옷을 걸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불상이 옷을 입은 상태이며, 이 옷 주름의 표현과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고대 그리스 미술 조각상들의 특징적 표현이다.

아르카익 스마일이 현대에 전해주는 것

기원전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이 만든 미소는 다소 딱딱하고 엄격하며 진지할 것만 같은 미술의 세계에 무엇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전해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스라는 한정된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된 어눌하지만, 생동감 있는 미소는 여전히 우리들의 삶에 가까이 있다.

최수경 waterglasses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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