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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9금 선거를 들여다보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고, 투표권을 갖지 못한 청소년들이 의무는 짊어지지만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19금’ 선거 문제, 20대인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대두되는 청소년 참정권 문제

청소년 투표권. 누구나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오래된 화제지만 2014년 헌법재판소가 만 19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에 합헌 결정을 내린 후 이 논의에 눈에 띄는 진척은 없었다. 인터넷 등지에서의 찬반 토론은 때로 타성에 젖어서 해묵은 논리들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참정권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계속 식지 않고 뜨거운 이유는 기존의 방식이 법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의 기준은 아주 다양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민법을 따라서 만 19세가 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말한다. 성년이 되는 나이는 세계적으로 비슷해서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19세를 기준으로 하거나 한두 살 차이 나는 정도인데, 그래도 18세 투표권이 없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그 이유를 2014년 헌재의 결정문에서 찾아보면 미성년자가 ‘합리적인 입법 재량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독자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율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간략하게 말해 미성년자는 투표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명백한 허점들을 내보임으로써 청소년의 시민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을 만들었다. 18세가 혼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미성숙한 나이여서 하한선을 두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상한선도 만들어서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힘든 과성숙한 나이도 제한해야 하지 않은가. 또 특별히 판단력이 흐린 계층을 가려내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전부 어림없는 소리, 선거권이라는 게 어디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던가. 정치적 의견을 밝힐 자유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고 누군가의 신념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고등학교가 정치화되면 공부에 집중해야 할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견도 현행법을 지지하는 근거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진학 연령대의 청소년 중 약 6.5%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으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이 입시를 치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행되는 교육감, 교육의원 선거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육 정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학생들이 의사 표현의 기회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것인지 의문스러워진다.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닌 청소년의 경우도 문제가 된다. 우리가 스무 살이라고 인식하는 대학교 1학년생, 혹은 사회인들은 4, 5월에 치러지는 선거에 70% 이상 참여하지 못한다.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다. 청소년 투표권 제한의 모순적인 부분은 이처럼 다각적인 방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 투표 문제와 20대의 목소리

청소년이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의 반대편에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상하게도 이 두 가지 의견은 가끔 양립해서, 19세까지는 정치적인 것에서 순수해야 하고 20대가 되는 순간부터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묘한 인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저조한 점을 들어 민주국가로서의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 중에는 사회 참여적인 대학생을 만드는 것이 지속적인 정치 교육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청소년이 꾸준하고 점진적으로 정치에 가까워지도록 하지 않으면 활발하게 정치적 활동을 하는 20대도 늘지 않는다. 청소년 투표권이 보장되어서 청년에 대한 정책이 활성화되면 미래 세대가 정치를 외면한다는 비판도 줄어들 것이다. 사회에 장벽을 만드는 것은 뭐든 지양해야 하지만 특히 나이의 장벽은 점차 없애 나가는 것이 평등 국가에 가까워지는 방향이다.

청소년 투표권 논란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여태 제자리를 답습해 온 것은 결국 청소년을 성인과 동등한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배제 논리의 일환이다. 만 18세는 병역의 의무도, 납세의 의무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의 의무도 갖지만 투표권은 없다. 이걸 헌재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으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청소년이 가진 무게감은 성인의 것보다 가볍고 미약하다는 뜻이다. 민주국가에서 한 표의 의미는 그런 것 아니던가. 하지만 그 의견을 지지하기에는 기준이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20대 표의 존재감은 완전한 성인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청소년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논지에 의하면 또 누구의 선거 권리가 재단당해도 지금처럼 묵시될지도 모른다.

어린 사람들도 미래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쥐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건강한 토론을 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자라 20대 청년이 되고 많은 책임을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측에서 자성과 공론화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 열린 사회를 향한 긍정적인 한 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을 향한 청년의 목소리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20대와 청소년 표의 의미

세대는 칼로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0대는 청소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와중에 의식 수준을 문제 삼아 특정 세대의 참정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 원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최근의 선거들에서 20대 투표율은 주요한 변수가 되었다. 그 점에 주목한 몇몇 정당은 젊은 표심을 노리기 위해 청년층을 상대로 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중 상당수는 이벤트성 정치라는 비판을 들었고 정말 청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의견 교환과 사실 확인이 과거의 어떤 세대보다도 빠르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점이 기득권 계층을 견제하는 요소가 될 것이고 그것은 청년층의 의견이 힘을 지니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다.

사실 선거 연령과 관련해 화두에 오르는 것은 선거권 문제뿐 아니라 피선거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25세 이하는 의원 출마를, 40세 이하는 대통령 출마를 할 수 없는 한국 정치에서 청년의 입지는 관습으로 제한되고 있다. 정치는 언제나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므로 청년의 비전은 청년이 제시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기성의 정치는 미래의 정책을 미래 세대에게 결정하게 하는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세, 25세, 40세에 걸쳐진 가림막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18세, 혹은 그 이하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을 지각없는 꼭두각시 투표자로 만들 수는 없다. 요컨대 표면적인 선거권 숫자만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금껏 외면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을 조금씩 참정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그들의 생각도 듣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선거권자들도 투표를 안 하는데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논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성이나 의지는 나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선거 연령에 얽힌 모든 논의는 이 문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 투표권에 대해 찬성, 반대의 뜻을 견지하는 것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따라서 이 모든 게 선거 연령 하한선 논쟁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청년인 우리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갖고 부당함을 거부할 사고의 힘을 갖춰야 한다. 이는 단순히 투표 가능 나이를 한 살 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으로서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움직임이다.

 

지지부진한 화제로 여겨지는 청소년 투표권 문제를 20대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았다. 이제 우리는 찬반 논란에 갇혀 본질을 흐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사 당장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20대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최소현  7_3_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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