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에 입학한 지 4년. 입학을 희망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꽤 오랜 시간 건축인으로 살아왔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낭만에 차 있었다. 자신만의 집을 짓겠다는 어린 꿈부터 시작해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탈건’이라는 말도 있었다. 건축에서 탈출한다. 입학도 하기 전부터 이 단어를 심심찮게 접했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이 말 앞에 나는 무기력해졌다. 불안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탈출을 걱정해야 한다니. 막상 서울에 올라와, 건축학과에 입학하고 마주한 세상은 더 넓었다. 건축은 확실히 힘들었다. 밤을 새우고, 밥을 거르고, 코피를 쏟고. 하지만 동시에, 분명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낭만’이라는 구태한 표현을 기어코 꺼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가능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의 기대보다 더 열정적이었고 그들의 상상에는 한계가 없었다. 수많은 기회와 거대한 꿈이 있었다. 탈건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역동성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화가 난다. ‘탈건’이라는 간편한 말 앞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좌절해야 했나.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

내가 인지하기 전부터 이 말은 내 좌우명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즐길 수 없는 것들은 철저히 피하는 타입이었다. 대표적으로 수학이 그랬다. 수학은 내게 도무지 즐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머지 공부를 하는 한이 있어도 풀기 싫은 문제는 안 풀고 말았다. 대신 즐길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데는 열정적이었다. 수학 공부는 미뤄두고 국어 지문으로 발췌된 소설책을 사서 읽었다. 결국 수능에서 처참한 수학 점수를 받고 재수를 했지만 말이다.

    건축은 말하자면 즐길 수 있는 쪽이었다. 건축 책은 재밌었고 얕은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당시 지방에 살던 내가 건축에 관해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몇 개의 플랫폼을 발견했다. 소수의 카페, 대학생 유튜브 채널... DC인사이드 건물갤러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특유의 냉소와 비관. 어차피 우린 다 망했다는 패배주의. 하나 같이 ‘탈건은 지능 순’이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학부 때 설계에서 도태되어 탈건한 이들이 지금은 본인보다 몇 배를 더 버는지. 본인들의 회사가 얼마나 엽기적인지 성토하고 있었다. 오픈채팅방도 다를 바 없었다. 현업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은 대학생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너네는 이제 큰일 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가능성과 꿈에 관해 얘기하면 ‘아직 어려서 모른다’라며 비아냥댔다. 어렴풋이 알던 탈건이란 낱말의 의미가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어린 나에게 그 순간들은 작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진학할 학과를 정하던 때를 떠올려본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성적이 충분한 친구들은 의대에 지원했다. 많은 다른 친구들은 공대에 지원했다. 아침 7시 50분에 등교해 밤 11시까지 자습을 하는 그때의 고등학생에게 ‘좋아하는 것’ 따위는 또 하나의 스펙에 불과했다. 성적에 맞춰 어느새 정해진 적성과 취미로 생활기록부를 채워야 했다. 그때 그 친구들이 모두 의학을, 공학을 좋아했을까.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단상도 든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딱히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고. 결국 중요한 건 ‘좋아함의 농도’다. 무언가에 대해 좋아함의 농도가 짙은 사람은 어떤 환경적 요인이 있더라도 그 일이 아니면 미래를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못 하고 사는 것. 좋아하지 않는 일로 인생을 붙들고 있는 건 상상하는 것 자체가 공포다. 얼마큼의 돈을 벌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등의 목표가 더 중요한 사람과 좋아하는 일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준이 같을 수는 없다. 나는 후자의 경우였다. 첫 수능을 보고 적당한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붙었지만, 컴퓨터를 전공하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나는 정말이지, 건축이 아니면 안 됐다.

건축의 농도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나는 정말 이 학교, 이 학과에 들어오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곳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했다. 건축을 사랑했다. 밤새도록 설계를 하고 선배들에게 불려 가 술을 마시면 또 건축 얘기를 했다. 그 날카로운 30도 칼로 손가락을 그으면 얼마나 아프던지. 밴드와 본드 자국 범벅인 손으로 술잔을 쥐면 그 술은 또 얼마나 달콤하던지. 더러운 홍대 술집 작은 공간에서 우리는 한국 건축의 미래 따위를 논했고, 빈약한 안주로도 남부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건축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멋모르는 학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멜랑꼴리한 기분도 들었다. 익명의 패배자가 심어준 트라우마는 이따금 고개를 내밀었다.

