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올
어렸을 때 한글 놀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타블렛에 시장 그림이 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사과' 같은 걸 읽어줬다. 내가 열 살 좀 지나서 사실 한글 놀이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는데, 할머니께서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걸 다른 걸로 착각해서 사 오신 것이었다. 할머니 계실 때 열심히 가지고 노는 척했다. 사과, 바나나에 당근...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배려했던 첫 기억 중 하나다.
케일럽
비슷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후 친구가 생일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있습니다. 국간장 대신 진간장을 넣고 끓인 미역국. 태어나서 처음 보는 빛깔의 미역국이었습니다. 맛도 어딘가 충격적이었죠. 그래도 참 맛있게… 고맙게 먹었습니다.
kimminsartre
정말 마음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그리고 이 기억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배려했던 첫 기억'으로 여길 수 있는 휘진님도 참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 같아요. 저도 누군가를 배려한 첫 기억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고 싶어지네요.
(2) 케일럽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이런 유의 질문에 보통 무한한 상대주의에 빠져버리는 접니다만, 요즘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속이는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진정성’ 있게 답해주세요.
박슴슴
저는 비슷한 맥락에서 담백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덜어낸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솔직함이란 게 분명히 있거든요. 솔직하되 담백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솔직담백'은 붙여 쓰는 걸까요?
책.벌레
저는 글을 쓴 시점의 시간성인 것 같아요. 글은 기록이고 기록은 곧 역사가 되니까요.
빗방울 친구
저는 진심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사람의 진심과 글을 읽는 사람의 진심. 글 안에 한 사람의 진심을 담을 수 있고, 그 안에서 그 사람의 진심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3) 2NE2
어렸을 적엔 왜 그렇게 20살이라는 나이가 특별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미성년자로서의 제약이 풀어지는 나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그때엔 대단히 많아 보이는 나이라 그랬던 걸까? 어쩌면 20살이 되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리라는 기대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작 19살에 마침표를 찍고 20살이 되었을 때의 설렘은 아주 잠시였고 그저 똑같은 일상의 반복, 1년 전의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나에게 20살은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됐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살의 실망스러운 기억 때문인지 이제 매년 새해가 그리 새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올
어쩌면 우리는 시작과 끝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바디 프로필 유행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건강은 이어져야 하는 것인데, 사진에는 '끝'이 있어서. 저는 새해에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우리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4) 이흠흠
저는 어느 하루가 기억나는데요,
우리는 별로 말이 없었고 날은 무척 더웠어요.
낡은 서울을 두고 이러저러하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 집에 왔는데....
저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여행은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빗방울 친구
저도 비슷해요. 누군가 제게 여행 취향이 뭐야? 라고 물을 때면, 저는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답하곤 하니까요.
후기 덕후
저는 지금도 여행은 혼자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함께 떠날 때보다 얻는 경험치가 극대화 된다고 할까요? 다만, 그런 저라도 여행길에서 정말 좋은 일을 겪으면 누군가를 떠올리곤 합니다. 경험치 따위보다 그 사람들이 훨씬 소중한가 봐요.
눈송이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먼 훗날에 그때의 추억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예요. 혼자 경험했다면 기억에서 지워졌을 일들이 누군가와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추억이 되어 기억을 떠나지 않는 거죠.
(5) 빗방울 친구
투둑투둑. 빗물의 노크 소리다. 조용히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면 이 노크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럼 주저하지 않고 빗물이 두드리는 창가 쪽으로 다가간다. 직접 비를 맞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 비를 맞는다. 누구와 인사를 하고, 어디로 가는지, 방 안에서 쳐다본다. 소리만 들어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책.벌레
아침 일찍 미술학원을 향하던 수험생 때의 여름이 생각나네요. Harry Belafonte의 노래를 들으며 홀딱 젖은 채 학원에 들어가던 그때가 가장 자유롭던 때처럼 느껴져요.
다올
자연만이 줄 수 있는 평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 방 침대 위에는 작은 창문이 있어요. 창문을 살짝, 감기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열어두면 머리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요. 어떻게 21층까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걸까요? 가을밤에 잠드는 건 참 기분이 좋아요.
(6) 책.벌레
문득,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펼쳐보면 언제 그었는지 모르겠는 줄들이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좋아했었구나. 그러나 책의 내용은 증발해 버리고 없다. 읽으면 잊히는 독서. 책은 그런 매체다. 그럼, 책이 아닌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 분명히 있지만, 무언지 잘은 모르겠다.
