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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역사는 그만큼 우리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학문이다. 그중 서양사에 관심 있는 학우들은 이 인터뷰에 특히 주목하자! ‘서양사개론’의 김경현 교수님과 함께 서양사와, 역사의 매력에 더욱 빠져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1. 교수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에 재직 중인 김경현입니다. 저의 주 전공은 서양 고대사이고, 그중에서도 로마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사에 특히 관심이 많고, 최근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2. 서양 고대사를 전공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 역사 과목을 상당히 좋아했고, 중고등학교 때 들어서는 역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보다 역사 선생님을 더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사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 신라 후기 사와 고려시대 초기 사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제가 진학한 학교에는 해당 부분을 전공하는 선생님이 계시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3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던 중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지동식 교수님께서 제게 서양 고대사를 권유하셨어요. 또 그분의 세부 전공 주제까지 물려받아 공화당의 정치 제도사에 관해 공부하면서 서양 고대사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3. ‘서양사개론‘ 수업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처럼 서양사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과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괄적인 지식의 습득만을 넘어서, 역사적 사고를 함양하는 것이 이 과목의 주목적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서양사개론은 그런 역사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4.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서양사란 무엇인가요?

보통 ‘서양사’라고 하면, 서양인들의 역사라고만 떠올리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철저한 남의 역사, 타자의 역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의 역사 속에 서양의 법, 제도, 문화 등 많은 것들이 녹아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점에서 보면 서양사는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5. 첫 수업 시간에 의구심을 갖고, 스스로 답을 구하며, 이를 기록하는 것이 역사이기에 ‘역사는 질문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대부분의 학생은 역사 과목이라고 하면 과거에 살았던 인물과 사건들을 단순하게 암기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절대로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사실과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역사이죠. 다른 학문에도 다 적용되는 이야기이겠지만, 특히 역사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직접 답을 구해보고, 그 구한 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6. 교수님께서는 역사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역사 과목의 경우 어떤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게 좋을까요?

모순된 부분에 질문을 던지는 게 좋아요. 기본적인 사실들을 넘어서 어떤 스토리의 전개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에 모순된 지점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부분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구심을 가지고 새로운 각도에서 질문을 해보는 거죠. 어쨌든 그 질문은 본인이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고,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스스로 찾아나가야 할 거예요. 그 답과 관련된 자료도 수집해야 하고, 이 자료가 과연 나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판단해야 할 것이고요. 그런 과정을 겪게 되면 이제 자기만의 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이 답을 남들과 공유하고, 글도 써보며 여럿과 함께 나누다 보면 역사적 사고도 함양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7. 교수님께서 직접 가보신 곳을 수업 시간에 다룰 때면,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곤 하잖아요. 그럴 때면 교수님의 해외 경험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서양 고대사를 전공하시면서 본고장인 그리스에 가셨던 경험이나, 영국 해외 경험 등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서양에 가본 건 영국에 갔을 때가 처음이에요. 한국에서 석사 과정 때 일본에 한 번 갔다 온 거 외에는 비행기 타본 적이 없어요. 저희 지도 교수님이 유학을 반대하셔서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상태였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있지 않아서 이용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런던대학교에 방문학자라는 자리를 얻어 논문을 위한 자료를 수집한다는 목적을 띠고 영국에 가게 되었죠. 그런데 가서 보니 도서관에 제가 원하는 책들이 다 있고, 세미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더라고요. 그런 점에 매료되어서 런던에서 박사과정을 다시 한번 밟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박사과정을 총 2번 밟은 셈이죠.

사실 어찌 보면 영국에서의 생활은 즉흥적으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비자를 발급받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영국은 3년 비자를 발급받기 참 어려운 나라예요. 제가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음에도, 언젠가 마음을 바꿔서 이 과정을 그만두고 영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3년 비자를 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갱신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이야기하더라고요. 차를 몰고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비자를 받으면 쉽게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비자 발급을 받을 겸, 역사와 관련된 다른 나라들도 여행하게 되었어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여행을 다녔던 거죠. 사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준비하고 가서 봐야 무언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거니까요. 준비하지 않고 가면, 가서 봐도 본 게 아니에요. 제가 그랬어요. 그리스 같은 경우에도 크레타섬을 한번 가봤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갔더니 많은 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이해를 하지 못하고 왔어요. 그래서 다른 분들도 여행이든, 유학이든, 충분히 준비하시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8. 박사 과정을 두 차례 거치셨다니, 놀라워요. 두 나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시면서 느낀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런던 유학 생활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박사과정 수업이 지도교수와의 1:1 방목형 수업이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처럼 학생들이 모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 아니었죠. 또 한국에서는 지도 교수님들이 상당히 많은 것들을 주도하시는 데 반해, 영국에서는 모든 걸 학생이 다 해내야 한다는 것도 달랐습니다. 다룰 주제에 대한 선정부터, 그 주제와 관련된 자료 수집, 그 수집한 자료를 직접 공부한 뒤 내용을 정리하는 것까지 전부 학생이 주도해야 했죠. 이후에 선생님께 A4 용지로 10장 정도를 정리해서 드립니다.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면 다시 해오라고 이야기하시고요. 준비된 것 같다면 만날 날짜를 잡고 수업을 진행합니다. 이런 전반의 과정이 한국에서 제가 겪었던 방식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처음 가서는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방목형 수업이 오히려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상당히 고생스러웠고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지금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저도 학생들이 질문을 할 때면 스스로 찾아보라고 얘기를 하곤 해요. 제가 이야기해 주면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만, 스스로 찾아보면 절대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9. 에드워드 핼릿 카 (E.H.carr) 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고, 교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현재에 방점이 찍힌, 오히려 부당한 대화’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래도 역사란 현재 역사가들의 관점에서 과거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다면 서양사개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 더 나아가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역사라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어떤 점에서 보면 부당한 대화라고 이야기했던 것이었어요. 이 현재의 관점이라는 게 절대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당히 상대적이고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카의 말처럼,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상호작용하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과거가 대화를 이끌어 갈 수는 없잖아요. 현재에 있는 우리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거죠. 그리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성, 계급, 이데올로기 등 수많은 부분에서 다르고요. 즉, 과거에 대한 해석은 절대 하나일 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이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역사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배우는 분들도, 이 점을 유념하시고 역사를 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로마사를 전공한 만큼, 로마사와 관련된 사람을 한 분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로마에 공화정의 문을 닫고 제정을 시작한 아우구스투스라는 분이 있어요. 이 아우구스투스 주변에는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특히 뛰어난 문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베르길리우스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죠. 이분이 하신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가장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사물의 원인이라든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물의 원인이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것은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추구하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따라서 전공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서 답을 찾으면서 자신의 학문과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나 사물의 원인을 알게 되면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학문에 대해 너무 고심하지 마시고 충실하게, 어떻게 보면 최선을 다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실패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최선을 다하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고 있는 베르기우스의 말씀을 여러분과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물의 원인이나 이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역사교육과의 빛! 김경현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서양사의 이해’ 교양 수업을 통해서도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교수님만의 유머 코드와 흡입력 있는 강의는 교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문정윤  jungyun03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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