    건축은 유독 짙은 좋아함의 농도를 요구하는 분야다. 하루가 멀다고 밤을 새울 때, 부실하게 끼니를 때우다 결국 어지러워 쓰러질 때, 그렇게 준비해 간 결과물이 교수님에게 절하될 때, 이 짓을 5년 동안 하고도 통장에 찍히는 자그마한 월급을 바라볼 때. 이 모든 걸 감수하고도 ‘건축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 농도가 아니라면 회의감이 들기 십상이다. 낭만적이고도 잔인하다. 비참하게도 좋아함의 농도는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농도가 옅은 사람이 건축에 발을 들였다가 결국 탈건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사람이 ‘탈건무새’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들이 싫다. 말로는 탈건을 들먹이지만 정작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행동은 절대 취하지 않는 그들이 싫다. 건축의 낭만은 허상에 불과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패배주의가. 불행한 인생의 원인은 자신의 무능함이 아니라 건축 자체에 있다는 책임회피가.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탈건을 운운하는 뻔뻔함이 싫다. 비관은 습관이 된다. 그들이 대물림하는 신세 한탄이 후배들에겐 트라우마가 됨을 모르는 그 몰지각도 싫다. 하지만 그들 또한 몇 년 전에는 나만큼 열정과 꿈이란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씁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신입생이 들어왔다. 친구의 소개로 한 신입생을 만났다. 그는 원래 가고 싶었던 학과가 있었지만, 삼수가 잘 안 풀렸나 보다. 자율전공으로 입학한 그는 ‘건축학과가 제일 높으니까’라는 이유로 건축학과 수업을 들었다. 그가 지망하던 학과는 건축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본인에게 건축이 재밌는지, 즐거운지보다 건축은 할 만한지, 졸업 후 전망은 어떤지 따위가 더 궁금한 사람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에는 그와 그가 본인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안일해 보였다. 전망이 좋으면 건축을 하겠다는 정도의 마인드로 본인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겠다는 게, 결정의 기준이 고작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입결이라는 게 답답할 정도였다. 내가 이토록 처절하게 걷고 있는 길을 그토록 간단하게 결정한다는 게 화가 났다. 그따위 선택을 하고 몇 년 뒤엔 어디 카톡방에서 탈건 타령이나 하고 있겠지.

피했다면, 즐긴다면, 사랑하라.

사회적 비극이다. 평생 학교-학원-집만 오간 학생들에게 난데없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하는 건 또 얼마나 무책임한 사회인가. 많은 학생이 별생각 없이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생이 돼서야 후회한다. 탈건을 고민하는 것도 슬프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탈건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안 맞는 일을 포기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건 용기 있는 행위다. 하지만 단순히 건축에서 탈출하는 것과, ‘탈건은 지능 순’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복잡한 인생을 한두 마디로 압축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며 삶을 비관하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건 패배주의와 책임회피, 뻔뻔함과 몰지각일 뿐이다. 사람은 겪어본 만큼만 볼 수 있다. 본인들이 겪어본 바가 건축의 모든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건축이 모든 측면에서 본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데, 왜 안주하고 있는가? 실천 없는 신세 한탄은 공허하다. 좋아함의 농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나를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자아실현인가, 돈인가, 안정적인 생활인가.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에서 오는 행복이 가장 크다면, 자아를 실현하고픈 욕망을 참을 수 없다면, 그 일을 찾아 떠나자.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 일로 인생다운 인생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자. 이것이 나의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내린 결론이다. 정답은 없고 지름길도 없다. 그렇게 도달한 결말에 우리가 진정 행복할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결국 인생 자체가 이 과정의 끝 없는 연속이다.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인생이 정답은 없고 끝없이 노력하는 과정이라면 그마저 사랑해야지.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고백하자면, 최근 몇 주간 나도 탈건을 고민했다. 탈건을 부르짖는 자들을 그렇게 비판하던 내가 탈건이라니. 부끄러워서 어디 말하지도 못했다. 복학을 앞둔 나는 열정이 넘쳤고 과한 계획을 세웠다. 한동안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학기 말에 여러 악재가 겹쳤고 내 정신력은 무너졌다. 건강은 날로 안 좋아졌다.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으니 면역력이 무너졌다. 기침을 달고 살았다. 마감을 일주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갈비뼈가 부러지고 노트북이 망가졌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 건축이 즐겁지 않았다. 마감 전날에는 도저히 이 모든 걸 해낼 수가 없어서,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서 새벽 5시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잠에서 깬 엄마는 건축 하나만 보고 타지로 가 공부 중인 아들이 더는 건축을 못 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의지가 꺾여버린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고민했다. 이 과정을 겪고 다시 본 나의 글은 오만하기까지 했다. 진짜 힘든 건 경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패배주의니 뭐니 했던 건가.

    아니, 그래도 글을 완성하자.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좋아함의 농도는 정해진 게 아니다. 누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건 내가 정한다. 내가 건축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지, 건축이 내게 어떤 시련을 줘도 버틸 수 있는지, 내가 결정한다. 나는 건축으로 끝장을 보겠노라 다짐했고 그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새내기 적 꿨던 꿈이 허상이라 믿고 싶지 않다. 좋아함의 농도는 단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건축은 애증의 대상이다. 건축을 사랑하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저마다의 좌절을 겪으며 건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건축이라는 세상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건축에서의 탈출이 아니다. 행복과 성취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치기 어린 내가 쓴 글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야 2학년을 마쳤을 뿐이고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나를 흔들 것이다. 그럴 때면 이 글을 다시 들춰봐야겠다. 다른 것들을 피해 이곳에 왔고, 나는 건축이 즐겁다. 건축을 사랑하겠다.

변건우  qzo4@i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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