케일럽
하지만 모든 책을 수험생이 공부하듯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세한 내용은 흐릿해져도 읽은 책의 흔적이 삶의 태도, 말투, 행동에 은은하게 남는 것이 독서의 기쁨 아닐까요. 진짜 좋은 독서는 내용을 달달 외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 몸에 스미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슴슴
저는 책에서 구원을 바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필사하기도 하고, 매일 간절히 읊조리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집착과 함께 책은 증발해 버려요. 하지만 아쉽진 않아요. 건우님 말대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남아 있을 거란 분명한 믿음이 있으니까요!
(7) kimminsartre
누구보다 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인 저의 보물 1호는 역시 필름 카메라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늘 갖고 싶던 물건이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 캐논 오토보이 텔레라는 86년생 필름 카메라를 큰맘 먹고 구매했어요. 화질은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떨어지지만, 신기하게 필름으로 남긴 사진을 보면 그 어떤 사진들보다 선명히 느껴집니다. 마치 그 어떤 한 명의 인물 그리고 하나의 사물의 찰나도 놓치지 않은 채 고르게 찍어내는 듯하죠. 너무 빨라 벅차게 느껴지는 이 시대에서 한 장씩 아끼며 공들여 기록하고, 한참 뒤에야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필름의 ‘느림’은 저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입니다. 📷♡!
후기 덕후
저도 요즘은 느림을 소중히 대하고 있어요. 느림은 곧 뒤처짐이라고 생각해서 떼어내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막상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느렸던 일들이더라고요. 덧붙이자면 꼭 그 카메라가 오래도록 사용되었으면 좋겠어요. 느림과 꾸준함의 조합은 늘 아름다우니까요.
(8) 박슴슴
<굿 플레이스>에 나오는 프리즌 요거트를 좋아한다. 그 미묘한 듯 애매한 맛이 좋다. 과한 만족을 원하고 또 충족시켜 주는 상호작용 사이에서 이를 절충할 적당한 그 맛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 일상에는 슴슴함이 필요하다.
이흠흠
미묘하고 애매한 맛은 야채들도 참 잘하지요. 저는 밥은 먹기 귀찮지만 건강하고 싶을 때, 야채를 뜯어 먹습니다. 감자나 옥수수는 굽기만 해도 한 끼가 되고, 오이나 당근은 껍질만 벗겨도 반찬이 돼요.
눈송이
일상 속의 슴슴함은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겠죠. 하지만 저는 가끔의 상큼함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한 만족감만이 다시 슴슴한 일상으로 돌아갈 원동력이 되니까요.
2NE2
슴슴함이라! 정말 제 일상에도 슴슴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과도한 자극에 지쳤거든요…. 그래도 조금의 자극은 필요하겠지요? 너무 슴슴한 하루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요~
(9) 후기 덕후
<편집 후기>라는 토막글에 왜 그렇게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선배들이 남긴 후기에 반한 새내기는 그렇게 교지에 지원하기로 결심합니다.
교지 생활의 시작과 함께 피어난 후기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저의 삶에 녹아 들어있어요. 어떤 일이 끝난 뒤에는 직접 후기를 쓰기도 하고, 심심하면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쓴 후기를 찾아 읽어보기도 합니다. 많은 후기를 접하면서 느낀 건, 그 짧은 글에 너무나도 긴 시간이 담긴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기억들이 빽빽하게 압축돼서 영원히 보관되는 소중한 글. 그래서 더 애정이 가나 봅니다. 당분간은 후기를 잔뜩 써서 모아놓을 예정이에요. 조금 더 어른이 되고 나서 모아놓은 후기들을 보면,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것들이 보일까요? 무섭기도 하고, 기대도 되네요.
2NE2
첫 후기를 썼을 때 가슴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벌써 네 번째 출간인데요, 예전의 후기를 보면 나의 변한 점도, 그대로인 모습도 보이네요. 그것도 '후기'가 주는 하나의 재미겠지요?
(10) 눈송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 19년 동안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본 건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겨울이면 같은 실망을 반복했어요. 저는 항상 새하얗게 물든 거리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서울에 상경한 이후, 하얗게 뒤덮인 거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눈을 성가시기만 한 것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눈이 너무나 좋아요. 빙판길에 넘어져도 보고 우산을 안 들고 나와 옷이 축축하게 젖어도 봤지만, 여전히 눈은 제게 낭만으로 존재합니다.
kimminsartre
언지가 부산에서 자라서 눈을 신기해하는 것처럼, 각자마다의 생활과 환경으로 이루어진 그 사람만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재밌어요. 나와는 다른 서로의 세상을 알아가는 건 참 즐겁고 흥미로운 일 같습니다. 그리고, 눈이 오랫동안 언지의 낭만으로 남았으면 해요!
이흠흠
서울의 겨울에는 언제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그 눈을 기다리는 소소한 기대가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정말로 눈이 올 땐 그걸 보는 모든 사람이 눈이 온다는 다 같은 하나의 생각을 하는 게 재밌어요.
와우 기자 일동 clara_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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