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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여자, 파란 남자

치마를 입고 있는 빨간 여자와 바지를 입고 있는 파란 남자, 그것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떠올린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이 기호를 접해 왔지만 대부분이 화장실 픽토그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기호가 우리의 성 편견 및 성 고정관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이야기하면 보통 ‘왜?’라고 반문할 것이다. 왜 문제인지 조차 모르는 화장실 픽토그램, 왜 문제인가? 어디가 문제인가?

픽토그램이란 사물, 시설, 행태, 개념 등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적인 그림으로 나타낸 일종의 그림문자를 의미한다. 픽토그램은 1920년대 미국을 기점으로 세계에서 사용되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 전까지 외국의 픽토그램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기업과 사설 업체들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픽토그램을 사용해왔다. 그러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되어서야 픽토그램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재 지하철, 화장실 등 100여종의 시설이 국가표준(KS)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리의 픽토그램 기준과 그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여자색, 남자색

어릴 적 분홍색 옷을 입은 남자아이에게 '너는 여자색 옷을 입었냐?'라고 핀잔을 주고, 파란 크레파스를 쓰는 여자아이에게 '너는 왜 남자색으로 칠해? 너가 남자야?'라고 놀리는 것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우리 곁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 여자색 남자색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리가 보는 픽토그램의 대부분은 남자를 파란색, 여자를 빨간색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 빨간 여자와 파란 남자가, 대한민국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픽토그램 국제기준 표준안은 ISO(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ganization)라는 국제기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ISO는 1947년에 설립된 NGO 기구로 우리나라 또한 1999년 한국기술표준원이 가입하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ISO에서는 사람 모양의 픽토그램은 흑백으로 구성하도록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검정 사람 혹은 흰 사람이 아닌 빨간 여자와 파란 남자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다.

빨간색 여자와 파란색 남자는 우리의 성 고정관념 고착화와 더불어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픽토그램은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기호이다. 국제교류란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모두가 함께 살아 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픽토그램은 영어보다도 중요한 만국의 공용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픽토그램이 공공시설을 표현하고 있는 만큼 문화차이, 언어차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여 시설 이용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빨간 여자와 파란 남자 픽토그램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기호로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빨간색의 경우 국제적으로 픽토그램에서 위험함, 경고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많은 외국인들이 여자 화장실을 화장실이 아닌 위험 구역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징문자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함은 물론 더 큰 오해 또한 불러오는 셈이다. 빨간 여자 화장실은 소방방재청과 외국인들로부터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ISO 표준은 자발적 표준으로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 개선 상황은 미미한 상태이다. 더군다나 우리 스스로도 픽토그램의 색깔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시민의 편리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장실문화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그런데 화장실문화시민연대조차도 화장실 픽토그램에 있어 빨간색과 파란색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두 색상이 남녀 화장실의 구분을 쉽게 해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장실 픽토그램이 개선될 리가 만무하다.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화장실 픽토그램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 '바지를 입으니까 여자애가 사내아이처럼 굴지! 조신하지 못 하고!' '남자는 당연히 바지지.' 어릴 적 우리가 들었던 이러한 말들도 요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개인의 성을 이유로 개인의 옷차림에 굴레를 씌울 수는 없다. 개인의 취향, 활동성이 좋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여자들이 치마보다는 바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치마만을 고집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우리 모두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자신의 옷차림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여자라고 치마를 입고 남자라고 바지를 입을 필요는 없을뿐더러 그 누구도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런데 픽토그램 속 모든 여성은 A라인의 치마를 입고 있다. 모든 남자는 바지를 입고 있다. 이 기호가 ‘여자화장실에 바지를 입은 여자는 출입할 수 없다, 치마를 입은 남자는 출입할 수 있다. 바지를 입어야 남자화장실에 출입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픽토그램은 옷차림 기호로 성을 구분지어 정의 내리는가? 이러한 기호들은 암묵적으로 우리의 옷차림을 성에 따라 규정 짓고 개인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무시하고 성적 고정 관념을 내리는 것 이상의 문제이다. 이러한 픽토그램은 성 고정관념과 더불어 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띄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완전한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최종적으로 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 짓지 않고 인식하는 성 평등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분법적으로 성을 나누어 버리는 이 픽토그램은 우리의 성 의식을 고착화 시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화장실 픽토그램, 평등사회의 길을 열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화장실 픽토그램을 바꾸기 위한 활동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빨간색,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남녀 화장실을 검정색 흰색으로 바꾸고 기준에 맞춰 통일해달라는 요구 이외에도 최근 전세계에서는 다양한 화장실 및 화장실 픽토그램 변혁 캠페인이 있었다.

 

화장실 변혁 캠페인

유럽,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우리 사회보다 좀 더 빠르게 인권과 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성 평등과 올바른 성 개념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그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성 평등 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요즘은 단순한 성 편견 타파와 성 평등 의식 고양을 넘어서 양성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최근 미국에선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성 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restroon)을 만들자는 시민단체가 생기고 있다. 성 소수자들의 편의성을 보장해주자는 주장으로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단순한 픽토그램의 변화뿐만 아닌, 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회적 인식을 없애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성 중립 화장실에서 주장하는 성소수자들의 편의는 성소수자들 중에서도 제3의 성, 젠더퀴어, 트랜스젠더와 같은 소수자들을 지칭한다. (제3의 성 :남성, 여성과 다른 세 번째의 젠더 / 트랜스젠더 : 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 / 젠더퀴어 :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 지칭)

실제로 미국에는 현재 이 픽토그램을 사용하는 많은 성 중립 화장실이 생기고 있다. 남녀화장실 칸은 따로 되어있지만 개수대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형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녀가 마주보고 손을 씻는 성 중립 화장실의 이러한 모습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적응되고 나니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이야기한다. 성 중립 화장실에서는 남자와 여자뿐 아니라 성소수자들도 개인의 성적 정체성에 따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딸을 키우는 한 부모 가정의 아버지, 아들을 키우는 한 부모 가정의 어머니 또한 불편함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성 평등 사회로,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화장실 픽토그램 변혁 운동부터 성 중립 화장실 개설 운동까지.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성편견을 벗어나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주장들이다. 이외에도 요즘 세계에서는 젠더리스 퍼포먼스, 성 평등을 주장하는 캠페인 및 페스티벌 등 성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 곳곳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현재 지역 곳곳에서 사회단체가 픽토그램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고 성동구에서는 지난해 연말까지 총 48곳의 개방화장실의 픽토그램을 개선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인권재단 사람'과 '한국다양성연구소'와 같은 시민단체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KATS)에서는 국가표준 공공안내 픽토그램을 보급하고 있고 산업표준화법에 의해 정부기관에서는 의무적으로 이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성 평등이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화장실 픽토그램에 담긴 성문제에 관해 공감하지 못 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그러나 화장실 픽토그램이 단순히 표면적인 픽토그램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픽토그램을 바꿔 나가고,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성 평등 사회로 다가가는 중요한 한걸음 한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완벽하게 우리의 성 편견을 타파하고 인식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인지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의식을 갖는다면, 주변의 변화를 인식하고 살펴본다면 그것이 좀 더 이상적이고 우리가 지향하는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미림  mllee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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